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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김영하 작가님을 통해 "나의 작은 순애 언니"라는 단편을 듣고, 단숨에 팬이 되어 버렸다. 뭐랄까. 나의 불편한 속마음을 들킨 느낌이면서도, 어쩜 이리 단아하게 담담하게 그래, 알아, 라고 다독여주는 글을 쓸 수 있을까.
최은영 작가님의 글은 늘 그렇다.
쉽지 않은 주제이면서도, 한줄 한줄이 비는 느낌이 없달까. 어쩜 이리 불편하고 외면하고 싶은 상황을.... 조용히 등 뒤에서 따뜻하게 바라보는 글을 쓰실까 싶어서.
이번 책도 그랬다. 어떤 이야기들일까.... 싶으면서도 읽으면서 나의 속마음이 들킬까 두렵기도 하지만, 작가님이 풀어가는 글을 보며, 그래, 맞아, 그래, 맞아 하는 생각을 하게 하는 글들.
표제작인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스스로 알지만, 알아서 애써 외면하는 사실을 누군가 알은척 할 때의 드는 반문. 그럼에도 그 길을 응원하고 싶지만, 선뜻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무거움. 그럼에도 그 길을 걷고 있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의지했던 사람에 대한 그리움이 다 녹아 있었다.
그녀의 응원을 바란것은 아니였지만, 현실적인 조언에 나는 슬펐고, 나는 그녀에게 사실을 짚는 위로를 건낸다. 그녀가 상처 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녀는 말한다. 내가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자신의 조건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인지하면서도 인정은 하지 않으려는 마음같은 것말이다." p. 42
나는 그녀의 길을 걸으며, 그녀가 생각난다. 쉽지 않고, 보이지 않은 미래였지만, 그녀가 걸어가면서 보여주었던 그 희미한 빛은 나를 여기까지 오게했다.
그런 나를 만난다면, 그녀는 어떤 말을 할까.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일까.
"일년"이라는 작품도 그랬다.
정규직인 나와 인턴인 다희. 회사 일로 함께 카풀을 하는 사이가 되며, 나와 다희는 일상을 나눈다. 하지만 회사라는 사회 속에서의 간극.
발전소가 문을 열며 서로 다른 일을 하게 되지만 둘은 카풀을 계속한다. 그리고 다희의 정규직은 점점 요원해지는데,
그리고 누군가는 묻는다 왜 인턴과 가깝게 지내냐고, 나는 다희를 좋아하지만, 그에게 다희와 함께 했던 시간들을 구구절절 말하고 싶지 않아 둘러댄 말을 다희가 듣는다.
"가끔은... 제가 커다란 스노볼 위를 기어다니는 달팽이 같아요. 스노볼 안에는 예쁜 집도 있고, 웃고 있는 사람들도 있고, 선물 꾸러미도 있고, 다들 행복해 보이는데 저는 그걸 계속 바라보면서 들어가지는 못해요. 들어갈 방법도 없는 것 같고.." p.116
이런 다희의 말에 내가 던진 위로에 다희는... 그 말에 상처 받는다. 그 말인 허공에 흩어지는 위로였으니까. 상황을 이해하는 것이 곧 상대를 이해한다는 말이 될 수는 없구나... 우리는 종종 잊지만,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그런 섣부른 위로조차 건낼 수 없는 나와 다희의 현실은 그저 가슴을 치게 만든다.
그렇게 헤어진 다희를 나는 병원에서 다시 만났지만, 그녀는 그녀인채로, 나는 나인채로 흐르는 시간.
웃으면서 만난 것도,
서로의 상황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지만,
그럼에도 둘 사이의 나눴던 시간들은 서로에게 남는 시간이였기에 그래도 담담히 만나는 둘을 보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신".
나의 어른이였던 언니가, 어느새 커버린 나에게 보호해야할 대상으로 변해버렸지만, 언니는 끝내 동생에게 어른이고 싶었고, 나는 어쩌면 그런 언니를 문득 나보다 낮은이로 여겼는지도 모르겠는 그 상황들.
글쎄. 누구의 잘못도 아니지만, 아니 모두의 잘못이였을까. 어디서 부터 어떻게 잘못끼워진 단추인지 조차 모르게 흘러간 시간은 사실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
무엇이 잘못이였는지에 대한 그 순간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그 수많은 선택들 중에서. 정확히 뭐가 잘못이였는지를.
결국 그런 선택들이 모여 지금을 만들었고, 서로가 그토록 아꼈던 자매는 사랑 때문에 서로를 외면하게 된다.
"나도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이모는 그러니까 알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만날 수 없게 된거네." p. 178
"이모에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의 글도 그랬다. 나를 긴장시키기도 했고, 부끄럽게도 만들었고, 정확히 콕 짚을 수는 없지만, 이해할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그 이해가 아팠고.
최은영 작가님 책은 개인적으로는 아프다. 아픈 이야기를 하니까. 그리고 그 아픔이 잘 해소되지도 않는다. 어느만큼 지난 시간 속에서 아픔이 수많은 상처로 남지만, 그 상처의 흉터를 통해 나는 이해한다. 나의 부끄러움을. 그리고 너를.
아프고 어려운 책.
하지만 진짜 추천.
"그렇게 대답하고 기남은 불현듯 이해 할 수 있었다. 부끄러움. 마이클의 말이 맞았다. 기남은 부끄러웠다." p.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