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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
데이먼 갤것 지음, 이소영 옮김 / 문학사상 / 2023년 4월
평점 :
최근 차별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차별이라는 의미는 과연 사라질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들었다. 이 책은 2021년도 부커상을 받은 소설이기도하고, 가장 악명높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존재했던 남아공에서 인종차별을 배경으로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소설이기에 궁금했다.
소설의 스토리는 간단하다. 남아공에 사는 백인 아내가 병으로 죽어가며, 남편에게 자신을 그동안 돌봐준 흑인 살로메에게 살로메가 사는 집의 명의를 넘겨주길 원한다고 유언하고, 남편은 그를 받아들인다. 그 사실을 두 부부의 막내딸인 아모르가 엿들었다. 하지만 아내가 죽고 남편은 아내가 말한 살로메의 집에 대한 유언에 대해 기억에 없다고 운운하며, 지키지 않는다. 사실 당시는 흑인이 어떤 권리를 갖는것 그 자체가 법으로 차단되어 있는 상태였기에 더 그러했다. 그러다 아모르의 아버지가 자신이 키우던 독사에 물려 사망하고, 그 소유권이 자식들로 넘어왔음에도 그 누구도 어머니가 했던 약속을 지키려들지 않는다. 그러다 언니 아스트리드가 강도에 총상으로 죽고, 오빠 안톤 역시 자살로 생을 마친다. 그제서야 농장에 대한 소유권을 가진 아모르는 30년이 지난후에야 살로메에게 찾아가 집의 명의를 돌려준다. 그녀가 그동안 받아 쓰지 않았던 그녀의 유산까지.
하지마 살로메의 아들 루카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런거 맞아. 그리고 아직도 네가 모르고 있는게 있는데, 네 것을 주는게 아니야. 이 집은 이미 우리의 것이니까. 이 집뿐만 아니라 네가 사는 그 집도 그렇고, 그 집이 서있는 땅도 그래. 우리 거야! 네가 정리해서 호의로 나눠 줄 수 있는 네 소유물이 아니라고. 백인 아가씨. 네가 가진 모든 것은 이미 내 것이야. 내가 요청할 필요도 없이" p.475
어머니가 살로에게에 주고 싶었던 집은 그저 그녀가 살던 아주 낡고 물이새고 어두컴컴한 집이였을 뿐인데, 누구도 그 약속을 이행하려 하지 않는다. 제도에 숨어서, 그들의 권위에 숨어서. 굳이. 왜. 라는 변명으로. 하지만 막내딸 아모르는 그 약속을 잊지 않고 이행한다. 어머니를 제외하고 아버지, 아스트리드, 안톤이 남아공의 과거라면 아모르는 현재를 말한다고 책의 말미에 해석하고 있는데, 개인적으로 아모르가 현재일까. 싶은 생각이 든다. 1986년까지도 남아공에서 흑인은 어떤 것을 소유할 권한을 가질 수 없었다. 불과 40년 전의 일이다. 그런 뿌리깊고 너무나도 악랄한 차별이 존재했던 나라에서 아모르가 과연 현재 일 수 있는가? 살로메에게 집의 명의가 이전되는 것조차도 그저 백인 개인의 선의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것이 현재일까? 그런 생각을 30년을 잊지않고 지켜내는 이가 과연 현재에 얼마나 있을까? 그러기에 아모르 역시 나는 미래로 보였고, 루카스는 그런 현재를 직시하면서 냉소하는 인물로 보여졌다.
대의적으로는 인종차별이 당연히 나쁜것이라 말하면서도, 그것이 나의 문제와 맞닥뜨렸을때 사람은 다른 말을 한다. 이중성을 갖는다. 옳은 것을 아는 것과 그것을 행동으로 이행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말이다.
이 이야기는 그것을 알지만 행하고 싶지도 않고, 행 할 수도 없는 과거와, 알기에 아주 소수에 의해 행해지는 현재, 하지만 그 역시 그것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말하는 미래를 각 인물의 대사와 배경을 통해 말하고 있지만, 미래가 모호하게 불편하게 다가오는 나를 보며 나도 어쩌면 백인 위주의 세계관에 물들어 있는것은 아닌지하는 두려운 감정이 들기도 했다. (사실 내가 배우던 중고등학교 영어 교과서에 흑인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졸업하고도 10년이 지나서야 알았으니까..) 생각해보면 남아공은 흑인들이 원주민이였으니, 사실 그것은 백인들이 주고말것도 아니라는 루카스의 말이 정말 맞는 말이긴 하다. 위 내용을 우리 역사에 대입해보자면, 일제강점기 시절 원하지도 않는 것들을 우리 한국인을 통해 건설하고 일본의 이익을 다 이용해 먹고서는 이제와서 한국의 근대화는 자기네가 이뤄줬다는 말도안되는 핑계를 운운하는 일본과 다를게 무엇인가.
이제는 정말 간단했던 약속을 이행하는데 30년이나 걸렸던 이런 이야기가 100년뒤에는 정말 과거의 이야기로만 읽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현재가 아닌.
"그래. 내 눈에도 그게 보여. 루카스의 몸에는 흉터, 그러니까 싸움과 사고로 생긴 칼자국, 깊게 베인 자상, 오래된 상처들이 있다. 편파적인 사건 기록들. 고통과 투쟁과 잘못 흘러간 계획들. 그 어느 것도 쉽지 않았다." p.4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