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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 - 강순희 말하고 유시민 듣다
유시민.김세라 지음 / 은빛 / 2026년 3월
평점 :
인혁당 사건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우홍선 선생님의 아내 강순희 할머니의 구술을 듣고 유시민 작가가 쓴 책. 발간 소식을 듣고 샀다가 이제서야 읽었다. 선뜻 손이 가질 않았다. 이 책이 어떤 내용을 말하고 있을지 감히 짐작이 가서였을까. 읽는 내내 코를 훌쩍거리게 만들 거라는걸 나는 알고 있어서 였을까.
90이 넘어서도 자신의 삶을 책으로 남기고 싶었던 분의 인생은 어떤 것일까.
이 책은 강순희 할머니와 유시민 작가의 대담형식으로 쓰여졌지만 2011년에 79세에 하신 구술기록을 바탕으로 쓰여졌다. 정말로 할머니께서는 당신의 삶을 꼭 기록으로 남기고 싶으셨을까?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다고 책에는 쓰여져있지만 아마도 당신이 지나왔던 그 시간을 다시 되돌리지 말았으면 하는 바이였을까.
어쩌면 잔인한 국가폭력앞에서 당신이 어떻게 당신과 가족 그리고 연대하는 이들의 존엄을 지켜왔는지에 대한 증언록을 남기고 싶었던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한사람의 구술이고, 그 분의 인생이지만 우리 현대사의 전반이였다. 내가 강순희 할머니의 삶을 살았더라면 나는 90이 되어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라는 말은 못할 것 같았다.
할머니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하얼빈에서 였다. 하얼빈과 평양을 거쳐 6.25 전쟁으로 인해 북한에서 남한으로 피난길에 오른다. 전쟁통에 펼쳐진 끔찍한 이념전쟁은 무고한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넣기도 했지만, 강순희 할머니는 여기에 휩쓸리지 않았다. 정말. 지금에 봐도 당찬 K여고생이다.
그렇게 고아원에서 선생님에서, 한국은행의 직원으로 일하던 중 우홍선 선생님을 만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했다. 진짜 놀라웠던 점은 결혼 후에도 한국은행에서 일을 하면서 아이셋을 낳고 여전히 은행을 다녔다는 것. 와.우. 그 바탕에 남편 우홍선 선생님의 지지도 있었겠지만, 시어머니, 친정부모님의 영향도 컸다고 하신다. 남녀차별이 없는 집안 분위기, 정말 아껴주셨던 시어머니. 나의 말을 존중하는 남편. 그것이 그녀를 지금에까지 이끌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정말 놀라운 분이다.
아이 셋을 낳고 살던 중 터진 1차인혁당사건 /2차 인혁당사건. 남편을 위해 그녀가 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 아침 밤낮으로 경찰서,종교단체,구치소,감옥 등등을 돌며 남편의 구명운동을 했다. 당시 함께 잡혀갔던 다른 가족들도 함께 였다. 여기서 부터는 내가 감히 상상조차할 수 없었다.
더 놀라운 점은 그녀가 그 이후에 살았던 삶이다. 2차 대법판결이 났던 밤 집행되었던 사형으로 삶의 맥을 놓은 것 같은 그녀는 결국 다시 일어섰다. 아이들이 있었으니까. 그런데 그녀는 그때 가족만 보지 않았다. 당신을 도왔던 많은 이들이 고초를 겪을 때에도 그들 곁에 있었고, 다시 그들을 위해 거리로 나섰다. 남편의 구명활동때와 다름없이.
그리고도 아이들을 돌보았고, 일을 했고, 다른 피해자 가족들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나 자신의 피해에 매몰되지 않고
그럼에도 그 때의 일들을 하나 잊지 않고 기억하며,
나와 함께 했던 이들의 삶을 중요하고 고맙게 여기며,
늘 그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는 삶.
그렇기에 그 모든 일을 겪고도 90세의 강순희 할머니의 얼글을 그렇게도 맑으신 걸까.
내가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것은 우리가 아는 역사는 큰 그림,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궤적 안에서 해석된 내용을 알고 있는 것 뿐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한 사람의 인생으로 대입되는 순간은 다른 일이라는 것. 그래서 강순희 할머니는 당신의 삶을 글로 남기고 싶으셨구나라는 것을 비로소야 알게한 책이다.
6.25 당시 미군이 우리에게 우군이였고, 여전히 우방국이지만 당시 미군은 그저 전쟁을 피하는 피난민들에게는 두려운 존재였고, 지금은 보수인사로 알려진 인물도 당시에는 이분들의 탄원서에 도장을 찍어주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남편을 잃고 울분을 삼키지 못해, 택시에서도 동네에서도 남편 무덤 앞에서도 서슬퍼런 군부독재 시대에도 끊임없이 박정희 욕을 했을 때도 누구도 그녀를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묵묵히 위로해줄뿐.
이 책은 한 사람의 삶이지만, 한 사람의 개인적인 이야기로만 읽히지도 않았고, 우리나라 현대사의 굵은 사건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강순희 할머니라는 한 개인을 돌아보게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라면?" 이라는 대입을 해보았지만, 결단코 나는 90의 강순희 할머니의 얼굴을 하고 있지 못할 것이다. 어떻게 그런 모진 시간을 살아오신 분이 끝내 “사랑이 있으니 살아집디다”라는 말씀을 하실 수 있는 걸까.
그래서 눈물이 났고,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며 웃었다.
건강하세요.
추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