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 음악에 살고 음악에 죽다
금수현.금난새 지음 / 다산책방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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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지휘자로 가장 유명한 사람! 하면 떠오르는 이름은 금난새일 것이다. 티비에서 봤든 공연장에서 봤든 그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다. 나는 그가 하는 지휘를 직접 본 것은 두 번뿐이고 꽤 오래 전이다. 미디어에서 만났을 때의 인상 그대로 공연장에서도 그는 늘 반달눈을 하고 부산 사투리로 자상하게 곡 해설을 해주었다. 보통 클래식하면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는데 금난새씨는 같은 경상도 사람으로서 경계심 1단은 허물었고, 특유의 눈웃음으로 2단도 허물어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내겐 그랬다. 그러다가 적극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듣게 되면서부터는 외국 연주자나 지휘자에 관심을 가지다가 클라우디오 아바도구스타보 두다멜의 팬이 되면서 금난새씨는 점점 멀어져갔다.

 

이번에 다산북딩스 활동으로 받게 된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은 금난새씨가 쓴 책이라고 해서 기대하고 받았다. 제목부터 음악이 들어있고 그와 아버지가 음악 혹은 교향곡을 소재로 주고 받은 이야기일 것으로 예상했다. 띠지의 설명도 이렇게 되어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지휘자 금난새가 아버지와 함께 써 내려간 삶과 음악 이야기!”

 

그런데 내 예상은 빗나갔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눈 대화나 편지는 아니었다.

이 책을 소개하는 금난새씨의 문장을 옮겨본다.

 

올해는 아버지가 세상에 오신 지 꼭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아버지는 19193.1운동이 일어났던 해에 태어나셨습니다. 의학이 발달하면서 100세 넘게 사시는 분들이 많은 요즘 기준으로 보자면 아버지는 너무 일찍 돌아가셨습니다. 어느덧 제가 아버지 돌아가셨을 즈음의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근래 들어 아버지가 더욱 그립습니다.

이 책은 아버지를 그리워하고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 자식들을 대표해 아버지와 제가 함께 쓴 글들로 엮었습니다. 아버지는 19623월부터 6월까지 모 일간지에 짧은 칼럼을 연재하셨습니다. 연재가 끝난 뒤에는 이를 모아 <거리의 심리학>이라는 책으로 펴내셨습니다.

본래 그 책에는 글 100편이 실려 있었는데, 요즘 독자들에게 친숙한 글로 75편을 추려 다듬은 뒤 나머지 25편의 글을 제가 새로 썼습니다. 그래서 다시 100편이 되었습니다. 좀 색다르게 책을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으로 꾸며봤습니다. 1악장부터 제3악장까지의 글이 아버지가 쓴 글이고, 마지막 제4악장의 글이 제가 쓴 글입니다.

 

 

 

이제 책 내용을 소개해야 하는데 한 꼭지가 아주 짧다. 아버지의 글은 옛날에 쓴 글이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다. 20~30대가 읽으면 고개 갸웃거릴 내용도 제법 있다. 내가 예상했던 음악이야기는 많지 않고 예전의 문화나 사람들의 사고방식을 알게 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나마 아들의 이야기로 넘어오면 음악과 관련된 내용이 나온다. 4악장에서 금난새씨의 음악적 경험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비롯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아들의 심정이 표현된다.

 

, 아버지 금수현씨에 대한 소개가 늦었다.

세모시 옥색 치마, 금박 물린 저 댕기가~~’로 시작하는 가곡 그네의 작곡가이며 음악 용어를 한글로 바꾸는데 큰 공헌을 했다. 그 외 많은 활동은 책 날에게 있는 소개로 대신한다.

 

 

각 악장에 제목은 이렇게 달았다.

1악장 거리에서 본 풍경

2악장 사람 속마음 들여다 보기

3악장 생각이 보배다

4악장 인생은 음악과 같다

 

아버지 금수현씨의 에피소드 중에 ~~~ 옛날이여!!”라는 노래가 절로 떠오르는 것들이 꽤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이선희의 이 노래보다 더 옛날 이야기다.지금은 아예 사라진 물건이나 요즘 세태와는 달랐던 시절, 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내용들을 소개해 본다.

 

p.56

대개 자동차 넘버란 복잡할수록 좋고 전화번호는 간단할수록 좋다고 한다. 자동차의 경우는 규칙 위반을 했을 때 빨리 달아나려는 심보고, 전화의 경우는 외기 쉽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손가락 수고에서 보면 ‘1111’이 제일이고 ‘0099’가 힘들다.

 

이 부분에서 ‘0099가 왜 힘들다는 말이지?’ 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다이얼식 전화기를 사용해 본적이 없어서 일 것이다. 다이얼식 전화기로 전화를 걸 때 번호가 있는 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시계방향으로 돌려야 하는데 가장 앞쪽이 숫자 1이고 맨 끝이 0이기 때문이다. 이 설명을 읽고도 못 알아들을 가능성이 높긴 하다.

 

p.97

우리나라 어린이에게 부족한 것이 셋 있는데 첫째 칼슘이요, 둘째 기름이요, 셋째 설탕이라고 한다. 고기는 이 중 칼슘과 기름을 포함하고 있으니 어린이에게 먹여야 한다는 게 영양학자의 변이다. 당분은 머리가 좋아진다고도 한다. 그래서 설탕 많이 먹는 도시 아이들의 입학률이 좋아지는지 모를 일이다.

 

영양이 많이 부족하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놀라운 것은 당분이 머리가 좋아진다고 생각했다니!! 도시 아이들은 설탕을 많이 먹어서 공부를 잘한다고 여겼던 모양이다. 그래서 명절 선물로 설탕이 인기였나 보다.

 

버스 차장에 대해서도 아예 모르는 독자가 있을 것이다. 버스 차장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발음할 때 끝을 흘리는 것을 놀리듯 따라하는 사람들과 어린 버스 차장의 죽음을 오버랩한 글이었다. 차장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글에서 세상에 대한 관심, 인간에 대한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p.134

얄궃은 승객은 차장에게 도전하여 더욱 마음을 울린다. 지칠대로 지쳐 발음조차 흐리게 하여 다소라도 피로를 줄이려는 어린 생활 투사, 그중 한 사람 14세의 이 양이 합승에서 떨어져 죽었다니 참으로 가슴이 멘다.

 

우리나라 영화나 드라마는 외국영화 키스씬처럼 은유적으로 표현하지 못한다는 내용을 쓴 꼭지의 시작은 고양이였다. 그 글의 시작을 고양이로 하며 단 여섯줄을 썼다. 그런데도 고양이를 얼마나 사랑하는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중성화 수술 같은 건 하지 않았을 시절에, 시도 때도 없이 발정난 고양이의 울음 소리는 분명 소음이었을 것이다. 그 소리가 어떤 이에게는 소름끼칠 만큼 혐오스러운 것일 수도 있는데 이 분은 이렇게 표현했다.

 

고양이 연애가 흥밋거리다. 달밤에 아무리 쫓아도 창밖에서 목메어 부르는 로미오가 그만이다.”

 

역시 음악하시는 분답다! 같은 고양이 키우는 사람으로서 고양이 사랑을 저렇게 표현하다니~~ 리스펙트!!.ㅎㅎ

 

금난새씨의 4악장에는 주로 메세나 활동이 많이 소개되어 그가 음악가로서 사회에 기여한 활동을 알 수 있었다. 부산의 고려제강 터를 재활용한 F1963에 대한 소개도 나와 반가웠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1977년 카라얀 콩쿨에서 같이 입상했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는데 좀 놀랐다. 그 많은 연주중에서 발레리 게르기예프의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6번을 오늘 음악감상실에서 들었는데 집에 돌아오는 길에 사진과 콩쿨 내용을 읽다니 신통방통한 우연이다.

 

 

이 책은 내가 기대했던 음악적 내용 대신 지나간 시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는 내용과 격세지감을 느낄 내용들이었다. 조금 실망스럽긴 했지만 아버지의 악장에서 옛 정취를 느끼고 그 분의 감성을 나눌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만약 나이 어린 독자가 읽는다면 별 감흥을 못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을 본 젊은이들이, 겪지 않은 옛 시절에 대해 흥미를 가지고 뉴트로 열풍까지 일으킨 걸 보면 이 책을 읽는 젊은 독자들의 반응이 그리 나쁘지 만은 않을 것 같다. 물론 나처럼 올드한 사람들은 충분히 공감하겠지만...

 

에필로그 제목이 아름다운 선물이다.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받은 천성으로 이런 저런 것을 시도하는 삶을 사는 것을, 아버지를 닮아가고 있다고 썼다. 그 모든 달란트가 바로 아버지에게서 받은 아름다운 선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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