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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가 - 타인 지향적 삶과 이별하는 자기 돌봄의 인류학 수업 ㅣ 서가명강 시리즈 28
이현정 지음 / 21세기북스 / 2022년 12월
평점 :
제목만으로 정말 궁금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심한 현상아닌가. 타인의 눈을 쫒는것. 누군가 세워놓은 규칙아닌 규칙 속에 갖혀사는것. 왜 그럴까. 제목만으로 그 이유를 갑자기 알고 싶어졌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 이유가 간단명료하진 않았다. 갈길이 멀었구나라는 한숨이 나왔지만 적어도 그 이유는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시작은 가족이였다. 우리가 가족이라 말하는 울타리, 그 자체가 어쩌면 욕망의 결과 였다는 사실이였다. 재밌었다. 생각해 본적 있는가? "정상가족"이라는 범위. 이 말 자체가 어쩌면 모순같았다. 정상가족이란 대체뭘까? 아버지, 어머니, 자식 2명으로 구성된 가족? 자식이 1명이면? 아버지나 어머니중 한명만 있다면? 그것은 비정상 가족일까? 결혼을 하지 않은 남녀가 아이를 낳아키운다면?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 혹은 여자 혼자서 아이를 키운다면. 그건 비정상이라 불러야하는 것일까?
우리가 말하는 핵가족의 형태는 근대이후 형성되었다고 한다. 급격한 근대화를 통해 사회가 발전하면서 남자는 바깥에서 돈을 벌어오고, 아내는 생산활동에서 벗어나 가족의 양육을 책임지는 역할로 말이다. 하지만 이 역시 일부 계층에서만 정해진 룰이였고, 노동자나 빈민 계급에서 여성은 가정 양육과 바깥의 생산활동에 종사해야 했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가정과 자식에게 헌신해야 한다는 이미지가 씌워지던 시기였다. 그러다 인구수 제한이 가해지며, 산아제한이라는 국가적 정책이 정해지고, 자식의 수가 줄어들며, 아이를 키우는 몫은 오로지 가족의 범주안에 속하게 되었다. 그러다 우리 사회가 IMF를 겪으며, 무한 경쟁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그런 사회 속에서 가족이라는 범주 자체가 부담으로 다가오고, 가족이라는 범위가 해체되고 있는 것이 요즘이다. 그런 시대에 '정상가족'이라는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대체 무엇일까?
출산률 저하라는 위기에 처한 우리에게 '가족'의 정의는 과연 예전 그대로인것이 맞는 것일지를 생각해볼 때인 것이다. 출산율 저하를 가족이라는 범주안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을 따져봐야 하는 것이다. 근대를 거치며 생격난 정상 가족이라는 이미지가 우리에게 씌워진 타인에 대한 시선의 시작이였다.
책을 읽고 있다보면, 우리가 가진 가족, 여성, 남성, 나이 등에 대한 편견이 지금 타인의 눈을 좆는 우리를 만들어냈음을 알 수 있었다. 근대에 형성된 가족이라는 범주안에서 형성된 남성의 역할, 여성의 역할, 그 자식이 나이 때에 맞게 이뤄야하는 것들, 그 범주 안에서 내가 나이마다 이뤄야하는 것들 등등. 몇살이되면 학교를 가고, 정규교육을 졸업해서 대학은 반드시가야하고 졸업하면 취업하고, 취업하고 나면 결혼을 하고, 결혼을 하면 아이 1-2명은 낳아야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돌보는 역할은 어떻게 누구에게 정해져야하고, 아이는 누구손에 커야하며, 30대가 되면 집을 장만해야하고 등등. 아...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는 이 성문화되진 않았지만 때때로 들려오는 저 소리들. 저기서 조금만 벗어나면 이상하거나 어디 모자란 사람이 되어버리는 사회. 왜 우리는 이런 숨막히는 절차에 따라 살아야하는 것일까? 내가 만든것도 내가 원한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남부럽지 않은 삶'이라는 말. 그 말이 주는 의미가 딱 한국사회다. 왜 나의 삶을 말하면서 '남부럽지 않다'는 조건이 붙어야 하는 것일까? 급격한 사회발전이 가져오는 부작용. 그것을 우리는 지금 겪고 있다. 모두의 목표가 같아진 세상을 보고 있는 것이다. 가족 중심의 삶에서 물질 중심으로 넘어가는 지금, '남부럽지 않은 삶' 이 아니라면 최소한 남들처럼 사는 평범함이 목표가 되어버린 세상. 그 속에서 우리는 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아 주체성을 가지고 사는 삶이 아니라 타인의 눈에 맞춰진 나를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자신의 삶에 대한 만족도나 행복 지수가 최하위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어떻게해야 우리는 이런 시선을 벗어나 오롯한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그 시작은 다름을 틀린것이 아니라 다름으로 받아들이며, 다양한 사람의 다양한 삶에 대해 관용의 문화가 필요함을 저자는 말하고 있다. 실패를 다음을 위한 발판으로 만들어줄 수 있는 사회 안전망, 다름을 틀림으로 낙인찍지 않는 여유, 자신에 대한 믿음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임을 저자는 말하고 있지만, 개인적으로 이런 포용이 우리에게 생겨날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이렇게 나아갈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나의 시선을 좀더 여유롭게 만들기 위한 노력은 해봐야하지 않을까.
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