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티 워크 -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
이얼 프레스 지음, 오윤성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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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티 워크" 제목을 듣는 순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 책이다.

"비윤리적이고 불결한 노동은 누구에게 어떻게 전가되는가"라는 부제가 달린 책은 내가 생각했던 막연한 사회의 가장 밑바닥이라 불리는 곳의 일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였다. "비윤리적"이라는 말이 포함된 일에 관한 내용이였다.

이 책은 우리가 생각치도 못했으나, 우리 사회의 바닥을 받치고 있으면서도, 모두에게 비 윤리적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 받는 일을 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르포타주이다. 그들에게 가해자는 누구일까.


파트1. 교도소 담장 안에서.

미국은 징벌적 형벌제도가 강화된 나라로 교도소에 갇힌 수감자의 수가 세계 1,2위를 다투는 나라다. 그런 미국 내 교도소 안에서 정신병력을 가진 환자가 제소자로 들어왔을 때, 그들의 치료를 위해 파견되는 치료사와 교도관의 권력관계, 그리고 교도관이 그럴 수 밖에 없는 가혹한 행위의 가해자로 변질 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의 한계를 말한다. 사실 이 부분은 우리나라의 상황과는 많이 다르지 않을까 싶긴하지만, 정신 병력을 가진 제소자가 정신병원이 아닌 감옥으로 보내지는 미국 내 이슈, 그리고 그런 제소자를 돌보는데서 오는 물리적 한계 상황이 그 안에서 권력관계를 만들고 피해자를 만들냈음을 말한다. 온수 마사지로 죽어간 수감자, 그 사실을 듣고도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상태에 대한 두려움으로어떤 말도 하지 못한 치료사, 교도소라는 시스템에 의해 가학적으로 변해버린 교도관, 누구도 그 사실에 대해 입을 열지 못한다. 고발해봐야 다치는 것은 고발자 본인과 권력관계의 가장 밑에 있는 사람들 뿐이기에 그러했다. 


파트 2. 드론 화면 넘어

드론 전쟁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파트였다. 드론으로 누군가를 감시하다가, 상부 명령이 떨어지면 그곳에 폭탄을 투하한다. 미국 내에서 화면만으로 누군가를 죽일 수 있는 시스템. 하지만 그 화면속 인물이 정말 테러리스트인지, 아니면 그냥 시민일 뿐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곳에 떨어지는 폭탄으로 인해 누군가는 죽었다는 사실뿐이지 무엇도 정확하지 않다. 누군가는 명령을 내리고, 누군가는 따를 뿐이다. 하지만 그 명령을 이행했고, 그 이후를 본 사람은 결코 그 이전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실제 그 화면을 보고 있는 이는 아니까. 자신이 누른 버튼이 무슨 결과를 초래했는지, 보았으니까. 저자는 이 상흔을 "도덕적 외상"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심리학계에서 널리 인정되는 용어는 아니지만, 이미 그들 사이에서는 갈등과 공포, 분노, 후회등의 감정이 계속해서 발생한다. 하지만 군대는 그런 감정을 인정하지 않고, 그들은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전쟁에 파병된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같은 병에 시달림에도 그들의 정신적 피해에대해 미군은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가 나를 죽이려하지 않았음에도 나는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을수 있다는 사실은 사실 생각해보면 학살과 다를것이 무엇인가. 그렇다면 이런 학살이 자행되는 상황은 버튼을 누른사람만이 져야하는 걸까.


파트 3. 도살장에서 벌어지는 일들.

이 파트는 읽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고, 내장을 제거하고 살점을 바르는 일. 한두마리의 도륙이 아니라 수천 수만마리의 동물이 죽어나가는 환경 속에서 코로나 당시에도 필수노동자라는 명목하에 코로나에 죽어나가는 환경속에서도 일해야했던 이들.  많은 정육공장의 연간 이직률이 100%를 넘어간다는 글 한줄에 그곳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한지, 그리고 그것을 매일 봐야하는 이들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얼마나 끔찍할지는 감히 상상이 되지도 않았다. 동물을 도륙하는 상황만이 그들을 위협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스스로도 위험한 환경에 놓였고, 살이 붓고 찢기고, 병들면서도 화장실 조차 마음편히 갈 수 없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그들은 일해야했다. 그런 곳 외에는 받아주는 곳도 없었기에 그러했다.


더티 워크라고 명명된 일들은 이 사람이 아니여도 할사람이 많으면서도, 다수의 평범한 사람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이면서, 권력의 관계에서 가장 밑바닥에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없는 절대적 약자들이 하는 일을 말함이였다. 마지막 파트에서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이와, 그럴 수 없는 이의 관계란 결국 권력이였다. 나를 대신할 이가 있는가, 아니면 없는가에서 오는 권력. 그 권력이 없는 이들의 이야기.


반전을 부르짖으며 병사들을 모욕하는 이들이 가지는 도덕적 우월감과 같은 모습은 병사들에게 도덕적 외상을 겪는 이들에게 어떤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들은 반전시위를 군부대가 아닌 국회와 정부 앞에서 해야하지 않은가. 드론 부대와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침체된 시골, 일할 곳 없는 도시에서 고등학교만 겨우나와 말그대로 먹고살기위해 취업한 사람들이였다. 무슨일인지 그들도 몰랐다. 

비건을 외치며, 동물의 도살에 대한 비난을 내뱉는 시위역시 그 곳의 노동자들이 아니라 그 회사의 본사에서 외쳐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결국 이 모든 것은 우리 하나하나가 만들어 낸것이라는 생각을 지울수 없었다.

미국내 교도소를 읽고 있다보면 1980년대 국가 정화를 외쳤던 군부정권하의 형제복지원이 생각났다. 거리가 깨끗하다는 이유로 잡혀간 부랑자들. 모두가 눈감았기에 일어났던 일 뒤에는 끔찍한 인권유린의 결과만 남았다. 도살장 편을 읽으면서는 미국내 K푸드 1위가 치맥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수많은 이들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닭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드론 전쟁은 조금 더 기술이 발전한다면 인간이 아니라 기계에 의해서 암살이 이뤄지는 더 끔찍한 시대가 생각나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적인 가해가 아니라는 이유로, 몰랐다는 이유로 우린 죄가 없는 것일까.


이 모든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나는 나치 독일이 행했던 유대인 학살이 생각났다. 독일이 유대인을 학살할 수 있었던 그 시스템. 그 시스템을 만들고 가담했고, 그것을 묵인했던 모두가 만들어낸 결과 제노사이드. 그 시대를 겪고도 우리는 여전히 비슷한 시대를 살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직업은 필수 노동이면서 우리가 만든 이 세상의 시스템이 만들어낸 부조리의 가장 하단에 위치하고, 우리가 모두 외면한 현실 속에서 일하고 있는 이들이였다.

 범죄자 없는 안전한 환경을 위해, 적들로 부터 안전한 나라를 위해, 오늘 내가 먹는 고기 한점을 위해(다수의 공산품에 들어있는 육향에도 고기는 들어간다), 내가 사용하는 스마트 폰, 컴퓨터를 위해. 우리가 외면했고, 싼 가격을 위해 누군가의 고통을 묵인했던 노동이 있었다. 그 모든 사실뒤에 사람이 있었음을 말이다.


저자는 몰랐다는 변명속에 숨지말라고, 그것역시 가해의 일부임을 말하고 있다. 다만 그런 사실을 비난하기보다 알았으니, 알아달라고, 그리고 개선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따뜻하게 말하지만, 그 현실은 정말 아프다.

<어느 독일인 이야기>라는 책에서 괴벨의 비서가 했던 말중 가장 많은 말이 "몰랐어요"였다. 

그 말 뒤에서 계속해서 숨는다면 점점 더 파편화 되어가는 사회가 만들어낼 부조리에 눈감는 순간 더티 워크는 어느날 나의 일이 될지도.


진짜 추천!


"에버렛 휴스가 프랑크푸르트 일기에 묘사한 '수동적 민주주의자'의 무관심도 그런 무력감에서 비롯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단념에는 근거가 부족하다. 사회질서를 이루는 대부분의 요소가 그렇듯 더티 워크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티 워크는 법과 정책의 산물이요, 예산 편성의 산물이며, 그 밖에 우리의 가치와 우선순위에 따라 우리가 집단적으로 내리는 여러 결정의 산물이다. 그런 결정 중 하나는, 더티 워크가 무고한 사람들과 환경 만이 아니라 그 노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끼치는 막대한 위해를 인정할 것인지 말 것인지다." p.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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