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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다시 계몽 - 이성, 과학, 휴머니즘, 그리고 진보를 말하다 ㅣ 사이언스 클래식 37
스티븐 핑커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21년 8월
평점 :
인간은 발전해가고 있는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이 담긴 책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정말 발전해가고 있는 것 일까? 근데 이 질문에 아니!라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그렇다면 인간은 왜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것 일까. 왜 인간은 인간의 역사를 놓고 볼 때 발전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지금은 늘 제자리 걸음 이거나 퇴보된다고 느끼는 것인지.
인간 역사의 시작은 무지 했고, 그랬기에 미신에 의지했다. 그런 미신에 의해 현재가 아닌 죽은 이후의 행복을 그리는 등의 집단망상(?)에 시달리다가 르네상스와 함께 도시화, 기술발달, 글자, 인쇄술의 발달로 계몽 사상이 싹텄다. 그것은 곧 인간의식의 향상을 가져왔고 인간의 공감범위를 확대, 집단에서 인간 개인으로 시선이 이동되었다. 집단 인식에서 개인으로 인식으로 시점이 전환되고, 소수가 가지는 특권적 지식이 아닌 전체의 보편적 지식으로 퍼져나감에 따라 인간은 어떻게 진보되어 왔는가? 그 진보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에 대해 저자는 생명, 건강, 식량, 부, 불평등, 환경, 평화 안전 등에 대해 설명한다.
핑거교수는 우리가 고대나 중세시대 보다 나아진게 없다면, 우리가 현재를 어떻게 평가하든 아무 의미가 없으므로, 인간 그 자체를 중심으로 보기 시작한 계몽주의의 시작부터 인간의 진보를 제대로 평하기 위해, 각 주제별로 계몽과 진보의 역사를 정확히 짚어봄으로써 우리가 이뤄낸 결과를 객관적인 수치로 평가하고, 진보라는 개념에 대해 조장되어진 두려움의 실체를 파악하고, 앞으로 우리가 보다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위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말한다.
물론 삶의 전반이 나아졌으나, 여전히 굶주리는 아이들, 내전속에 살아야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하고, 안정된 국가에서 사는 중산층들은 자신들의 기반에 대한 안정감이 없다. 과거보다 나아졌다고 지금이 더 좋다 말하는 저자에 왜 불편한생각이 자꾸 드는지. 이런 감정을 저자는 저널리즘의 습성과 내가 가지는 인지편향이 맞물린 결과라 한다. 그런 효과를 가장 잘 요약해서 보여주는 말이 ‘악이 선보다 강하다’p.84 라는 말이며, 사람의 기본적인 성향은 수익보다는손실을 두려워하고, 칭찬에 대한 기쁨보다는 비판에 대한 두려움에 더 괴로워하는 부정편향의 영향이라고 하지만, 여전히 살짝 불편한 부분은 있다.
불평등, 즉 상대적 불평등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에서도 수치를 통해 불평등이 감소했다고 근거를 제시하지만, 글쎄.. 불평등이 인간이 퇴보했다는 말도 아니고, 불평등이 반드시 나쁜 효과만을 만들어내는 것도 아니다. 적절한 불평등은 인간이 더 나아가야한다는 동력이 되기도 하나, 자본 계층간의 이동이 더 힘들어지는 요즘이 1960년대보다 하위계층이 줄어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맞는말 일까? 전쟁 직후 사회 전체의 기반이 바닥으로 떨어져있던 시기에서 올라간 것과 지금같이 소득 계층이 분명한 사회 속에서 계층간 이동이 불가능해진것이 정말 나아졌다는 증거일까?! 수치상으로 보여지는 것과 체감상 느껴지는 진보의 차이는 무엇일까. 그 생각을 내내 하지 않을 수 없었다. ( 이 부분을 저자는 부정편향, 정확한 수치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부분만 보게 되는 정체성 보호 인지라고 했다.)
환경에서도 석탄이 고갈되기 전에 석유나 천연가스를 찾아낸 인간은 지구의 자원을 100% 고갈 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전환하면서 발전한다는 저자의 말에 그렇다면 그게 맞는 방향인지에 대한 고민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간 방향이원자력인데, 그럼 원자력은 더 나은 방향인가? 그 폭팔 한번으로 지구 전체에 인류가 살지 못할 수도 있는데....
분명 최근 200년간 우리는 인류사 전반에 걸쳐 고대나 중세보다는 훨씬 더 많은 것들을 이뤄냈다.
식량,생명, 건강, 안전, 평등권 등등 거의 모든것에 대해. 또한 저자가 말했든 여전히 내전이나 전쟁으로부터 위협받는 곳이 있으나 분명 과거에 비해서 인류의 생존권의 위협은 수치상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줄어든것도 맞다. 과학의 발전이 인류발달사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과학 그 자체가 잘못됨을 유발하지는 않는다.
과학의 발전 그 자체가 문제 였던 것이 아니라, 이용하고 만들어내는 인간의 잘못된 생각이 문제였으며, 그렇기에 우리는 수학적 통계과 과학적 근거를 기반으로 객관적 이성판단이 앞으로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내가 가지는 편향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성적 판단을위해 교육에서부터 특정 문제의 양쪽 면을 모두 보고, 자신의 견해로 증거를 바탕으로 논증, 호소, 흑백놀리 등과 같은 논리적 오류를 찾는 등의 교육이 반드시 필요함을 말한다. 그런 교육은 결국 인간이 어떤 편향성을 가지더라도, 생각의 오류가 있다면 그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나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유연성을 갖게하기 때문이다.(사실 이부분이 제일 어려울듯..) 이 부분과 맞물려 인간의 감이라고 불리는 주관에 의지하는 판단이 아닌 사실적 통계, 팩트를 바탕으로 한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의 의견에 불편함이 있었던 것은 개인적으로 저자가 너무 긍정적으로 현재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였다. 저자의 말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도 잘 해왔기에 앞으로도 잘 해내갈것이라는 인간에 대한 믿음이 기저에 깔려있달까. 사실 인간은 많은 실수를 통해 과거의 잘못을 보완해왔다. 1,2차 세계대전을 통해 전쟁은 가해국이나 피해국 모두에게 손해임을 알았고, 그 때 사용했던 핵은 우리 모두를 비극으로 만들 무기라는 것을 알았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를 통해 원전의 위험성을 알았다. 그렇기에 각 나라가 각종 규약과 단체의 협약을 통해 더 이상의 전쟁을 막고자, 서로의 손해와 이익을 조금씩 나눠가졌고, 원자력 발전에 안전기준은 날로 강화되고 있다. 이것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보완하며, 크게 보면발전이라는 것을 하고 있는 셈이 아닌가. 인간이 늘 긍정적이지는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을 너무 밝게보는 모습이 불편했는지도.)
하지만 전체적인 맥락에서 나는 저자의 의견에 동의한다. 다만 접근 방식의 차이가 있을뿐.
아마도 저자가 이 책을 읽기 원하는 분들은현재 우리가 가지는 기후위협, 핵확산(사실 핵은 줄어들고 있다고 한다-사실), 탈레반, IS 등과 테러세력 등으로 인해우리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는 매우 비관주의적인 생각을 하는 분들을 대상으로 쓴 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ㅎㅎ 아니면 우리가 잘 해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 분들 이려나.
아무튼 과거에 비해 나아진것이지, 앞으로도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은 사실 없다.ㅋ 하지만 우리가 불안에 대처하고, 위험을 인지함으로써 보완하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맞다. (물론 모르는 사실이 있을수도.) 그러니 지금 상황이 조금 안좋아 보이더라도, 잘 헤쳐나갈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지금 다시 계몽.
“진보의 궁극적인 형태는 세계의 미적, 지적, 사회적, 문화적, 자연적 즐거움을 누릴 수 있는 가능성이 뷔페처럼 차려져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사람들이 접시에 무엇이든 마음껏 담을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게 아닐까 한다” p.381
"본 도서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