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호슈아 케나즈의 소설 <고양이들을 향하여>에는 한 여성 인물이 병원에 입원하게 되면서 그 딸이 그녀에게 요양원에 들어가야만 한다고 설득하느라 애쓰는 장면이 나온다. 어머니는 할 수 있는 한 저항하고, 딸에게 공포와 두려움을 표출한다. 딸은 인내심을 가지고 일련의 상투적인 문장들로 대꾸한다.
"겁내실 필요 없어요." "거기서 아주 좋아지실 거예요" "어머니가 괜찮으신지 우리가 잘 살필게요" "최대한 자주 뵈러 올게요" 등등.
우리는 이 말들이 거짓임을 대강은 안다. 우리에게 그 들을 건네받은 사람 역시 그것들이 거짓임을 짐작하거나 감지한다. 그런 말들을 하면서 우리는 죄책감을 쫒아 버리려고, 혹은 적어도 덜어내려고 얼마나 애쓰는가? p. 57
나는 이 말이 내게 올 미래라는 것을 알면서도, 과거의 나를 돌아보게했다. 우리 할아버지. 할아버지께셔 뇌출혈로 쓰려지셔 오래토록 병원에 계시던 무렵 방학을 기간 중 할아버지를 병원으로 찾아뵈었다. 오랜만에 온 손녀를 그토록 반기시며, 이미 말씀도 거동도 못하셨지만 너무나 반갑게 맞아주시던 그 모습. 의례적으로 30분쯤 있다가 일어서려는 나에게 좀더 있다가라는 제스처를 보내셨으나, 학원을 가야했던 나는 다음주에 또 올께요. 다음주에는 오래있다가 갈께요.라는 말과 함께 그곳을 벗어났다.
그리고 다음주에 나는 가지 못했다. 아니, 안간거겠지.
그리고 한 주를 더 건너뛰고, 3주만에 갔을 때, 할아버지는 페혈증으로 의식이 없으셨다.
내가 했던 그 말이. 왜 그리 가슴에 남는지.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이 책을 읽으며 다시 그 말을 떠올린다.
나의 죄책감을 쫒아내려 말했던 그 거짓을.
거짓인 걸 알면서도 내 손끝을 놓아주셨던 할아버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