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농장 오랫동안
조지 오웰 지음, 강미경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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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대표작 『동물농장』은 겉보기에는 동화처럼 단순하지만, 읽고 나면 씁쓸함이 진하게 남는 작품이다. 이번에 ‘느낌이있는책’에서 출간한 오랫동안시리즈 판본으로 다시 읽으면서, 오래된 고전이 여전히 오늘의 현실을 비추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이 판본은 곳곳에 삽화가 실려 있어 고전 특유의 무거움을 덜어내고, 책 뒤편에는 해설과 원어 텍스트까지 함께 담겨 있어 작품 이해에 도움을 준다. 청소년이나 처음 읽는 독자들도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구성된 점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작품 속에서 동물들은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나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계명을 내세우며 새로운 사회를 세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계명은 돼지들의 입맛에 맞게 변질되고, 결국 혁명의 이상은 사라진다. 양떼들이 단순한 구호를 되뇌며 여론을 왜곡하고, 충직한 말 복서는 비판적 사고 없이 체제를 떠받치다 소모품처럼 버려진다. 공포 정치와 대규모 숙청은 저항을 봉쇄하며, 마지막 장면에서는 돼지와 인간을 구분할 수 없는 아이러니한 결말로 끝을 맺는다. 권력자가 누구든 감시와 비판이 없다면 독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가 뚜렷하다.


처음 읽었을 때는 복서가 끌려가는 장면에서 개인적 비극에 큰 충격을 받았다면, 이번 재독에서는 오히려 체제 자체의 아이러니, 교육받지 못한 대중의 무지, 세대가 지나며 기억이 사라지는 현실에 더 눈길이 갔다. 단순한 우화가 아니라 북한 체제나 오늘날의 여론 조작 현상 등 구체적 현실과도 겹쳐지며 씁쓸한 울림을 주었다.


조지 오웰은 “1936년 이후 내가 쓴 모든 진지한 작품들은 전체주의에 반대하는 것이었다”고 말한 바 있다. 『동물농장』은 바로 그 의식이 예술적 형식과 만나 탄생한 작품이다. 이번에 읽은 ‘느낌이있는책’ 판본은 삽화와 해설 덕분에 접근성을 높였고, 그래서 오히려 작품의 풍자가 더 예리하게 와 닿았다. 고전을 새롭게 읽고 싶은 독자들에게 자신 있게 추천할 만한 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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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5
박지영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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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작가의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책이 덕질과 팬덤에 관한 이야기일 줄 알았다. 누군가를 열렬히 응원하고, 사랑을 쏟아붓고, 그러다 상처받는 흔한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예상에서 철저히 벗어난다. 덕질은 분명 이야기의 중요한 장치이지만, 결코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 크고 복잡한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에 불과했다.


주인공 복미영은 쉰여섯, 지천명과 이순 사이에서 오랜 팬질의 역사를 이어온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 덕질 대상도 결국 쓰레기였다는 사실에 부딪히며 고민에 빠진다. “나는 왜 이렇게 쓰레기만 골라 팬이 되는 걸까?” 응원과 지지,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낌없이 베풀면서 주변과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며, 복미영은 다짐한다. 내가 내 팬을 정해. 복미영 팬클럽을 만들자. 그렇게 소설은 복미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출발한다.


하지만 복미영이라는 사람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책 속에서 그녀가 내뱉는 말과 행동만 보면 꽤 알 것 같은데, 다른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그려지는 복미영은 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 순간에는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사람 같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저 사람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겠다” 싶은 존재가 된다. 이 입체감이 복미영이라는 인물을 묘하게 매력적이면서도 불편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중심이 복미영이라 생각한 것도 잠시, 중반부부터는 김지은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며 이야기가 다른 결을 띤다. 병든 엄마를 돌보던 은수 이모가 아프자, 이제는 엄마와 이모 둘 다 자신이 돌봐야 한다는 부담에 짓눌린 김지은은 성해윤이라는 사람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래도 되는 사람’으로 복미영이 등장한다. 복미영은 지은에게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과거 은수 이모와의 인연을 통해 한 번 마주쳤던 사람. 이때부터 소설은 복미영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듯한 구조를 띠기 시작한다. 뜬금없지 않으면서도,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가지를 뻗어간다.


책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단어들이 있다. 이모님, 그래도 되는 사람, 버리다, 버리기 아티스트, 복미영. 그중에서도 ‘이모님’이라는 호칭은 유난히 슬프게 다가왔다. 이모님이라는 존재, 우리는 현실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쉽게 소외되는, 필요할 때만 불려오는 존재. 복미영이라는 인물,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결국 돌봄과 소외, 관계와 무심함에 대해 묻고 있었다.


결국 이 책은 덕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지지하며 살아온 한 사람이, 자기 돌봄과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사랑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풀어내는 이야기다.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지만, 그 빗나감이 불쾌하지 않다. 오히려 그 예측 불가능함이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든다.


읽고 나면 묘한 질문이 남는다. 나는 누구를 함부로 해왔을까. 누구에게만 유독 너그러웠을까. 그리고 나는 나의 팬이 되어본 적이 있었을까. 누구의 안티팬이고 찐팬이었는지.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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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렌디 이야기 2 : 호텔 발자르 노렌디 이야기 2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줄리아 사르다 그림, 김경미 옮김 / 비룡소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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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룡소 동화 신작인 『호텔 발자르』는 이야기의 겉과 속, 현재와 과거, 환상과 현실을 교차하며 구성된 독특한 서사 구조가 인상적인 작품이다.

다락방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마르타 앞에 나타난 백작 부인은, 마르타를 자신의 방으로 초대해 짧지만 인상 깊은 이야기들을 하나씩 들려준다. 각각의 이야기는 독립적인 듯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 이야기들이 서로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는지를 짚어내야 한다. 그래서 읽는 동안 자연스레 여러 번 앞장을 다시 넘기게 됐다. 이야기의 순서, 등장인물의 면면, 반복되는 상징들을 다시 확인하며 뒷이야기의 퍼즐을 맞춰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 반복은 단순한 회귀가 아니라, 작가가 의도한 독서 방식처럼 느껴진다. 처음 읽을 때는 놓치기 쉬운 단서들이 다시 읽을 때마다 의미를 바꾸고, 그로 인해 이야기는 한 번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무겁고 조용하다. 마르타가 처한 상황도, 백작 부인의 외양도, 그리고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들도 무섭고 슬픈 정서를 품고 있다. 하지만 이 정서가 나를 짓누르지는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들이 겹치고 얽히며 드러나는 진심과 의도가 서서히 감정의 방향을 바꾼다. 절망으로 시작되었지만, 이야기의 끝자락에 도달하면 어딘가에 분명한 ‘버틸 힘’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호텔 발자르』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 형식을 따르지만, 그 내용과 구성은 오히려 성숙한 독자에게 더 깊은 울림을 줄 것 같다.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이야기 자체를 복기하게 만드는 밀도와 집중력, 그리고 이야기 속 이야기라는 형식을 통한 서사의 실험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게 이 책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진짜 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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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 - 어떤 순애의 기록
김지원(편안한제이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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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왜 이토록 고되면서도 벅찬 걸까? 《사랑할수록 나의 세계는 커져간다》는 덕질이라는 이름 아래 수십 년간 자신을 키워온 사랑의 기록이자, 그 안에서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되는 한 사람의 성장 에세이다. 게다가 요즘 <혼모노>라는 엄청난 소설로 출판업계를 흔든 성해나 작가님의 추천작이기도 하다.

이 책의 저자는 말 그대로 ‘덕질 장인’이다. 1세대 아이돌부터 배우, 프로게이머, 일본 아이돌까지. 좋아하는 대상은 계속해서 바뀌지만,그 마음을 대하는 태도는 한결같다. 바로 ‘순애’다. 뜨겁게 몰입하고, 응원하고, 사랑하면서 자신의 일상과 감정, 심지어 삶의 방향까지 흔들리는 그 모든 과정을 결코 가볍게 쓰지 않는다.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누구를 좋아하는가보다 그 사랑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 더 집중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알지도 못하는 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쏟는 덕질의 세계는 어쩌면 바깥에서는 이해받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그 마음이 얼마나 뜨겁고 단단하며 때로는 얼마나 나를 구원하는 위로가 되는지 절절히 느껴진다. 출근이 버거운 아침, 최애의 한마디로 다시 하루를 시작할 힘을 얻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단순한 팬심 그 이상이다. 그것은 절망을 녹이는 사랑이고, 삶의 이유를 되새기게 만드는 애정이다.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최애가 바뀌어도 순애의 농도는 흐려지지 않았다’는 대목이었다. 최애를 위해 자막 없이 영상을 보겠다며 일본어 자격증을 따고, 직접 포토샵을 배우고 굿즈를 만들며, 그 모든 노력이 자신의 커리어와 삶의 자산이 되었다는 사실은 좋아하는 마음은 결국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이끈다는 걸 강하게 증명해낸다. 세상이 무용하다고 말했던 감정들이 사실은 나를 이루는 가장 단단한 정체성이었다는 문장은 오래도록 여운이 남는다.

“좋아하는 마음이 나를 더 크게 만든다.”

덕질을 해본 사람이라면, 이 책은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마음을 조용히 끄덕이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덕질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했던 자신의 과거를 조심스레 꺼내보게 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 책의 진짜 미덕은 ‘덕질’이라는 말 안에 담긴 무한한 감정과 노력을 한 사람의 서사로 풀어내며, 그것이 얼마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가를 증명해 보인다는 데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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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아이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8
김혜정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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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아이들』은 말할 수 없는 상처를 품은 아이들이 현실 세계에서 사라지고,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돌아오는 이야기다. 주인공 담희는 사고로 목소리를 잃고 엄마도 잃은 채 살아간다. 말을 할 수 없어 공책에 적어야 하는 담희는 또래 친구들과 소통하기 어렵고, 아이들은 그런 담희를 불편해한다. 친구 하나 없는 세상 속에서 유일하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은 매일 센터에서 만나 그림을 그리는 보경 선생님뿐이다. 하지만 어느 날, 담희 앞에 놀라운 존재가 나타난다. 실종된 지 30년이 지난 고모 민진이, 그 시절 모습 그대로 돌아온 것이다.

민진은 나이 들지 않았다. 시간도 흐르지 않은 채, 그대로 담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담희는 그런 민진을 고모라기보다는 친구로 받아들이고, 민진 역시 담희에게 조심스럽게 마음을 연다. 하지만 민진의 귀환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었다. 오래지 않아 민진은 다시 사라지고, 담희와 보경은 그녀의 행방을 쫓기 위해 상백산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보경은 잊고 지냈던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한때 ‘영랑’이라는 이름으로, 자신 역시 마인계라는 세계에 다녀왔던 기억을 말이다.

마인계는 현실, 즉 무마인계에서 상처받은 아이들이 간절한 마음으로 빠져들게 되는 또 다른 차원의 세계다. 아픈 몸, 폭력적인 가정, 외로운 존재감. 그 고통을 버티기 어려웠던 아이들은 조용히 사라져, 마인계라는 세계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마인계는 결코 아이들에게 온전한 안식처가 되지 못한다. 그곳에는 세작이라는 존재가 있고, 그는 아이들의 존재만으로 늙지 않고 살아간다. 마인계에 머무는 아이들이 많을수록 세작은 더욱 젊고 강해진다. 만약 어떤 아이가 현실 세계로 돌아가고 싶다면 조건이 있다. 자신을 대신해 새로운 아이를 데려와야만 한다. 그렇지 못하면, 아이는 유리 인형이 되어 마인계에 갇히고 만다.

민진은 그 조건 앞에서 담희를 떠올렸지만, 끝내 데려오지 못했고, 결국 세작의 통제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온다. 그러나 죄책감은 여전히 그녀를 따라다닌다. 담희는 민진을 구하고 싶고, 보경 역시 자신이 과거에 마인계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민진을 도우려 한다. 이들은 다시 마인계로 들어가고, 그곳에서 보경의 옛 친구 진설의 도움을 받아 세작에게 들키지 않고 민진을 현실로 데려오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놀랍게도, 함께 가져온 유리 인형들은 현실에 돌아오자마자 본래의 아이들로 되살아난다.

이 책의 설정은 매우 환상적이고 독창적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핵심은 ‘돌아옴’ 그 자체가 아니라, 어떻게 돌아오는가, 그리고 누구를 위해 돌아오는가에 있다. 마인계는 단지 상상 속 세계가 아니라, 상처받은 아이들의 고통과 외면된 감정을 은유적으로 형상화한 공간이다. 거기서 살아남기 위해선 자신을 버리고, 또 누군가를 대신 내놓아야 하는 잔인한 룰이 존재한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 세계에서도 타인을 지키기 위해 선택하고, 누군가는 손을 뻗는다. 그 작은 결심과 움직임이 결국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길을 만든다.

작가는 이 이야기를 “빛을 향해가는 성장과 구원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실제로 『돌아온 아이들』은 어둠 속에 머물던 존재들이 천천히 자신을 회복하고, 서로를 구해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독자인 역시 그 여정을 따라가며 문득 생각하게 된다. 어린 시절의 나, 상처받고 외면당했던 그 마음은 어디에 있을까. 지금은 어른이 되었지만, 그 시절의 나는 정말 완전히 사라졌을까. 어쩌면 우리 안의 ‘그 아이’는 아직도 어딘가에 머물러 있을지도 모른다. 망각의 숲 어딘가에서,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세상으로부터 상처받은 아이는,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된다. 단, 고통 어린 기억을 망각의 숲에 가둬두고서.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그 숲이 완전히 닫힌 적은 없다는 것을. 기억과 마음이 닿는 곳, 누군가의 진심이 오랫동안 기다려준 자리에는 언제든 되돌아갈 수 있다는 것을. 『돌아온 아이들』은 그 되돌아감을 가능하게 하는 이야기다. 사라졌지만 사라지지 않은 아이들을, 말하진 않았지만 기억 속에 남은 마음들을, 다시 조용히 불러내는 이야기. 어른이 된 우리가, 이제는 그 아이의 손을 잡아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해주는 따뜻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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