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파친코"를 잇는 한국적 서사라는 홍보문구에 책을 보게 되었다. "김주혜 장편소설"/"박소현 옮김" 한국인이 쓴 책인데 옮긴이가 있다?라는 것에 책을 펼쳤는데, 작가 김주혜님은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갔던 이민 2세였고, 책은 영어로 쓰여졌지만 우리의 근대사를 배경으로 한다.


정호, 옥희, 한철, 연화, 월향, 단이, 은실의 이야기.

호랑이를 잡기위해 산으로 갔던 사냥꾼은 호랑이를 잡지못하고 보낸다. 잡을 수 있었지만, 왜였을까. 그렇게 호랑이를 보내고, 기력이 다했던 사냥꾼은 하늘을 보고 누워 서서히 죽어간다. 죽어가던 중 호랑이 사냥을 나섰지만 엄청난 눈등의 기상악화로 산에서 길을 잃은 일본군을 만나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하고, 그들을 산 아래로 이끌어준다. 그렇게 시작된 인연.

옥희는 은실의 기방에 팔려 그녀의 딸 연화의 친구이자 심부름꾼으로 기방에서 자란다. 그 기방의 주인 은실에게는 연화 말고도 그녀가 유일하게 사랑한 남자와의 사이에서 낳은 딸 월향이 있다. 너무나 아름다웠고, 고왔고, 그런 월향을 은실은 기적에 입적시키지 않고 오롯한 딸로 귀하게 키웠는데, 그런 딸이 일본군 장교에게 무자비하게 강간을 당하고, 임신을 하자 가장 친했던 사촌인 단이에게 그녀를 맡긴다. 월향이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숨겨야했기에.

그렇게 단이를 따라 월향, 그녀의 동생 연화, 옥희가 경성으로 향한다. 

그무렵 사냥꾼의 아들이였던 정호는 아버지가 죽고, 집을 떠나 경성으로 향했고, 아무도 없던 경성에서 미꾸라지와 영구를 만나 또래 아이들의 대장으로 뒷골목 생활을 시작한다.


이야기는 옥희와 정호, 한철을 중심으로, 일제치하 시작부터 광복, 그리고 1960년대 중반까지의 한국의 시대적 배경을 바탕으로  전개된다. 우리가 알고 있던 그 역사를 배경으로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루를 버텼는지, 누구도 앞을 알 수 없었고, 어떻게 사는 것이 최선인 것이였는지를 알 수 없었던 시절이였다. 좌파와 우파, 그 위에 일본. 대한민국의 해방이 가장 최우선의 목표였지만, 그 방법이 각기 다르던, 어떤 것이 최선인지 옳은 길인지 조차 알 수 없었던 시절 옥희와 정호, 한철의 삶은 책을 펼쳐든 순간부터 덮는 순간까지 휘몰아치는 이야기로 나를 책에서 떨어질 수 없게 만들었다.


한치 앞을 내다 볼수 없던 시절, 어떤 계획도 세울 수 없었던 시절의 이야기. 그 시절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20, 30, 40대를 보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고 있다보면, "야수들"이라는 제목이 십분 이해가 간다. 야수가 아니고서야 그 시절의 나를 지켜낼 수 없을테니까. 그렇게 지켜내고 60이 되어 돌아보는 그 때의 '나'는 후회일까? 아닐까? 여전히 서로에게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을 떠올리는 주인공들의 마지막은 그들의 삶이 오롯이 나를 지켜내기 위한 삶만이 아니였음을 알게했고, 내게 그런 그들의 삶이 이토록 강인하고 아름답게 보일 줄은 몰랐다.

 서로를 위한 삶이였기도 했고, 때로는 오롯한 나를 위했고, 결국 마지막은 나만을 지켜야했지만, 돌이켰을때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시절의 당신을 보는 주인공들의 마음은 그토록 치열했던 시절 속에서도 서로를 생각했던 그때를 잊지 않았다는 그 사실이 내게는 가장 가슴깊이 남는다.


미국에서 자란 작가가 어떻게 이렇게 한국적인 서사를 알 수 있을까?! 그녀의 어머니의 아버지가 김구선생님을 도와 독립운동을 하셨던 분이고, 그 이야기를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늘 해주었다고 책 말미에 밝힌다. 그녀는 그런 이야기를 잊지 않고 썼다. 영어로 쓰여진 우리의 이야기. 슬프고 처절하지만, 아름답다.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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