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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면 그곳이 특별해진다 - 도발하는 건축가 조진만의 생각노트
조진만 지음 / 쌤앤파커스 / 2021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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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나면 그곳이 특별해진다>의 부제는 ‘도발하는 건축가 조진만의 생각노트’이다.
“좋은 건축은 우리 삶을 도발한다.”
프롤로그에서 그는, 다양한 건축물과 건축가들의 도발적인 작업들로 인해 새롭게 형성될 사회적 관계는 어떤 것이고, 그곳에서 우리의 일상은 어떤 모습일지 이 책에서 풀어낼 것임을 예고한다. 그가 말하는 도발하는 건축이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 책날개의 저자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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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구성은 세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Part 1. 건축은 도발이다 에서는 건축의 정의와 역할에 대해, Part 2. 우리가 그 도시를 사랑한 이유는 사랑받는 도시를 만드는 건축의 비밀을, Part 3. 왜 ‘만들다’가 아니고 ‘짓는다’일까? 에서는 좋은 건축의 다양한 사례를 소개한다.
최근 여러 분야에서 더하기보다는 빼기를 강조한다. 이 책의 저자도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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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완성은 미완을 품음으로써 사용하는 사람들이 채울 수 있는 생동감 있는 여백을 만드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을 건축이라 칭하지 않아도 최근에는 미니멀리즘이란 이름으로 비우는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있다. 그 의미와 방향성은 알지만 집을 비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여러 책이나 TV프로그램에서 정리와 관련된 내용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끼면서도 정작 내가 사는 공간을 비우기란 어쩜 그렇게 잘 안 되는지...
건축가의 노트를 엿보고 싶은 마음에 이 책을 잡았다. 건축이야기에서 어김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공간에 대한 사유를 시작으로 거창한 담론이 아닌 건축과 내 공간이 접목되는 지점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감으로 책장을 넘겼다.
조진만 건축가가 설계한 일반 가정집의 사례를 관심 있게 읽었다. 20년 넘도록 아파트에서 살다가 3년전 지금 살고 있는 집을 직접 지었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이런 개인 주택 건축 내용은 쳐다보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더 자세히 읽게 된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어느 분야에나 통하는 모양이다.
3대 6명의 가족구성원이 사는 집, ‘층층마루집’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좋은 건축이란 해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의 공간을 제공하고 거기서 생활하는 사람이 창조적으로 채워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비로소 집을 통해 새로운 가족 관계가 생겨나는 것이다. |
우리집을 지을 때 나는 무슨 철학을 가지고 있었던가 돌아본다. 시공업체 선택을 잘못해서 스트레스 받았던 기억뿐이다. 당시 내 기준은 편하고 짧은 동선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내 집에 대한 철학은 없었고 어떤 가치를 두겠다는 생각도 못했다. 처음이라 무지했고 시간에 쫓겨 마음만 급했다. 저자는 집은 하나의 작은 도시이자 소우주라고 했다. 나는 이미 지나왔지만 처음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저자의 이 말을 전달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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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사진은 어떤 공간으로 보이는가? 같은 용도의 공간이다. 그런데 위와 아래의 느낌은 꽤나 달라 보인다. 위는 공원같고 아래는 공공건물처럼 보인다.
실제로 위는 스웨덴의 공동묘지 우드랜드이고, 아래는 이탈리아 산 카탈도 공동묘지이다. 공동묘지라는 공통점보다 더 놀라운 점은 두 공간 모두 도시 안에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그들이 공동묘지를 도시에 두는 이유를 이렇게 유추한다. 죽음을 삶 가까이에 두어 인간과 도시가 겸허해질 수 있다고!
‘비움으로 채워지는 도시’는 충남 공주의 제민천과 서울 옥수역 고가차로로 독자를 데려간다. 두 공간 모두 사람들의 왕래가 적었던 공간이 정비되어 사람들이 모이고 문화가 꽃피우는 공간이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제민천은 사진만으로 정보가 부족하여 찾아봤지만 책에서 소개한 공간의 이름이 정확하지 않아서인지 제대로 검색되지 않았다. 옥수역은 고가다리 하부공간이 ‘다락옥수’라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되어 동네분위기까지 바뀌었다고 한다.
좋은 건축이란 어떤 것일까? 저자는 훌륭한 설계는 지어진 후 100년이 지나서도 기능한다고 했다. 옛 소련의 그리스도 대성당을 폭파해버리고 설계 공모로 당선되었던 것이 독소전쟁 때문에 건설되지 못했던 사례를 든다.
연결해서 우리나라 설계 공모의 사례를 설명하며 아쉬움을 토로한다. 특히 세종시 정부청사는 당초 공모 당선작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진행된 것을 짚는다. 좋은 계획이 늘 좋은 결과를 낳지는 못하지만 급조된 계획이 전문성 없는 사람들에 의해 실현되는 것, 그런 일에 세금이 낭비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저자는 좋은 건축에서 ‘감동’과 ‘사회적 메시지’를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건축을 뜻하는 ‘architecture’는 크다는 뜻과 기술이라는 의미가 합쳐져 이른바 ‘큰기술’이라 할 수 있지만 기술의 궁극적 목표는 ‘투명함’이므로 그 안에 본질적 삶의 가치가 담겨 있어야 한다. 그러니 ‘감동’과 ‘사회적 메시지’가 없다면 건축은 구조물을 짓는 ‘공학’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조진만 건축가의 생각노트를 덮으며 내가 다시 집을 짓는다면... 이라는 생각이 들어 화들짝 놀랐다. 집 지으며 10년은 늙었다고! 이 짓을 다신 하지 않겠다! 고 큰소리 쳤는데 한 번 더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니 기막힌다. 만약 다시 하게 된다면 그 때는 긴 호흡으로 찬찬히 해보고 싶다. 사회적 메시지까지는 아니어도 ‘감동이 있는 집’은 가능하지 않을까? 실현가능성은 아주 낮은데 머릿속에선 이미 투시도가 그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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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컬처블룸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