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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누가미 일족 ㅣ 긴다이치 고스케 시리즈
요코미조 세이시 지음, 정명원 옮김 / 시공사 / 2008년 8월
평점 :
표지를 보자마자 빡 당겼다. 하얀 가면을 뒤집어쓴 상반신이 섬뜩한 느낌을 주어 선뜻 선택할 수 없었다. 무서워 읽지 못할 것같았다. 하지만 그 오싹함이 목줄을 걸어 잡아 당겼다. 도대체 어떤 이야기가 있길래 그렇게 무서워 보이냐 말이지.
처음부터 작가의 감정이입이 과도하게 들어갔다. 작가가 다음에 일어날 사건을 앞서 말한 점이 독특하다. ‘앞으로 일어날 끔찍한 사건은...’ 이라고 하면서 이제부터 잔인한 사건이 벌어질 거라고 계속 광고한다. 그래서 독자는 이제나 저제나 굉장한 사건이 벌어지길 기다리며 책장을 한 장씩 넘기지만 작가는 좀체 사건을 빨리 진행시키지 않는다.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작가는 무성영화 시대의 삐에로같다. ‘개봉박두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이수일과 심순애’ 어쩌고 하면서 북을 치며 동네방네 알리는 광고쟁이를 적극적으로 한다. 독자는 그 영화를 보려고 일주일이나 되는 개봉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관객같다. 작가가 예고한 잔인한 사건을 기다리며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심정은 개봉날 극장 앞에 길게 줄서있다 겨우 표를 끊고 들어가 어서 영화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 것같다. 작가는 독자들 애간장 다 태우고 태우다 겨우 사건 하나 휙 던져준다. 몹쓸 버릇이지만 독자의 호기심을 붙잡고 들었다 놓았다 하는 재주로는 일품이다.
이야기가 재미있기는 하다. 이누가미 일족의 다양한 인간들이 얽혀 있는 것 자체가 주는 재미가 있다. 미야베 미유키의 <화차>의 인물들은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은 채 행위와 말만으로 그들의 내면을 추리하는 데 반해 이누가미 일족의 등장인물들은 감정을 결코 감추지 않는다. 작가 자체가 문장 속에서 감정을 과도하게 드러낸다(소제목도 ‘아, 잔인하도다’ 이다) 인물들도 질투, 복수, 분노, 슬픔 들을 숨기지 않고 속속들이 다 드러낸다. 어쩌면 이 점이 독자에게 공감을 얻는 지점일 것이다. 이야기를 읽는 독자는 유산 상속을 둘러싼 그들의 다툼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질투, 분노를 등장인물처럼 자연스럽게 느끼고 인물들이 그 감정을 감추기는커녕 그대로 드러내면서 독자의 감정을 대신 말한다는 느낌을 준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못할 짓이 없다는 것이 이야기의 주제이고 범인인 첫째딸의 살인 동기이기도 하다. 어찌 보면 진부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누구나 공감하는 보편적인 주제다.
인물이 많이 등장해 이들 사이를 복잡하게 엮어놓은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그 속에서 적절한 사건이 하나씩 터져 독자의 긴장을 높인다. 인물의 감정이 풍부하게 드러나서 독자의 감정과 만난 점들이 이어지는 장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