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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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이상문학상 최연수 수상자였던 예소연 작가님의 단편소설집 “너의 나쁜 무리”.  <그 개와 혁명>이라는 소설이 꽤나 인상깊게 남았던 터라 다시 궁금했다. 이분이 어떤 유머를 숨겨놓으셨으려나 싶어서.


이 단편 소설집은 굉장히 신기한 관계들을 담고 있었다. 우리가 보편적으로 알고있는 일상적 그런 관계가 아니라 분명 남이지만 남같지 않은 그런 관계들. 가족이니까, 가족이라서 라는 말이 이제는 좀 오래된 말같이 느껴지는 요즘이여서 그랬을까, 꽤나 신선하면서도 익숙한듯 생경한 느낌이였다.


<작은 벌>의 서송이와 진정희는 묘하다. 병원간 이송을 위해 부른 사설구급차를 탈취하여 진정희의 마지막을 준비하러간다.그러면서도 그들은 ”살고 싶다“고 말한다. 사설 구급차의 운전자 이중일에게 당신은 죽고싶은 사람 같다고, “살고싶은 것과 죽고싶지 않은 것은 다른”것이라 말하는 두사람. 이중일 역시 과거로 인해 미래가 불투명해진 사람이다. 두사람은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자신의 구급차를 탈취한 이를 중일은 어떻게 그들을 응원하고 싶어졌을까. 어쩌면 아무도 없는 중일 자신에게 생길지 모르는 송이나 정희 같은 인물에 대한 갈망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족은 주어지는 것이지만, 가족같은 관계는 만들어가는 것이니까. 중일도 가족같은관계를 꿈꿀 수 있게 만드는 그런 관계를 송이와 정희가 보여주었기에 그들의 탈취를 응원하고 싶어졌는지도 모르겠다. 


표제작인 <너의 나쁜 무리>는 가족일까 아닐까.

여사와 나는 어떤 관계일까. 무튼 그것은 중요치않다. 나와 여사가 함께 살고있고, 여사는 아이인 내게 숨긴적이 없었다.  그리고 여사는 많은 남자를 사랑했고, 그 중 현구 아저씨는 오래된 연인이면서 여사의 돈을 들고 튄 인간이다. 현구아저씨의 연락을 다시 받았을 때는 돈을 회수하기 힘든상태였고, 현구아저씨는 그 돈을 나중에 굴착기를 팔아 나누기로 했지만, 그것은 아주 먼 훗날의 일이 되었다. 이미 내가 여사를 떠났고, 현구아저씨도 여사와 헤어졌고, 나도 당시 남자친구였던 이해신과 헤어진지 오래였다. 그리고 현재.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그들은  굴착기의 돈을 회수하기 위해 모였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도 그들을 모이게 한 것은 마치 돈이라는 가짜 피로 얽힌 가짜 가족같은 느낌을 준다. 그래서 작가님은 "나쁜 무리"라는 제목을 붙였던 것일까.

  가족이란 늘 좋을 수도 늘 나쁠 수도 없지만 피로 얽혀있기에 끊어지기 쉽지 않다. 그렇다면 이 가짜 가족의 끈은 돈인 걸까. 돈으로 얽힌 사이는 피보다 진할 수 있을까. 아니면 물보다 옅으려나. 분명한 건, 이들이 서로에게 느끼는 깊은 애증과 피로감은 영락없는 '가족의 그것'을 닮아있다는 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좋았던 <소란한 속삭임>.

지하철 사건으로 만난 모아와 시내. 둘은 <속삭임>모임을 만든다. 온갖 소음속에서 속삭임은 서로를 가깝게 만들고 마치 비밀을 공유하는 사이처럼 보이게도, 그리고 중요한 비밀스런 말을 하는 사이같게도 보이게 만드는.

그런 그들이 또다른 모임원을 찾아 간곳에서 만난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는 수자를 조건부 회원으로 들인다. 그리고 수자는 또 제안한다. “시끄럽게 구는것“도 하자고. 자전거를 타고 음악을 크게 듣고, 공원에서 오카리니를 불고, 

그렇게 친해진 세사람이 수자의 초청으로 간 그녀의 집에서 윗집 사람과의 분쟁을 해결하며 또다른 모임원 두리를 만난다. 뭐지 이 진짜 묘한관계는.

생각해보면 속삭임은 아주 가까운 거리에서만 서로의 말을 들을 수 있고, 그래서 더 집중하게 만든다. 내가 아니라 상대의 목소리에. 그리고 그 서로에게 집중된 작은 소리는 나의 감춰진 무엇을 드러내게 만든다. 

”정말 사는 것 같았다. 모아는 그렇게 살아있음을 감각하며 속삭이는 일은 정말로 사람을 살리는 것일 수 있겟다고 생각했다.“ p.178


이밖에도 <아무 사이>에서 나타나는 할머니들과 간병인의 관계. <통신 광장> 속 여인2와 해피엔드. 만나지 않았지만, 상대의 글로써 누구보다 상대를 이해하는 사이. 책 속의 인물들간은 관계를 정의할 수가 없다. 그저 어떤 사이라고 말하기에는 가족보다 가깝고, 가족이라 말하기에는 가족은 아니니까. 하지만 끊어낼 수 없고, 나의 감정 깊은 곳을 건드리는 관계들이다. 단지 휴대폰 속 저장된 이름 하나로 나를 이해시키는 사이.

대가족에서 핵가족, 그 핵가족 속에서도 파편화 되어가는 가족이라는 관계를 대신하는 무엇이 지금 우리가 맺고있는”사이“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가볍지만 진득하고, 타인은 이해할수 없지만 당사자들 사이에서는 절대적으로 정의되는 관계?


코로나를 겪으며 우리는 어떻게든 연결되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실감했다. 여러 플랫폼이나 사회적 변화속에서 다변화 되면서도, 묘하게 좁아진 느낌이 들지만, 그만큼 서로의 상처를 알아보는 이해의 폭도 깊어졌는지도 모른다.


추천.


”기문은 작별 인사를 아주 오랫동안 할 수도 있음을 깨달았다고 했다. 상대가 먼 길을 갈 때는 배웅도 오래 걸리는 법이라고.“ p.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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