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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다는 아니에요
미바.조쉬 프리기 지음 / 우드파크픽처북스 / 2022년 10월
평점 :
표지부터 너무나 아름다웠고,
에디터의 정성스러움이 하나하나 느껴지던
이 사랑스러운 책을.. 첫장부터 울면서 봤다.
‘나중에 엄마, 아빠 얼굴이 떠오르지 않으면.. 기억나지 않으면 어떡하지?’
아버지의 얼굴을 선명하게 떠올릴 수 없다는 미바의 글에서 문득 이런 생각에 그만 울어버렸다. 그런 말들을 많이 들었다. 부모님을 떠나보내고 난 후에 부모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아 사진이나 영상을 찾아보려고 하면, 왜 그렇게 그들 사진 찍는게 인색했었는지 깨닫게 된다고. 자식 사진은 수없이 찍으면서 부모님 사진 한 장 찍는게 그렇게 어려웠다고. 이렇게 첫장부터 나의 마음을 울렸다. 이 아름다운 책이.
그렇다고 책이 심금을 울리는 신파는 아니다. 미바와 조쉬 프리기라는 멋진 듀오의 글이 가슴을 울리고 마음을 몽글몽글하게 만들어 문장 문장들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마법같은 힘을 가진 책이다! 마치 그들의 아름다운 그림처럼 아름다운 글 속에서 헤어나올 수 없도록, 오래토록 글의 깊이에 머무르게 만든다.
아무 정보도 없이 책은 시작된다. 미바가 조쉬 프리기가 누구인지. 그저 m과 j라는약자를 가지고 담담하게 글을 이어나갈 뿐. 이름만 봐서 외국인인지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를 그들에게서 그저 나와 같은 인류애를 느낄뿐이다.
‘이 책을 니오에게 바칩니다.’의 니오는 그들이 키우던 사랑스러운 반려묘임을 글을 통해 알게된다. 에디터님이 보내 준 에세이 보도 자료가 아니었다면 작가님들에 대한 의문은 풀리지 않았을테지만 그러한 미스테리함이 책에 묘한 마력을 덧입혀 준다 생각된다. 한국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감정선의 표현, 그 모호함과 섬세함의 경계에서 깊게 공감하고 울고 즐기고 취했다. 셀린&엘라는 무엇인지 그들이 쓴 글과 그림을 더 깊이 알고싶고 읽고싶어졌다.
두작가가 나눠 써 내려간 11편의 짧은 에세이에, 한줌도 안될 작은 책에 이렇게 깊이 취했다는 건, 짧지만 그래서 쉬이 읽히지만 그 짧은 글의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읽지 않으면 느낄 수 없을 그래서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고 불가능하다. 하여 밑줄긋기는 기본, 옆에 내 생각을 주석달아가며 깊이있게 읽었다. 정말 만족스러운 독서타임였다.
우드파크픽처북스라는 생소하지만 아기자기해 보이는 출판사,
미바, 조쉬 프리기라는 매니아층은 있지만 나는 미처 몰랐던 작가,
‘그게 다는 아니에요’가 선물해준 행복했던 시간을 시발점으로 미바작가님의 함께 걸어가요 라는 사인글귀를 얹어, 앞으로 그들의 행보를 함께할 수 있는 열렬한 응원자가 되어야겠다. 우선은 ‘셀린&엘라’부터 시작해볼까?
✔️너무나 많은 명문장에 책을 다 옮길수도 없고! 일부만 겨우 추림✔️
[17, 한때는 눈에 다 담을 수 없을 만큼 색으로 선명하던 기억들이, 선이 되었다가 한순간에 점이 되어, 한번의 연약한 깜빡임만으로도 사방으로 덧없이 흩어지고야 만다. 영영 사라질 것처럼. 이곳에 있는데도 순간, 아득해지는 기분. 모든 것이 예전 같지 않다. 매일 무언가 하지 않으면 불안했기 때문에 쫓기듯 자신을 재촉하던 날들. 균형이 깨져 삐걱대는 하루들은 언젠가 반드시 부러지고야 만다. 누구에게도 의지할 수 없는 것들.]
[19, 마음이 향하는 곳은 언제나 과거의 어떤 지점들이다. 미래에 대한 상념들은 자연스레 죽음으로 이어진다. 그런 마음들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것은 좋지 않다. 미래로 향하는 마음들을 붙잡아 오늘로 데려온다. 여기로 내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
[42, 이야기는 이야기 안에서만 머무는 것이 아니기에. 누군가에게는 그들의 이야기가 삶의 돛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수많은 책과 음악이, 앞서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투쟁한 살마들이 나에게 돛이 되어주었던 것처럼.]
[43, 흉포한 말들에 내몰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이들을 생각한다. 다만 사랑했을 뿐인 사람들을. 다만 자신으로 존재했을 뿐인 사람들을. 당신의 사랑이 어떠한 모습을 하고 있든 그것은 존중받아야 한다.]
[87, 눈물은 약한 것이다. 울보라는 말은 욕이고. 슬픔 역시 그것만이 지닌 규칙 같은 것이 있는데 얼마나 큰 슬픔이냐에 따라 눈물의 양도 결정되는 식의 것이었다. 이 규칙 아닌 규칙은 타인들에 의해 정해지고는 했다. 하지만 타인이 겪는 슬픔의 크기를 과연 누가 정할 수 있다는 말인가?]
[101, 시간을 붙잡아 보겠다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하루를 사느라 당신들의 오늘을 자꾸만 놓치고야 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