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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과 글쓰기 - 버지니아 울프의 에세이와 문장들
버지니아 울프 지음, 박명숙 옮김 / 북바이북 / 2022년 5월
평점 :
솔직히 고백하자면 올해 초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을 꼭 읽어내리라 다짐하고 도전했으나 혼자만의 숙제로 점점 더 다른 책들에 밀려 결국 완독하지 못했기에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나름의 미련으로 『여성과 글쓰기』라는 책을 통해 버지니아 울프와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 이 책은 『자기만의 방』과 여섯 편의 에세이 그리고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일기, 편지에서 뽑은 주옥같은 문장이 원문과 함께 실려있다.
1928년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여성 칼리지에서 ‘여성과 픽션’에 대한 강연을 요청받아 작성한 글을 여러 번의 수정을 거쳐 현재 우리가 만나고 있는 『자기만의 방』으로 출간되었다. 페미니스트의 문학의 진수로 손꼽히는 『자기만의 방』은 일단 강연용 글이라고 보기엔 독특한 방식으로 픽션과 논픽션을 오가며 작가의 장소이동에 동행하며 옆에서 이야기를 듣는 듯한 서술방식으로 일단 시선을 끈다. 또한, 글 전반에 여성이 작가로 예술성을 펼치기 위해 여가(시간), 사적인 공간(자기만의 방), 경제적 독립(돈)이사회적, 물질적 조건이 선행되어야 함을 이야기한다. 6편의 에세이에서는 남성 우월주의에 대한 반박으로 여성이 남성보다 지적으로 부족하거나 예술성이 떨어진 것이 아님을 밝힌다.
5 나는 불가능한 구현에 흥미를 느낀다. 나는 글을 쓰고 싶다. 지속될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쓰고 싶다. 내가 원하는 것은, 유려한 정확성을 지닌 불분명한 형태와 모습의 물결로 이루어진 자유롭게 흐르는 말들의 바다를 창조하는 것이다.
I am interested in impossible embodiments. I wish to write; I wish to write about certain things that cannot be held. I want to create a sea of freely-flowing words of no definite form and shape waves of fluent exactness. The Early Journals, 1897-1909 (p.291~292)
62 그러나 그의 입술에서는 말들이 포도주처럼 흘러나온다.
But language is wine upon his lips. Jacob's Room(Chapter 3) (p.338)
233 글을 쓰는 사람이 자신의 성을 염두에 두는 것은 치명적입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단순하고 순수한 남성이거나 여성인 것은 치명적입니다. 글 쓰는 사람은 남성적인 여성 혹은 여성적인 남성이어야 합니다.
It is fatal for anyone who writes to think of their sex. It is fatal to be a man or woman pure and simple; one must be woman-manly or man-womanly. A Room of One's Own (Chapter 6) (p.471)
349 글을 쓰는 것이 매일의 즐거움이 되어야 한다. 나는 노년의 딱딱함이 싫다. 그런데 내게서 그것이 느껴진다. 나한테서 삐걱거리는 소리가 나고, 시큼한 냄새가 난다. (…) 데스먼드가 「이스트 코커」(T. S. 엘리엇의 시)를 칭찬했을 때 나는 질투를 느꼈다. 그래서 나는 늪지를 걸으며 '나는 나다. 남을 흉내 내지 말고 내 길을 가야 한다'라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러는 것만이 내가 글을 쓰고 살아가는 것을 정당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사람들은 먹는 것을 무척 즐긴다. 내가 차려내는 것은 상상의 식사다.
Writing to be a daily pleasure. I detest the hardness of old age-I feel it. I rasp. I'm tart. (…) When Desmond praises East Coker, and I am jealous, I walk over the marsh saying, I am I: and must follow that furrow, not copy another. That is the only justification for my writing, living. How one enjoys food now: I make up imaginary meals. A Writer's Diary, 1940. 12. 29. (p.569~570)
장편 소설 『출항』, 『밤과 낮』, 『제이콥의 방』,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 『파도』, 『세월』, 『막간』에서 그리고 다양한 버전의 일기, 편지 모음집, 『자기만의 집』과 에세이에서 발췌된 버지니아 울프의 문장은 평범한 일상에서부터 작가로 그리고 여성으로의 많은 사색이 담겨있었다. 이런 문장들을 통해 울프가 글쓴이로서 수많은 고뇌와 사색을 했기에 우리가 그녀의 뛰어난 작품을 만날 수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원문과 함께 발췌되었기에 번역본과 비교해 볼 수 있었고 나만의 해석으로 원작을 만나는 기분도 느낄 수 있었다. 페미니스트의 대명사로 불리지만 버지니아 울프의 글은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며 지금도 자신의 꿈과 이상을 실천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글이라 여겨진다. 울프의 문장들을 읽으며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난해한 글이라 평가받아 망설이던 울프의 소설을 꼭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