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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트리스 부부 새소설 20
권제훈 지음 / 자음과모음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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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도 없던 시절, 핸드폰에 기본 탑재된 테트리스 게임을 떠올린다. 모양이 제각각인 블록들이 화면 위에서 일정한 속도로 떨어진다. 우리는 그 블록이 들어갈 최적의 자리를 재빠르게 찾고,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차곡차곡 쌓는다. 가로 한 줄을 빈틈없이 채우면 반짝이며 사라지는 그 순간, 우리는 작은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한순간의 실수든, 혹은 게임 설계의 한계든 결국 어딘가에 빈틈은 생기고,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Game Over’. 중앙을 가득 채운 글자와 함께 우리는 아웃된다. 테트리스는 그런 게임이다.

이 익숙한 게임을 다시 떠올리게 된 건 『테트리스 부부』라는 제목의 소설 덕분이다. 제목부터 부부를 테트리스 블록에 비유한 설정이 흥미롭다. 부부는 테트리스 블록처럼 모양도 결도 다르다. 때로는 찰떡같이 들어맞기도 하지만, 때로는 어디에도 맞지 않는 조각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소설 속 주인공 지웅과 민서도 그런 관계다. 민서는 욕망에 솔직하고 변화무쌍한 인물이다. 결혼 안에서도 스스로 주인공이기를 바란다. 반면 지웅은 욕심 없는 성격으로, 상대를 위해 스스로를 양보해가며 살아왔다. 그런 지웅이 어떤 계기를 통해 갑작스레 반기를 든다. 민서보다 더 낭비하고, 위험한 소비와 투자에 손을 대기 시작한다. 그의 변화는 결국 부부 관계의 중심을 흔든다. 민서는 변해버린 남편의 모습에서 뜻밖에도 자신을 보게 되고, 충격과 함께 거울치료와 같은 반응을 경험한다.

이 부부는 아이 없이 살기로 결정한 ‘딩크족’이다. 하지만 단순히 아이를 낳지 않기로 한 부부가 아닌, 전통적인 가족의 틀 자체를 거부하는 이들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이렇게 무모해도 되나?’ 싶은 순간들이 많았다. ‘왜 결혼했을까?’라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했다. 나 역시 딩크족의 삶을 막연히 떠올려보지만, 이들처럼 위험을 감수하고 살아갈 자신은 없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읽는 내내 두 인물이 어쩜 이렇게 같이 한심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너스 통장, 고급 소비, 출산 문제, 양가 부모의 기대, 뜻밖의 건강 문제 등, 이 부부가 겪는 갈등은 현재를 살아가는 수많은 젊은 부부의 축소판처럼 느껴졌다. 이질적인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경제관념 외에는 닮은 구석이 많은 두 사람. 그런 점에서 ‘어쩌면 그래서 서로에게 끌렸는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비교적 ‘바른 생활 부부’를 꿈꾸는 편이라 공감보다는 냉소에 가까운 웃음을 지은 장면이 많았지만, 내 집 마련과 자녀 계획이 어려운 청년 세대의 현실이 담긴 부분에서는 나 역시 작은 위로를 받았다.

테트리스에서 가장 중요한 건 공간을 빈틈없이 메우는 일이다. 부부 역시 마찬가지다. 공백을 어떻게 메우고, 혹은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갈지 고민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때로는 한 줄이 꽉 차 반짝이며 사라지기도 하지만, 그 순간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블록이 계속 쌓이듯, 부부의 삶도 계속된다. 얼마나 잘 맞춰가는지, 얼마나 덜 억지로 끼워 맞추는지가 중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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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하다
신창호 지음 / 판미동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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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와 다산 정약용. 조선 후기의 이 두 인물은 흔히 군주와 신하의 관계로 기억되지만, 이 책은 그들을 단순한 위계적 관계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서로의 질문에 응답하고 현실을 함께 고민하며, 국가의 미래를 공동 설계해 나간 정치적 동반자이자 사상적 친구에 더 가깝다.

책은 정조와 다산 사이에 오간 문답을 따라가며, 혼란스러웠던 조선 사회를 어떻게 바로 세우려 했는지를 면밀하게 보여준다. 인재를 어떻게 등용할 것인가, 백성을 위한 정치는 무엇인가, 지방의 균형 발전과 실용적 행정은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가. 정조는 물었고, 다산은 답했다. 이들의 문답은 단순한 학문적 토론이 아니라, 실제 국정을 움직이고자 했던 깊은 모색이자 긴장 속의 협업의 산물이었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두 사람이 보여준 포용의 리더십이다. 신분이나 출신 배경보다는 실력과 덕성을 기준 삼았고, 정통만을 고집하기보다는 다양한 목소리를 경청하고자 했다. 이념이나 계파가 아닌, 무엇이 옳은가를 중심에 두고 판단하고 실천하려 한 두 사람의 태도는 오늘날에도 유효한 정치적 가치로 남는다.

책을 읽는 내내, 정치는 결국 함께 질문하고 응답하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되새기게 된다. 혼자 판단하고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입장에서 묻고 답하며 더 나은 방향을 찾아가는 것. 그 안에서 드러나는 정조의 성숙함과 다산의 치열함은, 지금 우리가 고민해야 할 민주적 리더십의 본질을 조용히 일깨운다.

역사 속 대화지만,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질문들이 담긴 책. 혼란의 시기일수록 기본과 근본을 돌아보아야 한다면, 이 책은 우리가 다시 꺼내 읽어야 할 고전 같은 한 권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또 하나의 중대한 선택 앞에 서 있다. 대선을 앞둔 지금의 한국 사회는 분열과 대립, 감정의 피로감 속에 길을 잃은 듯하다. 이런 때일수록 ‘누가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옳은가’를 중심에 둬야 하지 않을까.

정조가 묻고 다산이 답하던 그 시대처럼. 지금의 우리에게도 필요한 건 독단이 아닌 대화이고, 폐쇄가 아닌 포용이며, 말뿐이 아닌 실천이다. 과거의 문답은 오늘의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질문이 살아 있는 사회, 답을 찾으려는 리더십, 그리고 그 과정에 함께하는 시민. 이것이 우리가 만들어가야 할 미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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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 도감 - 학교생활 잘하는 법
김원아 지음, 주쓰 그림 / 창비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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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1학년은 생애 첫 ‘학교생활’을 시작하는 시기입니다. 처음으로 선생님과 교실을 만나고, 처음으로 이름 모르는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게 되죠. 그런데 아무리 귀엽고 사랑스러운 나이라 해도, 낯선 환경과 새로운 규칙 속에서 아이들은 매일매일 크고 작은 ‘버벅거림’을 겪습니다. 손을 언제 들어야 하지? 쉬는 시간엔 뭘 해야 하지? 친구가 내 물건을 가져갔을 땐 어떻게 말해야 하지?


『내 친구 도감: 학교생활 잘하는 법』은 바로 이런 아이들의 물음에 친구처럼, 때로는 선생님처럼 조용히 답해주는 책입니다. 학교생활 속 다양한 장면들을 ‘도감’ 형식으로 보여주며,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더 나은 행동을 스스로 익히도록 돕습니다.


책 속에는 발표를 잘하는 친구, 규칙을 지키는 친구, 점심시간에 골고루 먹는 친구, 모둠 활동에서 배려하는 친구 등 교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양한 아이들이 등장합니다. 마치 우리 반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친근하게 다가오고, “어? 이거 나랑 똑같다!”, “이건 ○○이잖아!” 하며 아이들이 스스로 책 속 인물과 자신을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이 책이 특별한 점은, 단순히 ‘바른 생활’을 가르치려 하지 않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아이들 눈높이에서 알려준다는 것입니다. 교사의 입장에서 봤을 때, 이 책은 아이들의 자율성과 자기조절력을 키워주기에 아주 좋은 도구입니다. 특히 아직 문자 해독이 서툰 저학년 아이들을 위해 글과 그림이 균형 있게 구성되어 있고, 핵심 메시지는 짧고 명확하게 전달됩니다.


무엇보다 책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비교나 평가가 아닌 응원과 격려입니다. “이렇게 하면 좋아요”라고 부드럽게 이끌어주고, “아직 어렵다면 천천히 해봐요”라고 기다려주는 책이지요.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부담 없이 읽고, 오히려 먼저 친구처럼 이 책을 꺼내 보며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기도 합니다.


학교생활이 처음이라 서툴고 낯설 아이들에게, 이 책은 꼭 필요한 안내서입니다.
“괜찮아, 이렇게 해도 돼.” 이 책은 그런 말을 대신 건네주는 든든한 친구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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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 - 어느 30대 캥거루족의 가족과 나 사이 길 찾기
구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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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한 문장을 읽고 울컥했다.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제목부터가 따뜻하다. 독립을 하지 않았거나 아직 준비 중인 사람, 혹은 이미 독립했지만 여전히 익숙한 품을 그리워하는 사람에게까지 조용히 다가가 말을 건네는 책이다.

내가 본가를 떠나 처음 ‘홀로서기’를 시작한 건 대학의 끝자락인 4학년 시절부터였다. 당시엔 ‘독립했다’는 말이 어쩐지 어색하지 않았다. 자취방 계약서를 처음 손에 쥐었을 때의 설렘, 반찬이 없을 때마다 배달 앱을 켜던 날들, 혼자서 집안일을 처리하고 병원에 가고, 잠든 밤중에 비가 오면 창문을 혼자 닫는 일까지—모든 것이 ‘내 몫’이 되는 생활이 신기하고 어른스러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진짜 독립은 단순히 본가를 떠나 사는 것이 아니며, 특히 경제적 자립 없이 말하는 독립은 어쩌면 ‘독립 놀이’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것을. 나 역시 여전히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고, 대학 시절엔 주말마다 본가에 내려가 시간을 보내는 삶을 오랫동안 유지했다. 펜데믹 시기엔 아예 본가에서 시간을 보냈고, 결국 지금껏 본격적인 독립 생활을 한 시간은 손에 꼽을 만큼 짧다. 그마저도 어쩐지 얄팍하게 느껴질 만큼 마음이 본가에 닿아 있는 날들이 많았다.

그런 내게 이 책은 ‘아직도 나는 제대로 독립하지 못한 건 아닐까?’라는 마음을 조용히 감싸주었다. 독립에 대한 세상의 시선은 종종 ‘완전한 분리’를 당연시하지만, 이 책은 그렇게 단정하지 않는다. 다양한 방식의 ‘독립 전후’ 삶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독립을 했든, 하지 않았든, 어떤 선택이든 괜찮다고 말해준다.

책은 한 사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여러 인물의 경험과 감정을 통해 독립이라는 주제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혼자 사는 것의 어려움과 외로움, 그러나 그 속에서 피어나는 자기만의 루틴과 여유, 때로는 실패와 좌절까지. 그 모든 장면들이 조곤조곤 이어져 책을 읽는 내내 내가 걷고 있는 삶의 풍경과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특히 “모두가 각자의 섬을 꾸리는구나, 재밌겠는데?”라는 장면에서는 웃음이, “각자의 섬을 꾸리더라도 난 여전히 구씨 집안일 거야.”라는 문장에서는 왈칵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 문장은 나에게 ‘뿌리’에 대한 감각을 되새기게 했다. 아무리 멀리 떨어져 살아도, 나는 여전히 누군가의 가족이고, 누군가의 자식이다. 내 생활 반경이 달라지고, 리듬이 바뀌어도, 나를 만든 자리와의 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독립은 단절이 아닌, 새로운 거리감 속에서도 이어지는 관계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걸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은 독립을 미화하지도 않고, 독립하지 않은 삶을 폄하하지도 않는다. 무엇을 선택하든, 각자의 이유가 있고, 그 안에서 각자만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래서 ‘지금 내가 잘 살고 있는 걸까?’라는 불안이 스칠 때, 조용히 꺼내어 볼 수 있는 책이다. 가볍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시선으로, 독립이라는 삶의 한 국면을 포근하게 담아낸 이 책은,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지 않아도 괜찮다는 위로를 건넨다.

『독립하지 않아도 괜찮을까?』는 혼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혹은 아직 혼자 살아보지 않은 이들에게도 필요한 이야기다. 각자의 섬을 꾸려가는 중인 사람들에게, 때로는 고요하고 때로는 분주한 삶이 결국 ‘나의 이야기’로 채워져간다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켜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완전한 독립이 아니더라도 괜찮다는 말—그 말 한마디에 기대고 싶은 날들을 위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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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 붕괴
해도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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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번째 단편, <검은 절벽>

정신을 차려보니 광막한 우주 한가운데서 우주복을 입은 채 비행선 외벽에 서 있었다. 지구도 태양도 사람도 없는 고요하고 낯선 공간. 처음엔 황당했지만 차츰 기억이 돌아온다. 왕복 20여 년이 걸리는 행성 탐사 중이었다는 것. 그런데 왜 내가 선체 바깥에 나와 있는 걸까?

그 질문에서 시작된 <검은 절벽>은 차가운 우주 속에서 펼쳐지는 정적의 미스터리이자, 한 존재의 균열과 흔들림을 따라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라미는 특수 임무를 수행하는 승무원이지만 그녀에게 우주라는 공간은 묘하게 낯설고 이질적이다. 캄캄한 우주는 두려움이면서도 해방이며 감정을 투영해내는 거울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인상 깊었던 점은 라미를 포함한 모든 등장인물들이 각자의 ‘장르’를 살고 있다는 것. 누군가는 스릴러의 주인공, 누군가는 치정극 속 인물, 또 다른 누군가는 크리처물의 캐릭터처럼 느껴진다. 같은 사건과 같은 배경이지만 누구를 중심에 놓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처럼 읽히는 점이 특히 흥미로웠다.

이런 설정 덕분에 작품은 짧지만 재독의 여지를 충분히 남긴다. 처음에는 사건 자체에 집중하게 되지만 다시 읽으면 인물들의 심리나 무너지는 내면의 구조에 더 눈이 간다. ‘우주’라는 소재는 SF에서 가장 흔한 무대일 수 있지만 해도연 작가는 그 안에서 인간의 정체성과 감정, 믿음이 서서히 붕괴하는 순간들을 아주 정밀하게 그려낸다.

어쩌면, 우주보다 더 낯선 것은 인간의 마음일지도 모르겠다. 스포일 수 있지만 마지막까지 가장 크게 남는 질문은 이것이었다.

“인공지능과 인간이 서로 사랑할 수 있을까?”

그게 가능할까? MBTI가 INFJ인 나는 머리로는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쩌면 정말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어떤 감정은 이성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도달하니까. 아마 이 질문 하나가 이 이야기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할 것 같다.


📖 두 번째 단편, <텅 빈 거품>

진공거품, 이름부터 공허하고 쓸쓸하다. 모든 것을 사라지게 만든다는 이 미지의 존재가 지구를 향해 다가온다는 설정부터 이미 강렬하다. 인류는 그 종말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대신 마지막 유토피아를 만든다. 함께 사라질 것을 각오하고 아름다운 최후를 선택한 이들과, 반대로 진공거품에서 벗어나기 위해 외계에서 도착한 초광속 우주선을 타고 떠나기로 작정한 사람들. 이 소설은 그 갈림길에 선 인류의 선택을 보여준다.

<텅 빈 거품>은 물리학적인 상상력보다도 그 안에 있는 인간에게 훨씬 더 초점을 맞춘다.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사람들. 남기로 한 이유, 떠나기로 한 이유. 각자의 입장은 그 나름대로 설득력 있고 타당해서 쉽게 옳고 그름을 나눌 수 없다. 오히려 이 이야기의 가장 깊은 지점은 ‘누구의 선택이 옳은가’가 아니라, ‘무엇이 나에게 의미 있는가’를 묻는 데 있다.

소멸을 눈앞에 두고도 인간은 여전히 관계를 맺고, 아름다움을 찾고, 미래를 고민한다. 그건 어떤 면에서는 희망이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허무에 대한 저항일지도 모른다. 진공거품이 덮친 후, 모든 것이 정말 사라진다면. 그 선택의 무게는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당신이라면, 떠날 것인가? 남을 것인가?”

여기서의 떠남은 도망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떠날 것 같다. 끝을 피하는 몸짓이 아니고 무엇인가를 위해 새롭게 나아가는 것이니. 상미와 신시아의 선택이 더 나에게 의미있다. 하지만 내가 죽기 전까지는 남은 세상이 유토피아로 유지된다면 그 유혹을 뿌리칠 수 있을지, 후회는 조금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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