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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아웃 보이 ㅣ 문지 푸른 문학
정은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평점 :
정은의 장편소설 『포커스아웃 보이』는 얼굴이 흐릿하게 보이는 소년 ‘진’을 통해, 존재의 불분명함 속에서도 자신을 찾아가는 성장의 여정을 그린다. 그의 얼굴은 마치 모자이크처럼 인식되어 사람들은 그를 똑바로 보지 못한다. 어떤 이는 자신이 보고 싶은 얼굴을 그의 위에 겹쳐놓고, 또 어떤 이는 그를 기억 속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다. 그는 늘 타인의 욕망과 환영 속에서 오해받으며 살아왔고, 그런 이유로 “진짜 관계” 속에 존재한 적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봉사 시간 문제로 찾은 도서관에서 진은 자신을 또렷하게 바라보는 소녀 ‘소유리’를 만난다. 세상과 리듬이 어긋난 채 살아가는 ‘싱크아웃 걸’ 유리는 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시험에 늦고, 대화도 도착이 늦어 쉽사리 연결되기 어렵지만 그런 유리의 시선만은 진을 정확히 포착한다. 세상과 완전히 겹치지 못한 두 사람은 서로에게 이끌린다. 진은 처음으로 ‘나를 똑바로 보는 사람’을 만났고, 유리 또한 자신처럼 세상과 어긋나 있는 존재를 만났기 때문이다.
진은 유리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다. 자신의 흐릿한 얼굴을 이용해 그녀가 응시할 시험지를 훔쳐주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도움은 아니었다. 사실 그는 유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가 누군가에게 필요하다고 느끼고 싶어서 그 일을 벌인 것이다. 결국 그 일로 진은 자신의 욕망과 불안을 고백하게 되고, 처음으로 누군가 앞에서 ‘온전히 나 자신’으로 서보는 경험을 한다.
이 작품은 ‘얼굴이 흐릿한 소년’이라는 설정을 통해, 타인의 기대와 프레임 속에서 자신의 색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모습을 은유한다. 우리는 종종 무리 속에 섞이며 존재감이 사라지고, 열심히 해도 제대로 인식받지 못한 채 ‘흐릿한 사람’으로 살아간다. 타인의 욕망에 맞춰 얼굴을 바꾸다 보면 어느새 ‘나’라는 존재는 모호해진다. 그러나 우리는 진의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하더라도, 내가 나를 바라보기 시작하는 순간 비로소 존재는 또렷해진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