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 2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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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2권의 시작은 아주 의미심장하다. 바스테트의 제 3의 눈에 처음 연결된 것이 바로 검색엔진 구글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열람할 수 있고 원거리의 타인과 의사통이 가능하게 만든 인터넷을 인류가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을 제 3의 눈으로 표현한 것 같다. 이제는 거의 몸의 한 기관처럼 사용되고 있는 휴대폰이 실제 몸 속으로 들어가게 되는 상상이 이 소설에서 이루어진 것과 마찬가지다. 나아가 그것을 인류가 아닌 동물도 누릴 수 있지 않겠냐는 상상력으로 뻗어나갔을 것이고, 3의 눈을 가지기에 손색없는 동물로 고양이를 생각했을 것이다. 이처럼 <문명>은 작가 베르베르의 무한 상상력의 날개 위에 올라타 스펙터클한 장관을 내려다보는 맛을 제공해 주는 소설이다.

 

피타고라스의 안내대로 바스테트가 구글 검색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클릭한 것은 바로 인간-고양이 번역기였다. 집사 나탈리와 감격적인 상봉? 아니 첫 대화의 순간이 연출된다. 처음으로 의사소통하는 감격적인 순간, 우리의 바스테트가 또 큰 웃음 안겨준다. 나탈리와 인사한 뒤 바스테트는 놀라는데, 집사 나탈리가 자신에게 반말을 했기 때문이다. 집사가 감히 주인에게 말을 놓다니 어찌 놀라지 않았겠나!ㅎㅎ 계속 반말을 하는 집사가 너무 격의없이 굴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바스테트! 귀엽다!!

 

바스테트는 나탈리가 말했던 세 가지 개념 유머와 사랑, 예술을 하나씩 체득해 나간다. 물론 한가하게 공부만 하고 있을 순 없다. 그들을 괴롭히는 쥐떼들의 공격을 계속 막아내야만 한다. 2권에서는 다른 동물들과의 연대가 나온다. 처음부터 연대하는 건 아니다. 프랑스 소설답게 토론의 과정을 거치고, 바스테트는 공감과 연민이라는 감정을 이해해간다. 특히 쥐떼와의 협상과 전투는 인간의 그것과 유사하게 그려진다. 후반부에 라퐁텐의 생애와 우화가 나오는데 그러고보니 이 소설 역시 우화다. 이 소설에는 고양이뿐 아니라 다양한 동물 종이 출연하고 인간이 그들을 얼마나 착취했는지에 대한 비판도 하고 있다.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게 동물실험을 했는지에 대한 내용은 실험용 동물에 대한 사과로 읽혔다

 

돼지의 경우, 식용과 의료용으로 키워지고 있다는 정도밖에 몰랐는데 새롭게 알게 된 놀라운 내용이 많았다.

 

 

바스테트가 드디어 이집트 여신 바스테트와 만나게 된다. 두 번째 만남에서 여신은 바스테트에게 책을 쓰라고 명령한다.

 

고양이에 의해 쓰이는 최초의 책, 인간의 지식에 고양이의 지식까지 담은 고양이 백과사전을 쓰라고 하는데 고양이 바스테트는 계속 우물쭈물한다. 이때 글을 왜 써야하는지, 글쓰기의 필요성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파한다.

 

 

 

이 부분에서 어떤 독자는 , 베르베르가 나에게 글을 쓰라고 하는구나!’라고 느꼈을 것이다. 자기성찰을 했더라도 쓰지 않았다면 모호하고 불완전한 채로 사라져버리는 것 이라는 문장에, 나는 공감했다. 지난 3년 여간 매일 쓰기를 지속했지만 두어 달 동안 게으름을 피웠더니 확연히 글의 밀도가 떨어졌다. 1000일의 노력이 이렇게 무너지나 싶은 반면 시간만 쌓았지 제대로 된 글을 썼던가 하는 반성도 했다. 한편 이렇게 채찍질하는 목소리를 만나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격렬한 전투 끝에 겨우겨우 목숨을 구한 바스테트 일행이 새로운 곳을 찾아서 떠난 곳, 그곳은 쥐가 없을거라 예상한 건 너무 순진한 착각이었다. 그동안 그들의 번식력을 계속 강조해놓고서는 바다건너 멀리 가면 없을 거라고 생각하다니! 도착하기 전 망원경으로 살펴본 그곳의 상징물 꼭대기부터 바닥까지 우글우글거리는 쥐떼들에 경악하는데...

 

아니, 이렇게 끝나는 건가? 싶어 역자의 말을 읽어보니 이 책이 3부작이라고 한다. 3권에서 바스테트는 과연 고양이와 인간의 문명사를 쓸 수 있을 것인가? 살짝 힌트를 주자면 여신 바스테트의 계시대로 하긴 해야겠고 문자는 모르는 고양이 바스테트가 선택한 건 바로 집사 나탈리다. 3권에서 바스테트의 지휘로 문명을 어떻게 기록해 나갈지 신대륙의 쥐떼와는 또 어떻게 전투를 벌이게 될지 기대된다. 그리고 여신 바스테트가 책 제목을 지정해 주는데 <내일은 고양이>이다. 우리나라에 <고양이>로 번역된 베르베르의 소설 원제가 바로 <내일은 고양이>라고 한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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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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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테트의 생각!!
˝나와 같은 종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 그 상대의 목숨을 구해 주고 뿌듯하게 느낀다면 이게 바로 연민의 감정이지 뭐겠어.˝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득실을 따지기보다는 사랑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공감! 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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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 1 고양이 시리즈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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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은 고양이를 좋아한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읽을 책이다. 왜냐하면 고양이가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팬이라면 역시 주저하지 않고 선택할 책이다. 이 두 조건에 부합하는 사람들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것이다.

 

 

 

순서상 주인공 고양이를 먼저 소개하겠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고양이의 특성이 최대로 극대화 되어있는 고양이라고나 할까. 이름은 바스테트다. 그렇다. 고대 이집트 여신 이름이다. 이 고양이는 전작 <고양이>의 주인공이다. <고양이> 1,2권을 읽었다면 이번 책이 연결되는 이야기임을 알기 때문에 바로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다. <고양이>를 읽지 않았다 해도 걱정마시라. 친절하게 <문명> 1권 앞부분에 <고양이> 줄거리를 요약해주고 있다.

나는 <고양이>를 읽었는데 작가가 고양이를 정말 사랑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의 고양이에 빙의되어 소설을 쓴 게 아닐까 싶었고 또 다른 고양이 피타고라스는 베르베르 자신을 표현한 것 같았다. 어쩌면 실제 인물인 학자 피타고라스를 닮고 싶어하는 것 같기도 하다. 이번 책이 <고양이>와 다른 점은 구성이다. 챕터 하나는 소설 내용을, 다른 하나는 <상대적이고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을 병렬식으로 구성했다. 문학과 비문학을 한 챕터씩 구성하다니 파격적이지 않은가. 소설 읽다가 뜬금없이 백과사전을 읽는다? 흐름이 끊기지 않을까 고개가 갸웃거려질 것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이 노련한 소설가가 그렇게 했을리가! 소설 내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지식을 그 다음에 배치해 두었다. 소설을 읽는 도중 독자가 의문을 품거나 궁금해 할만한 것들이 나오니까 뜬금없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렇다. 쥐들의 습격을 피해 시테섬으로 피신을 오게 되는 스토리 뒤에 ‘시테섬’에 대한 지리적, 역사적 상식이 나오고, 그 곳을 탈출하기 위해 열기구를 이용하자는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 내용 다음에는 ‘열기구의 역사’적 지식이 나온다. 문학과 비문학의 콜라보레이션이 아닐 수 없다. 베르베르니까 가능한 구성이다.

이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궁금증을 유발한다. ‘문명’이라하면 세계사 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자동소환된다. 인류가 최초로 만들었다는 그 유명한 4대 문명 말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대부분 고양인데 고양이들이 새로운 문명을 건설한다는 말인가? 전작 <고양이>에서 전지구적 멸망 상황이었는데 연결되는 소설이 <문명>이라면 진짜 고양이들이 문명을? 그게 가능한 일인가? 고양이들은 인간의 언어를 모르는데?

이렇게 생각했다면 아주 인간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한 것이다. 언어를 사용하는 인간이 우월한 종이라는 전제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게 틀렸단 말야? 인간만이 유일하게 언어를 쓰는데 고양이가 인간처럼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어떻게 문명을 만들지? 라는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옮아갈 것이다. 그럼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고양이와 인간의 소통이다.

나는 고양이 세 마리의 집사다. 그들과 언어로 소통할 수 없다. 그저 나는 집사의 소임을 다할 뿐이다. 주인님이 먹고 자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챙기고 화장실을 제때제때 청소해야 한다. 집안에서만 지내는 그들의 무료함을 덜어주기 위해 사냥의 맛을 느낄 수 있게끔 해주어야한다. 그들 앞에서 아양을 떨어야만 매력을 뽐내주신다. 이렇게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집사로서 답답할 때는 주인님이 아플 때다. 이상 증세를 발견하지만 얼마나 아픈지는 알 수가 없다. 그저 짐작할 뿐이고 병원에 모셔가 나보다는 경험이 많은 의사의 조언을 듣고 약을 처방받아오는데, 셋 중 약을 격렬하게 거부하는 주인에게 먹이는 건 정말이지 미션 임파서블이다.

이럴진대 이 집사가 주인님의 말을 알아듣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베르베르도 분명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 고민의 결과로 이 소설이 탄생한 것 같다. 물론 대단한 상상력과 필력의 소유자니까 가능한 일이겠지만 말이다. 나 같은 평범한 집사는 이런 소설을 읽으며 주인님의 심기를 헤아리는 공부를 할 밖에...

그런데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말 그럴까 궁금했다.

p.113

나탈리가 다가오더니 나를 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녀의 몸에서도 불안감이 발산되고 있다. 나는 까끌까끌한 혀로 집사의 턱을 핥아주고 나서 시큼한 체취가 나는 겨드랑이에 코를 박는다. 금세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러나 이 냄새에 중독되는 거 아닌지 몰라.

주인이 셋이나 되어도 나를 핥아준 적은 한 번도 없고 내 겨드랑이에 코를 박은 적도 없기 때문에 이해불가 장면이면서 부럽기도 했다.

앗, 이 소설의 줄거리를 써야할 시점이 많이 지나버렸다. 간단 요약하자면 바스테트와 피타고라스를 위시한 생존 고양이 집단과 바스테트의 집사 나탈리를 포함한 생존 인류 몇몇이 쥐들의 습격을 피하다가 전투를 벌이는 이야기가 1권에서 펼쳐지고 마지막에 중요한 장면으로 끝이 난다. 이 무리들이 피타고라스를 실험에 이용했던 오르세 대학으로 들어가 연구진들과 합류하게 된다. 피타고라스처럼 인간지식에 접근하고 싶어했던 바스테트는 자처해서 실험대상이 되고자한다. 즉 피타고라스처럼 제 3의 눈을 가지겠다고 한 것이다. 바스테트도 미간에 USB 단자를 심기로 하고 수술이 시작되면서 1권이

 끝난다.

피타고라스에 이어 바스테트까지 제 3의 눈을 갖게 됐으니 2권에서는 어떤 시너지를 낼지, 과연 그들은 새로운 문명을 쓸 수 있을까?

 

 

♣ 인상깊은 구절(바스테트의 생각)

"나와 같은 종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감정을 이입할 수 있어. 그 상대의 목숨을 구해 주고 뿌듯하게 느낀다면 이게 바로 연민의 감정이지 뭐겠어."

"자연과 교감하기 위해서는 득실을 따지기보다는 사랑해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 다른 종과 소통을 하고 감정이입이 된다면 책 속 전쟁같은 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인간끼리도 이해득실을 따져가며 사랑하는데 이종간의 사랑이 가능할지... 이 소설, 사실은 디스토피아를 그리려는 게 아닐까?

 

 

♣ 새롭게 알게 된 내용

톡소포자충이 숙주인 인간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쥐도 그렇지만 인간도 톡소포자충에 감염되면 (전체 인구의 약 30퍼센트 가량이 이 기생충에 감염됐다고 추정된다) 후각에 변화가 일어난다고 그는 말한다. 고양이 오줌 냄새가 좋아지고, 고양이에게 비정상적으로 끌리며, 자꾸 고양이를 쓰다듬어 주고 싶어 진다는 것이다.

☞ 커헉... 나, 톡소포자충에 감염된거임???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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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큘라 허밍버드 클래식 M 6
브램 스토커 지음, 김하나 옮김 / 허밍버드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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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밍버드의 클래식M시리즈는 이제 믿보작입니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드라큘라 백작의 매력에 빠져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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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없는 시민 -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강남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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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낯설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더 낯익은 나는, 저자에 비해 나이가 훨씬 많다.

“박근혜를 대통력직에서 끌어내린 것은 촛불시민들이었다.”는 문장 속 시민은 우리가 분명하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는데 벌써 아득한 옛일만 같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박제된 구호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깨어있는 시민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불과 4년 전이었다고!

 

 

책 제목 <지금은 없는 시민>을 본 순간 위처럼 여러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저자는 이제 시민이라는 단어를 붙일만한 대상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하려는 걸까? 자못 궁금해졌다. 한편 지금은 시민이 없지만 앞으로 시민이 올 거라는 뜻일까? 시민이 어디선가 청포를 입고 찾아올 사람은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민이 되어야 하는데 1990년생인 저자가 말하는 시민은 어떤 면면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저자가 각종 매체에 2019년부터 2021초까지 연재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시민의 승리”로 탄생했다는 정부에서 역설적으로 “시민의 후퇴”가 일어났다고 하며 ‘시민의 자리’를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책의 순서를 살펴보면, 1장에서는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해서, 2장은 시민의 역할, 3장은 언론, 4장에서는 노동, 특히 산업재해에 관한 글이고, 5장은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는 글들을 실었다.

 

 

나는 요 몇 년 사이 시사지와 일간지의 구독을 끊고 팟캐스트로 시사관련 정보들을 취했다. 따박따박 도착하는 신문과 잡지를 읽지는 못하고 쌓이면 그 높이만큼 죄책감도 올라가는 부담스러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무료 팟캐스트에도 양질의 정보는 많고, 다른 일을 하면서 들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며 합리화했다. 그러나 저자는 나의 이런 식의 태도에 일침을 가했다.

 

 

좋은 기사를 써서 좋은 언론을 만드는 일차적 책임은 기자와 언론에게 있지만, 시민-독자로서 책임감도 필요하다고 했다. 3장 ‘기레기를 만드는 사람들’에서 좋은 기사를 열심히 읽고, 공유하고, 후원함으로써 언론사를 자극하고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정의연’이나 ‘케어’사태를 예로 들며 그들의 실수 혹은 잘못을 비난하는 것을 너머 탈퇴하고 외면하는 것으로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3장의 마지막 글 ‘위선에 대한 분노가 향할 곳’에서는 시민단체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낫다고 믿는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시민단체와 진보언론에 진실하게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위선에 맞서 참된 정의로움을 이루기 위해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 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며 격려하는 것은 우리 시민들의 일이다."

 

 

 

나이 어린 저자의 충고는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우리가 시민단체나 진보매체를 후원하고 구독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게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바쁘다며 모른척하고 귀찮다며 스르르 발을 뺐고 그러면서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며 허공에 손가락질을 해댔다. 이 책을 읽으며 느슨해진 운동화 끈을 짱짱하게 다시 매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민이란 이름으로 제대로 걸으려면, 어쩌면 뛰어갈 때 필요한 준비가 아닐까 싶다. 그 시작으로 시사인을 재구독 해야겠다.

 

 

사실 지난 4월부터 시사인 기사를 매일 읽고 있다. ‘카카오 프로젝트 100 : 하루 한 편 시사지 읽는 습관’에 참여중인데 매일 제공해주는 시사인 지난 호 기사를 읽고 간단한 느낌을 쓰면서 인증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사인 기사를 읽으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있는데 무료로 읽다니!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구독자를 늘리겠다는 노력이 가상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구독에 금전적 부담감이 들었는데 이 책 덕분에 마음을 굳혔다.

 

 

언론에 계속 관심을 두고 있어서일까, 이 책도 언론 관련 내용을 더 유심히 읽었다. 그중 작년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사건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 여름, 시사관련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내용으로는 강진구 기자가 쓴 기사가 하루 만에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기자가 신문사측에 항의한다고 했는데 그 기사의 내용은 박재동 화백의 성추행이 ‘가짜미투’였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가 쓴 기사의 내용을 조목조목 알려주며 박재동 화백의 성추행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주장을 들으면서 나는 박화백이 미투 희생자일 수 있겠다는 짐작을 했다. 방금 쓴 문장은 팟캐스터와 나, 둘 다 섣부른 예측이었다는 강조하기 위해 저렇게 썼다.

 

 

진실은 당사자 외에 아무도 모른다. 그 외의 제 삼자들은 사실이라고 보여지는 것들로 파악하고 결론내린다. 이 책에서 저자가 박재동 화백 미투 기사를 다루었기에 나는 작년 내 짐작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강진구 기자가 쓴 기사가 사실에 근거한 것이므로 믿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 팟캐스터도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강기자가 피해자의 카톡 내용에 있는 사실을 떼어내어 시간 순서를 바꿔 조합했다는 것을! 그리하여 피해자의 피해자답지 못한 면을 부각시키게 되었음을! 어떤 사건을 한 매체의 기사나 해설로만 보는 것은 그 사건의 다른 면은 보지 않는 것과 같다. 시민이라면 여러 매체를 찾아 읽는 부지런함이 있어야겠다.

 

 

또한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오보도 잘 살펴야한다. 오보는 날 때는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정정보도나 오보임을 사과하는 것은 보이지도 않는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린다. 그마저도 실리면 다행이고 아예 모르쇠로 넘기는 언론도 많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질테니 괜찮은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대부분 오보를 사실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 시민에게 묻는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진실’보다 ‘정치적 유불리’를 판단하는데 더 관심이 있기 때문에 언론들의 오보장사를 가능하게 한 게 아니겠냐고...

 

 

p.123

언론은 자기 진영의 독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으니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사를 뿌리고, 독자들은 기꺼이 그 기사들을 팔아준다. 오보는 그렇게 반복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 위해 독자로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 언론 탓만 하고 있기엔 오보가 가지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

 

 

 

저자가 말하는 시민은 부지런해야하고, 현명해야 한다. 그리고 비관적이지 않아야 한다. 이 책의 마지막장 마지막 꼭지의 글에서 저자의 충고에 나는 또 고개숙였다. 저자가 소개한 미국조직 DSA의 사례를 읽으며 문성근과 2012년 총선이 떠올랐다. 당시 배우 문성근은 노무현대통령 낙선지였던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고 나는 캠프의 선거운동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문성근이 늘 강조했던 것은 조직이었다. 그가 주도했던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운동도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한 활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선거의 패배와 그 후로도 활동했던 사람들에게 실망을 많이 했고 조직이 덧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성과와 그들의 활동을 읽으니 놀랍고도 부러웠다. DSA는 사회주의자를 표방한 신인 정치인들이 10선, 16선의 거물 후보를 물리치고 승리하게 만든 조직이다. 플로리다주에서는 2026년까지 최저시급을 현행 8.5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하는 안건이 통과되었고, 오리건주 포틀랜드시에서는 3~4세 어린이집을 무상으로 하는 주민투표를, 메인주 포틀랜드시에서는 월세 인상률을 제한하는 주민투표를 통과시켰다. 모두 DSA가 주민투표 캠페인에 동참한 결과다.

 

 

DSA가 저런 성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조직 덕분이었는데 그들의 강령은 다음과 같다.

어디든 장소를 잡고, 목소리를 높여 말하라. 문을 열어두고, 다른 사람들을 데려오라.”

그리하여 DSA는 2015년 5천명에 불과했던 회원 수가 2020년 11월 현재 8만 여 명에 이르렀으며, 조직 수는 2016년 15개에서 현재 231개 지역 조직으로 늘어났다.

 

 

나는 당시에 조직의 숫자를 늘리는 것에 회의적이었고 냉소를 너머 썩소를 지었다. 요즘에는 물론 더더 회의적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10년 전보다 각자도생하기에 더 힘들다. 그런 사람들을 데려올 수 있을까? 이런 의심만 하는데 조직화가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저자는 희망을 놓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살고 싶은 세상이 있고 그것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믿으니 이들은 지치지 않는다. 그렇다. 냉정한 분석과 강렬한 소망이 있는 곳에 냉소는 싹틀 틈이 없다. 그리고 냉소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취를 이룬다."

 

 

 

90년생이 이렇게 단단하게 말할 수 있다니! 세대구분을 하려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자꾸 나이를 들먹이게 됐는데, 나보다 훨씬 나이어린 저자의 날카롭고 묵직한 통찰이 고맙고 반가워서 그랬다. 그리고 그가 지금 없다고 한 시민이 되기 위해 나이 많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외면하고 비난하고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은 시민이 아니다. 주인된 마음으로,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냉소하지 않고, 일단 소망부터 하자!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딩투데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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