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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ㅣ 박완서 산문집 10
박완서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월
평점 :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으로 작성한 후기입니다
나같은 박완서 작가님의 열혈 팬이라면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책에 처음 수록된 5편의 새 글이 반가울 것 같다.
문학동네에서 올해 故 박완서 작가님의 타계 14주기를 맞아 출간된 책으로, 전에 책으로 엮인 적 없는 미수록 원고 5편이 포함되어 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1부는 에세이, 2부와 3부는 작가님께서 생전에 방문하신 중국 만주, 몽골, 바티칸, 에티오피아, 티베트 등의 여행기로 이뤄졌다. 호원숙 작가님의 서문과 박완서 작가님의 연보가 부록으로 수록되어 있다.
한 편의 수필을 읽어도 박완서 작가님의 글에는 삶의 통찰이 담겨 있다. 책을 읽는다는 건 작가의 시선과 감정을 따라가고 함께하는 것이다.
내가 보았어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겨울 산의 모습을 보시고 쓰신 글이 새롭다.
「미망에서 비롯된 것들」에는 열다섯 살에 우연히 들은 이야기 한 토막이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는 말이 되어 '미망' 소설의 기둥 줄거리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생생하게 전해진다.
미국에 처음 가셨을 때 최초로 들은 영어 한 마디를 알아듣지 못해 느끼셨던 황당함과 타지에서의 막막함, 귀국했을 때 우리말 가락만으로 충분했던 행복감에 대해 쓰셨다. 오며가며 들리는 말들 가운데 무심히 얻어들은 한마디가 잊혀지지 않고 상상력을 자극할 때 비로소 소설로 태어난다고 하셨다. '대부분의 내 소설은 도저히 잊어버릴 수 없음에서 비롯된 것들'이라는 것을 실감나게 이야기 해주셨다.
박완서 작가님의 백두산 기행기인 「천지, 소천지, 그리고 어랑촌 가는 길」을 읽으면서 백두산의 신령한 모습과 아름다움이 얼마나 실감나게 느껴지던지 백두산에 꼭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작가님 특유의 솔직하고 리드미컬한 글맛이 여행기에서 보고, 듣고, 맛보고, 만나는 사람들에 생생한 이야기로 나타난다.
이 책을 읽으면서 특히나 여행의 목적이 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글이 박완서 작가님이 아니라면 어느 작가가 이렇게 생생하고 선연하게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읽었다.
교황 요한 바오르 2세 조문사절단으로 가신 바티칸 기행을 '그 자리에 내가 있다는 감동'이라는 글로, 티베트 여행기는 '모독'이라는 제목으로 각인되었다. '모독'은 한족 식당 여주인이 여행객이 남긴 음식을 개죽같이 만들어 배고픈 티베트 사람들에게 쏟아붓는 장면에서 나온다. 신비롭고도 소박하며 어찌 보면 난해하기도 한 티베트 나라에 대한 여행기는 태초의 하늘과 땅같은 그 나라에 가해진 폭력과 오염을 '모독'이라는 단어로 선택되어졌다. 티베트가 처한 정치적 상황과 환경이 맞물려 절묘하다고 느꼈다.
유니세프 방문단으로 가신 몽골, 에티오피아, 인도네시아 여행기를 읽으면서는 비슷한 경험이라고 말할 수 있는 코이카해외봉사단과 연계해서 갔던 경험이 떠올라 많이 공감이 갔다.
몽골 여행기에서 물이 부족한 몽골 아이들을 위해 십시일반의 도움을 위해 쓰신 글, 문제점이 무엇인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해 쓰신 글들이 그랬다.
해일 피해를 받은 인도네시아 여행기에서는 여진이 있는 가운데 안성기처럼 착한 사람이 같이 자고 있으니 위로가 된다고 쓰신 글은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 대목에서는 또 미소가 지어졌다.
3부 '왜 인간이냐고 묻는 것'편 박완서 작가님의 에티오피아 여행기에 나오는 난민촌의 충격적인 장면, 가슴 미어지는 감정, 답답한 심경, 해맑은 아이들의 미소를 읽으면서 내가 미얀마와 우간다에서 본 장면들과 느꼈던 감정이 겹쳐졌다. 부족해서 꺼내지 못한 나의 말들을 책 속 작가님의 풍부한 문장을 따라 읽으며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었다.
박완서 작가님의 산문집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을 읽어서 감사했다. 여행을 통해 느끼는 경험과 감정, 인간에 대한 성찰을 작가님의 탁월한 필력으로 다시 만나볼 수 있었다.
남 나름으로 생각하던 걸 내 나름으로 생각함으로써 내 나름으로 누리는 기쁨은 의외로 많다
될 수 있으면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것까지도 잊어버리고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
그리하여 외국이나 외국인 앞에서
마음을 도사려 먹지 않고 그저 부드러운 시선으로
남의 좋은 것이나 나쁜 것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즐길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새로운 경험이 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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