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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송세월 - 김훈 문장 엽서(부록)
김훈 지음 / 나남출판 / 2024년 6월
평점 :
그날, 산소 정리를 마치고 돌아와서 나는 더 이상 아버지 어머니의 제사나 차례를 모시지 않기로 작정했다. 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혼백을 땅에 의한 결박, 핏줄에 의한 결박, 모든 인연에 의한 결박, 한 솥에 먹은 밥에 의한 결박에서 풀어드리기로 했다. 이것이 이제 늙은 나의 마지막 예절이고, 어려서는 부모 속 썩이고 자라서도 변변치 못했던 아들이 부모에게 드리는 가장 좋은 자유의 선물일 것이다. (…)
그러하되, 이미 40년 전에 혼백이 떠나간 유골을 놓고 이제와서 무네, 공이네, 선물이네 하는 나의 말은 유골의 침묵 앞에서 객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