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로 세운 집 - 기호학으로 스캔한 추억의 한국시 32편
이어령 지음 / arte(아르테)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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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해설집 치고는 꽤나 두꺼운 걸? 한국의 현대시가 32편이 들어있다고는 하지만 400페이지의 분량의 두꺼운 책을 보고 처음 들었던 생각이다. 교과서에서 배웠던 시들의 참고서를 봐도 이렇게 두껍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 책의 머리말을 보자마자 시는 단순히 공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시의 내면을 살펴보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저자가 말하는 시란 <말로 세운 집>이라고 한다. 집이라고 하면 겉에서 보는 건축물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사실 집이란 내가 사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살고 활동하는 내부 공간이야 말로 집인데 이 책에서 시의 내부 공간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이다.

 

이 책에는 진달래꽃, 향수, 서시, 과야, 사슴, 나그네 등 교과서에 실려 달달 외워야만 했던 한국의 현대시 32편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책의 내용은 원래 19년전 조선일보에 연재되었던 글인데 이제야 모여서 책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그때에는 시를 마음으로 이해하기 보다는 머리로만 외웠던 시대였기 때문에 이 글을 봤어도 크게 마음에 와닿지 않았을 것 같다. 학생에게 시는 그저 시험의 대상일 뿐이었으니까.

그러나 이 책을 보고 나서는 오히려 학생들, 청소년들이 더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머리로만 외우는 시는 기억에 오래 남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마음으로, 영혼으로 이해한다면 공부는 물론이고 나이가 들어서 까지 시의 아름다움을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 

 


책에는 기본적으로 시에 대한 이어령교수의 해석도 있고 책의 뒷부분에는 김옥순 박사의 각주가 상세하게 들어있어서 그 당시 출판되었던 시의 원형과 시의 작자에 대한 내용도 상세히 들어있어 시를 이해하는데에 더욱 도움을 준다.

 

이어령교수의 책은 몇 권 밖에 못 봐왔지만 이번 책 또한 책장을 빛낼 수 있는 명작품 인것 같다.

<언어로 세운 집>에는 32편의 시가 들어있는데 굳이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아니면 제일 익숙한 시부터 읽어본다면 시의 집들이를 할 수 있는 시간이 더욱 즐거워질 것이다.

 


저자는 이육사의 시 <청포도>를 하늘의 공간과 전설의 시간을 먹는다고 해석하고 있다. 그냥 포도를 먹고 싶어하는 화자가 쓴 시가 아니라는 것. 식민지하의 억압된 사람이 꿈꾸는 현실과 대립되어 극복하고자 청포도를 빗대서 나타낸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보는 포도', '상상하는 포도'가 마지막에는 '따먹는 포도'로 패러다임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제1의 삼각형은 내 고장 칠월의 청포도 이고, 제2의 삼각형의 하늘과 전설로서의 우주적 청포도 그리고 제3의 삼각형의 따먹는 청포도.

- 113p

이처럼 저자가 생각하고 해석해서 지어놓은 시의 집은 그저 억압되었던 그 때 시절이 아닌 삶과 인간의 역사를 보여주는 시라고 이야기 한다.  

 

 

박두진에게 있어서 해란 청산까지도 새처럼 깃을 치게 하는 생령의 힘이며 인간과 사슴과 칡범이 한자리에서 교감하고 조응하며 살아가는 십장생도의 새로운 가상공간이다. 그리고 박두진에게 있어서 시란 눈물의 골짜기에서 해를 솟아나게 하는 주술인 것이며 꽃과 새와 짐승을 한자리에 앉히는 마법의 조련사인 것이다.

시인을 마법의 조련사라고 말하는 저자의 언어 또한 시인의 그것을 닮아있는 것 같다. 시를 읽고 해석 한 것을 읽다가 또 시를 다시 읽다가 뒷부분의 각주를 읽다가 정신없이 책을 읽다보면 시간이 훌쩍 가 있고 나 또한 훌쩍 마음의 성장을 한 것 같다. 시가 무슨 내용이 있냐며 반문하는 사람들에게 손에 꼭 쥐어줘야 할 좋은 책을 한 권 소개받은 것 같아서 반갑고 또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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