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성귀족 1 세미콜론 코믹스
아라카와 히로무 글.그림, 김동욱 옮김 / 세미콜론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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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겨레21의 <내 남자의 만화방>에 소개된 서평을 보고 찾아 읽었다. 도서관에서 구하기 힘들었다. 대출은 안 되었고,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어린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는 걸 알고 찾아갔다. 그나마도 2권은 보이지 않아 결국 구입해서 읽었다.

  조용한 도서관에서 웃음을 참느라 얼마나 애썼는지, 정말 힘들었다. 시종일관 웃음과 낙관과 황당 설정으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막을 수 없었다.

  일본 북쪽 홋카이도의 춥고 거친 날씨 속에서 소를 기르고 감자 농사를 짓는 작가와 가족은 살아있는 사람들 그 자체였다. 그들은 살기 위해 건강했고, 험한 자연과 공생했다. 거친 자연의 세파를 겪으며 자기 방식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했고, 때로는 무시무시하고 때로는 너그러운 자연을 그들 또한 한시도 잊지 않았으니 자연도 자신의 존재를 그들 속에서 늘 확인하는 셈이었다.

  이 작가의 또 다른 작품 <강철의 연금술사>의 주인공은 강인하고 너그러우면서 돈과 권력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다. 과학과 인간을 결합시킨 작가의 상상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던 나는 작가의 성장고백인 <백성귀족>을 읽으며 어떻게 작가가 강철의 연금술사와 같은 캐릭터를 창조해 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는 거칠고 험한 자연을 온 몸으로 버티며 강인함을 키웠고, 많은 가축과 동물을 돌보며 생명의 경이와 너그러움을 배웠고, 매일 달라지는 자연과 동물들 속에서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하며 풍부한 상상력을 키웠을 것이다. 가축이 새끼 낳는 걸 밤새 지켜보고, 그 새끼를 키우고, 우유와 젖을 주던 가족같은 소가 어느 날 늙고 쇠약해져 트럭에 실려 고기가 되려고 도살장으로 가는 장면을 눈물 흘리며 수도 없이 겪어야 했던 작가는 그런 생명의 순환 앞에서 돈과 권력으로는 채우지 못하는 생명의 뿌리를 느꼈을 것이다. 이 모든 경험이 아라카와 히로무가 흔들리지 않고 자기만의 만화를 그려내는 힘이라는 걸 느꼈다.

  그리고 작가가 학창시절을 보낸 농업고등학교 생활은 농업을 바라보는 한 나라의 정책이 어떻게 교육과 연관되고 문화로까지 이어지는지를 잘 보여주었다. 학교에 딸린 가축을 돌보아야 한다는 이유로 학생 전원이 기숙사생활을 하고, 새벽에 일어나 가축을 돌보고 오후까지 이어지는 수업을 마치고 동아리 활동에다 밤늦게까지 가축을 돌보다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는 농업고등학교 학생들의 일과를 보며 작가가 어떻게 가축과 농사 이야기인 만화를 현실에서 그릴 수 있었고, 그것이 현실 만화판에서 출판이 되고 또 그 만화를 읽어주는 사람까지 있는 순환고리가 일본사회에서 일어날 수 있는지 알게 해주었다.

  그들은 우리나라처럼 농사를 터부시하지 않았다. 또 현재 유럽의 선진국은 거의 농업국가이다. 영국은 2차 대전 이후 도시농업이 확산되어 현재 식량 자급률이 125%에 이른다. 프랑스의 식량자급률은 무려 329%에 이르고, 독일도 147%다. 미국과 캐나다, 호주도 100%를 훌쩍 뛰어넘는다. 한국의 식량자급률은 25%. 그것도 쌀을 제외하면 4%대다. OECD 31개국 중 28위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는 먹을거리를 생산하는 농업을 육성하지 않는 나라에서 우리는 무엇을 먹을까? 커피 전문점에서 한 끼 식사값에 버금 가는 커피를 5~6천원에 사 마시고 있다. 이걸로 식사를 대신할 수 있나? 비싼 등록금을 알바로 메꾸려는 대학생들은 한 줄에 2000원 하는 김밥으로 한 끼를 떼우고 있다. 그것도 쌀은 중국에서 수입한 찰기없고 딱딱한 쌀이다. 청년 실업과 계약직 노동으로 긴 시간 일하는 젊은이들은 길거리에서 플라스틱 컵에 밥과 반찬을 담아먹으며 또 한 끼를 데우고 있다. 때때로 값싼 수입 고기로 배를 불리지만 이 또한 건강에는 적신호를 일으킨다. 학원에서 밤늦게 돌아오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은 식사를 대부분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이나 햄버거, 컵라면으로 떼우고 있다.

  우리는 심한 영양 불균형에 놓여 있고, 영양 부실은 신체 흐름을 깨뜨리고 이렇듯 부조화스러운 몸의 순환은 정신의 불안정까지 일으킨다. 어린이와 청소년., 젊은이들이 싱싱하고 건강한 먹을거리를 제대로 먹지 못하는 한국 사회는 어느 새 자살률이 OECD 국가 중 1위에 성큼 올랐다. 제대로 먹지 못하면 제대로 생각할 수 없고, 또한 제대로 느낄 수도 없고 제대로 존재할 수 없다. 우리 입으로 들어가 영양소를 만드는 먹을거리는 우리를 제대로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한국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백성귀족>은 대단히 유쾌하고 재미있다. 덧붙여 위와 같은 고민을 던져주는 것이야 말로 이 만화가 더불어 유익하기까지 하다는 증거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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