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로 속 남자 속삭이는 자
도나토 카리시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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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나토 카리시’라는 작가로 이탈리아 소설을 처음 만나게 되었다. 제목은 <미로속 남자>. 전편인 <속삭이는 자>와 <이름없는 자>라는 스릴러 소설로 이미 전 세계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이번 소설 <미로 속 남자>는 영화로 만들어져 10월에 이탈리아에서 개봉했으며 작가가 직접 감독까지 했다고 한다.

이탈리아 소설은 처음 읽었는데 작가가 영화 감독도 해서 그런지 텍스트를 읽는데 마치 영상을 보는 듯 했다. 4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이었지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두 시간짜리 영화를 보는 것 같았다. 영화였다면 눈을 가렸을만한 장면에선 빨리빨리 척장을 넘기고 싶을만큼 오싹할 정도였다. 특히 범인의 행각이나 주인공이 당하는 장면, 모아둔 비디오테이프가 돌아가는 장면들은 그냥 영상같았다. 이건 작가가 감독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책을 다 읽은 후 역자 후기를 보고서야 그가 영화감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영화가 개봉된다면 꼭 보고 싶은 마음이다.

이 소설은 두 축으로 이야기가 구성된다. 한 축은 ‘사만타 안드레티’의 이야기로 15년간 납치되었다가 탈출했는데 기억을 상실한 상태이다. 다른 한 축은 사설탐정 ‘브루노 젠코’인데 사만타가 납치당했을 당시 그녀의 부모로부터 돈만 받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것을 속죄하는 마음으로 범인 찾기에 나선다. 사만타는 열 세살 때 납치를 당했다가 15년 만에 겨우 탈출했는데 자신은 줄곧 미로 속에 있었다고 말하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녀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도움을 주는 사람은 그린 박사이다. 그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의 숨겨졌던, 아니 숨기고 싶은 기억을 하나씩 끄집어 내어 퍼즐 맞추듯이 맞추는 중이다. 탐정 브루노는 온갖 기지를 발휘해서 사만타를 납치한 사람 가까이로 한발 한발 접근한다. 그러는 와중에 경찰들 속여먹는 건 기본에 죽을 고비도 넘기고, 탐정의 촉으로 범인이 만들어둔 덫에 걸리지 않고 잘 넘어 다닌다.

사만타는 자신이 갇혀있던 미로 속에서 출산까지 하게 되었음을 기억하기에 이르는데 사만타의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영화 <룸>이 떠올랐다. 사만타는 새끼고양이가 있어서 돌보게 되었다는 얘기를 하자 그린 박사는 사방이 막힌 그곳에 새끼고양이가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을지를 자꾸 추궁하듯 묻게 된다. 사만타는 자신의 아랫배에 흉터를 만지면서 자기가 낳은 아이를 새끼고양이라고 생각했음을, 기억의 왜곡을 깨닫는다. 한편 브루노는 점점 수사망을 좁혀가던 도중 여자친구가 살해당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되고 한발 늦은 자신을 탓한다. 그러나 그 곳에 같이 있던 가해자가 범인의 꼭두각시였다는 것을 알고 점점 범인에게 다가가게 된다.

이 소설에서 범인은 늘 토끼 가면을 쓰고 다닌다. 일명 버니아저씨라는 사람을 탐정 브루노가 찾아 내게 되고 그가 어릴 때부터 성적 학대를 당했으며 자신도 동일한 방식으로 어린 아이들을 감금 추행하는 짓을 저지른다. 아이들을 유인할 때 사용된 도구가 토끼 가면이고 토끼가 나오는 그림책이다. 그런데 이 소설에서 쓰인 그림책은 아이들에게 읽힐 수 없는 성적인 내용이 숨어 있다. 그것을 브루노가 버니아저씨를 찾음으로써 확인하게 된다.

사실 가면 쓴 버니아저씨도 찾고 그에게 학대받은 로빈 설리반이 범인이었다는 것을 읽을 때까지만 해도 좀 불쾌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스릴러적 재미를 가진 흡입력있는 소설이니까 더 쫄깃한 긴장감이 살아있게 영화로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앞서 밝혔듯이 이미 영화로 만들었다니 스릴러적 요소가 어떻게 살아움직일지 더 궁금해진다. 그런데 여기까지가 소설의 줄거리를 다 쓴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스포일러 방지를 위해 띄엄띄엄 소개했으니 사이사이엔 더 재미있는 내용들이 들어있다. 무엇보다 뒤통수 심하게 때리는 결말에서는 깜짝 놀라서 읭? 내가 소설 잘못 읽었나? 하고 앞으로 다시 돌아갔다 왔다. 그러니 이 리뷰를 읽고 소설을 안 읽으면 아니 된다.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소설가의 작품을 직접 읽어보고 장르소설 읽는 쾌감을 꼭 누리길 바란다.

소설을 다 읽은 뒤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니 이런 사실적인 표현을 거침없이 할 수 있는 이유가 다 있었음을 확인했다.

법학과 범죄심리학을 전공했고 이탈리아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마를 인터뷰하면서 범죄와 범죄자에 대해 더 깊이 파고들었다. 소설 <이름 없는 자>를 집필하던 중에는 가출 이후 상당기간이 지나 집으로 돌아온 여학생을 인터뷰한 뒤, 그 경험을 작품 속에 오롯이 풀어내기 위해 자신이 직접 주변과 일체 연락을 끊고 잠적해 다른 사람처럼 살기도 했다고 한다. 이 소설에 스릴러와 범죄물의 디테일이 살아있는 것은 작가로서 엄청난 노력을 한다는 뜻이다. 스릴러나 추리 소설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무척 반가워할 작가다. 아니 이미 알고 있거나 팬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미로 속 남자>로 처음 만난 작가 ‘도나토 카리시’의 작품을 앞으로 찾아 읽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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