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미영 팬클럽 흥망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5
박지영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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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영 작가의 <복미영 팬클럽 흥망사>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나는 이 책이 덕질과 팬덤에 관한 이야기일 줄 알았다. 누군가를 열렬히 응원하고, 사랑을 쏟아붓고, 그러다 상처받는 흔한 이야기쯤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예상에서 철저히 벗어난다. 덕질은 분명 이야기의 중요한 장치이지만, 결코 전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더 크고 복잡한 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입구에 불과했다.


주인공 복미영은 쉰여섯, 지천명과 이순 사이에서 오랜 팬질의 역사를 이어온 사람이다. 그런데 이번 덕질 대상도 결국 쓰레기였다는 사실에 부딪히며 고민에 빠진다. “나는 왜 이렇게 쓰레기만 골라 팬이 되는 걸까?” 응원과 지지,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낌없이 베풀면서 주변과 자신에게는 그러지 못하는 스스로를 보며, 복미영은 다짐한다. 내가 내 팬을 정해. 복미영 팬클럽을 만들자. 그렇게 소설은 복미영이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출발한다.


하지만 복미영이라는 사람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기는 어렵다. 책 속에서 그녀가 내뱉는 말과 행동만 보면 꽤 알 것 같은데, 다른 등장인물들의 시선을 통해 그려지는 복미영은 또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어떤 순간에는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은 사람 같다가도, 또 어떤 순간에는 “저 사람과는 멀찍이 떨어져 있어야겠다” 싶은 존재가 된다. 이 입체감이 복미영이라는 인물을 묘하게 매력적이면서도 불편하게 만든다.


이야기의 중심이 복미영이라 생각한 것도 잠시, 중반부부터는 김지은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며 이야기가 다른 결을 띤다. 병든 엄마를 돌보던 은수 이모가 아프자, 이제는 엄마와 이모 둘 다 자신이 돌봐야 한다는 부담에 짓눌린 김지은은 성해윤이라는 사람을 찾아가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래도 되는 사람’으로 복미영이 등장한다. 복미영은 지은에게 낯선 사람이 아니었다. 과거 은수 이모와의 인연을 통해 한 번 마주쳤던 사람. 이때부터 소설은 복미영의 이야기 안에 또 다른 이야기가 들어 있는 듯한 구조를 띠기 시작한다. 뜬금없지 않으면서도,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가지를 뻗어간다.


책 속에서 유독 눈에 띄는 단어들이 있다. 이모님, 그래도 되는 사람, 버리다, 버리기 아티스트, 복미영. 그중에서도 ‘이모님’이라는 호칭은 유난히 슬프게 다가왔다. 이모님이라는 존재, 우리는 현실에서도 함부로 대하지 않는가. 가장 가까이 있으면서도 가장 쉽게 소외되는, 필요할 때만 불려오는 존재. 복미영이라는 인물, 그리고 그녀를 둘러싼 이야기들은 결국 돌봄과 소외, 관계와 무심함에 대해 묻고 있었다.


결국 이 책은 덕질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지지하며 살아온 한 사람이, 자기 돌봄과 타인과의 관계, 그리고 사랑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풀어내는 이야기다. 예상은 번번이 빗나갔지만, 그 빗나감이 불쾌하지 않다. 오히려 그 예측 불가능함이 이 소설을 끝까지 읽게 만든다.


읽고 나면 묘한 질문이 남는다. 나는 누구를 함부로 해왔을까. 누구에게만 유독 너그러웠을까. 그리고 나는 나의 팬이 되어본 적이 있었을까. 누구의 안티팬이고 찐팬이었는지. 한 번 더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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