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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ㅣ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평점 :
최진영 작가님의 소설. 나는 이런 책이 참 좋다. 끝사랑을 보여주는 책. 서로가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가득한 책. 그래서 슬픈 책. 이 책이 그랬다. 나 자신 조차 나를 믿기 어려운 세상 속에서 타인을 이토록 사랑할 수 있을까. 천년을. 만년을.
이 이야기는 구와 담의 이야기이다. 한 동네에서 자란 아이들의 이야기 서로가 각자의 아픔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서로의 아픔을 보듬었고, 서로를 그리워했던 이들의 이야기이다.
시작은 구의 죽음이다. 구의 죽음을 거슬러 올라 담과 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도박, 사채등으로 이미 무너진 가정속의 구. 부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른채 이모와 함께 사는 담. 둘은 동창이였다. 구는 사고만 치고, 담을 괴롭히던 학생이였지만, 담은 그런 구를 원망하지도 미워하지도 않는다. 힘들고 어려운 환경 속에서 시작된 사랑이였지만, 서로가 서로를 이토록 믿고 의지할 수 있을까. 한명은 지금의 환경 속에서 한발 딛고 나아갈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p.159
남겨진 이에게 떠나간 이의 육체란 어떤 의미일까. 아니, 남겨진 이에게 떠나간 이의 모든 것은 곧 그 자신이다. 그러기에 담은 이모를 보내고도 이모와 함께 했던 모든 것들을 버리지 못했다. 염을하고, 장례를 치르는 것은 그저 의식일 뿐. 사랑했던 이를 보내야 하는 시간은 아주 한참 후에 찾아온다. 아니 보낸다는 표현보다, 그가 없는 공간 속에서도 그와 함께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 그런 담에게 구의 죽음은 얼마나 시간이 흘러야 할까.
그 시간을 버텨내기 위해, 구를 기억하기위해 담이 치르는 장례가 나는 너무나 아팠다. 그녀는 그렇게 구와 함께 할 수 있었을까. 그녀를 지켜보는 구는 그럼에도 그녀가 천년을 더 살아 자신에게 왔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신은 천년도, 만년도 살 수 있으니까.

책은 담과 구의 이야기이지만, 그 이야기의 속에서 계속 이별이 보인다. 어쩌면 둘의 가장 평온한 시절 함께 했던 노마와의 이별. 담에게 구만큼이만 소중했던 이모와의 이별. 그 이별들 속에서도 서로를 슬프게 하지 않기 위해 떨어져 있는 순간 조차 그들은 서로를 생각한다.
서로가 있어 버텨낼 수 있는 시간이 였긴 하지만 나는 이별이라면 떠나는 쪽을 택하고 싶다. 남겨진 이의 슬픔은 정말 싫어서. 담의 ”이 몸에 갇혀있다“는 표현이 주는 그 어쩌지 못하는 그 감정이 나는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그 어쩌지 못하는 그 감정이 나는 정말 몸서리치게 싫다.
어쩌면 지독한 사랑일수도, 어쩌면 지독한 서로에 대한 믿음으로 천년 만년가는 사랑 이야기. 현실 속에서 볼수 없는 마음이기에 이런 이야기에 더 빠져드는지도.
재밌다는 표현보다, 가슴 저리게 읽혔다고 말하고 싶다.
구와 담은 만났을까? 천년이 지나서. 만년이 지나서..
”동물의 힘은 유전된다. 유전된 힘으로 강한 놈이 약한 놈을 잡아 먹는다. 불과 도구 없이도, 다리와 턱뼈와 이빨만으로. 인간의 돈도 유전된다. 유전된 돈으로 돈 없는 자를 잡아먹는다. 돈이 없으면 살 수 있는 사람도 살지 못하고, 돈이 있으면 죽어 마땅한 사람도 기세 좋게 살아간다.“ p.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