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돌아온 아이들 ㅣ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8
김혜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6월
평점 :
『돌아온 아이들』은 말할 수 없는 상처를 품은 아이들이 현실 세계에서 사라지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다. 주인공 담희는 사고로 목소리를 잃고 엄마도 잃은 채 살아간다. 말을 할 수 없어 공책에 적어야 하는 담희는 또래 친구들과 소통하기 어렵고, 아이들은 그런 담희를 불편해한다. 친구 하나 없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매일 센터에서 만나 그림을 그리는 보경 선생님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담희 앞에 놀라운 존재가 나타난다. 실종된 지 30년이 지난 고모 민진이, 그 시절 모습 그대로 돌아온 것이다.
민진은 나이 들지 않았다. 시간도 흐르지 않은 채, 그대로 담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담희는 그런 민진을 고모라기보다는 친구로 받아들이고, 민진 역시 담희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연다. 하지만 민진의 귀환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다. 오래지 않아 민진은 다시 사라지고, 담희와 보경은 그녀의 행방을 쫓기 위해 상백산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보경은 잊고 지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한때 ‘영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 역시 마인계라는 세계에 다녀왔던 기억을 말이다.
마인계는 현실, 즉 무마인계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빠져들게 되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다. 아픈 몸, 폭력적인 가정, 외로운 존재감. 그 고통을 버티기 어려웠던 아이들은 조용히 사라져, 마인계라는 세계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마인계는 결코 아이들에게 온전한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그곳에는 세작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는 아이들의 존재만으로 늙지 않고 살아간다. 마인계에 머무는 아이들이 많을수록 세작은 더욱 젊고 강해진다. 만약 어떤 아이가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면 조건이 있다. 자신을 대신해 새로운 아이를 데려와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이는 유리 인형이 되어 마인계에 갇히고 만다.
민진은 그 조건 앞에서 담희를 떠올렸지만, 끝내 데려오지 못했고, 결국 세작의 통제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죄책감은 여전히 그녀를 따라다닌다. 담희는 민진을 구하고 싶고, 보경 역시 자신이 과거에 마인계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민진을 도우려 한다. 이들은 다시 마인계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보경의 옛 친구 진설의 도움을 받아 세작에게 들키지 않고 민진을 현실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함께 가져온 유리 인형들은 현실에 돌아오자마자 본래의 아이들로 되살아난다.
이 책의 설정은 매우 환상적이고 독창적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돌아옴’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돌아오는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돌아오는가에 있다. 마인계는 단지 상상 속 세계가 아니라, 상처받은 아이들의 고통과 외면된 감정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 공간이다.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을 버리고, 또 누군가를 대신 내놓아야 하는 잔인한 룰이 존재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세계에서도 타인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고, 누군가는 손을 뻗는다. 그 작은 결심과 움직임이 결국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든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빛을 향해가는 성장과 구원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실제로 『돌아온 아이들』은 어둠 속에 머물던 존재들이 천천히 자신을 회복하고, 서로를 구해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독자인 역시 그 여정을 따라가며 문득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나, 상처받고 외면당했던 그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완전히 사라졌을까. 어쩌면 우리 안의 ‘그 아이’는 아직도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망각의 숲 어딘가에서,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는,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다. 단, 고통 어린 기억을 망각의 숲에 가둬두고서.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숲이 완전히 닫힌 적은 없다는 것을. 기억과 마음이 닿는 곳, 누군가의 진심이 오랫동안 기다려준 자리에는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돌아온 아이들』은 그 되돌아감을 가능하게 하는 이야기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아이들을, 말하진 않았지만 기억 속에 남은 마음들을, 다시 조용히 불러내는 이야기. 어른이 된 우리가, 이제는 그 아이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판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