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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의에 대하여 - 무엇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가
문형배 지음 / 김영사 / 2025년 8월
평점 :
일반 시민이 헌법재판관의 이름을 아는 경우가 몇이나 되겠는가. 하지만 작년 12.3 그날 밤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대부분은 이분의 얼굴을 알게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몇해 전에 읽었던 '줬으면 그만이지'라는 책의 김장하 선생님의 장학생이였다는 사실을 알고 꽤나 놀라웠다. 사회의 선순환이란 이런것이구나..해서.
이 책은 문형배 재판관의 짧은 글들이 모인 에세이이다. 1부는 일상에 대한 기록이고, 2부는 책에 대한 기록, 3부는 재판관으로써 지내온 날들을 돌이켜 바뀌어줬으면 하는 의견이 담겼다. 개인적으로는 1부를 읽으며 요즘 왜인지 모르게 화로 가득한 나를 돌아보게하기도 했다.
이 분의 글을 읽으며 든 생각은 이런 표현이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참한 인품이구나.하는 생각이였다.
재판관으로써의 글이 아니라 인간 문형배라는 사람의 글이여서 였을까. 일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 신중함과 예의바름이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일상에서도 뭔가를 늘.. 배운다는 점이다. 재밌는 일화로 시외버스 타는법이 적힌 글은 정말..ㅋ
그러면서도 대학교 때 불법적인 연행 저항하여 파출소에 구금되었을때, 결국은 현실과 타협하여 학생증을 보여주고 풀려났던 일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법대생으로써 자신이 불법적 행위에 저항하지 않았던 사실을 부끄럽게 기억하는 재판관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고작 학생증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도대체 무엇을 제출해야 하는가? 정녕 부끄러움과 용기 사이에 고민하게 되는 나날이다." p.98
나에겐 그저 흘러가는 하루 중 하나로 끝날 수도 있는 어쩌면 짜증이 나는 하루였을지도 모르는 그날을 이분은 기억하고, 기록하여 반성을 하기도, 무언가를 배우기도 한다.
"세네카에 따르면, 화에 대한 최고의 대책은 '화를 늦추는 것이다. 처음부터 용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심사숙고 하기 위해 화의 유예를 요구하라' 입니다." p.186
막말이 오가는 법정에서 어찌 화날 일이 없겠는가. 타인으로 인해 나는 화이지만, 화내는 자신의 모습을 거울로 들여다보며, 그러지 말아야 하는 자신을 다스리는 모습이 어른 같아 보였다.
"호의" 친절한 마음씨.
왜 이 제목을 선택했을까. 어쩌면 재판관으로써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어떤 것들에 대해 판결을 내려야 하는 무거움을 아는 분이였기에 타인의 행위를 이해해보고자 한 가장 바탕의 마음이 이 호의가 아니였을까.
그래서 자살을 선택한 이에게 살자를 외치게하고,
가정 폭력으로 인해 살인을 한 사람에게 살인이 정당화 될 수 없다는 말과 함께, 내렸던 판결의 일부는 "중병환자의 개호 활동을 통한 사회봉사"였다.
"말기 암 환자가 놓지 못하는 그 생명과 가정 폭력을 일삼는 남편의 생명은 다른 것입니까. 같은 것입니까?" p.31
이 질문은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인듯 했다. 결국은 사회가 지켜주지 못한 이가 저지른 살인은 정당화될 수 없지만, 그 사건 자체를 비판 할 수도 없지 않나..?
이 사건은 책의 다른 챕터, 불의를 저지르는 삶과 불의를 묵과하는 삶을 말하는 부분에서 분명하게 보인다. 불의를 저지르는 삶은 적지만, 묵과하는 삶은 많다. 가능하고.
결국 옳지 않은 것은 둘다 마찬가지다. 오래전에 읽었던 십자가라는 책이 떠올랐다. 학교폭력을 묵과했던 어린 시절, 그 때 죽었던 아이의 일기장에서 내 이름이 나왔다. 왜.. 내 이름이 나왔을까를 쫒는 소설이였는데, 읽으며,, 와.. 싶었던 기억이 있다. 이 에세이를 읽으며 그 소설이 생각날 줄이야.
판사이기에 수많은 범죄, 피해자, 피의자 등을 보면서도, 인간의 호의를 생각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음에도 저자의 마음 한켠은 타인을 공감하려는 마음이 기본 값이라는 점이 따뜻했다. 그래서 요즘 자꾸 화로 가득찬 내가 부끄러워지기도 했고,
좋은 책이다.
따뜻한 차한잔을 두고,
오래오래 곱씹으며 읽고싶은 책.
그리고 나의 하루를 다시 곱씹는다.
추천.
"사랑하는 사람에게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다." p.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