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함께여서 좋다? - 치매간병을 힘들게 만든건 착한며느리 증후군이었다
정유경 지음 / 노드미디어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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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경씨가 쓴 시아버지 치매 간병 에세이 <그래도 함께여서 좋다?>의 앞부분을 읽으면서 책을 확 집어 던질 뻔 했다. 밖에서든 집에서든 시도 때도 없이 시아버지의 대변처리를 하는 장면을 읽으며 구역질이 올라왔고, 같은 며느리 입장에서 어쩜 이렇게 부당한 시집살이를 몇 십년 씩이나 했단 말인가 싶어 너무 화가 났다. 서평용으로 받은 책이 아니었다면 더 이상 읽기를 포기했을 책이다. 그래도 서평을 쓰려면 다 읽어야 하니까 잠시 다른 짓을 하다가 책으로 돌아왔다. 실은 마지막이 궁금했다. 저런 경험을 책으로 내다니 용기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끝까지 읽을 동력이 되었고, 글쓴이의 부당한 상황을 더 많은 사람이 읽어주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더해졌다. 그리고 궁금했다. 이 사람은 이제 그 수렁같은 시월드에서 벗어났을까?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첫 문단을 쓰고 보니 조금 우려가 된다. 책을 잘 알려서 많은 사람이 읽게 하는 것이 리뷰의 목적인데 혹시라도 여기까지 읽고 이 책을 읽었다가는 고구마 100개 삼킨 듯한 답답함이 예측되어 아예 읽기를 시작하지 않을까봐 걱정이다. 그래서 저자가 한 각 장별 소개를 그대로 인용한다.

 

1장에서는 치매의 증상과 관련된 그간의 사건을 위주로 적었고, 2장에서는 간병의 고통과 그로 인한 문제를 적었다. 3장에서는 간병 이후의 치유를 이야기 했고, 4장은 그동안의 시간을 통해 알게 된 것들을 적었다.

지금도 많은 치매 가정의 주 보호자는 상상할 수도 없는 환경에서 현실과 싸우며 버텨내고 있다. 그들은 아무도 없는 우주 공간에서 떠도는 미아가 된 느낌이다. 그것은 어느 가정의 어떤 치매 환자도 같은 증상과 상황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분들은 치매 환자의 망가진 뇌를 붙잡아 주고, 왜곡된 기억과 현실을 다독여주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워주고 있다.

 

여기까지의 내용으로 독자는, 치매 환자를 간병하면서 겪는 일이 얼마나 힘들지 간접경험 해 볼 수 있으며 누구에게든 닥칠 수 있는 일이기에 마음의 준비를 할 기회를 제공할 수 있겠거니 예측 가능하다. 그리고 4장에서 치매 환자와 함께 할 수 있는 활동들도 여럿 소개하고 있어서 현재 치매 환자를 가족으로 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내용들이 있다. 그러나 요즘에 치매 환자를 집에서 간병하는 사람이 있나? 아니, 이 책의 상황이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 맞나?’ 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아무리 사람 사는 모습이 비슷하다 해도 개별 가정에서 벌어지는 상황들은 지극히 다르기 때문에 가족인 치매 환자를 모두 요양병원 같은 곳으로 보낼 수 없을 수도 있다. 조선시대가 아님에도 맏며느리를 노예처럼 부리는 가정이 아직도 있다.

 

이 책에서 서술하는 며느리의 치매 걸린 시아버지를 간병하는 내용은 이 리뷰에서 굳이 옮겨 적고 싶지는 않다. 여자로서 남자인 시아버지의 대변을 처리하고 씻기는 일이 어떠할지는 읽는 이의 상상에 맡기겠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이런 생각을 했다. ‘만약 내게 이런 일이 닥친다면 과연 저자처럼 할 수 있을까?’ 도저히 따라할 수 없을, 인내심의 대가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의 심성이 드러나는 부분을 인용해본다. 끝없이 계속되는 시아버지의 뒤처리 끝에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런 모습에 인상을 쓰고 잔소리를 한다면 환자와 보호자 사이엔 벽이 생기고 만다. 아버님과의 시간들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치매를 통해 인내심의 한계를 높이고, 많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버님 덕분에 그리고 벼랑 끝의 고통 덕분에 감사한 것이 많아지게 되었다. 삶의 절벽에서 고통 속으로 떨어졌더니 비로소 날개가 달려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에서 시아버지의 간병보다 더 화가 났던 부분은 시어머니와 시댁 식구들의 태도였다. 특히 시어머니는 악랄했다. 25년이 넘도록 맏며느리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은 측은하다 못해 바보 같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아직도 이런 시월드가 있고 거기서 노예로 살아가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믿기질 않았다. 남편 조상님의 제사를 며느리라는 이유로 봉사해야하는 것도 어불성설인 것을 몇 백년간 관습이라는 이유로 하고 있는데, 시아버지의 치매 간병을 왜 맏며느리라는 이유로 도맡아야 하는가? 시월드의 모든 구성원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그녀는 순종했으며 매 순간 태풍이 휘몰아치는 절벽에 선 것 같은 아내에게 남편은 방패막이가 되어주지 않았다. 심한 표현일지 몰라도 내 눈에 그곳은 지옥이었다.

 

시아버지 간병 6년차에 저자는 가출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린 것이다. 자발적 감금상태였던 그곳에서 벗어나서야 겨우 자신이 있었던 곳을, 자신이 겪은 부당함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어린 시절과 가정생활을 돌아보게 되었고 그것이 시댁에서 사랑받는 맏며느리로 살아가게끔 만드는 족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그러한 자신의 삶이 세 자녀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으며 시어머니가 손주들에게 어떤 상처를 입혔는지도 알게 되었다. 드디어 저자는 효부라는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신을 찾기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 좋아하던 음악을 듣고 책을 읽고 유튜브로 여러 강연들을 들으며 무너진 자아를 찾고자 했다. 베이커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공부하고 아르바이트로 베이비시터 일을 했다.

 

이 책에서 저자에게 공감하고 따뜻한 말 한마디 건넨 이는 없었다. 가족들 중에 아무도 그런 사람이 없었는데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공감을 전한 이는 바로 베이비시터로 일했던 아이의 엄마였다. 그 사람이 저자에게 보낸 편지를 읽으며 나도 울컥했다.

 

저자는 힘들었던 시간을 이 책을 통해 살풀이하듯 풀어냈다. 마음 가득 차 있던 돌덩이를 밖으로 많이 끄집어낸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의 시간들을 다시 되돌릴 순 없을 것이다. 그러나 굳이 긍정적으로 표현하자면 지난 시간들이 어떤 식으로든 그에게 약이 되었기를 바란다. 마지막에 저자는 치매환자와 간병하는 가족, 요양사를 위한 당부로 마무리한다.

 

307~308

치매노인은 약자다. 자신에 대한 제3자의 무심코 하는 말과 눈빛을 느끼지만 제대로 된 표현도 방어도 못한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고 간과하는 것이 있다. 순간순간 느낀 감정을 잠재의식 속에 차곡차곡 쌓아 어느 순간 표출하게 된다. 그것도 폭발하듯. 환자를 간병하는 요양사에게도 마찬가지다. 섬세한 간병의 손길을 위해서도 예의를 갖추지만, 대부분은 따뜻한 인격과 소명감으로 치매환자를 대하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타고난 이타심이 없다면 오랫동안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가끔 그렇지 않은 요양사도 있지만 내가 겪은 대부분의 요양사님에게서 책임감과 배려심을 경험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약자를 성심성의껏 대하는 일을 하는 분이기에 더욱 존중 받아야 마땅하다.

 

 

이제 부디 저자가 자존감을 회복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맘 편하게 하면서 살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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