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 음악에 살고 음악에 죽다
금수현.금난새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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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지휘자로 가장 유명한 사람!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금난새일 것이다. 티비에서 봤든 공연장에서 봤든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다. 나는 그가 하는 지휘를 직접 본 것은 두 번뿐이고 꽤 오래 전이다. 미디어에서 만났을 때의 인상 그대로 공연장에서도 그는 늘 반달눈을 하고 부산 사투리로 자상하게 곡 해설을 해주었다. 보통 클래식하면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금난새씨는 같은 경상도 사람으로서 경계심 1단은 허물었고, 특유의 눈웃음으로 2단도 허물어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내겐 그랬다. 그러다가 적극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면서부터는 외국 연주자나 지휘자에 관심을 가지다가 클라우디오 아바도구스타보 두다멜의 팬이 되면서 금난새씨는 점점 멀어져갔다.

 

이번에 다산북딩스 활동으로 받게 된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은 금난새씨가 쓴 책이라고 해서 기대하고 받았다. 제목부터 음악이 들어있고 그와 아버지가 음악 혹은 교향곡을 소재로 주고 받은 이야기일 것으로 예상했다. 띠지의 설명도 이렇게 되어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지휘자 금난새가 아버지와 함께 써 내려간 삶과 음악 이야기!”

 

그런데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대화나 편지는 아니었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금난새씨의 문장을 옮겨본다.

 

올해는 아버지가 세상에 오신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버지는 19193.1운동이 일어났던 해에 태어나셨습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100세 넘게 사시는 분들이 많은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어느덧 제가 아버지 돌아가셨을 즈음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근래 들어 아버지가 더욱 그립습니다.

이 책은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자식들을 대표해 아버지와 제가 함께 쓴 글들로 엮었습니다. 아버지는 19623월부터 6월까지 모 일간지에 짧은 칼럼을 연재하셨습니다. 연재가 끝난 뒤에는 이를 모아 <거리의 심리학>이라는 책으로 펴내셨습니다.

본래 그 책에는 글 100편이 실려 있었는데, 요즘 독자들에게 친숙한 글로 75편을 추려 다듬은 뒤 나머지 25편의 글을 제가 새로 썼습니다. 그래서 다시 100편이 되었습니다. 좀 색다르게 책을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으로 꾸며봤습니다. 1악장부터 제3악장까지의 글이 아버지가 쓴 글이고, 마지막 제4악장의 글이 제가 쓴 글입니다.

 

 

 

이제 책 내용을 소개해야 하는데 한 꼭지가 아주 짧다. 아버지의 글은 옛날에 쓴 글이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20~30대가 읽으면 고개 갸웃거릴 내용도 제법 있다. 내가 예상했던 음악이야기는 많지 않고 예전의 문화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알게 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아들의 이야기로 넘어오면 음악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4악장에서 금난새씨의 음악적 경험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비롯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심정이 표현된다.

 

, 아버지 금수현씨에 대한 소개가 늦었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로 시작하는 가곡 그네의 작곡가이며 음악 용어를 한글로 바꾸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 외 많은 활동은 책 날에게 있는 소개로 대신한다.

 

 

각 악장에 제목은 이렇게 달았다.

1악장 거리에서 본 풍경

2악장 사람 속마음 들여다 보기

3악장 생각이 보배다

4악장 인생은 음악과 같다

 

아버지 금수현씨의 에피소드 중에 ~~~ 옛날이여!!”라는 노래가 절로 떠오르는 것들이 꽤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이선희의 이 노래보다 더 옛날 이야기다.지금은 아예 사라진 물건이나 요즘 세태와는 달랐던 시절,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내용들을 소개해 본다.

 

p.56

대개 자동차 넘버란 복잡할수록 좋고 전화번호는 간단할수록 좋다고 한다. 자동차의 경우는 규칙 위반을 했을 때 빨리 달아나려는 심보고, 전화의 경우는 외기 쉽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손가락 수고에서 보면 ‘1111’이 제일이고 ‘0099’가 힘들다.

 

이 부분에서 ‘0099가 왜 힘들다는 말이지?’ 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다이얼식 전화기를 사용해 본적이 없어서 일 것이다. 다이얼식 전화기로 전화를 걸 때 번호가 있는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시계방향으로 돌려야 하는데 가장 앞쪽이 숫자 1이고 맨 끝이 0이기 때문이다. 이 설명을 읽고도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p.97

우리나라 어린이에게 부족한 것이 셋 있는데 첫째 칼슘이요, 둘째 기름이요, 셋째 설탕이라고 한다. 고기는 이 중 칼슘과 기름을 포함하고 있으니 어린이에게 먹여야 한다는 게 영양학자의 변이다. 당분은 머리가 좋아진다고도 한다. 그래서 설탕 많이 먹는 도시 아이들의 입학률이 좋아지는지 모를 일이다.

 

영양이 많이 부족하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놀라운 것은 당분이 머리가 좋아진다고 생각했다니!! 도시 아이들은 설탕을 많이 먹어서 공부를 잘한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명절 선물로 설탕이 인기였나 보다.

 

버스 차장에 대해서도 아예 모르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버스 차장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발음할 때 끝을 흘리는 것을 놀리듯 따라하는 사람들과 어린 버스 차장의 죽음을 오버랩한 글이었다. 차장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글에서 세상에 대한 관심,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p.134

얄궃은 승객은 차장에게 도전하여 더욱 마음을 울린다. 지칠대로 지쳐 발음조차 흐리게 하여 다소라도 피로를 줄이려는 어린 생활 투사, 그중 한 사람 14세의 이 양이 합승에서 떨어져 죽었다니 참으로 가슴이 멘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는 외국영화 키스씬처럼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쓴 꼭지의 시작은 고양이였다. 그 글의 시작을 고양이로 하며 단 여섯줄을 썼다. 그런데도 고양이를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중성화 수술 같은 건 하지 않았을 시절에, 시도 때도 없이 발정난 고양이의 울음 소리는 분명 소음이었을 것이다. 그 소리가 어떤 이에게는 소름끼칠 만큼 혐오스러운 것일 수도 있는데 이 분은 이렇게 표현했다.

 

고양이 연애가 흥밋거리다. 달밤에 아무리 쫓아도 창밖에서 목메어 부르는 로미오가 그만이다.”

 

역시 음악하시는 분답다! 같은 고양이 키우는 사람으로서 고양이 사랑을 저렇게 표현하다니~~ 리스펙트!!.ㅎㅎ

 

금난새씨의 4악장에는 주로 메세나 활동이 많이 소개되어 그가 음악가로서 사회에 기여한 활동을 알 수 있었다. 부산의 고려제강 터를 재활용한 F1963에 대한 소개도 나와 반가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1977년 카라얀 콩쿨에서 같이 입상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는데 좀 놀랐다. 그 많은 연주중에서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을 오늘 음악감상실에서 들었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진과 콩쿨 내용을 읽다니 신통방통한 우연이다.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음악적 내용 대신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내용과 격세지감을 느낄 내용들이었다.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아버지의 악장에서 옛 정취를 느끼고 그 분의 감성을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나이 어린 독자가 읽는다면 별 감흥을 못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본 젊은이들이, 겪지 않은 옛 시절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뉴트로 열풍까지 일으킨 걸 보면 이 책을 읽는 젊은 독자들의 반응이 그리 나쁘지 만은 않을 것 같다. 물론 나처럼 올드한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하겠지만...

 

에필로그 제목이 아름다운 선물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천성으로 이런 저런 것을 시도하는 삶을 사는 것을,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고 썼다. 그 모든 달란트가 바로 아버지에게서 받은 아름다운 선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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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버니,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마
에스더 김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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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작년부터 애니메이션이나 카톡 이모티콘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에세이로 출간하는 게 유행이 되고 있다.

RHK 서평단으로 받은 책 <에스더버니, 어디서든 나를 잃지 마>도 토끼 캐릭터인 에스더버니를 내세운 책이다.

'헉... 이 나이에 이런 책을?'

오글거렸다.

'곰돌이 푸보다 더 애기애기하고 부농부농한 토끼가 나오는 책을 읽고 리뷰를 써야하다니ㅠ'

걱정스러웠다.

'서평단이 아니었다면 집지도 않았을 책인데...'

그래도 읽어야지 어쩌나!!

지금부터 책 소개 스타뜨~~

 

 

 

 

저의 이름은 에스더 김  

한국인 부모 밑에서 자랐지만

LA에서 태어났고 도쿄에서 10대를 보낸  한국계 미국인이에요.

작가는 이민자 2세로 자라면서 정체성 혼란을 겪었고 다른 문화권의 차이로 외로움도 많이 느꼈다.

작가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단점만 보다가 그것을 뒤집으면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자신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프롤로그로 작가 자신을 소개하고, 내면에 들어있는 여러 버니들 모두 자신임을 깨닫고 즐기기로 한다.

그리고 탄생한 5개의 캐릭터들~

 

지금부터는 색깔 다른 버니들 소개!!

 

1장 오늘 아침엔 행복을 샀어 에서는 귀에 핑크리본 맨 "리본버니" 등장~

 

 

그.런.데.

귀여운 토끼가 콩콩 뛰어와서는 내 앞에서 귀를 쫑긋쫑긋 거리며, 자기계발서와 비슷한 류의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평정심을 잃지 않고 읽어나갈지 심히 걱정스러웠다.

 

 

앗 또, 그.런.데.

놀라고 말았다.

어차피 거기서 거기, 다 아는 말이겠지!

하면서 읽다가!!

눈에 번쩍 띄는 문장 발견!!

 

 

오홋!!

그림도 귀엽지만 내 맘에 꽂히는 문장을 고르면 되겠다!

 

 

"타인을 너무 이해하려고 하지 마세요."

 

"힘든 것은 힘들다고 말하세요."

 

 

 

"스스로의 팬이 되어 주세요."

좋아하는 작가들의 출판 사인회에 가거나 전시회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해요. 그들이 빛나는 모습을 보는 걸 좋아하고 그들이 멋진 것들을 창조하는 모습을 지지해요 그런 모습뿐 아니라 그들의 덜렁거리는 모습이나 약한 모습을 보는 것도 좋아해요. 그런 나약한 모습은 오히려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들어요.

만약에 자신을 그런 식으로 응원한다면 어떨까요? 나의 가장 열렬한 팬이 나라면요?

팬의 입장에서 나를 보았을 때 얼빠지고 이상하고 안 좋은 모습을 보인다고 해서 과연 싫어하게 될까요?

만약 내가 하는 일이 잘 안되거나 스스로가 작아 보일 때면, 한 걸을만 물러서서 당신의 팬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나 자신을 보세요.

 

 

2장. 인생이 언제나 쓴맛은 아닌걸 에는 워커홀릭이면서 헤비스모커에 항상 통화중인 "옐로우버니" 등장~~

 

 

 

눈의 표정이 계속 메롱한 상태인데 그래도 귀엽다.

 

"힘들면 힘낼 수 있을만큼만 해요."

 

 

 

 "취향이 비슷한 친구를 만나요."

같은 것을 공유한다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느낌이 들거든요.

 

 

"먼저 연락을 해보세요.."

 

 3장 외로움마저도 사랑스러운 오늘 은 감성적인 "로즈버니"의 이야기~~

 

 

 

"좋아하는 걸 떠올려요."

"어제보다 많이 웃어요."

 

"언젠가 해결될 일이에요."

 

 

 

무엇을 가장 많이 보는지가 중요해요."

우리는 우리가 소비하는 것이 됩니다. 자꾸만 울적해지는 주말에는 내 마음에 좋은 것들을 공급해야 해요. 가끔씩 내 머릿속에 무엇을 넣는가를 확인했으면 해요. 보는 대로 된다는 걸 기억하세요.

 

 

4장 모두가 나를 좋아해 에는 색과 향기로 환하게 해주는 "라벤더버니"와 사색가 "크림버니"

 

 

 

 

"나를 위한 감사절을 만들어요."

추수감사절에 생각해봤어요.

감사할 것들이 수도 없이 많지만, 자신에게도 감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새로운 일을 시도하고, 변화를 위해 노력했고, 약하지만 나 자신다운 모습을 찾으려 했고,

억지로 체중 감량을 하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나, 일을 열심히 했던 나 자신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요.

매일 힘내고 있는 나 자신을 꼭 껴안아 주세요.

매일 열심히 사는 나, 오늘도 정말 수고했어요.

 

"잘 하는 것보다 계속 하는 게 중요해요."

 

"긍정기운을 주는 친구를 만나세요."

 

"나부터 사랑해 주세요."

 

마지막, 스케치 드로잉은 보너스~

 

에필로그에는 작가와 한 Q&A가 나오는데 그 중 작가에게 에스더버니바 어떤 의미인지에 대한 답을 옮긴다. 사진과 리뷰만으로 이 캐릭터를 이해하기 힘든 이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다.

 

에스더버니는 귀엽고 보들보들한 외모를 가졌지만 성격은 예민해요. 제 자신도 똑같아요. 에스더 김은 행복하고 강해 보이지만 슬픈 면도 있고 예민한 면도 있어요. 그래서 이 토끼들은 여러 면에서 저와 딱 맞아요. 에서더버니는 언제나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기 위해 큰 귀를 기울이고, 타인에게 집중하기 위해 항상 옆을 보고 있어요.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 않아서 항상 멀찍이서 지켜보려고 해요. 그런 버니들의 모습이 때때로 일과 삶의 균형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아 힘든 현대인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에스더버니를 통해 그런 부분도 보여주려고 하죠. 에스더버니가 저와 비슷한 많은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는 존재였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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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연한 고양이
최은영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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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시점 짧은 소설'이란 부제를 달고 나온 소설 <공공연한 고양이>

고양이 나오는 건 무조건 읽고 본다!

 이 소설집에 소설을 쓴 작가들 10명 중 책을 읽어본 작가는 세 명, 그 중 두 명은 관심있는 작가다.

 작가 소개를 보니 이 들도 다 집사!!

 그저 반갑고, 집사작가라면 고양이에 대해 더 잘 묘사했을거라 기대하고 읽었다.

 고양이가 등장하는 10편의 소설이 실린 이 단편집은 200쪽이 채 안된다.

 그러니 소설의 분량도 짧아서 앉은 자리에서 한 번에 다 읽을 수 있다.

이렇게 각기 다른 작가의, 짧은데 많은 소설이 실린, 소설집의 경우

 "헷갈린다!"

 "뒤섞인다!"

 "남는 게 없다!"

 같은 하소연이 많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렇지 않다.

 나에게만??

 아, 집사들에겐 그럴 것이다!

 10명의 작가들 중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가 있다면 또 그럴 것이다!

 뭐, 그렇지 않더라도 10편 중 한편이라도 재미있거나 감동을 받았다면 괜찮은거다.

 앗, 출판사나 작가는 안 그럴까??

그만 각설하고 책 내용으로 들어가보자.

 그동안 고양이 시점으로 쓰여진 소설로 대표작은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이다.

 이 소설에서도 고양이가 직접 말을 하는 1인칭도 있고 인간의 시점이지만 고양이가 동등하게 주인공 역할을 하기도 한다. 소설의 형식이지만 일기같기도 수기같기도 한 작품들도 있었는데 그 이유는, '고양이'하면 숱하게 들어온 사연들이라서 소설같지 않기도 했다.

그중 흥미로운 소재를 사용한 것은 김멜라의 "유메노유메"와 양원영의 "묘령이백"이었다.

 

"유메노유메"는 고양이가 사람이 되는 이야기다. 사람도 여자, 고양이도 여자인데 여자 둘이 하는 스킨십이 찐하게 묘사된다. 여자사람 입장에선 남들 보는 앞에서 과한 스킨십을 하는 (사람으로 변한)고양이때문에 당황스럽고, 고양이 입장에서는 고양이일때 하고싶어도 못했던 것들을 하는데, 그걸 저지하는 사람이 이상한거다. 그동안 소설에서 사람같이 행동하는 고양이나 사람으로 변신한 고양이를 소재로 한걸 봤지만 이런 전개는 또 첨이라 신박했다.

고양이 입장에서 표현한 문장이 찡했다.

p. 149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미애는 내가 장어덮밥이나 와규 때문에 사람이 된 걸 좋아하는 줄 알지만 사람이 되어 좋은 건 미애를 만질 수 있어서다. 고양이였을 땐 미애의 손길을 기다렸지만 이제는 내가 먼저 미애의 손을 잡고 미애의 발등 위에 내 발등을 올리며 미애의 몸을 느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 미애와 마주 보고 누워 뽀뽀하기. 미애의 코에서 나는 따뜻한 숨결을 느낄 수 있다면 인간이 된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나도 우리 냥이의 코에 내 코나 얼굴을 갖다대고 숨결을 느끼는 걸 좋아한다. 특히 루키의 콧김이 가장 좋은데 세마리중 얘만 내게 그 숨을 제대로 전달해준다. 오키는 내가 얼굴 대는걸 허락하지 않고 토르는 아직 숨이 가늘어서 잘 느껴지지 않는다.

 

 

 

"묘령이백"은 가히 드라마 <도깨비>의 고양이 버전이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저승사자는 동물을 데려가는 임무를 맡고 있는데 200년째 저승으로 못데려가고 있는 고양이가 바로 주인공 묘령이백이다. 왜냐하면 로봇공학자였던 첫번째 주인이 너무나 고양이를 사랑한 나머지 로봇고양이의 몸에 자기 고양이의 뇌를 이식해서 계속 살아가게 된 것이다. 첫번째 주인이 죽고 그후에 만난 주인들도 묘령이백을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죽지않게 된다.

일생이 짧은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건 그들과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사는 것이다. 그렇다보니 이 소설의 소재처럼 자기 고양이가 죽지 않고 계속 좋은 주인을 만나길 바라는 꿈을 꾸는 거다. 비록 자기가 먼저 죽더라도 말이다.  이 짧은 소설은 기발한 환타지라서 재밌었는데 반전까지 있어서 끝까지 웃게 만들었다.

 

소개한 두 소설 모두 환타지였다. 우리 집사들은 고양이를 세상에서 귀한 존재로 모시며 평생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이런 마음자체가 환타지인걸까?싶기도 하지만... 그들과 좀 더 교감하고 싶고 더 더 많이 사랑하고 싶다.

그런 집사들의 마음을 담은 소설집이라서 읽고 나서도 계속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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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속 남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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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토 카리시’라는 작가로 이탈리아 소설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제목은 <미로속 남자>. 전편인 <속삭이는 자>와 <이름없는 자>라는 스릴러 소설로 이미 전 세계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번 소설 <미로 속 남자>는 영화로 만들어져 10월에 이탈리아에서 개봉했으며 작가가 직접 감독까지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작가가 영화 감독도 해서 그런지 텍스트를 읽는데 마치 영상을 보는 듯 했다. 4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이었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였다면 눈을 가렸을만한 장면에선 빨리빨리 척장을 넘기고 싶을만큼 오싹할 정도였다. 특히 범인의 행각이나 주인공이 당하는 장면, 모아둔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는 장면들은 그냥 영상같았다. 이건 작가가 감독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책을 다 읽은 후 역자 후기를 보고서야 그가 영화감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가 개봉된다면 꼭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 소설은 두 축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한 축은 ‘사만타 안드레티’의 이야기로 15년간 납치되었다가 탈출했는데 기억을 상실한 상태이다. 다른 한 축은 사설탐정 ‘브루노 젠코’인데 사만타가 납치당했을 당시 그녀의 부모로부터 돈만 받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범인 찾기에 나선다. 사만타는 열 세살 때 납치를 당했다가 15년 만에 겨우 탈출했는데 자신은 줄곧 미로 속에 있었다고 말하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도움을 주는 사람은 그린 박사이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숨겨졌던, 아니 숨기고 싶은 기억을 하나씩 끄집어 내어 퍼즐 맞추듯이 맞추는 중이다. 탐정 브루노는 온갖 기지를 발휘해서 사만타를 납치한 사람 가까이로 한발 한발 접근한다. 그러는 와중에 경찰들 속여먹는 건 기본에 죽을 고비도 넘기고, 탐정의 촉으로 범인이 만들어둔 덫에 걸리지 않고 잘 넘어 다닌다.

사만타는 자신이 갇혀있던 미로 속에서 출산까지 하게 되었음을 기억하기에 이르는데 사만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영화 <룸>이 떠올랐다. 사만타는 새끼고양이가 있어서 돌보게 되었다는 얘기를 하자 그린 박사는 사방이 막힌 그곳에 새끼고양이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을지를 자꾸 추궁하듯 묻게 된다. 사만타는 자신의 아랫배에 흉터를 만지면서 자기가 낳은 아이를 새끼고양이라고 생각했음을, 기억의 왜곡을 깨닫는다. 한편 브루노는 점점 수사망을 좁혀가던 도중 여자친구가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한발 늦은 자신을 탓한다. 그러나 그 곳에 같이 있던 가해자가 범인의 꼭두각시였다는 것을 알고 점점 범인에게 다가가게 된다.

이 소설에서 범인은 늘 토끼 가면을 쓰고 다닌다. 일명 버니아저씨라는 사람을 탐정 브루노가 찾아 내게 되고 그가 어릴 때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으며 자신도 동일한 방식으로 어린 아이들을 감금 추행하는 짓을 저지른다. 아이들을 유인할 때 사용된 도구가 토끼 가면이고 토끼가 나오는 그림책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쓰인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읽힐 수 없는 성적인 내용이 숨어 있다. 그것을 브루노가 버니아저씨를 찾음으로써 확인하게 된다.

사실 가면 쓴 버니아저씨도 찾고 그에게 학대받은 로빈 설리반이 범인이었다는 것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좀 불쾌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스릴러적 재미를 가진 흡입력있는 소설이니까 더 쫄깃한 긴장감이 살아있게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서 밝혔듯이 이미 영화로 만들었다니 스릴러적 요소가 어떻게 살아움직일지 더 궁금해진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소설의 줄거리를 다 쓴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띄엄띄엄 소개했으니 사이사이엔 더 재미있는 내용들이 들어있다. 무엇보다 뒤통수 심하게 때리는 결말에서는 깜짝 놀라서 읭? 내가 소설 잘못 읽었나? 하고 앞으로 다시 돌아갔다 왔다. 그러니 이 리뷰를 읽고 소설을 안 읽으면 아니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소설가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고 장르소설 읽는 쾌감을 꼭 누리길 바란다.

소설을 다 읽은 뒤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이런 사실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이유가 다 있었음을 확인했다.

법학과 범죄심리학을 전공했고 이탈리아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마를 인터뷰하면서 범죄와 범죄자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었다. 소설 <이름 없는 자>를 집필하던 중에는 가출 이후 상당기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온 여학생을 인터뷰한 뒤, 그 경험을 작품 속에 오롯이 풀어내기 위해 자신이 직접 주변과 일체 연락을 끊고 잠적해 다른 사람처럼 살기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 스릴러와 범죄물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것은 작가로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는 뜻이다. 스릴러나 추리 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척 반가워할 작가다. 아니 이미 알고 있거나 팬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미로 속 남자>로 처음 만난 작가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을 앞으로 찾아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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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업 - 하 - 반룡, 용이 될 남자
메이위저 지음, 정주은 옮김 / 쌤앤파커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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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업> 상권에 이어 하권도 호로록 한 번에 다 읽었다. 중국 무협드라마를 보는 듯 스펙타클한 배경과 빠른 전개가 도중에 손놓기 힘들었다. 상권에서는 등장인물 소개, 각 집안에 대한 정보와 함께 여자주인공 왕현이 열다섯살에 결혼하고 나서 큰 일을 겪으며 단단해지는 과정이 주가 된다. 비록 정략결혼이었지만 예장왕과 왕현이 뒤늦게 부부간의 사랑을 확인하면서 끝이 났다.

하권은 상권보다 더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벌어지면서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여 끝까지 흥미진진하게 만들었다. 마지막에 사략으로 급 마무리되는 분위기라 뭐 이렇게 끝나지? 라고 생각했는데, 맨 뒤에 ‘후기’라는 이름으로 100여 쪽이나 되는 내용에 못 다한 이야기와 뒷이야기를 구성해 두었다. 영화로 치자면 좀 긴 쿠키영상 되겠다.

이 책은 앞에서도 밝혔다시피 한 번 잡으면 계속 읽게 되는 중독성이 있다. 쉽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각권이 무려 500쪽이 넘는데도 말이다. 문제는 이런 소설이 리뷰 쓰기가 쉽지 않다. 리뷰를 쓰다 자칫하면 줄거리만 줄줄 늘어놓는 꼴이 되는데 이 소설은 너무 길어서 그러지도 못한다. 또 대하소설 못지않은 길이와 내용, 여러 가지 사건들이 쉴 새 없이 벌어지는 통에 특정 사건을 고르기에도 난감하다. 왜냐하면 하나의 사건을 쓰다보면 그 사건 앞뒤로 벌어진 일들이 줄줄이 연결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렇게 쓰다 보니 리뷰 못 쓰는 변명을 하는 것 같다. 뭐, 그렇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이 소설 리뷰를 어떻게 잘 쓸까?” 고민고민 하다보니 이 멘트가 딱 떠올랐다.

 

"좋은데! 차~암 좋은데! 뭐라 말을 몬하겠네!"

 

그래도 뭐라 말을 하긴 해야 한다.

 

 

하권에서 연속되는 각종 사건들은 결국 주인공 왕현을 성장시키는 미션이었다. 테트리스처럼 맨 아래칸을 다 채우면 또 다른 막대기가 내려오고, 그것을 빈틈 없이 차곡차곡 쌓으면 또 아래칸이 내려가는 것처럼 그녀는 닥쳐오는 일들을 거침없이 하나하나 클리어해 나간다. 그것은 곧 그녀가 남편 예장왕의 패업을 이루게 하는 내조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조보다는 자신의 성장, 나아가 둘이 같이 이룬 제왕패업이 되는 것이다.

 

 

p.168

 

“부귀영화를 아무 대가 없이 얻는 줄 알았더냐?”

나는 자조했다.

“지난 세월 동안 너는 근사한 내 삶만 보았지. 내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가슴 졸이며 사는 것은 보지 못했다. 소금아, 네 운명만 기구한 것이 아니야. 근사한 삶 뒤에는 그만큼의 괴로움이 있는 법이다. 너에게는 너만의 세상이 있었는데 구태여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고 시기한 까닭이 무엇이냐?”

 

 

위 내용은 왕현의 삶과 자신을 비교하며 억울해하는 금아에게 왕현이 하는 대사이다.

왕실의 딸로 태어나 부러운 것 하나 없이 사는 것처럼 보이는 왕현도 자신의 자리에 걸맞는 삶을 살기 위해 쉬운 건 없었다는 대답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은 누구나 남의 손에 쥔 떡은 더 커 보이고, 내 고통은 제일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다보니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은 보잘것 없어 보이고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하기만 한다. 이것은 비교라는 할 필요 없는 짓 때문에 벌어지는 것이다. 물론 소설 속 왕녀와 하녀의 신분 차는 비교될 수밖에 없고 나는 왜 하녀인가?라는 억울함이 생길 수밖에 없다. 왕현은 태어나보니 그 자리라서 노력으로 가진 지위는 아니었으나 남편의 제왕패업의 길을 함께 이루기 위한 노력은 자발적 행위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성인물들 중 왕현처럼 행동한 사람은 없는 것만 봐도 왕현의 노력은 다르다.

이런 무협소설에서 꼭 등장하는 것이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의 모반 혹은 배신이다. 하권에서 가장 반전은 송희은이었다. 심복이자 친구라 믿었던 사람의 반역을 왕현이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는 여자 주인공 혼자 해낸 것이다. 왕현은 트릭을 만들어 둔 다음, 두 수 먼저 두어 시간차를 만들고 정면 승부를 한다. 송희은이 군사를 모으러 떠난 사이 적진이라 할 수 있는 그의 집에 직접 찾아가서 가족을 먼저 만나는 것이다. 남편 예장왕이 돌궐을 치느라 궁을 오래 비운 사이 쌍둥이를 혼자 출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생긴 일이었다. 작가는 주인공이 이런 큰 일들을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독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줌과 동시에 주인공의 성장을 자신과 동일시하는 감정을 느끼게끔하는 효과도 준다. 이런 부분이 이 소설에선 극대화되었기에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이 소설은 중국에서 이미 <강산고인>이라는 드라마로 만들어져서 내년에 방영예정이고 장쯔이가 주연이라고 한다. 텍스트를 읽으며 복식과 궁궐, 자연 배경 및 주인공을 상상했던 맛을 드라마를 통해 확인할 수 있겠다. 중국드라마의 스케일이야 워낙 크니까 다른 건 걱정 없는데 주인공 예장왕이 어떤 배우가 연기했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싱크로율이 떨어지면 드라마의 재미도 급하락 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 남자 배우는 잘 모르니까 우리나라 배우로 캐스팅을 한 번 해본다면! 조인성이나 박해수가 어울릴 것 같다. 조인성은 안시성에서 양만춘 역할을 잘 해냈고 박해수도 왕 역할에 꽤 어울릴 것 같다.

지극히 개취로 고른 인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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