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녹슨달
하지은 지음 / 달다 / 2023년 2월
평점 :
얼음나무 숲은 음악이 배경이자 주제였다면, 녹슨달은 미술이 배경이다 주제다. 한 천재 젊은 이의 이야기인줄 알았던 이 이야기는 미술이라는 예술계 속의 다양한 인간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인간이 아니라.
파도 조르디.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그 옆 흙바닥에서 그림을 그리던 아이. 캔버스에 줄하나 긋지 못하고 자살한 아버지를 보며,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 했지만, 그는 그럴 수 없었다. 그 안의 이야기를 그리지 않고는 버틸 수 없었으니까.
그렇게 흙바닥에 그림을 그리던 어느날 그를 찾아와 그의 그림을 본 귀족은 그를 자신의 저택으로으 이끌었다. 성당에서의 생활보다는 안락하고, 자신을 인정해준 이가 있다는 사실에 그는 행복했다. 그리고 그 자작을 오라버니라 부르는 아가씨 사라사에게 눈길을 뺏겼다.
그 행복도 잠시, 자작이 자살을 했다.
그리고 그는 유명 화가의 도제가 되었다. 그곳에서 만난 레오나드, 시세로.
파도는 그림 그리는 것은 좋았지만, 그의 그림이 평가 받는 것은 싫었다. 레오나드는 그의 그림을 마음에 들어했지만, 시세로는 그렇치 않았다. 그리고 레오나드는 시세로에 대해 경고한다. 그가 어떤 천재 예술가를 망쳤는지를. 그러니 너는 그리되지 말라고..
그곳에서 흙바닥이 아니라 캔버스에서 물감을 쓰며 그림을 그리는 파도. 여전히 사라사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멈출 수가 없다. 그녀가 누구와 결혼하는지 알고 있으면서도…
그리고 스승 벡리를 따라 들어간 궁전에서 죽은 자작과 사랑했던 여성을 만난다. 그녀는 왕세자비였다. 3살지능의 왕세자와 사는.
레오나드, 시세로
둘의 관계는 묘했다. 적의가 숨겨진. 그렇다고 마냥 그것이 “부정”의 의미만을 갖느냐라는 것에는 물음표가 그어진다. 대체 그들의 사이엔 무슨일이 있었던 걸까.
파도라는 한 천재 화가의 이야기인줄 알았던 이 이야기는 결국 어떤 분야의 타고난 능력이라도 그것이 그저 발현되는 것만으로는 사람을 감동시키는 무엇을 낳을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에는 때뭍지 않은 순수성도 있지만, 그 그림을 그리게 되는 누군가의 서사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이기도 했다. 시세로의 천장화, 레오나드의 한 여성의 그림, 그리고 파도의 고행길이 그러했다.
그 서사를 한장의 그림으로 그려내기까지의 시간. 노력. 아픔. 땀. 눈물.. 그 모든 것이 필요했다.
나는 글로 읽고있지만 마치 그림이 눈으로 보이는 듯하게 그려진 이 책은 처음 페이지를 여는 순간 끝까지 이들이 어떻게 이어질지가 궁금해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왜 녹슨 달이였을까.
그들의 삶은 녹슬지 않았는데.
어두움 속에서도 밝게 빛나지만, 아픔을 품고 있는 그들의 그림을 삶이… 녹슨달 같은 것일까.
재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