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렌디 이야기 2 : 호텔 발자르 노렌디 이야기 2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줄리아 사르다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비룡소 동화 신작인 『호텔 발자르』는 이야기의 겉과 속, 현재와 과거, 환상과 현실을 교차하며 구성된 독특한 서사 구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다락방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마르타 앞에 나타난 백작 부인은, 마르타를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 짧지만 인상 깊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려준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인 듯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이야기들이 서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짚어내야 한다. 그래서 읽는 동안 자연스레 여러 번 앞장을 다시 넘기게 됐다. 이야기의 순서, 등장인물의 면면, 반복되는 상징들을 다시 확인하며 뒷이야기의 퍼즐을 맞춰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반복은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작가가 의도한 독서 방식처럼 느껴진다. 처음 읽을 때는 놓치기 쉬운 단서들이 다시 읽을 때마다 의미를 바꾸고, 그로 인해 이야기는 한 번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겁고 조용하다. 마르타가 처한 상황도, 백작 부인의 외양도, 그리고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도 무섭고 슬픈 정서를 품고 있다. 하지만 이 정서가 나를 짓누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들이 겹치고 얽히며 드러나는 진심과 의도가 서서히 감정의 방향을 바꾼다. 절망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야기의 끝자락에 도달하면 어딘가에 분명한 ‘버틸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호텔 발자르』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 형식을 따르지만, 그 내용과 구성은 오히려 성숙한 독자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줄 것 같다.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를 복기하게 만드는 밀도와 집중력, 그리고 이야기 속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한 서사의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게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진짜 힘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 - 어떤 순애의 기록
김지원(편안한제이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왜 이토록 고되면서도 벅찬 걸까? 《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는 덕질이라는 이름 아래 수십 년간 자신을 키워온 사랑의 기록이자, 그 안에서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한 사람의 성장 에세이다. 게다가 요즘 <혼모노>라는 엄청난 소설로 출판업계를 흔든 성해나 작가님의 추천작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말 그대로 ‘덕질 장인’이다. 1세대 아이돌부터 배우, 프로게이머, 일본 아이돌까지. 좋아하는 대상은 계속해서 바뀌지만,그 마음을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다. 바로 ‘순애’다. 뜨겁게 몰입하고, 응원하고, 사랑하면서 자신의 일상과 감정, 심지어 삶의 방향까지 흔들리는 그 모든 과정을 결코 가볍게 쓰지 않는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누구를 좋아하는가보다 그 사랑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 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는 덕질의 세계는 어쩌면 바깥에서는 이해받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마음이 얼마나 뜨겁고 단단하며 때로는 얼마나 나를 구원하는 위로가 되는지 절절히 느껴진다. 출근이 버거운 아침, 최애의 한마디로 다시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단순한 팬심 그 이상이다. 그것은 절망을 녹이는 사랑이고, 삶의 이유를 되새기게 만드는 애정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최애가 바뀌어도 순애의 농도는 흐려지지 않았다’는 대목이었다. 최애를 위해 자막 없이 영상을 보겠다며 일본어 자격증을 따고, 직접 포토샵을 배우고 굿즈를 만들며, 그 모든 노력이 자신의 커리어와 삶의 자산이 되었다는 사실은 좋아하는 마음은 결국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끈다는 걸 강하게 증명해낸다. 세상이 무용하다고 말했던 감정들이 사실은 나를 이루는 가장 단단한 정체성이었다는 문장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더 크게 만든다.”

덕질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마음을 조용히 끄덕이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덕질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자신의 과거를 조심스레 꺼내보게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책의 진짜 미덕은 ‘덕질’이라는 말 안에 담긴 무한한 감정과 노력을 한 사람의 서사로 풀어내며, 그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가를 증명해 보인다는 데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돌아온 아이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8
김혜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돌아온 아이들』은 말할 수 없는 상처를 품은 아이들이 현실 세계에서 사라지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다. 주인공 담희는 사고로 목소리를 잃고 엄마도 잃은 채 살아간다. 말을 할 수 없어 공책에 적어야 하는 담희는 또래 친구들과 소통하기 어렵고, 아이들은 그런 담희를 불편해한다. 친구 하나 없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매일 센터에서 만나 그림을 그리는 보경 선생님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담희 앞에 놀라운 존재가 나타난다. 실종된 지 30년이 지난 고모 민진이, 그 시절 모습 그대로 돌아온 것이다.

민진은 나이 들지 않았다. 시간도 흐르지 않은 채, 그대로 담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담희는 그런 민진을 고모라기보다는 친구로 받아들이고, 민진 역시 담희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연다. 하지만 민진의 귀환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다. 오래지 않아 민진은 다시 사라지고, 담희와 보경은 그녀의 행방을 쫓기 위해 상백산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보경은 잊고 지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한때 ‘영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 역시 마인계라는 세계에 다녀왔던 기억을 말이다.

마인계는 현실, 즉 무마인계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빠져들게 되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다. 아픈 몸, 폭력적인 가정, 외로운 존재감. 그 고통을 버티기 어려웠던 아이들은 조용히 사라져, 마인계라는 세계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마인계는 결코 아이들에게 온전한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그곳에는 세작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는 아이들의 존재만으로 늙지 않고 살아간다. 마인계에 머무는 아이들이 많을수록 세작은 더욱 젊고 강해진다. 만약 어떤 아이가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면 조건이 있다. 자신을 대신해 새로운 아이를 데려와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이는 유리 인형이 되어 마인계에 갇히고 만다.

민진은 그 조건 앞에서 담희를 떠올렸지만, 끝내 데려오지 못했고, 결국 세작의 통제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죄책감은 여전히 그녀를 따라다닌다. 담희는 민진을 구하고 싶고, 보경 역시 자신이 과거에 마인계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민진을 도우려 한다. 이들은 다시 마인계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보경의 옛 친구 진설의 도움을 받아 세작에게 들키지 않고 민진을 현실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함께 가져온 유리 인형들은 현실에 돌아오자마자 본래의 아이들로 되살아난다.

이 책의 설정은 매우 환상적이고 독창적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돌아옴’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돌아오는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돌아오는가에 있다. 마인계는 단지 상상 속 세계가 아니라, 상처받은 아이들의 고통과 외면된 감정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 공간이다.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을 버리고, 또 누군가를 대신 내놓아야 하는 잔인한 룰이 존재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세계에서도 타인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고, 누군가는 손을 뻗는다. 그 작은 결심과 움직임이 결국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든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빛을 향해가는 성장과 구원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실제로 『돌아온 아이들』은 어둠 속에 머물던 존재들이 천천히 자신을 회복하고, 서로를 구해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독자인 역시 그 여정을 따라가며 문득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나, 상처받고 외면당했던 그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완전히 사라졌을까. 어쩌면 우리 안의 ‘그 아이’는 아직도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망각의 숲 어딘가에서,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는,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다. 단, 고통 어린 기억을 망각의 숲에 가둬두고서.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숲이 완전히 닫힌 적은 없다는 것을. 기억과 마음이 닿는 곳, 누군가의 진심이 오랫동안 기다려준 자리에는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돌아온 아이들』은 그 되돌아감을 가능하게 하는 이야기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아이들을, 말하진 않았지만 기억 속에 남은 마음들을, 다시 조용히 불러내는 이야기. 어른이 된 우리가, 이제는 그 아이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판타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 - 제11회 한낙원과학소설상 작품집 사계절 1318 문고 149
김나은 외 지음 / 사계절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닿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존재에게 손이 닿는 순간, 그 감정을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은 그런 질문에서 시작하는 이야기다. 그리고 네 편의 단편은 각각의 방식으로 이렇게 말한다. “서툴고 어색해도, 우리는 연결될 수 있다고.”

📘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
물로만 이루어진 행성 ‘케토라’에 사는 나와, 지구에서 불시착한 유나의 이야기. 케토라인은 혼자 살아가는 게 당연한 종족이다. 타인과의 접촉은커녕, 언어마저 초음파로만 주고받는다. 그런 ‘나’가 유나의 손을 처음 맞잡은 순간 느낀 건 두려움이 아니라 짜릿함이었다.

“이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를 찾지 못해 나는 한참 동안 내 아가미를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의 생경함과 경이는 이 단어로도 충분하지 않다. 서로 닮지 않았기에 더 깊어지는 사랑, 말보다 앞선 마음. 그리고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처음으로 자신이 머물던 세계를 떠나는 존재. 이 이야기는 ‘다름’을 혐오로 규정하는 오늘날의 사회에서, 조용하지만 단호한 대답을 들려준다.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만날 수 있다.

📘 〈나란한 두 그림자〉
기억을 잃고 돌아온 친구 윤화, 그리고 그녀를 붙잡고 싶었던 연우의 이야기.

“내가, 함부로 생각했어. 너는 그냥 너인데, 내가 아는 너로 바꾸려고 했어.”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가까웠다는 이유로, 나는 네가 예전의 너로 돌아오기를 바랐다. 하지만 윤화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 윤화였다.
연우는 뒤늦게 깨닫는다. 타인을 위한다는 마음조차, 결국 나의 기억과 편안함을 지키기 위한 욕망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을 잃은 뒤의 모습도, 새로운 감각도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뭉근하게 마음을 울린다. 나란히 걷는 그림자처럼, 꼭 같지 않아도 괜찮은 것.

📘 그 외의 두 편의 이야기에서도
비논리적이라 여겨지는 존재에게 귀를 기울이고, 언어가 통하지 않아도 마음이 전해지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네 편의 이야기 모두가 전혀 다른 배경을 다루고 있음에도, 그 안에는 같은 온기가 흐른다.

다른 존재를 경이롭게 바라보는 눈.
상대의 방식으로 다가서려는 태도.
관계를 두려워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용기.

그 손끝이 아주 살짝 아가미를 건드리는 순간처럼, 타인을 이해한다는 건 섬세하고 느린 일이지만, 분명히 가능한 일이라고.

📚 『아가미에 손을 넣으면』은 어린이청소년 SF라는 장르를 넘어,
지금 여기의 우리에게 꼭 필요한 감정과 시선을 건넨다. 누군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은 이들에게, 어색해도 용기 내어 손을 내밀고 싶은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초역 삼국지 - 4050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삼국지
허우범 지음 / 생능북스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삼국지라니. 솔직히 처음엔 너무 먼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영웅호걸의 이야기? 전쟁과 계략? 그냥 영화나 드라마로 보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초역 삼국지>는 달랐다. 삼국지에 나오는 인물들의 이야기로 지금의 나에게 교훈을 주는 책이었다.

책은 ‘그 시절 사람들은 어떻게 난세를 살아냈을까’를 묻고 지금 우리가 겪는 혼란의 시대와 겹쳐보게 만든다. 불확실한 미래, 흔들리는 관계, 멈춰버린 성장.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너무 익숙한 말들이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우리가 겪는 것과 비슷한 상황 속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개척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묘하게 위로가 된다.

흥미로웠던 건, 이 책이 단순히 누가 싸워서 이겼고 졌다는 식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는다는 거다. 조조는 왜 의심이 많았을까, 유비는 진짜 착한 사람일까, 제갈량의 전략은 시대를 초월할 수 있을까. 그런 인물 분석을 통해 지금의 내 모습을 돌아보게 만든다. 그리고 작은 선택 하나가 미래를 바꾼다는 말에 오래 머물게 됐다.

삼국지는 결국 사람 이야기다. 어떻게 사람을 믿고, 어떻게 관계를 이어가고, 어떤 태도로 삶을 살아갈 것인가. <초역 삼국지>는 그 본질을 요란하지 않게 짚어준다. 그래서 더 믿음이 간다.

삼국지를 처음 읽는 사람에게도 인생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에게도 충분히 권할 수 있는 책. 요즘처럼 마음이 흔들릴 때 단단한 문장이 필요할 때 곁에 두면 좋을 책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