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가미에 손을 넣으면 - 제11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사계절 1318 문고 149
김나은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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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존재에게 손이 닿는 순간, 그 감정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은 그런 질문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네 편의 단편은 각각의 방식으로 이렇게 말한다. “서툴고 어색해도, 우리는 연결될 수 있다고.”

📘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
물로만 이루어진 행성 ‘케토라’에 사는 나와, 지구에서 불시착한 유나의 이야기. 케토라인은 혼자 살아가는 게 당연한 종족이다. 타인과의 접촉은커녕, 언어마저 초음파로만 주고받는다. 그런 ‘나’가 유나의 손을 처음 맞잡은 순간 느낀 건 두려움이 아니라 짜릿함이었다.

“이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해 나는 한참 동안 내 아가미를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의 생경함과 경이는 이 단어로도 충분하지 않다. 서로 닮지 않았기에 더 깊어지는 사랑, 말보다 앞선 마음.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자신이 머물던 세계를 떠나는 존재. 이 이야기는 ‘다름’을 혐오로 규정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조용하지만 단호한 대답을 들려준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만날 수 있다.

📘 〈나란한 두 그림자〉
기억을 잃고 돌아온 친구 윤화, 그리고 그녀를 붙잡고 싶었던 연우의 이야기.

“내가, 함부로 생각했어. 너는 그냥 너인데, 내가 아는 너로 바꾸려고 했어.”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웠다는 이유로, 나는 네가 예전의 너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윤화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윤화였다.
연우는 뒤늦게 깨닫는다. 타인을 위한다는 마음조차, 결국 나의 기억과 편안함을 지키기 위한 욕망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을 잃은 뒤의 모습도, 새로운 감각도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뭉근하게 마음을 울린다. 나란히 걷는 그림자처럼, 꼭 같지 않아도 괜찮은 것.

📘 그 외의 두 편의 이야기에서도
비논리적이라 여겨지는 존재에게 귀를 기울이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네 편의 이야기 모두가 전혀 다른 배경을 다루고 있음에도, 그 안에는 같은 온기가 흐른다.

다른 존재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눈.
상대의 방식으로 다가서려는 태도.
관계를 두려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

그 손끝이 아주 살짝 아가미를 건드리는 순간처럼,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섬세하고 느린 일이지만, 분명히 가능한 일이라고.

📚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은 어린이청소년 SF라는 장르를 넘어,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감정과 시선을 건넨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이들에게, 어색해도 용기 내어 손을 내밀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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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삼국지 - 4050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삼국지
허우범 지음 / 생능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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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라니. 솔직히 처음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영웅호걸의 이야기? 전쟁과 계략? 그냥 영화나 드라마로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초역 삼국지>는 달랐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지금의 나에게 교훈을 주는 책이었다.

책은 ‘그 시절 사람들은 어떻게 난세를 살아냈을까’를 묻고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의 시대와 겹쳐보게 만든다. 불확실한 미래, 흔들리는 관계, 멈춰버린 성장.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너무 익숙한 말들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겪는 것과 비슷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묘하게 위로가 된다.

흥미로웠던 건, 이 책이 단순히 누가 싸워서 이겼고 졌다는 식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조조는 왜 의심이 많았을까, 유비는 진짜 착한 사람일까, 제갈량의 전략은 시대를 초월할 수 있을까. 그런 인물 분석을 통해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작은 선택 하나가 미래를 바꾼다는 말에 오래 머물게 됐다.

삼국지는 결국 사람 이야기다. 어떻게 사람을 믿고,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고,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초역 삼국지>는 그 본질을 요란하지 않게 짚어준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삼국지를 처음 읽는 사람에게도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권할 수 있는 책. 요즘처럼 마음이 흔들릴 때 단단한 문장이 필요할 때 곁에 두면 좋을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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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 Entanglement 얽힘 2
김이설.이주혜.정선임 지음 / 다람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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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하면 낯선 방향으로>는 격렬하게 말하지 않고, 조용히 감정의 윤곽을 드러내는 단편소설집이다. 책에서는 관계의 시작보다는 '관계의 가능성'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물들이 지닌 불안한 마음을 구원하거나 해결하지는 않지만 다만 그렇게 살아가는 이들을 조용히 비추고, 어쩌면 괜찮다고 다독여주기도 한다. 가능한 낯선 방향으로 나아가보자고. 때로는 그 길이 더 다정한 곳으로 이어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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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살린다, 아가새돌봄단 샘터어린이문고 84
홍종의 지음, 남수현 그림 / 샘터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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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모든 일이 엉망이 되는 것 같고, 오해도 쌓이고, 노력했던 일이 아무 의미 없어진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이 책의 주인공 지현준도 그런 하루를 겪는다.

좋아하는 친구 새미와 약속이 있던 날,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마주친 새 소리. 그 작은 생명을 살리겠다는 아빠의 마음 때문에 결국 약속에 늦고 친해지고 싶었던 새미와는 어색해진다. 새를 구한 대신 소중한 관계를 잃게 된 것 같은 그날. 그런데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바로 그날부터 시작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처음엔 현준이가 안쓰러웠다.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용기 내어 표현한 아이. 하지만 그걸 망치게 된 상황. 아빠는 새 생각뿐인 것 같고… 현준이의 마음이, 나의 어린 시절과 닮아 있는 것 같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읽다 보니 점점 그런 생각이 바뀌었다. 현준이는 누군가를 위해 기다릴 줄 아는 아이였다. 억울하다고 변명하기보다, 시간이 걸려도 새미가 오해를 풀어줄 때까지 기다리고, 다친 생명이 회복되기를 기다리고, 보내줄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리는 모습이
어른보다 훨씬 어른스러워 보였다.

특히 마음에 남았던 건 쪼롱이와 포롱이를 숲에 풀어주는 장면이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맞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아.“ 그 생각 속에는 단순히 새를 아끼는 마음 이상이 담겨 있었다. 쉽게 손에서 놓을 수 없는 관계를 보내기 전에 스스로 준비가 되었는지 묻는 마음. 나는 그게 단순히 새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느꼈다.

전학을 가게 된 새미와의 이별, 자신이 좋아하는 것과 지켜야 할 것을 함께 바라보는 마음. 이 모든 것이 ‘살린다’는 말 속에 함께 담겨 있었던 것 같다.

더 놀라웠던 건, 책 속의 ‘아가새돌봄단’이 실제로 존재하는 단체라는 사실이었다. 버려지거나 다친 새들을 구조해 돌보고, 건강을 회복하면 자연으로 돌려보내는 활동을 실제로 하고 있다니. 현준이와 새미의 이야기가 상상이 아니라 현실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자 더 뭉클했다. 누군가는 그렇게 작은 생명 하나하나를 돌보고 있다는 것, 아이들도 생명을 지키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참 멋졌다.

『다 살린다, 아가새돌봄단』은 단지 동물 보호에 대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무엇을 지킨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짜 가까워진다는 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되는지’ 알려주는 이야기였다. 세상을 살리는 일은 거창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사소한 아픔을 모른 척하지 않는 일, 오해를 참고 기다려주는 일, 그리고 아기 새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매일 먹이를 챙겨주는 일. 그런 작고 조용한 마음들이 결국 모두를 구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며 나는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만들기 위해 만든 것들이 다른 생명들에게는 얼마나 위협이 되는지 말이다. 높게 세워진 방음벽과 투명한 유리창, 늘어나는 도로와 건물들 사이에서 새들은 점점 갈 곳을 잃고, 그뿐 아니라 자주 다치기도 한다.

우리는 그저 ‘자연은 자연 속에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인간의 욕심으로 바뀐 환경 속에서 많은 동식물들이 이전보다 훨씬 살기 어려운 세상을 마주하고 있다. 책 속 아가새들처럼, 되살려야 하는 생명들을 위해 누군가 나서야 하는 상황은 어쩌면 우리가 만든 문제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다 살린다’는 말은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인간에게 던지는 질문처럼 들렸다.

과연 우리는 정말 생명을 살리기 위해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무심코 지나치며, 우리만의 편리만 좇고 있는 건 아닐까?

나도 언젠가 아가새돌봄단처럼 무엇이든 살려내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고 싶다. 책을 읽고 나면 분명, 누군가를 더 잘 안아주고, 품을 내어 따뜻하게 보듬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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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골드 마음 식물원 (아틀리에 컬렉션) 메리골드 시리즈
윤정은 지음 / 북로망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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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순간에 나에게는 어느 쪽이 더 필요할까.
🧺 모든 걸 지워주는 세탁소의 하얀 빈자리?
🌱 새롭게 피워줄 식물원의 푸른 숨결?

재작년 친구의 추천을 받아 읽었던 윤정은 작가의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는 아팠던 마음을 정성껏 헹궈주는 책이었다. 그때의 나는 마음 한구석에 눌러붙은 피로와 무기력 때문에 ‘지워낸다’는 행위가 간절했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에 윤정은 작가가 들려주는 『메리골드 마음 식물원』은 지워내기보다 아팠던 마음 그대로를 피워 돌보는 이야기다. 없애지 않고 남겨두는 것과 더 나아가 그 마음을 기르는 일. 그건 생각보다 용기 있는 태도다.

두 권을 모두 읽다보니 떠오르는 질문이다. “힘든 마음을 깨끗이 지우는 게 중요할까, 아니면 꽃피워 돌보는 게 중요할까?” 언제냐에 따라 답이 바뀔 수 있는 질문인 것 같다.

🧺 너무 벅차 감당할 수 없을 땐 세탁소처럼 헹구고 덜어내야 한다.
🌱 시간이 지나 그 마음을 마주할 여력이 생겼을 땐 식물원처럼 그 마음에 물을 주고 이름을 붙여야 한다.

힘든 일이 생겼을 때는 둘을 구분할 줄 아는 감각이 필요하다. 『메리골드 시리즈』는 바로 그 감각을 틔워준다. 너무 지쳐버렸을 때 나도 모르게 꾹꾹 눌러두었던 감정들이 이 책을 읽는 동안 스르륵 풀린다. 식물원 주인인 지은이 내게 위로차 한 잔을 건네는 듯한 포근하고 따뜻한 문장들 덕분에 이완의 자세를 갖출 수 있게 된다.

감당할 수 있든 없든 마음이 힘들어졌다면 이 책을 꺼내 읽어보길 추천한다. 어느새 마음의 식물이 자라고 자연스레 물을 주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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