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8일, 조력자살 - 나는 안락사를 선택합니다
미야시타 요이치 지음, 박제이 옮김 / 아토포스 / 2020년 8월
평점 :
절판


 

 

최근 책을 읽으면서 만약에 나라면?’이라는 생각을 거의 못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가정이 별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렇게 될 리 없는데 가정해보는 게 무슨 소용인가 싶기도 했고, 거의 매일 하루 한 권씩 책을 읽고 리뷰를 쓰다 보니 깊이 생각하기에 시간이 모자랐던 것도 사실이다. 문학은 문학대로, 비문학은 비문학대로 그 책의 장단점을 정리하는 위주의 리뷰를 써왔다.

 

그런데 <1128, 조력자살>을 읽으면서는 나라면 어떻게 할까?’를 계속 생각했다. 이 책은 일본인 저널리스트 미야시타 요이치씨가 쓴 조력자살 팔로잉 논픽션이다. 고단샤 논픽션상을 받은 전작 <안락사를 이루기까지>의 속편이다. 다계통 위축증(MSA)를 앓는 여성 고지마 미나씨가 스위스의 라이프서클이라는 곳의 조력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되는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린다. 처음 그녀가 작가에게 메일을 보낸 시점부터 인터뷰, 라이프서클에서의 마지막, 그리고 사후에 그녀의 언니 둘과의 정리 인터뷰까지 촘촘하게 실었다.

 

처음 고지마씨의 메일과 그녀의 블로그 글을 그대로 소개하고 그녀의 지나온 생에 대해 자세히 서술할 때 조금 답답했다. 그녀가 조력자살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을 표현하려는 건 알겠는데 성공했단 건지 못했단 건지를 알려주지 않고 뜸을 들이는 기분이었다. 거기에 또 다른 안락사를 희망하는 남자, ‘요시다 준의 스토리까지 교차 편집되어 있어 더 속도가 느렸다. 당장 뒤쪽으로 가서 결과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참았다. 밀당의 편집력이 작가의 것인지 편집자의 기술인지는 몰라도 나같이 성질 급한 사람도 고지마의 1128일을 인내하며 같이 맞이하도록 만들었으니 성공했다. 인정!!ㅎㅎ

 

나는 연명치료 거부 의향서를 써두어야겠다는 생각은 했지만 아직 실천은 못했다. 존엄한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본인에게 있고 그것을 지키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김영하 작가는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자신의 생을 마감하고 싶을 때 필요한 조력자의 모습을 묘사했다. 작년에 그 소설을 읽고 내 생의 결정을 내가 할 수 있는 게 당연한 게 아닌가 싶었고 스위스의 조력자살에 대한 기사를 찾아 읽게 되었다. 그 기사에는 동행했던 친구의 트라우마에 대한 내용을 다루었는데 그 현장을 지켜보는 이도 상처받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했었다.

 

<1128, 조력자살>의 저자는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의 사례를 소개하며 가족과의 소통을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 요시다씨는 말기암 환자로 아버지와 여동생에게 알라지 않고 스위스로 떠나려고 했다. 그러나 스위스로 가기 전에 암은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 작가는 그가 가족의 관심을 받고 싶고 그들 옆에서 죽음을 맞고 싶어 했다고 확신했다. 그와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아 집에 찾아가서 부친을 만나고 어떻게 죽었는지를 들은 작가는 스위스가 아닌 가족곁에서 생을 마감한 것이 요시다씨에겐 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고지마씨는 싱글이라 언니집에 들어가서 살면서 보살핌을 받았으며 언니들은 그녀의 고통을 생생히 지켜봤다. 여러 번의 자살 시도를 막으면서 동생이 스위스에 가야만 하는 이유를 서서히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세 자매는 같이 스위스행 비행기를 탔고 언니들은 동생의 최후를 지켜보았다. 행복하게 떠나는 동생의 곁을 지킨 것은 그들에게도 만족감을 주었다. 질병명도 다르고 마지막도 달랐지만 작가는 요시다씨와 고지마씨의 사례를 통해 그들 곁에 가족이 함께 했다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짚고 있다.

 

이 책은 안락사가 주제이지만 작가는 자신의 의견을 내지 않는다. 르포 기사를 쓰는  전공을 십분 발휘하여 안락사를 다양한 각도로 살핀다. 어떤 사람들이 안락사를 선택하려고 하는지, 일본을 포함한 세계의 안락사법을 알려주고, 일본에서 불법이지만 스위스의 단체 라이프서클이나 디그니타스라는 곳에서는 합법적으로 가능하다고 정보를 주는 것처럼 보이나 그렇다고 적극 권장하는 것도 아니다. 선택은 독자에게 맡기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임을 잊지 말라고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다. 조력자살 당일에 딸에게 말하지 않고 왔다며 집으로 돌아간 독일 남성의 사례를 굳이 왜 썼겠는가.

 

그래서 나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고지마씨처럼 뇌는 즉, 정신은 멀쩡한데 몸이 점점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침대에 누워서 호스를 통해 음식을 주입받아야 하고 똥오줌을 남이 치워줘야 되는 상태가 된다면? 살아야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몸보다 인간답지 못한 상태로게 누워있어야만 하는 것이 더 비참한 일이다. 그녀처럼 목을 매달려고 해도 몸에 힘이 없으니 계속 실패하게 된다면 조력자살을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가족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을 것이므로 조력자살의 당위성을 설득시켜서 유럽의 어디론가로 가야할 때 동행해야 한다. 과연 가능할까?

 

고지마씨의 상황에 나를 그대로 대입해 보았다. 나 역시 그녀의 선택대로 할 것 같다. 허나 나의 가족이 그 언니들처럼 적극 동조해줄 지는 모르겠다. 여기서 그녀와 나의 차이 발견! 그녀는 너무나 긍정적이고 밝고 언니들과의 유대관계가 좋다.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있었지만 그 자매들의 관계는 돈독했다. 두 언니의 성격은 정반대였지만 각각의 개성이 동생을 간호함에 있어 서로 보완이 되었다. 자매가 없는 나는 저렇게 사랑 넘치는 자매간이 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내 죽음의 결정권이 내게 있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과연 내 마지막이 어떻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어떠한 질병으로 정말 안락사를 원하는 상황이 닥칠지,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죽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 없는 자매를 아쉬워 할 일도 없으며 라이프서클에 보낼 서류나 이메일을 영어로 써야할 걱정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는 꽤 시니컬한 결론에 이르렀다.

 

, 이 책을 읽다 흥분한 부분이 있는데 의사소통 때문이었다. 책에서 언급된 두 단체 라이프서클과 디그니타스는 자원봉사도 아니고 돈 받고 하면서 고객의 편의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게 좀 화가 났다. 이메일로 연락해야 하는데 무조건 영어다. 그것을 번역하는 작업에 에너지가 너무 많이 들고 자꾸만 시간이 지체되는 것이 안타까웠다죽음의 시간은 째깍째깍 다가오는데 일의 속도가 느린 이유가 언어 때문이라니 이 무슨 어불성설인가. 신청하는 사람의 언어로 소통하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일까?

 

고지마씨가 우리나라에 유학 왔었고 한일 번역일을 하면서 살았다고 하니 웬지 가깝게 느껴졌다. 그녀의 사진을 순서상 그녀의 죽음 이후로 배치해 두었는데 이 역시 편집의 기술인 것 같다. 죽음 후에 보게된 생전에 그녀의 표정이 너무나 환해서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거의 마지막에 그녀의 가족사를 언급하면서 할머니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어쩐지 정감이 가는 얼굴이더라니... 이 무슨 비과학적 논리냐 싶겠지만 정말 내 맘이 그랬다는 것을 쓰고 싶었다.,,

 

정리하자면 이 책은 안락사를 원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례를 살피고, 안락사 법제화의 필요성을 독자들에게 묻는다. 안락사만이 정답이 아니라 완화치료로도 존엄사는 가능하다는 쪽의 주장도 같이 싣고 있다. 고지마 미나씨의 마지막 날인 1128일까지를 팔로잉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었지만, 일본 사회에서 안락사가 더욱 공론화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의도도 읽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법제화에 앞서 안락사를 일반인들에게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안락사가 당장에는 중증 질환을 앓는 당사자와 가족의 문제로 보이지만 누구에게나 죽음은 닥칠 것이므로 미리 얘기하고 토론해서 정하면 얼마나 좋을까. 우린 그러질 못하는 게 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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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이는 자폐증입니다 - 지적장애를 동반한 자폐 아들과 엄마의 17년 성장기
마쓰나가 다다시 지음, 황미숙 옮김, 한상민 감수 / 마음책방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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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인간은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 아니면 공감하기 힘들고 관심조차 가지지 않는다. 나 역시 시댁 조카가 아니었다면 자폐증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자폐증을 포함한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각에 편견을 가졌을 것이 분명하다. 그 편견은 부정적이며 동정적인 시선이었을 것이다. 시댁의 조카를 처음 만났을 땐 초등학생이었고 지금은 성인이 되었다. 의사표현을 하지 않고 인지장애가 있는데 정확한 질병 이름은 물어보지 않아서 모른다.

 

<내 아이는 자폐증입니다>를 읽어보니 조카도 크게는 발달장애 범주에 들어가고 지적 장애를 동반한 자폐증인 것 같다. 물론 내 추측일 뿐 정확하지는 않다. 여기서 질병명을 따지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 이 책을 읽으면서 형님이 그동안 아들을 키우면서 겪었을 고통과 기쁨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훈이 엄마가 지나온 시간이 우리 형님의 시간의 결과 매우 유사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조카는 훈이보다 나이도 많고 말을 하지 않으니 형님이 지나온 시간이 훨씬 더 힘들었을 것이다. 훈이는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인 화장실 변기의 제조사와 제품명을 깨알같이 정리해두었고, 변기의 물 내려가는 소리만 들어도 제품명을 맞힌다. 물론 그 능력으로 취업을 한다든지 뭔가 더 창의적인 활동을 할 순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은 일본 책이다. 자폐아 훈이(가명)의 이야기를 소아과 전문의 마쓰나가 다다시가 썼다. 저자가 쓴 요미우리 신문의 장애아 관련 기사를 읽고 훈이의 엄마 다테이시 미스코씨가 연락을 했다. 저자는 훈이 엄마와 훈이의 17년간의 삶의 족적을 책으로 내고 싶었고 그 이야기를 직접 듣게 된다. 이 부분에서 이 책의 장점이 빛난다. 처음에 제목을 보고 엄마가 자폐아인 자식의 이야기를 쓴 것으로 예상했는데 의사가 쓴 것이었다. 그래서 객관적이고 건조하며 담담하다. 관찰자의 입장에서 사건을 보이는 대로 서술하는 형식을 취했기 때문이다. 엄마가 썼다면 17년이라는 시간 동안 겪은 꽤 고통스런 경험이 독자에게 무겁게 다가왔을 것이다. 좀 더 드라마틱한 서사를 원하는 독자도 있겠지만 그것은 오히려 자폐아를 바라보는 시각에 선입견을 까는 구실을 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우리(자식이나 친척 중에 장애인이 없는 사람들)는 미화된 자폐아를 미디어 통해 자주 만났다. 서번트 증후군이나 아스퍼거 증후군을 소재로 쓴 영화나 드라마는, 일반인과는 다르지만 특별한 재능을 가진 이들을 통해 자폐의 어떤 한 면만을 부각시켰다. 그러나 가족, 특히 주양육자인 엄마가 자폐아를 돌본다는 것은 즐겁고 아름다운 시간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싱글맘인 훈이 엄마가 혼자 키운 이야기다. 친정 아버지는 훈이의 자폐적 특징을 전혀 이해하려 들지 않았고 비난의 눈빛으로 화를 내는 남들과 다르지 않았다. 가족조차 그러한데 다른 이들의 시선을 어땠을까.

 

p.107

초등학교 1학년 때 어느 날이었다. 평소처럼 그날도 훈이와 엄마는 유아실에서 기도하고 있었다. 방에는 스피커를 통해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그곳에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와 아빠가 들어왔다. 아이는 어린데도 차분히 앉아 있는 모습이 어른스러웠다. 굳이 유아실에 오지 않아도 될 만큼 얌전한 아이구나 싶었다. 그런 와중에 훈이가 점차 가만히 있지 못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방 안을 뛰어다녔다. 엄마는 유아실에서는 그것이 허용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옆에 있던 아이의 아빠가 화난 목소리로 소리쳤다.

왜 혼을 안 냅니까? 어째서 철저하게 훈육하지 않는 거예요?”

엄마는 파래진 얼굴로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우리 애는 자폐아예요. 장애가 있어서 가만히 있지 못합니다.”

그 아빠는 그래도 화를 냈다.

그래서 뭐요! 장애 핑계 대지 마시고 가정교육 똑바로 하세요!”

엄마는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며 훈이의 손을 끌고 미사 중간에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오자 처참한 마음에 눈물이 터져 나왔고 훈이를 때릴 뻔했다.

 

훈이는 어릴 때 소파에서 점프하듯 뛰어다니는 행동을 많이 했는데 감각과민과 관계있다고 한다. 화장실 핸드드라이어 소리에 민감하게 반응해서 그게 없는 화장실을 찾아다녔고 집에서도 청소기나 식기세척기 소리에 민감하다. 분노발작과 강박성 장애도 있다. 수영장 가기 전날 밤에 준비물을 계속 확인하는 강박을 보였는데 점차 나아지고는 있다.

 

 

이처럼 이 책은 자폐아의 행동 특징들을 실제 사례로 보여주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자폐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지하철 같은 공공 장소에서 튀는 행동을 하는 이들을 직접 만난다면 조금은 부드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부록에는 발달장애를 위한 기초정보도 실려 있다. 17년간 자폐아를 키운 엄마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비슷한 처지의 독자들은 완전 공감할 것이다. 일본의 정보이긴 하지만 기형아 검사와 학교정보 및 복지 혜택도 도움 될 것으로 보인다.

 

훈이는 이제 성인이 되면 사회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한다. 그런데 자폐증의 가장 큰 특징은 타인을 공감하거나 같이 뭔가를 하는 것을 잘 못한다. 엄마는 훈이가 취업실습을 나갔을 때 단순 노동이 무슨 기쁨을 느낄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다. 엄마 눈에 훈이가 집중하는 모습은 만점 이상을 주고싶었지만 회사에서 보낸 실습 평가표에는 내년도 실습은 받을 수 없음이라고 적혀 있었다. 거부당했다는 생각에 훈이 엄마의 가슴은 너무나 쓰라렸다. 하지만 엄마는 앞으로 훈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회사와의 만남이 아니라 사람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했다.

 

앞에서 언급한 시댁 조카는 그동안 장애 복지센터에 다녔지만 코로나 이후로 못가게 된지 6개월이 넘었다. 집에서 형님 혼자 아들을 케어하기 몹시 힘든 상황이다3년 전 아주버님이 돌아가신 후로는 더 힘에 부쳐 보인다. 이 책에도 언급되었지만 모든 장애아의 부모는 걱정한다. 부모가 자식보다 먼저 죽게 되었을 때 그 후를... 그래서 한 날 한 시에 같이 죽는 게 소원이라고들 한다. 어떻게 하면 행복하게 살지를 고민하는 게 아니라 같이 죽기를 소원하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장애아가 있는 가정에서 그런 걱정을 하지 않을 세상은 언제쯤일까? 너무 더딘 것 같다. 제도와 사회쳬계의 변화가 느려서 답답하지만 우리의 인식조차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오늘날을 다양성 사회라고 한다. 다양한 삶의 방식을 존중하며 각자 개성껏 살아가는 것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장애는 그 범주에서 예외로 취급하는 게 아닌가 싶다. 자폐증의 증상을 유별나고 이상한 행동을 하는 질병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생김새가 다르듯 다른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편하게 봐주면 어떨까. 그러기 위해서는 이런 책을 읽으면 좋겠다. 꼭 자폐 가족이 아니더라도 이런 책들을 읽는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책 읽는 이유를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못하는 다양한 것을 간접 경험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책이 나와 다른 삶의 결을 이해하는 텍스트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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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에 산다
최성현 지음 / 시루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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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산에 산다>의 저자 최성현씨를 몇 년 전 <녹색평론>에서 처음 만났다. <녹색평론>의 김종철 발행인이 그를 소개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당시에 그의 책들을 찾아보았으나 읽지는 못했다. 이번에 가디언 출판사에서 나온 <그래서 산에 산다>의 저자 소개를 읽는 순간, 그 때 기억이 떠올라서 서평단에 신청했다.

 

<그래서 산에 산다>2006년 출간되었던 <산에서 살다>의 개정판으로 자작시 열세 편과 하이쿠 열다섯 수도 추가로 실었다.

 

강원도에서 자연농법으로 자급자족하며 사는 농부의 일기, 혹은 에세이다. 이 책은 도시에 뿌리박고 살면서 언젠가는 자연에서 살아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로망을 심어줄 것 같다. 산에서 농사 짓고 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어려움을 굳이 일부러 경험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면 그냥 편하게 도시에서 계속 살겠다고 할 것이다.

 

책의 내용은 대부분 자연에 대한 것이지만 자연을 여행 삼아 다녀온 사람의 단상이 아니다. 그 곳에서 직접 생을 영위하는 사람의 글이기 때문에 꽃, , 산짐승, 하물며 작은 곤충까지도 대하는 태도가 남다르다. 철새인 벙어리뻐꾸기의 이동을 보면서 저자가 깨달은 바는 거의 법정 스님의 강독인 줄 알았다.

 

p.118

 

멀리 가는 것에 못지않은 어려움이 한곳에 정착해 사는 삶에도 있다. 한곳에서도 무수한 일들이 일어난다. 모든 것이 단 한순간도 머물지 않고 끊임없이 바뀐다. 그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일들을 겪으며 살아간다. 그 일들을 통해 우리는 벙어리뻐꾸기처럼 먼 곳을 가지 않고도 우리가 사는 곳에서 우리가 하기에 따라서는 깊고 아름다운 여행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전제가 있다. 사는 곳에서 좋은 여행을 하려면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언젠가는 철새처럼 우리도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의 삶은 썩는다. 우리도 언젠가는 육신을 버려야 한다. 떠나야 하는 것인데, 그 사실을 잊을 때 우리는 가진 것에 집착하게 된다. 소유로 애를 태우게 된다. 덕을 쌓기보다는 야박한 짓을 하기 쉽다. 사람보다 물질이나 돈을 더 귀하게 여기기 쉽다.

 

 

책 내용 중에 반야심경과 불교에 관한 것들이 꽤 있다. 저자의 책을 찾아보니 불교 역서도 있었다.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반야심경>이라는 제목으로 반야심경 해설서이다. 불교의 생명 중시 사상이 몸에 베인 것일까, 아니면 산에 살면 다 그렇게 되는 것일까? 저자는 늘 자연과 대화한다. 더 나아가 양해를 구하기도 하는데 말벌과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다.

 

말벌이 저자의 집에 집을 지어서 떠나 달라고 간곡히 부탁?했지만 통하지 않았고 강제로 헐어내는 과정을 몇 번이나 되풀이하여 결국 쫓아냈다. 저자는 그 과정을 서로에게 고단했다고 표현한다. 그 다음 해에도 말벌이 집을 지어서 지인의 추천으로 모기향을 피워봤지만 별 소용이 없었다. 모기향에 덤벼드는 말벌의 행동이 기이하여 벌집을 확인해보니 애벌레가 있었다. 그래서 저자는 함께 살아갈 방법을 모색했다. 벌집 곁에 창문이 있어서 비닐로 통로를 내어 그 창문으로 연결되게 만들었다. 그리고 말벌님에게 편지를 썼다.

 

말벌님에게

평화롭게 살기 위한 조치입니다. 같은 문을 쓰다 보니 서로 부딪치는 등 그동안 서로 어려운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당신에게 쏘이기도 했습니다. 불편하시더라도 창문을 이용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말벌님의 삶을 존경합니다.

 

사흘째 되는 날부터 말벌 한두 마리가 그 비닐통로를 통해 창문으로 드나들기 시작했고, 그 뒤로 말벌들이 모두 창문으로 다녔다고 한다.

 

말벌집은 인간에게 공포의 대상이다. 스스로 처치하지도 못해 119를 불러 태워버리는 방법을 택한다. 하지만 말벌과 사람, 지위고하 없이 모두 같은 생명이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말벌에게 사람에게 하듯, 오히려 더 깍듯하게 대했다. 책으로 자연보호를 배운 우리는 감히 생각도 못한 태도이다. 도시에 살면서 어쩌다 등산이라는 이름으로 산에 오르는 우리로서는 저자가 사는 방식을 그대로 따라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배울 것은 배우고 자신이 해볼 수 있는 한도 내에선 따라해보는 것도 좋겠다. 저자가 독자를 가르치려고 쓴 글은 아닐 것이지만 배울 점이 많은 건 사실이다.

 

나는 최근에 죽음학 관련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이 많았다. 잘 죽기 위한 여러가지 준비 중 사는 동안 너무 많은 것을 소유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그런데 죽음 이후 장례 절차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저자는 인간도 지구 전체로 보자면 엄청난 유기질 자원이라고 했다. 아마존 원주민 수아르 족의 풍장이야말로 가장 자연스런 장례 방식이라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나라 문화상 풍장을 하기 힘들고, 뭣보다 장소가 부적합하다. 저자는 아직도 매장과 화장 말고 다른 방법을 고민중이라한다. 최근 수목장도 하는 추세이지만 그것 역시 화장을 먼저 해야 한다. 자연속에서 사는 저자가 풍장을 가장 자연스런 장례법이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 

 

 

저자가 산에 사는 이유를 나는 이렇게 정리해 보았다.

 

해 뜨기 직전에 일어나서 논밭을 돌아보는 시간이 가장 좋고,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내던 새가 드디어 자신이 누구인지 보여준 날이 가장 기쁜 날이고, 가을엔 청설모 우렁각시에게 겉껍질을 깐 밤을 얻고, 왕소등에 아줌마에게 조공하는 피는 산에 사는 세금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산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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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양의 마음
설재인 지음 / 시공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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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에서 책을 무상으로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나는 설재인 작가를 <어퍼컷 좀 날려도 되겠습니까>로 처음 만났고 강렬한 어퍼컷을 기꺼이 맞았다. 그 책은 특목고에서 수학을 가르치다가 그만두고 복싱을 하면서 쓴 에세이였는데 그의 글빨에 매료되었다. 학교로 다시 돌아가지는 않을 것 같았고 글을 계속 쓸 것 같았다. 그리고 장편소설 <세 모양의 마음>을 만났다.

 

제목의 세 모양은 주인공 셋을 말한다. 중학교 2학년 유주와 상미, 그리고 어른 진영까지, 세 여성의 서사다. 진영은 교사도 부모도 아닌 남이었지만 그들에게 점심을 챙겨 먹인다. 동네 도서관에서 처음 만난 그들은 그렇게 밥을 같이 먹으면서 유대감을 쌓아가고 솟았다 사그라지는 감정들 처리에 어쩔 줄 몰랐다.

 

유주와 상미의 부모는 어쩜 저럴 수 있을까!하며 뒷목 잡을 만큼 비정상적이다. 쉰밥이 분명한데도 아직은 괜찮다며 먹으라 하고, 용돈은커녕 밥값도 주지 않으니 여름 방학 중에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은 도서관뿐이었다. 같은 학교였지만 친구사이는 아니었던 유주와 상미는 진영의 대가없는 호의 덕분에 인간다운 식사가 무엇인지 맛보게 된다.

 

상미는 다섯 살 때 유괴 당할 뻔했다. 아이스크림을 사준 여자를 따라 버스를 탔다가 큰고모가 발견해서 겨우 유괴는 면했지만 낯선 이를 따라갔던 대가는 혹독했다.

처음 보는 사람에게 먹을 걸 구걸하고, 배곯은 애처럼 행세해서 제 어미를 욕먹이는, '거지 같은 년' 이 되어 있었다. 자식에게 매일 돈타령만 하면서 제대로 먹이고 입히지 않는 부모를 보면서 그 때 그 사람을 따라갔다면, 상미는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자주 생각했다.

 

다섯 살 유주는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다. 어떤 아저씨가 꺼내주어 목숨을 건졌다. 자기를 구해준 후 멀쩡하게 인사를 받았던 그 아저씨는 2주후 돌연사했다. 원인은 알 수 없었다그 사람의 장례식을 다녀오는 길에 엄마는 남동생을 조산했고 그 아이는 삼일만에 죽었다. 유주는 '남동생 잡아먹은 년' 이 되었고 발뒤꿈치에 콕콕 찌르는 통증을 호소하면 절름발이, 절뚝이로 불렸다. 자신을 구해줄 때 그 아저씨가 뒤꿈치를 잡고 들어 올려준 후 시작된 통증은 정형외과에서 이상없다는 판정을 받아도 여전했기에 꾀병 부린다며 욕을 먹었다. 유주는 부모 얼굴을 보는 게 무섭고 집에 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말로 하지 못했고 눈물을 참으면 딸꾹질이 나왔다.

 

진영의 진짜 이름은 효윤이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친아빠의 성추행을 피해 가출을 시도했다가 이틀만에 잡혀와 아빠의 사랑과 관심을 그런 식으로 받아들이는 나쁜 딸년이 됐고 엄마의 비난이 더 심했다. 최대한 빨리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일찍 결혼 했다. 그러나 남편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지옥같은 친정으로 다시 돌아가야 했다. 효윤의 남편은 유주를 구해주었다가 돌연사한 그 남자였다.

 

효윤은 남편이 구해준 그 아이, 유주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서 유주 엄마의 SNS를 찾아 다니다가 유주가 도서관에 다닌다는 것을 알고 찾아갔다. 그냥 얼굴만 한 번 보고 싶었는데 다가가서 밥을 사주게 되고 상미도 그 점심에 동석하게 되면서 그들은 식구가 된다.

 

식구가 별건가? 글자 그대로 밥 같이 먹으면 식구 아닌가? 꼭 혈연으로 연결되어야 하는 건 아니다. 따뜻한 밥 같이 먹으면서 시시콜콜한 이야기 나누고 서로의 감정을 읽어주며 공유하면 식구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 밥을 같이 먹는다고 해서 감정 공유까지 다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잘 알지 않는가. 유주와 상미는 집에서 따뜻한 밥을 먹지 못했고 진심어린 공감도 받지 못했으며 학교에서도 왕따였다. 마음 붙일 곳 없던 두 아이의 허기를 채워 준 사람이 진영(아이들이 처음 이름을 물었을 때 급조한 이름)이었고 서로의 과거와 상처를 공유하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아픔을 잘 아는 진영의 환대는 그들 사이를 강하게 결속시키는 아교 역할을 했다. 그들이 가까워질수록 나는 두려워졌다. 그들이 같이 있는 장면이 정상적인 가정처럼 보일 때 어딘가 숨어있을 불길한 그림자의 자장이 느껴졌다. 분명 일이 터질 것만 같았다. 저들을 그대로 행복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림자는 절정의 순간에 검은 자락을 펼칠 것이다!

  

역시 그랬다! 돈이 없어서 수련회를 가지 못했던 유주와 상미는 진영의 쉼터 같은 공간인 고시원에서 셋 만의 수련회를 했고 마지막 날 밤에 하려 했던 캠프파이어는 고시원의 화재로 성공아닌 성공이 되었다. 아니, 그들만의 캠프파이어는 실패했고, 단단해 보였던 그들의 결속력은 쉽게 풀어졌다. 미디어에 의해 그들의 관계는 만천하에 드러났으며 사람들이 씹고 싶은 대로 씹어돌리는 안주거리가 됐다. 그들이 같이 밥 먹고 마음을 나누었던 시간들은 사라져버렸다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그들의 연대가 결코 사람들의 공감을 받지 못하리라는 예감을 했음에도 화재사건 이후에 벌어지는 일들은 너무나 보고 있기 힘들었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괴롭힌 사람들에 대한 분노보다 더 마음이 아팠다. 예상치 못했던 반전에 놀랐다. 작가는 이렇게밖에 쓸 수 없었나? 아니면 이게 현실인가?

 

"어차피 세상은 계속 나쁜 방향으로만 흘러가요."

 

5년이 지난 시점, 소설의 마지막에서 상미가 효윤에게 한 말이다.

세상에 좋은 일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이제 성인이 된 상미도 잘 알고 있으며 어른에게 위로까지 할 정도가 되었다. 작가가 내린 결말을 읽으며 그들이 다시 수련회를 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보았다.

 

효윤은 살면서 배운 것 중 가장 유용했던 게 누구에게도 기대하지 않는 거라고 했다. 유주가 읽은 소설 줄거리를 설명하다가 나온 말이었다.

 

p. 125

 

새로운 사람을 만나잖아. 아니면 굳이 사람이 아니어도 돼. 새로운 작가의 책을 읽게 되든, 뭐 신인 감독의 영화를 보게 되든, 방금 데뷔한 그룹의 노래를 듣든 간에, 새로움이라는 건 언제나 가슴을 떨리게 해. 그건 어쩔 수가 없어. 어떤 사람일까? 조금 호기심을 가지고 다가갔는데 만약 나와 잘 맞고 내 쪽에서 호감을 가지고 잇는데 저쪽에서도 나에게 잘해주는 것 같다면 그때부터는 그냥 떨리는 게 아니라 심장이 마구 요동치는 거지. 이제야 찾았어! 내 운명의 친구, 운명의 작가, 운명의 사랑을 드디어 찾았어! 행복한 기분이 솟아올라. 지금껏 겪었던 모든 어려움이 다 이 사람을 만나기 위해 거쳐 왔던 시험처럼 느껴지고.

 

 

이 소설에서 건진 가장 밝은 문장이었고 희망적인 문장이었다. 이제 더 이상 새로운 사람을 만날 일도, 새롭게 뭔가를 시작할 일도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 희망을 주었기 때문이다. 책 속 등장인물이어도 좋고 작가여도 좋다. 내가 매일 새롭게 만나는 것은 책이니까.

 

나는 유주, 상미, 효윤이 새로운 만남으로 다시 시작할 거라고 믿고 싶다. 그 세 모양이 삼각형의 마음이 되면 좋겠다. 서로를 잘 지지해 주는 세 변이 되길~~

 

그리고 설재인 작가의 차기작을 설레는 맘으로 기다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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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콜리 도서관의 마녀들 오랑우탄 클럽 25
이혜령 지음, 이윤희 그림 / 비룡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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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래 리뷰는 비룡소 출판사로부터 책을 협찬받아 작성했습니다.

 

<브로콜리 도서관의 마녀들>

제목부터 궁금하게 만듭니다.

 

도서관 이름이 왜 브로콜리일까?’

그 도서관에 마녀들이 산다는 걸까?’

해리포터처럼 마법이 펼쳐지는 이야기일까?’

 

아이들이 이 책의 제목을 본다면 이런 궁금증을 가질법 합니다.

 

표지그림도 환상적입니다. 책장 사이에 서있는 소녀가 쥐고 있는 책에서 빛이 퍼져 나오고 바닥에는 뱀이 혀를 낼름거리고 있어요. 표지 그림의 색감과 양장본이 고급스럽고 삽화도 적절하게 표현되었습니다. 내지도 다른 책에 비해 두께감이 있습니다. 제목부터 외양까지 어린이 독자의 관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해 보입니다.

 

<브로콜리 도서관의 마녀들>은 어린이 심사위원단 100명이 참여하여 최종 당선작을 고르는 스토리킹공모전 본심에 올랐던 작품이라고 해요. 최종심에까지 올랐지만 당선이 되지 못했던 이 동화가 어른들은 모르는 우리만의 베스트셀러, 내가 직접 골라 읽는 신나고 유쾌한 이야기비룡소 오랑우탄 클럽시리즈로 출간이 되었답니다. 심사를 담당했던 어린이들이라면 좋아할 것이고, 책으로 처음 만난다고 해도 반길 책입니다. 도서관과 마녀라는 선뜻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소재로 평범함과 특별함을 어떻게 버무렸을지 기대감을 부풀게 하니까요.

 

그럼 브로콜리 도서관이라는 이름부터 알아볼까요?

한빛 초등학교 도서관의 원래 이름은 느티나무 도서관이지만 아이들은 브로콜리 도서관이라 부릅니다. 왜냐하면 도서관 안뜰에 자리잡은 나무가 멀리서 보면 마치 브로콜리처럼 보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도서관 사서선생님은 머리카락이 온통 하얘서 별명이 백발마녀 샘입니다. 왠지 마녀의 분위기를 풍긴다구요? 글쎄요. 백발마녀 샘이 진짜 마녀일지 아닐지를 미리 밝히면 재미가 없지요.

 

주인공 강소율은 이 학교 5학년입니다. 정의롭고 호기심은 소녀였는데 왕따를 당하면서 점점 의기소침해지는 중입니다. 그런 소율이가 마음의 안정을 찾는 곳은 도서관이지요. 도서관에서 우연히 마녀 치치를 만나 친구가 됩니다. 치치는 아직 정식 마녀는 아니지만 능력이 뛰어나고 인간들의 이야기가 재미있어서 도서관을 찾아 오고 있어요. 자꾸 인간 세상으로 오는 치치를 잡으러 다니는 마녀 삼인방이 있습니다. 위위, 보보, 양양이 그들의 이름인데요, 브로콜리 도서관에 마녀가 넷씩이나 들락거리니 마녀와 도서관이 관계가 있는 건 맞는데 마녀가 사는 건 아닌 것 같죠? 글쎄 과연 그럴까요? 치치가 이 도서관에서 살게 되진 않을까요?

 

실수로 둘의 몸이 뒤바뀌게 되어 치치가 소율이인 척 하게 된 어느날, 혜수와 (소율이 몸을 한)치치가 다투다가 혜수가 책으로 변하게 됩니다. 혜수는 소율이를 왕따시킨 아이에요. 소율이가 마음속으로 간절하게 외쳤던 기운과 대마녀가 준 반지가 만나 마법이 일어나게 되었어요 소율이도 이제 마녀가 되는 걸까요? 책으로 변해버린 혜수는 제 몸을 되찾을 수 있을까요? 점점 더 궁금해지지요?

 

이 책은 초등학교 중학년 이상의 여자아이들이라면 즐겁게 읽을 수 있습니다. 주인공이 여자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왕따 문제는 아이들이 학교에서 직접 겪는 일이기 때문에 친구 관게의 복잡 미묘한 감정선에 푹 빠져들 수 있을 것입니다. 현실과 책이 데칼코마니 같기만 하다면 아이들은 절망할지도 모릅니다. 왕따를 당하는 아이입장에서는 지옥처럼 느껴지는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데 동화마저 현실과 같다면 어디에서도 위로를 받을 수가 없잖아요.

 

작가는 그런 아이들을 위해 마녀라는 소재를 가져온 것 같습니다. 자신을 괴롭히는 친구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실제로 이루어 질수는 없지요. 그러나 마법을 부릴 수 있다면 가능하기에 이 책은 대리만족을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괴롭힘을 당한다 하더라도 동화에서 복수의 쾌감만 줄 수는 없지요.

욕망과 분노, 원망 같은 마음의 씨앗을 땅에 심어서 꽃을 피우는 대마녀는 소율이 마음에 있는 씨앗을 달라고 하지만 소율이는 내놓지 않습니다. 소율이를 다독여주던 백발마녀 샘의 말을 떠올립니다.

 

누구나 마음 속에 검은 늑대와 흰 늑대를 키운단다. 둘 중 어느 쪽이 더 크게 자라느냐는 네가 누구에게 먹이를 더 많이 주느냐에 달린 거고. 지금은 대마녀가 검은 늑대를 키워놨지만, 네 안에는 여전히 흰 늑대가 살고 있단다. 아무리 대마녀라도 흰 늑대를 없애진 못해. 네 마음은 온전히 네 것이야. 소율아, 너의 흰 늑대를 찾아 보렴.

 

소율이는 마음속의 흰 늑대를 키울 수 있을까요? 혜수는 책에서 나올 수 있을까요? 대마녀의 행패로 도서관은 아이들에게 무서운 곳이 되어버립니다. 소율이와 치치는 대마녀를 물리칠 수 있을까요? 뒷 부분에서 책 해리포터의 주인공들이 나와 그들을 도와주고 대마녀와 백발마녀 샘의 옛날 사연도 나옵니다.

 

이 책은 어린이 독자들을 도서관으로 데려가 책이라는 환타지 세상으로 이끕니다. 작가는 몹시도 평범하고, 어떤 아이들은 관심 없어할, 도서관과 책이라는 소재에 마녀 소재를 맛깔나게 버무려 책이 마법이 되는 것을 보여 줍니다. 아이들에게 괴로움 유발 소재인 왕따 역시 극복 가능함을 알려줍니다. 이 책을 다 읽은 어린이 독자들은 마음이 딴딴해졌다고 느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치치같은 친구를 만나러 도서관으로 가는 아이들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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