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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 - 느긋하고 경쾌하게, 방구석 인문학 여행
박균호 지음 / 갈매나무 / 2020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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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교개혁을 일으킨 루터는 신부출신이었고 수녀 출신의 여성과 결혼해서 맥주를 만들어 팔았다는 사실!
-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미국 최고의 연필 제조업으로 명성을 누렸다는 사실!
- 한국사회에 유교가 도입된 배경과 정착 이후 한국 사회의 변화를 고증한 책 <한국의 유교화 과정>이라는 책을 쓴 사람이 스위스인이라는 사실!
- 14살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프랑스로 시집오면서 치른 영접행사장의 벽장식 그림이 불행한 결혼의 진실을 담고 있다는 것을 알아본 젊은이가 괴테였다는 사실!
- 익산의 백제 유적 발굴장이 식량창고인 줄 알았는데 거기서 나온 나무 막대의 용도가 대변 후 뒤처리용(용도를 자세히 설명하기엔 쫌...)이었으며 사실 그곳은 창고가 아니라 화장실이었다는!
- 찰스 다윈은 이미 19세기에 <종의 기원>에서 조류독감 발생 문제를 거론했었다!
- 크리스마스를 12월 25일로 정하고 풍습(카드보내기, 캐럴부르기 같은)들을 만들어 지킨 것은 빅토리아 시대부터 시작이었다고!
- 촉야, 벽치, 추후자, 대관랑, 구칠타, 찬리채는 모두 닭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거!
- 밀웜(새나 고슴도치의 사료로 사육되는 애벌레)은 폴리스티렌(플라스틱)을 먹고도 멀쩡하게 성충으로 자라난다고!
이 리뷰를 읽고 있는 당신은, 위 사실들을 이미 알고 있었는가?
흠... 그렇다면! 당신은 열독가!!^^
나는 모두 생전 처음 안 내용이다. 박균호 작가의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를 읽고!
코로나19 때문에 지난 봄부터 집콕하면서 사람들은 뭔가 재미있는 게 없을까? 하면서 이런저런 활동을 한 것을 SNS에 올려 자랑하고, 그걸 본 사람들은 따라하면서 ‘슬기로운 집콕 생활’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았다. 손에 쥐가 나도록 수 천 번 저어서 만들어 먹는 달고나 커피부터 어깨에 뽕 이빠이로 넣고 비의 ‘깡춤’을 따라하기도 한다. 집콕 생활을 즐겁게 보내기 위해 저마다의 취향대로 하면 되겠지만, 나는 독서로 집콕생활을 보냈다. 한 달에 20~25권의 책을 읽고 리뷰를 썼다고 했더니 지인은 나더러 못말리는 활자중독자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러나 책 좋아하는 사람들 중 아마 나보다 더한 사람도 있을거란 생각이 든다.
박균호 작가도 그 중 한 사람일거라고 확신한다. 작가는 정말 다독가요 책사랑꾼이다. 매달 책구입 비용으로 40만원이나 지출하고 본인 돈으로 질러놓고 책 택배가 도착할 땐 또 그렇게 선물을 받는 것처럼 행복하다니 못말리는 독서가다. <이토록 재미난 집콕 독서>에서는 28권의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나는 깜놀하고 말았다. 진짜 단 한권도 읽은 책이 없는게 아닌가. 보통은 이렇게 책 소개 하는 책을 받아서 목차를 촤르륵 훑으며,
‘음, 내가 읽어본 책이 많네! 이 작가는 어떻게 소개할까?’
혹은
‘제목은 들어 본 책이 꽤 있네!’
하면서 책 좀 읽어봤다는 티를 내곤 했다.(물론 맘 속으로)
그런데 단 하나도 없다니 책 많이 읽은 척은 절대 하면 안 되겠다...
이 책은 갈매나무 출판사의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았다. 작가의 <사람들이 저보고 작가라네요>를 너무 재미있게 읽어서 이 책도 기대하며 읽었다. 그!런!데!! 예상만큼 웃기지 않았다. 초큼 아쉬웠지만 이번 책은 다른 만족감을 주었다. 고맙게도 아주아주 어려워 보이는 책을 짧게 요약해주니 거저 읽은 셈이었다. 책 한 권 소개에 10쪽 정도밖에 안된다. 약간의 시간 투자로 두꺼운 책 한 권을 읽는 효과를 얻으니 이 얼마나 슬기로운 독서생활인가!
이 책의 쓰임새는 또 있다. 작가의 말에도 나와 있다시피, 이 책은 이렇게 활용하면 된다.
“사실 말이야, 이건 이래서 그렇게 된 것이라네”
“아, 글쎄, 그때 이런 일이 있었다는군!”
이라고 자랑할 수 있다. 한마디로 잘난 척하기 좋다는 뜻이다. 작가는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을 붙잡고 저렇게 자랑하라고 했지만 그건 아무래도 무리수다! 요즘 같은 코로나시대에 지나가는 모르는 사람 붙잡고 말 붙이기 참 거시기하고, 코로나시대가 아니었대도 ‘도를 아십니까?’류의 인간으로 취급받기 딱 좋다. 그러니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갑분싸 분위기를 잠재우고 싶을 때나 자녀가 있다면 애들 앞에서, 작가처럼 교사라면 학생들에게, “재밌는 얘기 하나 해줄까?”라며 이야기 물꼬를 트기에 딱 좋다.
리뷰를 써야 해서 한 번에 다 읽었지만 이 책은 목차에서 끌리는 책제목부터 골라 심심할 때 하나씩 읽어보면 재미나게 집콕 독서를 즐길 수 있다. 이런 책 소개책은 읽은 후 더 자세히 알고 싶어서 본 책을 찾아서 다 읽어보고 싶은 욕심이 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러고 싶은 책이 몇 권 없었다. 재미없을 것 같아서? 안 궁금해서?가 아니다. 워낙 요약 정리가 깔끔해서 더 자세히 안 읽어봐도 충분할 정도였고, 어디 가서 써먹기 좋을 정도의 내용들이라 발췌해서 사용하면 될 것 같다.
소개된 책 중에서 더 골라 읽어보고 싶은 책, 두 권을 골랐다. <불량직업 잔혹사>와 <물명고>다. <불량직업 잔혹사>는 영국에 문명이 태동하던 고대에서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최악의 직업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예전부터 있어온 3D 직업에 대한 책인데 지금은 없어진 직업도 있지만 오늘날까지 유사하게 이어져오는 것도 있다. 확인해보니 2005년에 출간되었는데 지금은 절판이라 도서관에서 빌려보아야겠다. <물명고>는 상,하 두 권짜리고 책값도 꽤 비싸니 도서관에서 빌리는 거로~~ 단어의 어원은 알면 알수록 신기해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은 제목만으로 무슨 내용일지 가늠이 안되니 서점의 책소개를 그대로 옮겨본다.
조선 후기 실학자 유희가 지은 백과사전. 저자인 유희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음운학자이다. 일생을 통해 천문,지리,의약,복서,종수,농정,풍수,충어,조류 등을 연구하여 총서인 <문통>에 수록하였으며, <물명고>는 전하는 것 중 하나이다. 국어 어휘연구와 조선 후기 풍속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감정이 있는 종류라는 의미로 동물에 해당하는 유정류와 식물에 해당하는 무정류, 움직이지 않는 종류라는 의미의 부동류와 안정되지 못한 종류라는 의미의 부정류로 분류하여 싣고 있다.
책은 아니지만 요즘 내게 화두인 '죽음', '웰다잉'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만든 꼭지는 2부의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을 함께 하는 방법"이다. 호스피스 운동보다는 '죽음학'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작가의 말에 공감한다. 캐나다에서는 세계에서 처음으로 1968년에 '죽음학'을 대학 정규과목으로 편성했다고 한다. 죽음학이 단지 잘 죽기 위한 방법이 아니라 삶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위한 목적도 있다는 것! 공부해보고 싶은 분야다.
아, 마지막으로! 목차를 보고 첨 보는 책 제목에 깜짝 놀라 안 읽어도 되겠다고 지레 겁먹지 마시라! 각 책을 소개하면서 작가의 사생활(흑역사 비슷한)과 엮어서 풀어내기 때문에 전혀 지겹지 않다. 딸 바보에 경처가로서의 활약은 감탄스럽고, 자기 한 몸 희생해 슬랩스틱 같은 장면을 시전해 주시니 눈물겹지만 웃긴다. 또 어찌나 요약이 잘 되어 있는지 귀에 쏙쏙 들어온다. 교사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하신 듯~~
요 며칠 사이에 책에서 소개 받은 책이 너무 많다. 리뷰 써야할 책이 줄 서서 대기 중인데 도서관에 가서 빌려 올 책 목록을 작성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