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조금씩 자란다 -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
김달님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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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손가정에서 자라나 자신의 할어버지 할머니 이야기를 책으로 써낸 김달님 작가의 신작 <우리는 조금씩 자란다>가 미디어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작가의 우주와 같았던 분들이 두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난 후 그는 넓디넓은 공간에 홀로 남겨진 것만 같았다. <나의 두 사람>에서 그들의 보살핌으로 자신이 이만큼 성장했고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두 분 모두 떠나셨으니 그 상실감이 어떠했을까.


전작에서 할아버지는 텃밭에 고추나 배추 같은 것들을 숨구듯(심듯) 자신의 삶에 많은 것을 숨궈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작가는 그것들이 시들지 않도록 정성을 다해 돌보는 일이 자신에게 남은 귀중한 몫이라고 썼다. 이번 책의 부제가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이다. 그동안 작가는 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해왔고,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유심히 관찰했다. 그 안에서 살아갈 힘이 되어주는 사랑의 말들을 찾아 글로 풀어내는 작업을 계속 하고 있는데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할아버지가 그에게 심궈준 것을 잘 돌보는 일이지 싶다.


이번 책에도 역시 조부모님과의 사연이 많이 들어있다. 당신들과 함께 했던 시간의 조각들, 몸은 떠나보내지만 붙잡아 두고 싶은 기억들, 그들의 사랑을 새겨두고픈 다짐들은 작가에게 지문처럼 남을 것 같다. 앞으로 그가 써낼 글들 어딘가에 인장처럼 찍힐 것이다. 그 외에 지인이나 인터뷰한 사람들, 관찰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프리즘의 빛처럼 반짝거린다. 프리즘은 알록달록한 빛이 분산되는 물체인데 작가의 시선이 투영되니 거기에 따듯함이 보태진 느낌이다. 아마도 조부모님의 무한 사랑 덕분이리라.


엄마 입장에서 맘이 짠했던 내용이 있다. 전작에도 썼지만 작가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엄마와 관계를 맺어보지 못했는데 완전한 사랑을 줄 수 없을 것 같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이번 책, “나는 너를 사랑하려고에서도 유사한 내용이 나온다. 20대 때부터 결혼은 해도 아이는 낳지 않겠다던 작가는, 아이를 키우는 30대 남성, 친한 동생, 사촌 동생의 아기, 친구의 초등학생 딸의 이야기를 연이어 소개했다. 그리고 말미에 이렇게 썼다.


p.188


그런 말들이 자꾸 마음에 남는 건 나도 맡아보고 싶어서 일 거다. 맡고 나선 오랫동안 기억하고 싶어서. 보드라운 발바닥으로 처음 걷는 열 걸음을 지켜보고 싶어서. 아무렇지 않게 슬픔을 깨트리는 아이를 항해 아무 일 없다는 듯 활짝 웃어주고 싶어서. 나를 올려다보는 한 얼굴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고 싶어서. 살아보지 않으면 결코 알 수 없는 삶 쪽으로 조심스럽게 다가서는 마음을 느끼며. 언젠가는 이 말을 들려주게 될까 궁금해진다

"안녕. 아이야. 나는 너를 사랑하려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 같아."

 

이제 작가의 마음이 조금 바뀐 것 같다. 할아버지 할머니께 받은 사랑을 아이에게 줄 수 있게 된 것 같아 다행스런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이렇게 우리는 조금씩 자라는 거다.


그가 책에서 소개한 많은 사람들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건물 청소하는 치에코씨와 이름 모를 택시기사이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건너와 청소 일을 하는 치에코씨는 미화일기를 쓴다. 자신이 깨끗하게 청소하면 사람들이 감동할 것이라 생각하며 일을 한다고. 깨끗해지는 것을 보면 자신도 기분이 좋아진단다. 택시기사는 손님이 내릴 때 빈말이 아니라 꼭 좋은 하루 보내라고 인사한다. 손님들도 자신도 좋은 하루 보내면 좋지 않냐며.


그들은 자신의 직업을 사랑하고 사람들에게 진심을 내보인다. 치에코씨가 정성이라는 말을 좋아한다고했듯 그들은 정성을 다해 일한다. 참으로 오랜 만에 정성을 다한다는 말을 곱씹어 보았다. 그들처럼 우리가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한다면 세상이 이렇지는 않을 것이다. 일도 그렇고, 사람을 대하는 것도 그렇고, 자기 자신에게도, 정성을 다하면 좋겠다. 그러면 뾰족한 눈매가 아니라 초승달처럼 이쁜 눈들을 하고 서로를 바라볼 것 같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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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도 상처받을 필요는 없다 (스페셜 리커버 에디션)
지민석 지음 / 스튜디오오드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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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어렵다가 시험이 힘들다가, 어른이 되면 사는 게 좀 쉬울 줄 알았지만 아니다. 직장에 다니면서 돈을 벌게 되면 좋을 것만 같았는데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어릴 때부터 주욱, 아무리 나이 들어도 가장 힘든 건 인간관계다. 살면 살수록 더욱 그러하다. 사람은 혼자 사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과 친구, 이웃과 직장동료까지 우리는 살면서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 죽을 때까지 이어지는 관계도 있고 어느 시점이 되면 멀어지기도 하며 빠르게 단절되기도 한다.

인간 관계를 잘 하며 산다는 건 에너지를 꽤 많이 소모하는 일이다. 나는 별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사람들이 다 떠나는 것 같고 생각보다 관계가 오래 유지되지 않으면 대부분 자책을 하게 된다. 혼자 끙끙 앓다보면 자존감만 떨어질 뿐이다. 친구의 위로도 약효가 그리 길지는 않다. 차라리 낯 모르는 이의 충고가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인간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읽으면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이 나왔다. <너의 안부를 묻는 밤>의 작가 지민석의 <누구에게도 상처 받을 필요는 없다>이다. 이 책은 3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작가 자신의 일상이나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 사례를 많이 들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다. 두루뭉술한 위로의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 방법들을 제시하고 있어서 독자 자신의 상황과 유사하다면 바로 실천해 보기에도 좋다.

1부 삶이 동화 같진 않아도 내 삶이 그리 싫지 않아 에서는 자책하는 이들에게 자신을 좀 더 사랑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 비참해지거나 교만해지거나


@ 모든 말을 예민하게 듣지 말자

설령 누군가 당신에게 간접적으로 불만을 표현했다 하더라도, 당신이 눈치껏' 그 의도를 알아차려줄 의무는 없다. 확실하게 의사를 전달하지 못한 상대방이 표현 방식을 바꿔야 할 일이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할 용기는 없으면서 언짢은 티는 내고 싶은 소심한 사람일 뿐이다. 툭 던지는 말은 툭 흘려보내면 그만이다. 그 사람의 문제까지 당신이 떠안지 마라.

2부 지속하기 위해 멈추는 관계의 지혜는 관계에서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에게 도움이 많이 될 내용이다.

@ 너를 미워하지 않는 이유


@인간관계 멘탈 관리법

1. 상대가 비난한 나의 특성은 나의 일부이지, 나의 전부가 아님을 기억하는 것이다.

2. 비난받았을 때 최대한 당황한 티를 내지 않는 것이다.

3. 상대도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유념하는 것이다.

4. 사람과 멀어지는 것을 너무 두려워하지 않는다

3부 무사히 오늘을 살아낸 당신에게 는 하루를 마감하며 한 편 정도 읽고 자면 좋을 내용들이다. 흔히 일기 쓰기를 추천하지만 실천이 가장 어려운 게 사실이다. 쓰기가 힘든 이들이라면 3부의 내용을 읽고 자신을 다독거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면 좋겠다.

@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법


@ 부족한 사람은 없다

내 가치는 타인의 존경을 받아서 생기는 게 아니라 내가 나를 사랑할 때 생겨난다. 내가 나를 잘 대접할 줄 알아야 내 가치도 높아진다. 그러니 당신에게 다시 한번 묻고 싶다. 아직도 당신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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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반짝이는 정원
유태은 지음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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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라 잭키츠상, 뉴욕 타임스 올해의 우수 그림책 작가상을 받은 유태은 작가의 신작 <사랑이 반짝이는 정원>이 창비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이번 그림책에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았다.



아이(작가)가 새싹만큼 작았을 때 할아버지의 정원은 아주 컸다. 그곳에서 아이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한 경험을 했고 할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다. 생일날 할아버지에게서 받은 모란꽃이 자라나듯 아이도 쑥쑥 자랐고, 아이가 해바라기만큼 자랐을 때 할아버지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한다.



아이가 나무만큼 자랐을 때 먼 곳으로 이사를 했고 늘 할아버지를 그리워했다. 할아버지가 보내주신 모란꽃을 돌보며 어릴 적 할아버지의 정원에 있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제 새싹만한 딸과 할아버지를 만나러 간다. 할아버지의 집은 예전보다는 작은 공간이지만 여전히 꽃과 곤충이 있다




한 아이가 나고 자라고 또 하나의 생명을 낳는 동안 할아버지와 정원은 항상 곁에 있어주었다. 비록 몸은 멀리 떠나있어도 할아버지의 정원에서 함께 했던 시간들이 아이를 건강하게 지켜주었음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할아버지와 정원은 가족의 사랑을 의미한다. 전 생애에서 보자면 비록 짧은 시간드이었지만 할아버지의 정원에서 함께한 추억이 얼마나 반짝이는 순간들이었는지를 작가는 이 책에서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


아이의 성장 과정과 할아버지의 노쇠가 대비되어 그려지는 배경으로 꽃과 개와 식물들이 함께 하고 있다. 아주 밝은 느낌의 그림들이 포근하게 다가와 저절로 미소 짓게 되었다. 유태은 작가의 그림책은 이번에 처음 만났는데 그림체가 귀엽기 그지없다. 화면 가득 전해지는 사랑에 마음 따뜻해졌다. 아이와 함께 읽는 부모나 조부모라면 애써 부연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림만으로 충분히 사랑의 느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이런 그림책을 읽으면 어떤 할머니가 되어야 할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 이제 늙었구나 싶은 생각에 우울감이 들긴 하지만 언젠가 데려올 손주들을 위해 사랑이 반짝이는 정원()을 만들어야겠구나 싶다. 내 아이들을 키울 때와는 달리 좀 여유롭고 편안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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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
이경 지음 / 래빗홀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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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플루엔셜 출판사의 래빗홀 클럽1기에 뽑혀 이경 작가의 소설집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의 활동을 시작했다. 포켓북 정도의 사이즈로 제작된 가제본을 받았는데 특이하게 작가의 인터뷰와 소설집에 실린 소설 1편만 실려 있었다. 작가 인터뷰를 읽다보니 출판사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신인 소설가에 대해 잘 모르는 독자들이 대부분일 것이므로 작가의 작품세계를 조금이나마 이해한 후 소설을 읽도록 위함이었다.


가제본에 실린 소설은 <한밤중 거실 한 복판에 알렉산더 스카스가드가 나타난 건에 대하여>이고, 두 번째 소설은 1차 미션 수행자에게 이북으로 보내주었는데 표제작 <오늘 밤 황새가 당신을 찾아갑니다>였다. 소설 곳곳에 분포된 격공 포인트가 웃음을 유발했다. 두 소설 모두 빡센 육아를 소재로 AI 육아 장비가 등장한다. 육아 경험자는 물론이고 비경험자라 할지라도 그 어마무시하고 방대하면서도 디테일과 인내심을 요하는 일에 고개를 절레절레 할 것이다. 게다가 갓난쟁이라면 더더욱! 그런데 왜 웃냐고? 그게 참으로 요상하다. 분명 빡센 일을 하며 발을 동동 구르다가 머리를 쥐어뜯다가 하는 소설 속 엄마를 보며 나오는 웃음의 정체는 무어란 말인가. 남의 고통을 보며 웃다니 사이코패스인가? 웃프다는 표현이 적당한 듯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웃을 일이 아닌데 왜 웃지? 괴로움을 웃음으로 승화시킨 작가의 솜씨 때문이다. 본인의 육아 경험이 오롯이 녹아들어있기도 하고! 인터뷰에서 육아를 하면서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니 아무래도 '내 이 초보 엄마 분투기를 이야기로 쓰고야 말리라!' 라고 다짐했을 것 같다. 그리고 두 소설에 등장한 육아템(젖병 소독기와 돌보미 탑재 차량)은 SF소설이 아닌 현실에서 곧 만날 수도 있겠다. AI 기술은 빠르게 발달중이고 무엇보다 수요가 폭발적일 것이니 말이다.

이 소설들은 단순히 AI장비가 육아의 고충을 해결해주리라는 것만 말하는 건 아니다. 두 장비 모두 심신이 지쳐가는 주양육자이자 초보 엄마와 조근조근 얘길 나눈다. 특별하거나 거창한 대화가 아니다. 하루종일 아기와 집에만 있는 엄마들의 심금을 울릴 포인트다.

육아분투기가 소재이나 AI가 단순히 일을 보조한다기보다는 돌봄에 지친 엄마의 마음을 돌봐주는 일이다. 작가는, 돌보는 일을 하는 이에게도 분명 마음을 토닥여줄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넓게 보면 비단 육아에 지친 이들에게만 필요한 건 아닐 거다. 책은 읽으며 나도 육아AI가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나는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한지 너무 오래 되었다. 학생의 마음을 읽어주고, 공감의 언어를 사용하고, 방긋방긋 웃어주며 아주 작은 것에도 엄지를 들어올리거나 하이파이브를 해주는 노동을 하고 있으나 가까운 이들과는 그렇게 하지 않는다. 대면할 시간이 없기도 하거니와 어색하기 그지 없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읽는다.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 끼어들기도 하고 작가에게 묻기도 한다. 텍스트 속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며 산다. 비정상적이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우울감에 빠제 허우적댈테니까...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가제본 도서를 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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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있는 요일 (양장) 소설Y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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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작가의 <스노볼>을 인상 깊게 읽었고 차기작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3년여 만에 신작이 출간되었다. 이번 소설 <네가 있는 요일>을 창비의 소설Y클럽 9기 도서 서평단에 선정되어 가제본으로 읽게 되었다. <스노볼>에서 다룬 계급사회가 이번에는 더욱 촘촘하게 그려진다. <네가 있는 요일> 속 세계관은 환경파괴와 식량난등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간 7부제 사회가 시행되는 미래다. 사람들은 일주일 중 정해진 하루만 현실에서 생활할 수 있으며, 나머지 엿새 동안은 가상 현실 낙원에서 지낸다. 물론 이런 불편한 생을 살지 않아도 되는 이들도 있다. 짐작하겠지만 특권 계층은 365라는 이름으로 제 몸 속에서 그대로 살아간다


수요일에만 현실을 살아가는 수인현울림은 같은 몸을 쓰는 화인강지나 때문에 갑자기 죽게 된다. 울림은 자신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려고 임시로 다른 몸을 쓰면서 한발 한발 그 비밀에 다가간다. 이 지점이 품고 있는 미스터리적 요소는 독자를 소설 속으로 확 끌어당긴다. 사라진 빌런 강지나의 실체를 어서 알아내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질 수 밖에 없다. 종국에 강지나는 어떤 형벌을 받을지, 울림의 짜릿한 복수에 동참하고 싶은 심정이 될 것이다.


이 소설의 장르는 SF. 그러나 막바지로 갈수록 로맨스가 강하다. 전반부에 작가의 상상력으로 그려지는 디스토피아적 미래가 현실이 될 것 같아 두렵고 암울하지만 사랑으로 마무리되어 심장이 말랑말랑 해지는 기분이다. 물론 지금의 답답한 현실이 더욱 부정적으로 심화되는 상황들도 많다. ‘환경부담금을 낼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면 온전한 신체를 가지게 되는 설정은 갈수록 양극화가 심해지고 있는 지금, 돈과 권력을 가진 초고위층이 누리는 세상은 결코 하위 계층에게 허락되지 않는 현실 세계와 다르지 않다.


또한 AI가 인간의 영역에 성큼성큼 다가오는 것이 체감되고 있지 않나. 소설의 사회를 읽다보면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분리되는 미래가 충분히 그려지고 AI가 되고 싶어하는 인간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외모와 전혀 구분되지 않는 AI가 주인공인 영화, 스스로를 인간으로 생각하며 살다가 어느 순간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혼란스러워하는 영화는 이미 나와 있으니 그 반대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이 없지는 않을 것 같다.


등장인물들은 20대 초반이지만 열일곱 살 때의 일들이 서사의 큰 축이기에 청소년들이 읽으면 좋다. 공부 기계처럼 살아가는 생활 속에서 이 소설을 읽으며 미래 사회를 예견해 보거나 현재를 어떻게 살아갈지 고민해볼 수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어른도 재미있게 읽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할 소설이다. 학부모라면 자녀를 너무 자신이 만든 틀 안에서 키우려고 하지는 않았는지 반성할 장면들이 꽤 있기 때문이다. <스노볼>을 읽고 다음 작품을 기다리고 있던 독자라면 아주 만족할 것으로 예상된다.


, 마지막에 울림이 지나를 찾고 지나는 벌을 받게 된다. 독자에 따라 그 부분이 살짝 아쉽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울림의 복수가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큼 가혹하게 펼쳐지리라 예상했다면 조금 심심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의 최후가 반전이라면 반전인데, 365인 지나가 영원한 감옥에 갇히게 된 것이므로 가혹한 형벌이 맞단 생각이다.


로맨스 부분은 현실에서 치매 환자가 사랑하는 이를 알아보지 못하는 경우와 유사하게 상정했다. 몸이 다르고 이름이 달라도 혼은 그대로이기에 서로를 알아보고 기억할 것이라는 설정과 이룬의 기억이 하나 둘 사라져 울림을 알아보지 못하게 될 것이라는 설정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슬프지만은 않다. 울림의 대사가 뻔하기는 하나 결국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에겐 사랑이 필요함을 강조하는 것 같았다.


"너는 내가 어떤 모습이든 날 좋아할 거고, 나는 네가 기억을 잃고 어떤 식으로 변하든 너를 좋아할 거야. 그럼 된 거잖아."


"아침마다 네가 나에 대한 기억을 전부 잃은 채로 눈을 뜬다고 해도, 어차피 너는 또 나를 좋아할 거잖아."


"그러면 내가 매일 말해줄게. 우리가 서로에게 어떤 존재였는지."




**위 리뷰는 창비에서 가제본 서평단 자격으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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