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는 시민 - 끝내 냉소하지 않고, 마침내 변화를 만들 사람들에게
강남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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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낯설다.

국민이라는 단어가 더 낯익은 나는, 저자에 비해 나이가 훨씬 많다.

“박근혜를 대통력직에서 끌어내린 것은 촛불시민들이었다.”는 문장 속 시민은 우리가 분명하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났는데 벌써 아득한 옛일만 같다.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은 박제된 구호처럼 느껴진다. 우리가 깨어있는 시민이었던 적이 있었던가? 불과 4년 전이었다고!

 

 

책 제목 <지금은 없는 시민>을 본 순간 위처럼 여러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저자는 이제 시민이라는 단어를 붙일만한 대상이 사라졌다는 것을 말하려는 걸까? 자못 궁금해졌다. 한편 지금은 시민이 없지만 앞으로 시민이 올 거라는 뜻일까? 시민이 어디선가 청포를 입고 찾아올 사람은 아닐 터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시민이 되어야 하는데 1990년생인 저자가 말하는 시민은 어떤 면면을 가진 사람들을 말하는 것일지 기대하며 책을 펼쳤다.

 

 

이 책은 저자가 각종 매체에 2019년부터 2021초까지 연재한 글들을 묶은 것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시민의 승리”로 탄생했다는 정부에서 역설적으로 “시민의 후퇴”가 일어났다고 하며 ‘시민의 자리’를 얘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책의 순서를 살펴보면, 1장에서는 정치와 정치인들에 대해서, 2장은 시민의 역할, 3장은 언론, 4장에서는 노동, 특히 산업재해에 관한 글이고, 5장은 민주주의에 대해 고민하는 글들을 실었다.

 

 

나는 요 몇 년 사이 시사지와 일간지의 구독을 끊고 팟캐스트로 시사관련 정보들을 취했다. 따박따박 도착하는 신문과 잡지를 읽지는 못하고 쌓이면 그 높이만큼 죄책감도 올라가는 부담스러움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무료 팟캐스트에도 양질의 정보는 많고, 다른 일을 하면서 들을 수 있는 장점도 있다며 합리화했다. 그러나 저자는 나의 이런 식의 태도에 일침을 가했다.

 

 

좋은 기사를 써서 좋은 언론을 만드는 일차적 책임은 기자와 언론에게 있지만, 시민-독자로서 책임감도 필요하다고 했다. 3장 ‘기레기를 만드는 사람들’에서 좋은 기사를 열심히 읽고, 공유하고, 후원함으로써 언론사를 자극하고 독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 ‘정의연’이나 ‘케어’사태를 예로 들며 그들의 실수 혹은 잘못을 비난하는 것을 너머 탈퇴하고 외면하는 것으로는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3장의 마지막 글 ‘위선에 대한 분노가 향할 곳’에서는 시민단체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경향신문과 한겨레가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한국 사회의 진보를 위해 낫다고 믿는다고 하며 이렇게 말했다.

 

 

"시민단체와 진보언론에 진실하게 활동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이 위선에 맞서 참된 정의로움을 이루기 위해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 한, 그들의 싸움을 지켜보며 격려하는 것은 우리 시민들의 일이다."

 

 

 

나이 어린 저자의 충고는 사실 새삼스럽지 않다. 우리가 시민단체나 진보매체를 후원하고 구독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걸 몰랐던 게 아니다. 우리는 그동안 바쁘다며 모른척하고 귀찮다며 스르르 발을 뺐고 그러면서 세상이 잘못되어가고 있다며 허공에 손가락질을 해댔다. 이 책을 읽으며 느슨해진 운동화 끈을 짱짱하게 다시 매야겠다고 생각했다. 시민이란 이름으로 제대로 걸으려면, 어쩌면 뛰어갈 때 필요한 준비가 아닐까 싶다. 그 시작으로 시사인을 재구독 해야겠다.

 

 

사실 지난 4월부터 시사인 기사를 매일 읽고 있다. ‘카카오 프로젝트 100 : 하루 한 편 시사지 읽는 습관’에 참여중인데 매일 제공해주는 시사인 지난 호 기사를 읽고 간단한 느낌을 쓰면서 인증하는 프로그램이다. 시사인 기사를 읽으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좋은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있는데 무료로 읽다니! 이런 프로그램을 운영해서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구독자를 늘리겠다는 노력이 가상하지 않은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구독에 금전적 부담감이 들었는데 이 책 덕분에 마음을 굳혔다.

 

 

언론에 계속 관심을 두고 있어서일까, 이 책도 언론 관련 내용을 더 유심히 읽었다. 그중 작년 경향신문 강진구 기자 사건이 눈에 들어왔다. 작년 여름, 시사관련 팟캐스트에서 들었던 내용으로는 강진구 기자가 쓴 기사가 하루 만에 내려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강기자가 신문사측에 항의한다고 했는데 그 기사의 내용은 박재동 화백의 성추행이 ‘가짜미투’였음을 알리는 것이었다. 그가 쓴 기사의 내용을 조목조목 알려주며 박재동 화백의 성추행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을 거라는 주장을 들으면서 나는 박화백이 미투 희생자일 수 있겠다는 짐작을 했다. 방금 쓴 문장은 팟캐스터와 나, 둘 다 섣부른 예측이었다는 강조하기 위해 저렇게 썼다.

 

 

진실은 당사자 외에 아무도 모른다. 그 외의 제 삼자들은 사실이라고 보여지는 것들로 파악하고 결론내린다. 이 책에서 저자가 박재동 화백 미투 기사를 다루었기에 나는 작년 내 짐작이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강진구 기자가 쓴 기사가 사실에 근거한 것이므로 믿어줘야 한다고 강조했던 그 팟캐스터도 당시에는 몰랐을 것이다. 강기자가 피해자의 카톡 내용에 있는 사실을 떼어내어 시간 순서를 바꿔 조합했다는 것을! 그리하여 피해자의 피해자답지 못한 면을 부각시키게 되었음을! 어떤 사건을 한 매체의 기사나 해설로만 보는 것은 그 사건의 다른 면은 보지 않는 것과 같다. 시민이라면 여러 매체를 찾아 읽는 부지런함이 있어야겠다.

 

 

또한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오보도 잘 살펴야한다. 오보는 날 때는 1면에 대문짝만하게 실리고 정정보도나 오보임을 사과하는 것은 보이지도 않는 귀퉁이에 조그맣게 실린다. 그마저도 실리면 다행이고 아예 모르쇠로 넘기는 언론도 많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질테니 괜찮은 게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대부분 오보를 사실로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또 시민에게 묻는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진실’보다 ‘정치적 유불리’를 판단하는데 더 관심이 있기 때문에 언론들의 오보장사를 가능하게 한 게 아니겠냐고...

 

 

p.123

언론은 자기 진영의 독자들에게 호소할 수 있으니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기사를 뿌리고, 독자들은 기꺼이 그 기사들을 팔아준다. 오보는 그렇게 반복된다. 이 악순환의 고리를 벗어나기 위해 독자로서 우리들이 할 수 있는 노력을 하지 않고서 언론 탓만 하고 있기엔 오보가 가지는 영향력이 너무 크다.

 

 

 

저자가 말하는 시민은 부지런해야하고, 현명해야 한다. 그리고 비관적이지 않아야 한다. 이 책의 마지막장 마지막 꼭지의 글에서 저자의 충고에 나는 또 고개숙였다. 저자가 소개한 미국조직 DSA의 사례를 읽으며 문성근과 2012년 총선이 떠올랐다. 당시 배우 문성근은 노무현대통령 낙선지였던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고 나는 캠프의 선거운동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다. 문성근이 늘 강조했던 것은 조직이었다. 그가 주도했던 “백만송이 국민의 명령”운동도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한 활동이었다. 하지만 나는 당시 선거의 패배와 그 후로도 활동했던 사람들에게 실망을 많이 했고 조직이 덧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미국 민주적 사회주의자 (DSA: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의 성과와 그들의 활동을 읽으니 놀랍고도 부러웠다. DSA는 사회주의자를 표방한 신인 정치인들이 10선, 16선의 거물 후보를 물리치고 승리하게 만든 조직이다. 플로리다주에서는 2026년까지 최저시급을 현행 8.5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하는 안건이 통과되었고, 오리건주 포틀랜드시에서는 3~4세 어린이집을 무상으로 하는 주민투표를, 메인주 포틀랜드시에서는 월세 인상률을 제한하는 주민투표를 통과시켰다. 모두 DSA가 주민투표 캠페인에 동참한 결과다.

 

 

DSA가 저런 성과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조직 덕분이었는데 그들의 강령은 다음과 같다.

어디든 장소를 잡고, 목소리를 높여 말하라. 문을 열어두고, 다른 사람들을 데려오라.”

그리하여 DSA는 2015년 5천명에 불과했던 회원 수가 2020년 11월 현재 8만 여 명에 이르렀으며, 조직 수는 2016년 15개에서 현재 231개 지역 조직으로 늘어났다.

 

 

나는 당시에 조직의 숫자를 늘리는 것에 회의적이었고 냉소를 너머 썩소를 지었다. 요즘에는 물론 더더 회의적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모두 정치에는 관심이 없어 보이고 10년 전보다 각자도생하기에 더 힘들다. 그런 사람들을 데려올 수 있을까? 이런 의심만 하는데 조직화가 가능하겠는가. 그런데 저자는 희망을 놓지 않고 이렇게 말한다.

 

 

​"살고 싶은 세상이 있고 그것을 스스로 만들 수 있다고 믿으니 이들은 지치지 않는다. 그렇다. 냉정한 분석과 강렬한 소망이 있는 곳에 냉소는 싹틀 틈이 없다. 그리고 냉소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취를 이룬다."

 

 

 

90년생이 이렇게 단단하게 말할 수 있다니! 세대구분을 하려고 그런 건 아니었지만 자꾸 나이를 들먹이게 됐는데, 나보다 훨씬 나이어린 저자의 날카롭고 묵직한 통찰이 고맙고 반가워서 그랬다. 그리고 그가 지금 없다고 한 시민이 되기 위해 나이 많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해봐야겠다. 외면하고 비난하고 나 몰라라 하는 사람은 시민이 아니다. 주인된 마음으로,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냉소하지 않고, 일단 소망부터 하자!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딩투데이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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