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대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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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페르시아에 샤흐리야르라는 왕이 있었다. 어떤 계기로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된 왕은 지독한 여성 불신에 빠져 매일 밤 처녀 한 명을 데려오게 하고는 순결을 빼앗고 이튿날 아침 목을 벤다. 그런 끔찍한 소행을 보다 못해 나선 사람이 대신의 딸 셰에라자드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진하여 왕을 침소에서 모시며 기이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셰에라자드는 날이 밝으면 이야기를 중간에 멈추기 때문에 뒷이야기가 궁금한 왕은 그녀의 목을 벨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셰에라자드는 매일 밤 목숨을 부지하며 자신과 백성을 구하려 한다.

 

위 내용이 <천일야화>의 줄거리라는 것을 대부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천일야화를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분명 책으로 나와 있음에도 읽은 사람은 거의 없으며 어디선가 들은 내용으로, 혹은 어릴 적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책으로 본 기억으로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 <열대>를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아는 <천일야화>TV 애니메이션 <신밧드의 모험>을 본 게 다라는 걸!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라비안나이트>, <신드바드>, <알라딘>, <알리바바>는 모두 <천일야화>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17세기 이후 <천일야화>가 서양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들어간 이야기로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천일야화>의 내용은 저런 태생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흡수해 확장된 것이라고 한다. 이 내용은 모두 <열대>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천일야화>에 대해 모두에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열대><천일야화>를 모티브로 했으며 책 속에서 계속 언급되기 때문이다.

 

<열대>가 시작될 때 등장하는 소설가의 이름을 실제 소설가 모리미 도미히코그대로 써서 이것이 소설인가 아닌가 헷갈리게 만들었다. 이미 여기서부터 독자는 낚인거다. 모리미는 대학 4학년 때 사야마 쇼이치가 쓴 <열대>라는 기이한 소설을 읽게 되는데 다 읽지 못한 채 분실한 것으로 내용이 시작된다. 그는 계속 소설의 결말이 궁금해서 그 책을 찾으려고 수소문 했지만 16년이 지나도록 찾지 못하다가 침묵 독서회라는 모임에 우연히 참가했다가 <열대>를 만나게 된다.

 

침묵 독서회에서 시라이시라는 여성이 그 책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고 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여기서부터 이 소설은 액자 구성의 끝판왕을 시작된다. <천일야화>의 액자구성이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열면 또 다른 인형이 나타나듯 <열대>도 그렇다고? 아니다! 몇 배는 더 심하다. 거의 양파 수준이다. 까도까도 계속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진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인내심이 약한 독자라면 중간에 책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 대체 결말이 뭔데? 소설 속 소설 <열대>를 읽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이야기하고 게다가 아무도 끝까지 읽은 사람이 없다는데 내가 들고 있는 이 책의 결말은 어떻게 끝나는 건데? 라며 궁금해 하는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은 책 맨 뒤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랬다.

 

그런데 맨 뒷장, 그 앞장, 몇 장 더 앞장을 읽어봐도 모르겠는 거다. 그러니까 소설 속 소설<열대>의 결말도 알 수 없었고, ‘로 등장하는 이가 맨 처음에 나온 소설가 모리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거였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530페이지를 다 읽어야만 알 수가 있다는거...

 

사전 서평단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므로 힘들었지만 끝까지 다 읽어야 했다. 해냈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앞부분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밑줄 쳐놓았다. 그 부분들만 다시 훑었다. 그렇게 해두지 않고 여느 소설처럼 줄줄줄 읽기만 했다면 다 읽고도 내용 이해 어려울 뻔 했다. 그만큼 작가가 수수께끼처럼 숨겨놓았다. 침묵 독서회와 학파 소속 사람들의 이름과 소설 속 소설 <열대>와 연관된 사연들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거의 도표를 그려야 할 정도다. 작가 모리미는 <천일야화>와 이 소설을 섞고, 소설 속 소설 <열대>와 등장인물들의 사연까지 샌드위치처럼 집어넣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거기다 제각각 <열대>에 대한 다른 가설들을 주장하고 있어 그것까지 따라가려면 벅차다. 나는 이 사람이 독자들 약 올리려고 아니, 괴롭히려고 이러는 건가 싶었다.

 

이 소설 속에는 소설과 이야기와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문장들이 많다. 그 문장들에 꽂히면 독자는 잠시 머물게 된다. 줄거리 파악은 잠시 접어두고 자신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p.47

소설 같은 거 읽지 않아도 살 수 있어요.

장강명 작가가 어떤 책에서 언급한 내용이 떠올랐다. 지하철에서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젊은 사람들이 소설나부랭이나 읽으니 세상이 이 모양이라며 호통치던 에피소드! 황당했던 장작가는 소설이야말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동의한다. 문학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상당하다. 상상력과 어휘력은 물론이고 공감능력의 차이가 제일 크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타인이 겪는 심정을 책으로나마 간접 경험할 때 다른 사람을 이해까지는 못해도 공감할 수는 있다. 소설 같은 거 읽지 않아도 살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소통하며 어울려 사는 건 어려울 것이다.

 

p.136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뿐입니다.

인생의 끝은 죽음이다. 살아있는 동안 이야기는 계속 된다. 살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과제 같은 것들이 있다. 하나를 끝내면 다른 하나가 기다리고 있고, 큰 중요한 일이 지나가면 더 이상 다른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또 새로운 게 떡하니 기다리고 있다. 그게 인생이다.

친정 아버지는 팔순이 다 되어가는데 지난 달에야 생업을 접으셨다. 평생 여러 가지 직업을 이어오셨고 마지막으로 하신 가게는 20년 넘게 하신 일이었다. 몇 년 전부터 그만하시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이어오시더니 코로나로 더 이상 유지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연세가 많으셔서 더 이상은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그저께 우리 집에 오셨다가 발열과 구토증상이 있어 깜짝 놀랐다. 코로나 감염인가 싶어 검사받았는데 음성으로 나왔고 피검사 상 염증수치가 너무 높다며 각종 검사를 했다. 조실부모 후 평생을 맨몸으로 일만 하며 살아오신 아버지가 이젠 좀 편히 쉬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생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게 인생이라 부른다지만 제발 비극만은 아니면 좋겠다.

 

p.157

너와 관계없는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그리하지 않으면 너는 원치 않는 것을 듣게 되리라.

위 두 문장은 <천일야화>에도 나온다고 한다. <열대>에도 몇 번이나 인용되는데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남의 말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혔다. 그래서 영화 <올드보이>가 떠올랐다. 오대수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15년간 감금당한다. 감금으로 끝난 게 아니라 급기야 원치 않는 말, 천형같은 말을 듣기에 이르지 않나...

 

p.434 존재하지 않으면 만들어 내면 돼.

p.436 창조한다는 건 지배한다는 뜻이다.

이야기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리고 만들어내는 사람, 작가가 지배자라고 강조하는 것 같았다. 작가 모리미의 스웩이 들어있는 문장으로 읽혔다.

 

이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긴 했지만 사실 <천일야화>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주 어릴 때 애니메이션으로 본 경험과 여기저기서 짜깁기 형식으로 주워들은 것들로 <천일야화>를 읽었다고 착각한 자신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아랍어 직역은 없고 앙투안 갈랑이 불어로 번역한 것을 임호경씨가 한국어로 번역한 게 있다. 열린책들에서 출판된 6권짜리 세트이다. ‘모리미 도미히코작가 덕분에 제대로 된 <천일야화>를 읽어보게 됐다. 조금 미안하긴 한데 <열대>에서 <천일야화>를 사용했기 때문이니 작가 본인도 뿌듯할 것 같다.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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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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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지리 작가의 팬이다. 그의 소설 전권을 다 읽었는데 이젠 더 이상 그의 소설을 읽지 못한다. 31살에 요절했기 때문이다. 박지리 작가의 소설을 읽을 수 없다는 건 아쉬움보다는 허전함으로 다가온다. 꾸준히 소설을 내는 다른 작가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기대에 차서 읽은 다른 소설가들의 신간이 실망감을 안겨줄 때마다 박지리라는 별은 내 손에 잡을 수 없기에 더욱 반짝이는 거라며 자위했다.

작년에 사계절출판사에서 박지리 문학상을 공모한다는 기사를 박지리의 뒤를 잇는 작가 탄생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215편의 응모작 중 현호정 작가의 <단명소녀 투쟁기>가 대상으로 뽑혔다. 제목을 본 순간 이것은 운명이 아닌가 했다. 요절한 작가를 기리는 문학상의 첫회 수상작의 제목에 ‘단명’이란 단어가 들어가다니! 출판사에서 사전 서평단을 뽑는다기에 주저없이 아니!! 득달같이 신청했다. 다행이 뽑혀서 이북으로 먼저 읽었고 며칠전 종이책과 마우스패드도 받았다.

표지가 아주 강렬했다. 주인공 수정은 당돌하고 용감한 소녀이지만 그 얼굴을 연상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그림엔 아주 젬병이라 그렇기도 있지만 저렇게 당당한 소녀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는데 표지를 보는 순간 옳다구나! 싶었다. 그래, 저런 수정이니까 스무살 전에 죽을 거라는 점쟁이 말에 “싫다면요?” 라고 맞받아쳤겠지.

그렇다! 제목처럼 단명소녀는 수정이고 단명의 예언을 거부하며 자신의 죽음을 죽이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투쟁기가 이 소설의 큰 줄기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두 가지 물음이 떠올랐다. 이것은 환상동화인가? 아니면 퀘스트를 깨고 레벨업 해나가는 어떤 게임의 텍스트판인가? 게임 종류라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나로선 무슨 게임과 유사할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책을 다 읽은 후 작가의 말과 출판사 리뷰를 보니 이 소설의 모티브가 <북두칠성과 단명소년>이라는 설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명의 예언을 들은 소년이 99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소녀로 바꾸고 설화 속 소년과 달리 스스로 자신의 명을 쟁취하는 것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상황들이 황당무계해 보이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예컨대 백설기를 끓여 죽을 만들어 노인 7명을 먹이는 상황, 흰 죽이 끓는 솥 바닥에서 얼룩처럼 잠겼다 떠올랐다 하는 것이 조각배 같았는데 어느새 그 조각배에 수정과 이안이 타고 있는 장면, 헌데 그 죽은 퍼내도 퍼내도 줄지 않는다! 한가지 사례를 들었지만 이런 상화들은 장면마다 연출된다. 즉 수정과 이안이 진입하는 퀘스트마다 발생한다.

이안은 누구인가? 점쟁이 북두가 수정에게 남동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가면 죽음을 맞닥뜨릴 시간을 벌수 있다고 해서 혼자 출발한다. 그 출발점이 G시의 지하철역이다. 역을 빠져나오면서 ‘내일’이라는 이름의 개를 만나고 연이어 이안과도 조우하게 된다. 이안은 수정과는 반대로 죽고싶어서 북쪽으로 가는 길이며 수정과 같은 나이인 열아홉이었다.

- 혹시 살러가요?

- 네?

- 살고 싶어서, 남쪽으로 도망가고 있는 거냐고요.

수정은 이안의 물음을 곰곰이 되새겼다. 체하지 않기 위해 떡을 꼭꼭 씹듯 마음으로 잘근잘근 내씹었다. 그러자 단물이 입안에 퍼지듯이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이다. 사는 건 죽는 것보다 낫다. 용기 있는 건 쟤가 아니라 나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러나 그런 생각을 끝도 없이 주워 담는 동안에도 이상하게 얼굴이 달아오른다. 살고 싶냐는 저 애의 물음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느니 그냥 죽는 게 낫지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수정은 딱히 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 딱히 살고 싶다기보다는,

- 네,

- 죽고 싶지가 않아서요.

- 네.

- 싫다거나 무섭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좀 억울하다고 해야 할까, 이해를 못 했다고 해야 할까.

p.28~29

분명 정반대의 목적으로 길을 떠난 둘인데 함께 한 여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구해준다. 그들이 겪는 상황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래서 게임을 글로 풀어놓은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 있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치 자신이 그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몸을 움직이고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느낀다. 거짓임을 분명 알면서도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 게임이고 레벨업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것이다. 테트리스나 같은 그림 맞추기 정도밖에 해 보지 않은 나로서도 수정과 이안의 최종단계는 어떻게 될지 기대되었다.

마지막 저승의 신과의 결전에서, 수정이 ‘최선을 다했기에 흔적이 남은’ 거라고 하자 저승의 신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 잔해를 떠안고 살아가. 고약한 피 냄새에, 무질서에 익숙해질 각오를 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착각하면서.”

수정은 이렇게 응수한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이제 조금도 두렵지 않아. 그리고 나는 그것들의 이름을 실제로 바꾸어 부르겠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영원히... 그러면 그건 더 이상 착각이 아니게 되겠지.”

이어 쫓아오는 그동안 처리했던 모든 것들이 수정과 이안에게 달려들고 수정은 내일에게 이안을 부탁한다. 이렇게 끝나는가? 둘의 최후와 마지막 장의 반전 내용은 이 리뷰에 쓸 수 없다. 책으로 직접 만나보길 권한다.

그동안 읽었던 소설과는 분명 다른 스타일의 소설을 만나는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그러나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연명설화, 게임이 진행되는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스토리텔링, 독특한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특히 ‘내일’이라는 개의 매력을 그냥 지나치긴 쉽지 않을 것이다. 5장에 등장하는 '오늘'이라는 개를 만나며 '내일'의 현신이 아닐까 가슴 두근거리게 된다면 현호정 작가의 글맛에 빠져버린 게 맞다!

 

나는 그랬다. 앞으로 박지리 문학상 출신이라는 이름표가 현호정 작가에게 자랑하고픈 휘장이 되길 바란다. 그의 차기작을 기다린다.

**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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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여름 - 류현재 장편소설
류현재 지음 / 마음서재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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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미스터리 스릴러라 했고, 처음부터 자극적인 사건으로 시작하는 것에 혹했다. 여름휴가용 소설로 딱일 것 같았다.

주인공 정해심 검사는 성추행범에게 가차없다. 그 어떤 변명도 피해자가 입은 고통에는 비할바가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 정해심 검사의 아버지가 성폭행을 저질렀다는 전화를 받는다. 믿을 수가 없다. 아버지는 치매환자. 피해 여성은 파킨슨병 환자이기 때문이다. 기막혔다. 병원으로 달려가 현장에서 뜯어말렸다는 요양보호사의 증언을 들으니 안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와중에 피해자의 아들 하영석이 합의금으로 1억을 요구했다고 한다. 이렇게나 빠르게? 세상에 알려지기전에 사건을 수습하려는 원장이 합의를 종용한다.

이렇게 서두부터 이야기 속으로 훅 빨려들게 만들었다. 성범죄 전담 검사의 아버지가 성폭행 현행범이라니 얼마나 아이러니컬한 상황인가. 정해심 검사는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가? 책장을 빠르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 추리하기 좋아하는 독자라면 자신이 검사가 되어 사건해결의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이 뭐가 있는지 눈 크게 뜨고 찾아볼 것이다. 70이 넘은 치매환자가 과연 그게 가능했을지, 실제로 벌어진 게 맞는지에 초점을 맞춘 독자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이 소설은 임팩트 있게 시작하여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고 직접 추리해 나가도록 실마리를 여러 갈래로 던져둔다.

독자가 어떤 갈래를 잡아당기느냐에 따라 작가의 떡밥을 덥석 무는 붕어가 되어버릴 수도, 작가가 쳐놓은 그물에 걸리지 않고 유유히 빠져나올 수도 있다. 어떤 독자는 자신이 놓친 부분을 확인하며 이마를 칠 것이고, 또 다른 독자는 자신의 추리에 흡족해 할 것이다. 이런 것이 추리 스릴러 소설을 읽는 맛이다.

정해심 검사는 아버지의 행동을 믿을 수가 없어서 CCTV를 돌려보며 확인한다. 일을 저질렀다는 상황 전후와 며칠 전까지 돌려보니 강제로 그런 짓을 저지른 것처럼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그 여성이 아버지에게 다가와 친근한 행동을 하는 것 같았다. 더 놀라운 사실은 피해여성의 이름이 자신과 같은 해심이라는 것, 아버지와 그 여성의 고향이 같은 남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 그녀는 이 사건의 이면에 뭔가가 더 있음을 감지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시공간이 다른 곳으로 독자를 훌쩍 데려간다. 일제로부터 해방되던 격동의 시기, 푸르른 남해 바다로. 그곳이 고향인 정해심의 아버지 정만선과 하영석의 어머니 고해심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읽으며 살짝 실망했다. 나는 피비린내 나는 뭔가 과격한 일들이 벌어질거라 예상했었다. 앞서 말한대로 스릴러 소설의 묘미를 만끽하고 싶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이 소설은 러브스토리였다.

단순하지는 않다. 순애보, 삼각관계, 질투, 애증까지 사랑이라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경우가 다 들어있다. 성추행 사건을 다루고 있는 현재의 정해심 검사의 상황과 성폭행 가해자로 몰린 아버지 정만선의 어린 시절이 교차로 서술되는데 독자가 어디에 포인트를 맞추느냐에 따라 소설적 재미를 느끼는 지점은 다를 것이다. 성추행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 피해자의 진술을 100퍼센트 신뢰했던 정검사는 아버지의 상황을 겪으며 그 사건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사실과 증거를 토대로 법에 맞게 구형한다고 장담했던 정검사는, 그간 자신이 확신했던 것에 균열이 생기자 당황스럽다. 작가는 정검사를 딜레마에 빠지게 해놓고 독자들에게 묻는다. 과연 공정한 잣대는 존재하는지를!

정만선과 고해심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독자라면 그들의 사랑을 부러워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랬다. 나는 사실 많이 놀랐다. 아니 내 편견에 놀랐다는 말이 더 적절하겠다. 정만선과 고해심, 그 둘 사이에 낀 여성 하덕자와 박문희의 애증어린 행동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덕자와 박문희의 과거 행적이 드러나면서 숨겨졌던 정만선과 고해심의 사랑 역시 수면 위로 올라온다. 그 둘의 사랑은 마치 빙산과도 같았다. 겉으로 조그만 덩어리처럼 보였지만 수면 아래에는 거대한 산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다. 둘의 사랑은 그랬다. 사랑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래서 각자 다른 이와 결혼했지만, 사실은 절대 잊을 수 없는 사랑이었다. 몇십년이 지나도, 아니 죽을 때까지!

사랑을 믿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들의 사랑이 너무 놀라웠다. 또한 그 옛날 둘의 사랑이 이토록 애절하고 아름답게 그려진 것에 놀랐다. 몇 십년이 지나도 서로를 잊지 못하는 두 사람의 사랑을 믿기 어려웠다. 치매에 걸려도 파킨슨 병에 걸려도 서로를 알아보고 같이 있고 싶어하다니... 어릴 적 둘이 만났던 비밀 장소를 기억해낸 둘의 행동이 남의 눈엔 범죄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을 연출해놓고, 꽃같이 아름답던 어린 시절을 잠깐 서술하고선 그 사이 간극은 독자의 상상에 맡기는 작가의 실력에도 놀랐다.

시대적 상황과 부모 세대의 업보 때문에 내놓고 사랑하지 못했던 둘의 사랑은 정만선의 시로 표현된다. 꿈틀거리는 바다의 생명력 속에 해심을 향한 만선의 사랑이 육감적으로 표현된 시는 짧지만 격정적으로 서술된 둘의 어린 시절 사랑과 닮아있었다. 그 시에 반했던 기자 박문희는 정만선의 사랑을 평생 갈구했으나 결코 얻지 못했다. 둘의 사랑을 시기했던 덕자 역시 만선의 사랑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다. 만선을 향한 덕자와 문희의 애증은 안타까웠다.

늙은 사람들에게도 젊은 시절은 있었고 사랑도 하고 살아왔을 터인데, 나는 그것을 부정했다. 또 죽을 때까지 평생 못 잊을 사랑 같은 건 없다고 생각했다. <네번째 여름>을 읽으며 내 편견을 확인했다. 어느 시대나 어디서나 그런 사람들이 있다. 죽을 만큼 사랑을 하고 질투하고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사람들! '현실에 이런 사랑이 있을까? 소설이니까 이렇게 극적이겠지'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작가의 말’을 읽으며 고개 끄덕였다.

이 이야기는 바다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난 여름, 큰 바람이 지나가고 죽은 사람 하나가 떠밀려왔다. 놀란 사람은 나처럼 도시에서 내려온 지 얼마 안 된 외지인들 뿐이었다. 하지만 바다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너무도 익숙한 일, 생명을 품고 있는 줄만 알았던 바다는, 동시에 죽음도 품고 있었다.

바다가 얼굴색을 바꾸고, 구름과 안개 베일을 두르면 그 누구의 접근도 허락하지 않는 바다만의 시간이 시작된다. 그사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사람은 알 수 없다. 그저 시간이 지나 바다가 밀어낸 죽음의 형상으로 그 모습을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네번째 여름> 작가의 말

여름에 어울릴 간담서늘한 스릴러 소설일거라 기대했는데 뜨거운 사랑이야기였다. 류현재 작가의 책은 이번에 처음 읽었는데 방송작가 출신이라 그런지 영화한편 보는 것처럼 흡입력 있었다. 이 소설은 영화화해도 좋을것 같다. 정만선 역할에 남주혁 얼굴이 번뜩 떠올랐다. 훔... 이제 어린 고해심과 하덕자 박문희를 캐스팅하러 가야겠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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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면 그곳이 특별해진다 - 도발하는 건축가 조진만의 생각노트
조진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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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면 그곳이 특별해진다>의 부제는 ‘도발하는 건축가 조진만의 생각노트’이다.

“좋은 건축은 우리 삶을 도발한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다양한 건축물과 건축가들의 도발적인 작업들로 인해 새롭게 형성될 사회적 관계는 어떤 것이고, 그곳에서 우리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지 이 책에서 풀어낼 것임을 예고한다. 그가 말하는 도발하는 건축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 책날개의 저자소개

                            

이 책의 구성은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Part 1. 건축은 도발이다 에서는 건축의 정의와 역할에 대해, Part 2. 우리가 그 도시를 사랑한 이유는 사랑받는 도시를 만드는 건축의 비밀을, Part 3. 왜 ‘만들다’가 아니고 ‘짓는다’일까? 에서는 좋은 건축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더하기보다는 빼기를 강조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러하다.

 

진정한 완성은 미완을 품음으로써 사용하는 사람들이 채울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여백을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건축이라 칭하지 않아도 최근에는 미니멀리즘이란 이름으로 비우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 의미와 방향성은 알지만 집을 비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러 책이나 TV프로그램에서 정리와 관련된 내용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면서도 정작 내가 사는 공간을 비우기란 어쩜 그렇게 잘 안 되는지...

건축가의 노트를 엿보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잡았다. 건축이야기에서 어김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공간에 대한 사유를 시작으로 거창한 담론이 아닌 건축과 내 공간이 접목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넘겼다.

조진만 건축가가 설계한 일반 가정집의 사례를 관심 있게 읽었다. 20년 넘도록 아파트에서 살다가 3년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직접 지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이런 개인 주택 건축 내용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더 자세히 읽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어느 분야에나 통하는 모양이다.

3대 6명의 가족구성원이 사는 집, ‘층층마루집’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p.63

좋은 건축이란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공간을 제공하고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이 창조적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비로소 집을 통해 새로운 가족 관계가 생겨나는 것이다.

우리집을 지을 때 나는 무슨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가 돌아본다. 시공업체 선택을 잘못해서 스트레스 받았던 기억뿐이다. 당시 내 기준은 편하고 짧은 동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내 집에 대한 철학은 없었고 어떤 가치를 두겠다는 생각도 못했다. 처음이라 무지했고 시간에 쫓겨 마음만 급했다. 저자는 집은 하나의 작은 도시이자 소우주라고 했다. 나는 이미 지나왔지만 처음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저자의 이 말을 전달해주고 싶다.

 

 

위 사진은 어떤 공간으로 보이는가? 같은 용도의 공간이다. 그런데 위와 아래의 느낌은 꽤나 달라 보인다. 위는 공원같고 아래는 공공건물처럼 보인다.

실제로 위는 스웨덴의 공동묘지 우드랜드이고, 아래는 이탈리아 산 카탈도 공동묘지이다. 공동묘지라는 공통점보다 더 놀라운 점은 두 공간 모두 도시 안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들이 공동묘지를 도시에 두는 이유를 이렇게 유추한다. 죽음을 삶 가까이에 두어 인간과 도시가 겸허해질 수 있다고!

‘비움으로 채워지는 도시’는 충남 공주의 제민천과 서울 옥수역 고가차로로 독자를 데려간다. 두 공간 모두 사람들의 왕래가 적었던 공간이 정비되어 사람들이 모이고 문화가 꽃피우는 공간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민천은 사진만으로 정보가 부족하여 찾아봤지만 책에서 소개한 공간의 이름이 정확하지 않아서인지 제대로 검색되지 않았다. 옥수역은 고가다리 하부공간이 ‘다락옥수’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되어 동네분위기까지 바뀌었다고 한다.

좋은 건축이란 어떤 것일까? 저자는 훌륭한 설계는 지어진 후 100년이 지나서도 기능한다고 했다. 옛 소련의 그리스도 대성당을 폭파해버리고 설계 공모로 당선되었던 것이 독소전쟁 때문에 건설되지 못했던 사례를 든다.

 

연결해서 우리나라 설계 공모의 사례를 설명하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특히 세종시 정부청사는 당초 공모 당선작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진행된 것을 짚는다. 좋은 계획이 늘 좋은 결과를 낳지는 못하지만 급조된 계획이 전문성 없는 사람들에 의해 실현되는 것, 그런 일에 세금이 낭비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저자는 좋은 건축에서 ‘감동’과 ‘사회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축을 뜻하는 ‘architecture’는 크다는 뜻과 기술이라는 의미가 합쳐져 이른바 ‘큰기술’이라 할 수 있지만 기술의 궁극적 목표는 ‘투명함’이므로 그 안에 본질적 삶의 가치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러니 ‘감동’과 ‘사회적 메시지’가 없다면 건축은 구조물을 짓는 ‘공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진만 건축가의 생각노트를 덮으며 내가 다시 집을 짓는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들짝 놀랐다. 집 지으며 10년은 늙었다고! 이 짓을 다신 하지 않겠다! 고 큰소리 쳤는데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 기막힌다. 만약 다시 하게 된다면 그 때는 긴 호흡으로 찬찬히 해보고 싶다. 사회적 메시지까지는 아니어도 ‘감동이 있는 집’은 가능하지 않을까? 실현가능성은 아주 낮은데 머릿속에선 이미 투시도가 그려지고 있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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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 이동, 식민, 이민의 세계사
다마키 도시아키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in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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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하는 사람들=이민’이라는 관점에서 세계사를 바라보면 인간이 어떻게 문명을 만들고 전파했는지, 그리고 세계가 어떻게 하나의 공동체로 이어졌는지 전체적인 구도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올 것이다. 또 그 과정에서 생긴 문제와 그 문제가 오늘날 과제로 남았다는 사실도 실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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