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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남동 빙굴빙굴 빨래방
김지윤 지음 / 팩토리나인 / 2023년 8월
평점 :
"빙굴빙굴" 이라는 의성어를 들어본 일이 백만년쯤 전이라는 생각이 드는 제목이다.
어렸을때는 저런 단어도 많이 썼던것 같은데, 어떤 모습이나 소리를 듣고 따라해본 적이 언제적이였을까. 제목만으로 예전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책이였다. 온라인에서 꽤나 유명했던 책이라는 사실은 책을 다 읽고서야 알았다.
책은 연남동에 사는 빙굴빙굴 빨래방을 이용하는 이들이 빨래방에 놓여진 다이어리를 매개로 각자의 스토리에서 동네의 이야기로 연결된다.
시작은 연남동 파란대문집 할아버지와 진돌이부터. 할아버지 강아지 진돌이가 문이 열리지 않자 밖을 나가지 못해 집의 할아버지 이불에 실수를 했고, 겨울이라 마르지 않는 이불을 들고 동네 빨래방에 방문한다. 그리고 발견한 연두색 다이어리
"살기 싫다. 사는게 왜 이렇게 힘드냐.p. 26"
누군가의 힘겨운 고민에 아무도 글을 적어주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는 적는다.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그렇게 이어지는 또하나의 인연.
미라와 나희. 매일밤 이불이 실수를 하는 나희에게 미라는 화를 내지 않지만, 집의 고장난 세탁기, 전세금 인상으로 인해 갈 곳 없는 현재, 복직조차 불투명한 지금에 미라는 자꾸 지쳐간다. 나희가 실수한 이불을 들고 방문한 빨래방에 자신의 고민 밑에 누군가 정성스럽게 적어준 글을 보고 잠시나마 힘을 얻는데.
이렇게 또 하나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리고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버스킹을 하는 하준, 보조작가로 드라마 작가를 꿈꾸지만, 매번 떨어지는 공모에 지쳐가는 여름.
나의 힘듦만큼이나 상대의 힘듦을 이해해주는 각자.
남자친구의 단톡방에 충격을 받은 연우. 그런 연우를 찾아온 고양이 메아리.
동생이 죽기 전 동생의 생명을 앗아간 보이스피싱 범죄단을 쫒는 재열. 드디어 그들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들을 쫒기전 동생이 유품으로 남겼던 다이어리를 찾기위해 빨래방으로 향한다.
그렇게 이어지는 모두의 연결 끈.
배경은 지금의 서울이지만, 읽어나가는 이야기는 아주 오래전에 우리가 이웃과 말을 나누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나가던 오래전의 골목을 떠올리게 한다. 비슷한 집에서 예전보다 더 가까이 살면서도 서로 굳게 닫힌 대문만을 보며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는 지금이 아니라, 대문모양도 집모양도 다 제각각 이였지만,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안부를 묻던 언젠가가 말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도, 어느 순간 만큼은 너무나 철저하게 선을 긋는다. 서로에게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해, 귀찮은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기위해, 관계 속에서도 철저히 혼자가 되어가는 요즘, 왜 이렇게 서로를 찾아내고, 누군가의 온기를 느끼고 싶어하고, 나의 온기를 나눠줄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싶은 책이 인기인지,, 참 아이러니 하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다.
제목만큼이나 빙굴빙굴. 많은 것들이 섞이면서도, 서로를 깨끗하게 만들어주는 빨래방의 빨래처럼, 우리도 혼자인것이 외로워 누군가와 빙굴빙굴 섞이며 함께 웃고 싶은 마음이 더 강렬해지는 요즘이여서 그런지도.
가볍지만 따뜻한 마음으로 읽히는 책.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