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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미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4월
평점 :
몇해전 지인의 추천으로 읽기 시작해 매년 읽고 있는 책이다. 단편이라서 읽기도 좋고, 시류의 흐름에 따른 주제들이 등장해 뭐랄까 점점 나이 들어가는 나에게 환기를 시켜주는 작품들이랄까.
올해는 젠더, 세대간의 갈등 아니, 차이가 드러난 작품이 눈에 띄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로웠던 <자개장의 용도>. 4대에 걸쳐 전해진 자개장은 생각하고 문을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그 장소로 이동해주는 비밀을 가진 자개장이다. 그 자개장이 범상치 않음을 알고 샀던 할머니의 어머니는 결국 그 자개장을 버릴려했으나, 자식에게 자개장의 비밀을 누설치 말라는 경고와 함께 대물림된다. 그 자식은 그 자개장의 용도를 남편의 기(?)를 꺽는 용도로 썼고, 자신의 엄마는 모든 금기를 깨고 그 자개장을 가족들과 공유했다. 단, 가는 곳을 정할 때는 돌아올것을 생각할것. 그래야 미아가 되지 않는다는 주의사항을 함께. 재밌지 않은가. 장 또는 농은 무언가를 보관하는 용도로 쓰이는 물건인데, 그것이 내가 발딛고 있는 현실을 떠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는 것이. 그리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은 다 여자임에도 세대마다 다르다는 것이. 정말 <자개장의 용도>는 무엇이 였을까. 주인공 나는 정우를 통해 어딘가를 가는 방법에 대해 그리고 그 즐거움에 대해 알아가면서도, 정우에게 자개장의 비밀을 공유하지 못한다. 그것은 그녀가 걱정없이 어디든 갈 수 있는 정우에 대한 자신만의 권력(?) 이였는지도 모르겠지만, 결국 정우가 떠나고, 엄마를 통해 자개장의 비밀을 듣고서, 그녀는 그 자개장의 진짜 사용법을 알아간다.
나에게 이런 자개장이 있다면 나는 이것을 어떻게 사용할까. 세대 마다 자개장의 의미도 사용도 달랐지만, 내게 이런 자개장이 있다면 나는 아마도 나이마다 다르게 사용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딸의 자개장도, 엄마의 자개장도 나는 이해가 되었으니까.
<젊은 근희의 행진>은 정말 가족 관계 속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갈등을 보여주고 있지 않나 싶을 정도로 현실감이 100%였다. 언니 문희는 여기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엄마, 문희, 근희는 한 가족이지만, 현실적인 가장은 문희다. 문희에게 동생 근희는 아메바를 연상시킨다. 현실이나 미래를 생각하지 않고, 그저 의식의 흐름(?)대로 살아가는 인물이라서. 어쩌다 시작한 유튜브로 먹방, 술방을 거쳐 현재는 북튜버로 활동중이다. 어깨를 다 내놓고, 가슴이 푹 파인 옷을 입고서.
그런 근희가 언니는 정말 한심하지만, 동생이 연락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동생의 집으로가 그녀의 흔적을 쫒는다. 그러다 인스타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근희의 근황을 쫒던 중 영상 댓글을 읽으며, 욕하는 댓글을 보고, 속상해 한다. 얼마뒤 도착한 동생의 편지. 동생은 언니 문희가 생각했던 아메바는 아니였다. 생각을 했고, 고민을 하고, 그리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 근희였다. 다만 언니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뿐, 아니 어쩌면 보려하지 않았는건지도. 문희는 근희가 자신의 방송에 달리는 수많은 댓글을 보고서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끌고가는 근성이 있다는 사실을 이제서야 깨닫고, 근희를 제대로 보기 시작한다.
생각해보면 사실 가족은 가장 가깝기에 서로에게 가장 큰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가족이기에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라는 것은 아니다. 가족이기에 더 이해하고 이해시키려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한 관계이지 않을까. 둘은 좀더 오래전에 대화를 시작했더라면 어땠을까.
<제 꿈꾸세요>는 나의 죽음 이후 나의 죽음을 누구에게 알릴 것인지를 정하는 여행을 그린 소설이다. 이걸 밝다고 해야할지 어둡다고 해야할지 모르겠는 묘한 느낌이였고, <버섯 농장>은 나에게 사기를 치고 도망간 전 남친 아는 동생과 연락이 되지 않아, 그의 아버지를 찾아가서 벌어지는 스릴러다. 소설 속에서 사기꾼의 아버지가 나에게 말하는 철저한 모순된 말들은 어쩌면 지금의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게 해대는 말도 안되는 변명갖기도 했다. 그래서 소설 속 결말은 결국 청년세대가 나아가기 위해서는 기성세대를 밟고 일어서는 방법 뿐인걸까. 싶은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스릴러를 통해 보는 세대 갈등이 으스스하게 느껴지는 소설이였다.
이밖에도 다른 작품 모두 읽는 내내 좋았다. 역시 매년 후회없는 선택 중 하나.
Good!!!
"동생은 시대에 발맞춰 걷지만 나는 시대 밖으로 걸어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다시 대열 속으로 합류하길 반복하는 것 같았다. 가끔은 시대에 납치된 기분이 들 때도 있었다. 지금은 시대가 나를 납치하기 전에 내가 먼저 시대를 납치하겠다는 자세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상당히 피곤한 일이다.
젊은 이는 늘 있었다. 1920년대에도, 1950년대에도 어김없이 젊은 이는 나타났다. 시대가 변하며 사람들의 직업과 생각이 조금씩 바뀌어도 '젊은이'는 늘 그대로인 것 같다. 마치 공공선을 위해 존재하는 인류의 유전자처럼." p.19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