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역사
이소영 지음 / 래빗홀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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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역'이라는 설정이 이렇게 긴장감 있게 다가온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허위 통역'이라니. 이 작품은 말을 옮기는 행위가 어떻게 진실을 조작하는 수단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미스터리 스릴러다. 『통역사』는 네팔어 법정 통역사 도화가 거액의 돈을 대가로 '허위 통역'을 의뢰받으면서 시작된다.

한국어를 전혀 하지 못하는 네팔 여성 차미바트가 내연남과 그의 동거인을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다. 그녀가 진술하는 모든 말은 오직 도화의 입을 통해서만 세상에 전달된다. 즉, 도화는 이 사건의 진실을 온전히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된다. 하지만 도화가 맡은 통역은 '진실의 전달'이 아니라 '진실의 왜곡'이다.

개인파산 상태에다 병원비와 약값이 급한 도화는 결국 변호사 재만의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스무 마디만 허위 통역해 주면 1억 원을 주겠다." 피고인이 정신질환으로 감형받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였다. 그렇게 도화는 자신이 옮기는 말이 한 사람의 운명을 바꾸는 순간을 마주한다.

도화에게 허위 통역을 의뢰한 변호사 재만은 악하지만 유능하다. 그 역시 자신의 '역할'에 철저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직업 의식에 충분하단 점에서 닮아있지만, 방향성이 정반대다. 도화는 옳은 일을 향하고, 재만은 이익만을 추구한다.


"나에게는 여러 말이 들릴 때가 있었어요. 옳은 말, 멋진 말, 쓰레기 같은 말... 그때 나는 옳은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들었어야 했던 말은 '바다가 보고 싶어요.' 그거였어. 텔레비전에서 당신 말을 들었어요. 바다가 보고 싶다는 그 말. 이번에는 그 말을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냥, 그게 답니다."

p.264

이 문장은 도화의 내면을 관통한다. 옳고 틀린 말, 이익과 진실의 경계 속에서 도화가 끝내 붙잡은 건 '바다가 보고 싶어요'라는 단순한 문장이었다. 그건 어쩌면 인간이 신이나 권력보다 먼저 들어야 할 진심의 언어일지도 모른다.

보라색 쇼트커트를 한 도화와 '보라색 나비'를 끝까지 쫓으라 말한 차미바트. 나비 모양의 갑상선을 가진 도화가 '보라나비연대'라는 암 환우 지원 단체를 마주하며 진실의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은 단순한 스릴러를 넘어 상징적으로 다가온다.

"왜 하필 나비가 보라색이죠?"

"멍들면 보랏빛이 되잖아요. 잠시 멍든 거지, 망가진 건 아니라는 의미예요."


 

『통역사』는 언어와 권력, 진실과 조작의 경계를 정교하게 탐문하는 이야기다. 통역이라는 직업은 결국 '누구의 말을 대신 말해줄 것인가?'라는 질문을 을던지기도 한다. 때론 통역은 말의 문제가 아니라 양심의 문제라고. 단순한 언어 변환이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얼마나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지. 도화는 는통역사로서 그리고 한 인간으로서 그 경계를 넘나들며 진실을 향해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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