땡전 한 푼 없이 떠난 세계여행
미하엘 비게 지음, 유영미 옮김 / 뜨인돌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 제목을 보았을 때 황당했다. 돈 한 푼 없이 세계 여행을 하다니, 가능한 이야기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책을 집어들었다.

  가난하고 못 먹던 6~70년대까지만 해도 대학생들 사이에서 무전여행은 낭만과 유행을 가진 동경의 대상이었다. 누구나 한 번쯤 무전여행에 도전하고픈 열의가 있었고 미숙하지만 시도는 해봤던 이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때는 젊은이들 사이에 돈이 없는 게 부끄럽지 않았다.

   요즘 무전여행이라고 하면 노숙자를 떠올린다. 여행이라면 중형급은 아니지만 준중형급정도 되는 차는 있어야 되고, 콘도 예약은 해놓아야 준비성 있고, 텐트도 각종 장비가 갖춰진 일이백만원 정도급은 되야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거기다 각종 맛자랑 프로그램에서 소개하는 현지음식을 찾으려 인터넷 검색 서비스 되는 아이폰은 챙겨야 하고, 즐기기 위해 빵빵한 신용카드는 필수다. 무전여행이 낭만이던 시대에서 불과 2~30년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성장 자본주의가 한계에 다다른 2012년의 여행은 돈 없이는 집밖으로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하게 되어 있다.

  지은이는 한 마디로 자본에서 벗어난 여행을 계획했고 성공했다. 비행기 표를 구하기 위해 별별 알바를 다 했고, 버스 티켓을 위해 표 파는 이에게 양해를 구했고, 기차에는 그냥 올라탔고, 배에서는 선원으로 일했다. 음식은 식당을 돌며 얻었고, 때로는 쓰레기더미를 뒤지기도 했다. 그는 신용카드를 쓰는것 외에 할 수 있는 건 다 하면서 여비를 마련했다. 돈을 벌려고 가능한 아이디어를 다 짜냈고, 식당에서 음식을 얻을 때도 무전여행의 계획을 설명하고 동의를 구했고 잠자리는 카우치 서퍼의 회원들한테서 도움을 받았다.

  그의 여행기를 읽으며 새로웠던 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계를 도는 무전 여행 계획을 설명했다는 점이었다. 만나는 이들에게 공감을 얻으려 노력했고 실제로 그를 만난 이들의 무수한 공감과 지지와 도움으로 그는 여행을 마칠 수 있었다. 결국 관계를 통해 많은 문제를 해결했고 돈 없이도 세계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물론 그의 계획을 비웃고 의심하고 외면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많은 이들이 지지하고 동의하고 재미있다고 여기며 선뜻 손을 내밀어 주었다. 그는 가만히 앉아서 공짜로 뭔가를 얻지 않았다. 이런 이런 계획이 있고 지금 하고 있는데, 당신은 나를 도와줄 수 있나? 그렇다면 나는 당신을 위해 이만큼 하겠다는 자세였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는 세상을 향해 마음을 열었고 그가 연 만큼 세상은 응답해 주었다. 그래서 그는 이런 깨달음과 지혜를 얻었다.

   “나는 무게를 최소화하기 위해 애를 쓰며 짐을 꾸릴 때도 빼놓지 않았던 일기장을 배낭에서 꺼냈다. “지금 닭의 모습을 하고 있는 녀석은 본래 ‘매’로 태어났다. 3킬로미터 밖에서 뛰어다니는 토끼와 들쥐를 볼 줄 알았····.” 그 순간, 내게 더욱 분명한 깨달음이 찾아왔다. 불가능한 여행을 떠나기 전, 어떤 힘에 이끌리듯 미친 듯이 일기장에 적어 내려갔던 ‘30센티미터 앞의 모이만 좆는 닭’과 ‘3킬로미터 밖의 토끼와 들쥐를 볼 줄 아는 매’의 차이를 비로소 명확히 이해하게 된 것이다. ‘30미터 앞의 모이만 좆는 닭’은 결국 어떤 식으로든 나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고, 내 것을 움켜쥔 채 뭔가 대가가 주어지기 전에는 절대 내놓으려 하지 않았던 좁고 닫힌 나의 마음이었다. 반대로 ‘3킬로미터 밖의 토끼와 들쥐를 볼 줄 아는 매’는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으며, 자기가 가진 것을 남을 위해 대가를 바라지 않고 기꺼이 내어줄 줄 아는 열린 자세와 큰 마음이다. 나는 이제껏 잃고 있었던 그런 ‘매의 시력’을 무모하고 황당해 보였던 150여 일간의 이번 여행을 통해 조금이나마 회복하게 되었고, 열린 자세와 큰마음도 얻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이번 여행을 통해 얻은 가장 크고 값진 열매였다.“

    그의 여행에서 마음에 남는 건, 끝까지 신용카드를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굶어죽을 위기에 처할 때 쓰려고 신용카드를 한 장 준비해 갔다. 물론 위기도 많았고 신용카드를 쓸까 말까 고민할 만큼 배고파 탈진할 만큼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지만 위기와 어려움을 끝까지 버티자 어디선가 문이 열렸다. 그렇게 돈 없이 여행하는 원칙을 지킨 자신에 대해 큰 자부심을 가졌고 책의 마무리에 그는 이렇게 썼다.

  “무모하고 좌충우돌이었던 나의 여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라 내 인생 2막의 새로운 출발선이 될 것이다. 실제 여행에서 그러했듯, 그 새로운 인생의 여행길에서 어쩌면 나는 훨씬 더 많은 문제들을 만나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세운 새로운 여행 수칙 두 가지. 첫째, ‘그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되 반드시 사람을 통해 해결하기, 또 가급적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기.’ 둘째, ‘인생의 문제를 너무 무겁지 않게 하기, 또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하되 돈에 의해 나의 인생 방향과 행복이 좌지우지되지 않도록 하기”

   오늘의 우리는 여행뿐 아니라 인생 자체가 돈에 휘둘리고 좌우된다. 누구의 인생이랄 것도 없다. 성장 자본주의의 가운데서 돈 없는 인생은 끔찍하다는 걸 누구나 경험한다. 돈이 뿌리요 토대며 근간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저자의 여행기를 읽으며 조금 힘이 났다. 땡전 한 푼 없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는 저자가 얻은 결론은 인생은 수많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고 그 해결은 돈이 아닌 관계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그의 깨달음이 마음을 움직였다. 세상은 마치 돈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을 것처럼, 돈 없는 인생은 위태로워 곧 쓰러질 것처럼 난리를 치지만 사실 한 사람의 인생은 자신의 의지와 행동과 방향으로 좌우되는 것이지 돈에 의해 움직이는 건 아니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 책을 덮으며 내 인생의 방향은 어디로 향하는지 깊이 돌아보았다. 돈 때문에 인생 방향과 행복이 흔들리게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나를 만났다는 점에서 이 책은 의미가 크다.

  더불어 이 책은 뼛속 깊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 아이들은 미래에 대해 엄청난 불안을 안고 있다. 돈을 많이 벌어 편하게 살고 싶은데 잘 벌지 못하면 어쩌나, 경쟁 사회에서 밀려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으로 공부하고 또 공부하며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다. 그 아이들에게 돈 없이 세계를 돌아다닌 인생의 선배 한 명이 말하길, 돈이라는 불안을 놓고 자신의 의지로 인생을 살 때 행복을 만났던 경험을 이 책을 통해 전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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