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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F. 쿠앙 지음, 신혜연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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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색 표지에 그려진 눈. 어느한쪽을 곁눈질하는 눈. 대체 무엇을 보고 있을까.
누군가 이 책을 읽고 써놓은 서평을 읽고서 나는 이 책이 궁금해졌다. 나의 소소한 취미중 하나인 책. 그런 책을 만들어내는 출판업계의 이면과 작가의 창작에 대한 이야기 이기에.

이 책은 미국에서 유색인종 여성작가인 아테나와 백인여성작가인 나 주니퍼의 이야기이다. 저자 R.F 쿠앙은 이 책에 출판계의 적나라함을 드러내며, 과연 창작의 범위는 어디까지인지를 묻고 있다. 생각치도 못한 질문이였다. 

베스트셀러 작가인 아테나. 나는 그녀의 친구다. 나도 작가이지만 나는 잘나가지 못한다. 내가 쓴 책은 초판만 찍은 상태이고, 내가 보낸 원고는 봐주지 않는다. 나는 아테나가 부럽다. 그런 아테나의 작품이 넷플릭스에까지 팔리며, 나는 아테나와 작은 축하파티를 열었고, 아테나의 집까지 이어진 파티에서 그녀는...목에 음식물이 걸려 질식사했다.
그리고 나는.. 그녀가 그날 아침에 초고를 완성한 <최후의 전선>을.. 훔쳤다.

그 원고는 너무나 흥미로웠다. 아테나가 비워둔 부분들을 완성해가며 주니퍼는 마치 자신의 창작물인듯 홀린듯이 완성해갔다. 그리고 자신의 편집자에게 그 원고를 보냈다. 
그리고 시작된 자기합리화. 
아테나가 비워둔 많은 부분을 내가 채웠고, 이상한 부분을 수정했으니 이것은 나의 글이라고,
편집자는 그 원고를 너무나 마음에 들어했고, 중소출판사이지만 나름 명망있는 출판사와 계약을 하며 본격적으로 책을 손보기 시작한다. 마치 나의 원고 였던 것인마냥.
그렇게 출간된 <최후의 전선>은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호평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SNS에서는 여러 말들이 돌기시작한다. 중국인들에 대해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비평부터 아테나의 글을 훔쳤다는 말까지..

주니퍼는 대응하지 않았지만, 출판사는 빠르게 다음 작품을 재촉한다. 그러면 그런 모든 말들은 수면아래로 내려갈것이라며.. 그래서 주니퍼는 아테나와 함께 대학때 이야기했던 내용을 소재로 다음 작품을 썼다. <엄마마녀>를.
그 작품은 <최후의 전선>만큼의 인기는 없었으나, 나름 괜찮은 작품으로 평가되던 중, 누군가 글을 올린다. 그 작품의 첫 문장과 소재는 아테나의 것이라고.
사실 아테나와 이야기를 나눈 것이지만 사실 이 소재와 이야기는 주니퍼의 것이였다. 그런데 당시 아테나가 주니퍼의 이야기를 듣고 마치 자신의 창작물인 마냥 주변에 이야기한 것을 들은 이들이 표절이라며 부정 댓글을 달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드러나는 아테나 소설의 전말, 주니퍼의 몰락, 그 몰락 뒤에 숨겨진 출판 업계의 이면 등이 이 이야기를 주를 이루며 대체 어디까지 이 이야기가 이어 질지가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로 몰입하는 스토리랄까.
계속해서 주니퍼의 자기 파괴적인 심리가 마치 늪처럼 빠져들어 헤어나올 수 없는 그 상황을 해결하는 것도, 그렇다고 해결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한 자가당착의 상황이 문득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캔슬 컬처의 주인공이 된 셈. 분명 잘못은 있으나, 그 잘못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도 아니기에 그러했다. 
이건 주니퍼가 시작일까?
아테나가 시작일까..?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창작의 범위였다. 몇 해 전 어떤 수상작이 문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이 책에서 나온 부분과 유사했다. 두 작가의 전화 대화가 있었는데, 한쪽 작가가 그 대화를 책 속에 그대로 차용했고, 그 작품은 수상작이 되었다. 
 그리고 그 작품을 읽은 다른 작가가 해당 대화는 표절이라고 폭로를 한 것이다. 아테나의 전 남자친구는 자신이 한 말을 아테나가 책에 차용하는 것을 겪은 뒤 어떤 말을 할 때 아테나의 표정을 살피고, 말을 조심하게 되어 짜증 났다는 부분이 나온다. 이 경우는 창작일까 표절일까.
한쪽이 작가일 때만 표절로 유효한 것일까? 책 속 주니퍼 역시 아테나의 그런 면에 당했고, 결국 나의 작품이지만 아테나의 작품이 되어버린 경험을 당했다. 
물론 주니퍼 역시 아테나의 작품을 훔쳤고, 그녀가 많은 부분을 수정했다. 그럼 그건 누구의 것일까...마치 테세우스의 배와 같은 질문이 든다. 그건 예전의 것과 같은 것일까? 아닐까? 주니퍼의 것일까? 아테나의 것일까?
또한 이와 유사하게 일전에 프란츠 카프카의 작품에 대해 막스 브로트가 사후 그의 작품을 출간하는 과정에 많은 부분을 수정했을지도 모른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카프카의 책은 사실상 누구의 것일까?
사실 이 부분은 작가와 편집자의 관계에서도 궁금해지긴 했다. 작가도 편집자도 아닌 나로써는 편집자에 의해 수정이 많이 이뤄진 작품이 있다면 작가만의 작품이라고 오롯이 말할 수 있을까? 싶기도 해서. 책 속 주니퍼 역시 담당 편집자에 의해 아테나의 작품을 계속해서 수정해 간다. 그럼 3명의 공동저자가 되는 건가..? 

R.F 쿠앙은 이 밖에도 유색 인종 여성 작가로써 미국 출판 업계에서 그들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도 적나라하게 설명한다. 진짜 말 그대로 소비다. 창작자인 작가가 누군가에게 취사 선택되어 소비되는 시장. 그게 출판 시장이다.

창작의 범위, 출판 업계의 이면, 창작이라는 것의 고통 등등. 그저 책을 읽는 한 독자로써는 알지 못했던 면면 들.
흥미롭지만 무겁고, 
소설이기에 가볍게 읽고 싶지만, 
결말을 읽고서 새삼 달리 보이는 표지.

흥미롭다는 말이 전부는 아닌 책이지만, 흥미롭다.

"별일 없을 거야. 벌어지고 있을 때는 꼭 세상이 끝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 소셜미디어는 아주 작고 고립된 공간이야. 일단 화면을 닫으면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너도 그러는게 좋아. 알았지?" p.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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