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는 모르는 어깨수술의 비밀 - 어깨통증과 치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다
이동규 지음 / 유어마인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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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 두분 다 어깨인대파열이라 어떤 내용일지 궁금했는데 도움 많이 되었어요!! 현재 아프지 않아도 예방 운동 할 수 있도록 운동사진이 많아서 좋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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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모르는 어깨수술의 비밀 - 어깨통증과 치료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다
이동규 지음 / 유어마인드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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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의료과잉 중에서 과도한 수술은 어제 오늘 문제가 아니다. 갑상선 수술은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한다고 한다. 며칠 전에는 백내장 수술의 숫자가 급격하게 많아졌다는 기사를 읽었는데 40~50대가 너무 많이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또 하나, 어깨수술도 많이 한다는 사실! 최근에 서평단에 당첨되어 읽은 책, <환자는 모르는 어깨 수술의 비밀>을 읽고 알게 되었다. 남편은 작년에 오십견으로 어깨에 주사를 맞았고, 친정엄마는 어깨 인대 파열로 수술을 할 예정이라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저자 이동규 원장은 스포츠의학분과와 정형외과의 전문의로 현재 프로야구팀과 연세대 스포츠 팀의 팀 닥터도 맡고 있다. 머리말을 읽어보니 저자의 방향성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과대광고와 과잉처방이 난무하는 상황을 안타까워하며 어깨 통증의 자가진단부터 원인과 치료법을 소개하겠다고 했다.

그럼 목차를 살펴보자.

1장 어깨통증에 대한 잘못된 진실

2장 어깨통증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어깨질환(증상/진단/비수술치료법)

3장 좋지 않은 자세와 습관으로 인한 어깨통증

4장 어깨수술이 필요하다면 제대로 하자(수술법/입원기간/비용/보조기착용기간/재활기간)

5장 어깨통증 재활운동으로 완치하자

6장 어깨 질환 영양제로 예방관리하자

어깨통증에 대해 우리가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을 1장에서 정리해주는데 본인이나 가족이 어깨통증이 있거나 수술을 고려중이라면 꼭 알아야 할 내용들이다.

일단 사례 하나!

어깨통증으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별 이상이 없다며, 병원에서 정확한 원인 파악을 위해 MRI를 찍자고 한다.

대부분의 환자는 찍을 것이다. MRI로 정확한 원인을 파악해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 이동규 원장은 MRI는 찍기만 하면 문제를 발견해 낼 여지가 크다고 말한다. 어깨통증이 없는 정상인도 MRI를 찍으면 어깨회전근개의 부분파열 가능성이 최소 20%이상이고, 스포츠매니야의 경우는 최대 90%로 나온다. 그러니 어깨통증이 있다면 분명 파열이 있는 것으로 나올 것이며 수술을 권유받게 된다. 저자는 MRI로 확인된 어깨병변이 지금 환자가 고통받고 있는 어깨통증의 ‘근본적인 원인’인지, 그 원인을 ‘반드시 수술적인 치료’를 통해 치료해야 해결가능한지를 확인해보자고 했다. 초기에 발견된 원인은 수술 없이 치료가 가능함에도 수술로 치료하는 사례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완전파열된 회전근개의 경우는 봉합수술로 재건을 해야겠지만 부분 파열일 경우 보존적 치료와 재활 운동만으로도 충분히 통증완화와 기능회복이 가능하다.

사례 둘!

어깨 주사를 처음 맞았을 때는 6개월 정도 괜찮더니 갈수록 효과가 짧아져서 한 달에 한 번씩 맞게 되었다. 그리고 1년 후 MRI를 찍었더니 극상근 부분파열은 완전 파열이 되었고 견쇄 관절 연골까지 녹아버렸다.

이 사례에서 맞았다는 주사란? 그렇다. 스테로이드 주사이다. 이것은 치료제가 아니라 부작용 많은 진통제임에도 너무 자주 맞는 환자들이 많고 잘못 주사하는 의사들도 있다는 것이다.

친정엄마도 스테로이드 중독으로 쿠싱증후군을 앓고 있는 상황이다. 50대 때부터 관절을 많이 쓰는 노동을 했고 통증을 치료하거나 운동을 하기보다는 스테로이드 주사와 진통제를 복용하며 견뎌왔다. 누적된 스테로이드 중독의 부작용이 올해 초 쿠싱증후군으로 나타난 것이다. 의사는 앞으로 스테로이드 주사는 절대 맞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다. 특별한 치료가 없으니 식이요법에 신경 쓰고 근력 운동을 하라고 했다. 엄마는 몹시 답답해했다. 환자 몸이 이상한데 왜 치료약이 없다고 하냐며... 약물을 당신 몸에 너무 많이 투여해서 생긴 병인데 또 약을 달라고 하니! 내가 더 답답했다.

앗, 딴 길로 샜다.

1장에서는 위 두 사례 외에도 오십견과 일자목의 경우, 정확한 원인 진단보다 불필요한 주사와 소염진통제를 남발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일자목이나 거북목 때문에 생긴 어깨통증은 바른 자세와 목의 올바른 정렬을 회복시켜주기 전까지 어떤 주사와 물리치료로도 완치할 수 없다.

2장은 가장 흔한 어깨질환 다섯 가지를 소개하고 있는데 이 책을 집어든 독자 중에 하나는 해당될 것이다. 이 리뷰에서 2장은 전체를 소개하려고 한다.

1. 석회성건염

위 증상에서 3가지 이상 해당된다면 석회성건염을 의심해봐야 한다. 출산의 고통을 6~7로 본다면 석회성건염 통증은 8~9라고 하니 얼마나 심한 통증이겠나. 다행인 점은 이 질환은 다른 어깨 질환에 비해 그 원인이 매우 뚜렷해서 치료가 상대적으로 쉽다. 이물질인 석회를 없애거나 사이즈를 줄이거나 빨리 흡수시키면 통증이 완화된다.

2. 회전근개파열

위 증상에서 5가지 이상 해당되면 회전근개 파열을 의심해야 한다. 단순히 MRI나 초음파 소견만 근거하지 않고, 충분한 이학적 검사화 환자의 증상, 나이, 직업, 환경등을 모두 통합적으로 고려한 후 진단을 내려야 한다. 어깨 회전근개는 1개의 두꺼운 고무줄이라기보다는 여러 개의 고무줄이 한데 뭉쳐진 고무줄 다발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조금 전문적인 내용이긴 한데 위 그림처럼 파열의 양상이 다르다면 수술과 치료방식도 차이가 있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관절면측 회전근개파열은 수술보다 주사나 충격파치료, 재활운동같은 보전적 치료로 효과를 볼 수 있고, 점액낭측 회전근개파열은 수술치료를 적극적으로 권유한다.

3. 슬랩과 이두장건염

위 증상에서 5가지 이상이 해당되면 슬랩 병변(상부 관절와순 병변)이나 이두장건염을 의심해보는 게 좋다. 슬랩은 야구, 배드민턴, 테니스와 같은 오버헤드 동작에서 통증을 느끼는 경우 많이 나타난다. 관절와순병변은 비수술적 치료로도 효과가 높지만 증상이 호전되지 않는 경우 수술을 하기도 한다.

4. 반카르트

팔 뼈가 빠지지 않게 안정성을 제공하고 가드 역할을 해주는 관절와순이라는 백색연골조직의 앞쪽이 파열되거나 손상되는 동반되는 질환이다. 재활운동치료로 나을 수 있을 정도라면 굳이 프롤로 주사나 인대강화주사, 또는 재생주사등을 맞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수술을 통해 봉합을 해야할 정도의 관절와순 파열이 있다면 봉합이 아닌 프롤로 주사는 효과가 거의 없다.

5. 오십견

오십견의 정확한 진단명은 ‘유착성 관절낭염’으로 관절낭이 유착되어 굳어져서 얼어버린 듯 움직이기 힘들다. 굳어진 어깨관절낭을 원래대로 유연하게 만드는 1차적 치료법은 운동과 스트레칭이다. 이미 관절 강직이 심하게 진행되거나 통증이 너무 심해 운동도수 치료가 불가능하다면 관절수액팽창술을 통해 유착된 관절낭을 주사로 부드럽게 풀어주고 운동치료를 병행하면 만족할만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3장은 우리의 좋지 않은 자세와 습관이 어깨통증을 유발한다는 내용이다.

근막통증증후군

근막은 서로 강하게 결합되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한쪽 근막이 단축되거나 과하게 사용되면 그 주변의 근막 역시 영향을 받고 엉뚱하게 반대편의 가장 약한 결합을 가진 근막에서 통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렇게 틀어진 근막은 통증의 원인이 아님에도 근막에 포커스를 맞춘 도수치료나 TPI 주사 또는 트리거포인트를 풀어주는 치료들은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을 뿐 시간이 지나면 통증은 재발된다.

모든 어개통증의 완치를 위해 반드시 통증을 일으키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줘야 한다. 오십견은 그 원인인 유착성 관절낭염을 해결해줘야 하고, 근막통증증후군 역시 원인을 해결해줘야 하는데 기본적으로 일상생활에서의 습관이 가장 큰 원인이다.

한쪽으로만 누워서 잔다든지, 다리를 한쪽으로 꼬는 것, 한쪽 어깨나 팔로만 특정 동작을 하는 것 등이 근막과 연부조직을 틀어지게 만든다. 마트 캐셔처럼 한 손으로만 작업을 하는 경우, 톨게이트 근무자처럼 한 방향으로만 반복적으로 사람을 대하고 팔을 뻗는 동작을 반복하는 경우, 해당방향으로는 근막이 과사용되고 반대쪽 근막이나 연부조직은 덜 사용된다. 틀어진 근막을 바로잡는 도수치료나 근막이완술과 함께 꾸준한 스트레칭과 운동을 해야 한다.

4장에서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는 어깨수술 방법 설명이다. 사실 자세한 수술방법에 대한 내용은 전문적인 내용이라 읽어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독자가 자신이나 가족에게 해당하는 수술에 대한 내용을 한 번 읽어보고 수술 후 주의사항을 숙지하면 될 것 같다.

나 같은 경우는 친정 부모님 두 분 모두 어깨인대파열이라서 네 번째 내용을 자세히 읽어봤다. 엄마는 지난 달 무릎 인공관절 수술로 입원했을 때 어깨 검사를 해보니 인대파열이라며 봉합수술을 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책을 읽고 보니 부분 파열인지 아닌지와 수술외에 치료법은 없는지 물어봐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더 심각하다. 거의 20여년 전 오토바이 타고 가다 넘어져서 어깨 인대가 파열된 것을 여태껏 그냥 참고 사셨다. 나도 이 사실을 얼마 전에야 알았다. 어떻게 그 긴 시간을 참고 사셨는지 모르겠다. 저자는 인대파열 후 시간이 오래 지난 경우 인대가 근육 쪽으로 딸려 들어가 뼈에 봉합하려 아무리 당겨도 잡아당겨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 경우 어깨 인공관절 수술을 해야 하며 수술 후에도 철저한 재활운동 치료와 어깨운동을 병행해아 한다.

당장 8월에는 다른 수술이 잡혀있다. 그 수술이 잘 되면 어깨도 다시 검사해보고 현재 어떤 상태인지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확인해야겠다.

5장은 어깨 건강을 위한 예방운동, 통증을 위한 운동, 재활운동을 소개하고 있다. 실제 운동하는 모습의 사진과 설명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자신의 상황에 맞는 운동을 보고 그대로 따라해 보면 된다. 아다시피 운동은 꾸준히 해야한다. 하루 이틀 한다고 해서 효과를 얻을 리 만무하다.

☞ 기기를 이용하는 운동도 있는데 몸으로 하는 운동만 발췌했다.

 

 

 

마지막 6장에서는 어깨질환과 관절에 좋은 영양제를 소개하고 있다. 염증성 어깨질환에는 식이유황(MSM), 비타민B12, 오메가3가 좋고, 만성어깨통증이나 예방에 좋은 영양제로는 커큐민, 마그네슘, 폴리페놀, 브로멜라민이 좋다고 한다.

맺음말에서 저자는 어깨통증은 만성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시간에 고쳐질 수 있는 질환이 아니라고 한다. 재활운동치료를 통해 올바른 습관을 배우고 기억하고 실천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럼에도 한 방에 끝내고 싶어 하는 환자들에게 운동치료를 추천하고 온전히 끌고 나가는 것도 의사입장에서는 어렵다고 말한다. 만약 치료 경과가 좋지 않다면 대부분의 환자들은 쓸데없이 운동치료를 해서 시간과 돈을 허비했다고 항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동규 원장은 환자와 의료진간에 신뢰를 쌓고 원활한 의사소통을 이루어 재활운동치료 같은 비수술적 치료를 당연하게 하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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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이너프 -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
다니엘 S. 밀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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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하면 다윈! 다윈이 쓴 종의 기원, 갈라파고스 제도? 이런 순서로 연상작용이 일어난다면 학창시절 생물시간에 시험을 위한 주입식 교육을 받은 덕분? 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과학이나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도까지를 상식이라 여길 것이다. 나도 비슷한 수준이지만 진화생물학과 관련된 미디어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산북스의 신간 <굿 이너프>의 소개 문구,

적자생존의 허점 고발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을 새롭게 해석한 문제작!”

그리고 부제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

을 보는 순간, ‘어머 이건 꼭 읽어야 해!’ 하며 서평단에 신청해서 읽게 되었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진화생물학자인 저자 다니엘 S. 밀로의 긴 머리말을 읽으면서 책 전체를 요약해주는 친절함, 다윈의 이론을 어떻게 반박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오랜만에 과학서적을 재미있게 읽겠구나 싶었다. 머리말의 마지막 문장, “우리 모두가 이만하면 충분히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굳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에서는 궁디팡팡의 효과까지~~

 

 

1부 진화의 아이콘 에서 <종의 기원>을 토대로 다윈의 이론에 반론을 제시한다. 2부 굿 이너프 이론 은 저자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고, 3부 우리의 승리와 그 부작용 에서는 굿 이너프 이론을 호모 사피엔스에 적용해 인간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본다.

 

이 책은 과학, 진화생물학 관련 전공자라면 전문적 배경지식이 있으므로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어렵게 느낄 수 있겠으나 전공서적이 아니라 대중서로 출간되었기 때문에 저자가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1부를 읽으며 든 생각은 다윈의 <종의 기원>을 직접 읽지 않았어도 저자가 다윈을 반론하기 위해 인용한 내용들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다윈의 이론에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저자의 반론에 재반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 정도라면 전공자인가?ㅎㅎ

 

포문을 여는 내용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기린에 대한 것이다. 생물시간에 배운 내용으로는 기린의 목이 원래 저렇게 길지 않았는데 높은 나무에 달린 잎이나 열매를 먹으려고 목을 자꾸 늘리다보니 길어졌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레마르크와 다윈의 이론으로 배웠는데 아니란다! 그럼 새로운 이론이라도 출현한 건가? 그건 아니고 여러 학자들의 반박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기린은 주로 어깨 높이보다 낮은 곳의 풀을 뜯어먹으며, 높은 목으로 혈액을 펌프질해야 하기 때문에 혈압이 높아 위험하고, 목 길이가 긴 수컷이 짝짓기에 유리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다윈의 가축화의 오류(내용 이해가 쉽진 않았다)를 짚다가 자신의 굿 이너프 이론과 슬쩍 연결한다.

 

p.104

인위 선택은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더 좋은 것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좋은 것에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것으로 양성적이고 방향성이 있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움직임을 촉진하는 반면, 자연은 더 좋은 것과 가장 좋은 것, 심지어 좋거나 나쁜 것에 무신경하다. 자연에서 중요한 것은 생물이 살아남아 번식을 할 만큼 충분히 훌륭하기만 하면 된다.

 

여기서 잠깐! 역자의 굿 이너프 이론에 대한 설명(p.26)을 발췌한다. - 굿 이너프 이론 (good enough)은 직역하면 충분히 훌륭한이지만 적자가 아닌 평범한 생물도 살아남고 번성하기에 충분히 훌륭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적자생존 이론과 상대되는 의미여서 범자(凡者)생존이론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 같지만, 적절한 용어는 학계의 결정을 기다리기로 하고 이 책에서는 굿 이너프 이론으로 부르기로 한다.

 

1부 내용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갈라파고스 제도에 한정된 이론을 다윈이 너무 일반화시켰다는 것이다.

 

p.122

갈라파고스 제도는 자연선택을 연구하는 데에는 흥미로운 자연 실험실이긴 하지만, 지구 전체를 대표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윈의 상상력에 불꽃을 일으켰고, 마땅히 그럴 만했다. 하지만 그 불꽃을 계속 보존하려고 하는 것은 그 섬들과 다윈이 방문한 다른 곳에서 나온 상반된 증거뿐만 아니라, 그 섬들의 특이한 성격-기후와 지형과 격리-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가축화 유추 때문에 측면 시야 가리개를 너무 단단히 쓴 나머지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태계에서 자연 선택이 자연계 도처에서 적자를 낳는다고 확인해주는 증거를 보았다. 그 결과는 다소 이상한데도, 이 전설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설은 대개 기이한 것을 강조하는데, 갈라파고스 제도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즉 이 섬들만이 지닌 독특성을 없애버린 것이다. 이 전설은 갈라파고스 제도를 평범한 섬들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섬들에서 일어난 자연의 놀라운 작용이 지구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저자는 갈라파고스의 동물들 사례를 하나하나 예로 들면서 반박하고, 다윈도 스스로의 허점을 알고 있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p.151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윈주의가 보편적으로 옳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물 제 1호로 간주돼왔지만, 섬의 동물상은 실제로는 다른 원리가 옳음을 보여준다. 그 원리는 바로 생물학은 상대 빈도의 과학이라는 것이다. 모든 변이를 설명하는 하나의 법칙은 없다.

 

2부 굿 이너프 이론 내용은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전체 내용 중 가독성이 가장 떨어졌다. 자신의 이론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내용에 실험 결과를 많이 인용했지만 쉽게 이해되진 않았다. 압축적 내용이 있어서 발췌한다.

 

p.254

다윈주의는 수직적이고 대부분 질적인 진화를 설명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윈주의의 주 개념은 적응이다. 굿 이너프 이론은 다윈주의가 누락한 것을 설명함으로써 다윈주의를 보완한다. 그것은 수평적이고 대부분 양적인 진화로, 종내 다양성과 선택적으로 중성인 종간 차이를 낳는다. 다윈주의가 자연사에서 기묘한 사건들을 설명하는 반면, 굿 이너프 이론은 종의 일상적인 존재, 특히 공존한 표본들에서 두루 관찰되는 변이의 첨가를 설명한다. 굿 이너프 이론의 주 개념은 중성이다.

 

3부는 동물에서 인류로 넘어온다. 사람 얘기라 더 잘 읽혔다. 인류 이동의 추동에 대한 가설들은 흥미로웠다. 아프리카 탈출 이유를 연구한 과학자들이 찾아낸 유전자는 DRD4-7R이라고 한다. 되게 거창해 보이지만 일명 역마살 유전자’!ㅎㅎ

 

부성이 인류 생존의 가능성을 높였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얼마 전 팟캐스트에서 진화생물학 교수님의 사례로 든 실험이야기가 생각났다. 젊은 여성들에게 남성 사진 몇 장을 보여주고 가장 호감이 가는 것을 고르라고 했더니 대부분 아기를 어르는 남성 사진을 골랐다고 한다. 잘 생긴 남자를 고를 거라고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옛날부터 부성을 표현하는 남성이 살아남았다는 것이고 그리하여 인류존속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말!

 

 

아기 운반도구(우리나라의 경우 포대기) 덕분에 자신과 아기를 보호하고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은 포대기가 여러 기능을 했다는 것이다. 침팬지같은 영장류는 새끼가 자석처럼 어미등이나 배쪽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어미가 손을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데 인간 아기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 포대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3부에서 오히려 굿 이너프 이론에 대한 설명이 더 쉬웠다.

 

자연은 매우 관대하지만, 사회는 그보다 훨씬 더 관대하다.”

자연은 혁신하면 죽는다라고 경고하는 반면, 인류는 혁신하지 않으면 (따분함으로) 죽는다.”

우리는 생존하고 생식하기 위해 생물학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없다.”

인류는 언제나처럼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 때문에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저자는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과감히 거부하면서 평범한 생물도 살아남았고 번성하고 있다면서, 충분히 훌륭하다고 했다. 이 책이 다윈의 이론에 대한 논박이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닐까 싶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정글로 비유되는 사회에서 1등을 강요받고, 정해진 기준안에 들지 못하면 루저 취급받는 이들에게 평범해도 충분히 훌륭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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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대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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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페르시아에 샤흐리야르라는 왕이 있었다. 어떤 계기로 아내의 부정을 알게 된 왕은 지독한 여성 불신에 빠져 매일 밤 처녀 한 명을 데려오게 하고는 순결을 빼앗고 이튿날 아침 목을 벤다. 그런 끔찍한 소행을 보다 못해 나선 사람이 대신의 딸 셰에라자드였다. 그녀는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진하여 왕을 침소에서 모시며 기이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런데 셰에라자드는 날이 밝으면 이야기를 중간에 멈추기 때문에 뒷이야기가 궁금한 왕은 그녀의 목을 벨 수 없다. 이렇게 해서 셰에라자드는 매일 밤 목숨을 부지하며 자신과 백성을 구하려 한다.

 

위 내용이 <천일야화>의 줄거리라는 것을 대부분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천일야화를 실제로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 같다. 분명 책으로 나와 있음에도 읽은 사람은 거의 없으며 어디선가 들은 내용으로, 혹은 어릴 적 애니메이션이나 동화책으로 본 기억으로 읽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모리미 도미히코의 소설 <열대>를 읽으며 깨달았다. 내가 아는 <천일야화>TV 애니메이션 <신밧드의 모험>을 본 게 다라는 걸!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아라비안나이트>, <신드바드>, <알라딘>, <알리바바>는 모두 <천일야화>에는 없다는 사실이다. 17세기 이후 <천일야화>가 서양에 소개되는 과정에서 들어간 이야기로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천일야화>의 내용은 저런 태생을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흡수해 확장된 것이라고 한다. 이 내용은 모두 <열대>에 나오는 것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천일야화>에 대해 모두에 길게 설명하는 이유는 <열대><천일야화>를 모티브로 했으며 책 속에서 계속 언급되기 때문이다.

 

<열대>가 시작될 때 등장하는 소설가의 이름을 실제 소설가 모리미 도미히코그대로 써서 이것이 소설인가 아닌가 헷갈리게 만들었다. 이미 여기서부터 독자는 낚인거다. 모리미는 대학 4학년 때 사야마 쇼이치가 쓴 <열대>라는 기이한 소설을 읽게 되는데 다 읽지 못한 채 분실한 것으로 내용이 시작된다. 그는 계속 소설의 결말이 궁금해서 그 책을 찾으려고 수소문 했지만 16년이 지나도록 찾지 못하다가 침묵 독서회라는 모임에 우연히 참가했다가 <열대>를 만나게 된다.

 

침묵 독서회에서 시라이시라는 여성이 그 책을 소개하고 있는 것을 보고 빌려달라고 간곡히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여기서부터 이 소설은 액자 구성의 끝판왕을 시작된다. <천일야화>의 액자구성이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열면 또 다른 인형이 나타나듯 <열대>도 그렇다고? 아니다! 몇 배는 더 심하다. 거의 양파 수준이다. 까도까도 계속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진다.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 인내심이 약한 독자라면 중간에 책을 덮어버릴 수도 있다. 대체 결말이 뭔데? 소설 속 소설 <열대>를 읽은 사람들이 저마다 다르게 이야기하고 게다가 아무도 끝까지 읽은 사람이 없다는데 내가 들고 있는 이 책의 결말은 어떻게 끝나는 건데? 라며 궁금해 하는 나처럼 성질 급한 사람은 책 맨 뒤를 펼칠 가능성이 높다. 나는 그랬다.

 

그런데 맨 뒷장, 그 앞장, 몇 장 더 앞장을 읽어봐도 모르겠는 거다. 그러니까 소설 속 소설<열대>의 결말도 알 수 없었고, ‘로 등장하는 이가 맨 처음에 나온 소설가 모리미인지 아닌지도 모르겠는 거였다. 그러니 인내심을 가지고 530페이지를 다 읽어야만 알 수가 있다는거...

 

사전 서평단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므로 힘들었지만 끝까지 다 읽어야 했다. 해냈다! 그러나 끝까지 다 읽고 처음으로 돌아가야 했다. 앞부분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럴 줄 알고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에 밑줄 쳐놓았다. 그 부분들만 다시 훑었다. 그렇게 해두지 않고 여느 소설처럼 줄줄줄 읽기만 했다면 다 읽고도 내용 이해 어려울 뻔 했다. 그만큼 작가가 수수께끼처럼 숨겨놓았다. 침묵 독서회와 학파 소속 사람들의 이름과 소설 속 소설 <열대>와 연관된 사연들이 쉽게 정리되지 않는다. 거의 도표를 그려야 할 정도다. 작가 모리미는 <천일야화>와 이 소설을 섞고, 소설 속 소설 <열대>와 등장인물들의 사연까지 샌드위치처럼 집어넣었다. 그들의 이야기는 공간을 초월하기 때문에 환상적인 느낌을 준다. 거기다 제각각 <열대>에 대한 다른 가설들을 주장하고 있어 그것까지 따라가려면 벅차다. 나는 이 사람이 독자들 약 올리려고 아니, 괴롭히려고 이러는 건가 싶었다.

 

이 소설 속에는 소설과 이야기와 인생에 대해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문장들이 많다. 그 문장들에 꽂히면 독자는 잠시 머물게 된다. 줄거리 파악은 잠시 접어두고 자신과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이다.

 

p.47

소설 같은 거 읽지 않아도 살 수 있어요.

장강명 작가가 어떤 책에서 언급한 내용이 떠올랐다. 지하철에서 소설을 읽고 있었는데 어떤 할아버지가 젊은 사람들이 소설나부랭이나 읽으니 세상이 이 모양이라며 호통치던 에피소드! 황당했던 장작가는 소설이야말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나 역시 동의한다. 문학을 읽는 사람과 읽지 않는 사람의 차이는 상당하다. 상상력과 어휘력은 물론이고 공감능력의 차이가 제일 크다. 내가 직접 겪어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타인이 겪는 심정을 책으로나마 간접 경험할 때 다른 사람을 이해까지는 못해도 공감할 수는 있다. 소설 같은 거 읽지 않아도 살 수는 있지만 다른 사람을 공감하고 소통하며 어울려 사는 건 어려울 것이다.

 

p.136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인생이라고 부르는 것뿐입니다.

인생의 끝은 죽음이다. 살아있는 동안 이야기는 계속 된다. 살면서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과제 같은 것들이 있다. 하나를 끝내면 다른 하나가 기다리고 있고, 큰 중요한 일이 지나가면 더 이상 다른 일은 없을 것 같지만 또 새로운 게 떡하니 기다리고 있다. 그게 인생이다.

친정 아버지는 팔순이 다 되어가는데 지난 달에야 생업을 접으셨다. 평생 여러 가지 직업을 이어오셨고 마지막으로 하신 가게는 20년 넘게 하신 일이었다. 몇 년 전부터 그만하시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이어오시더니 코로나로 더 이상 유지가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연세가 많으셔서 더 이상은 역부족이었다. 그런데 그저께 우리 집에 오셨다가 발열과 구토증상이 있어 깜짝 놀랐다. 코로나 감염인가 싶어 검사받았는데 음성으로 나왔고 피검사 상 염증수치가 너무 높다며 각종 검사를 했다. 조실부모 후 평생을 맨몸으로 일만 하며 살아오신 아버지가 이젠 좀 편히 쉬실 거라고 생각했는데! 고생끝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게 인생이라 부른다지만 제발 비극만은 아니면 좋겠다.

 

p.157

너와 관계없는 일을 이야기하지 말라.

그리하지 않으면 너는 원치 않는 것을 듣게 되리라.

위 두 문장은 <천일야화>에도 나온다고 한다. <열대>에도 몇 번이나 인용되는데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남의 말 하지 말라는 뜻으로 읽혔다. 그래서 영화 <올드보이>가 떠올랐다. 오대수는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15년간 감금당한다. 감금으로 끝난 게 아니라 급기야 원치 않는 말, 천형같은 말을 듣기에 이르지 않나...

 

p.434 존재하지 않으면 만들어 내면 돼.

p.436 창조한다는 건 지배한다는 뜻이다.

이야기는 계속 만들어져야 한다는 당위를 나타내는 말이었다. 그리고 만들어내는 사람, 작가가 지배자라고 강조하는 것 같았다. 작가 모리미의 스웩이 들어있는 문장으로 읽혔다.

 

이 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능력에 감탄하긴 했지만 사실 <천일야화>를 읽어보고 싶어졌다. 아주 어릴 때 애니메이션으로 본 경험과 여기저기서 짜깁기 형식으로 주워들은 것들로 <천일야화>를 읽었다고 착각한 자신이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찾아보니 아랍어 직역은 없고 앙투안 갈랑이 불어로 번역한 것을 임호경씨가 한국어로 번역한 게 있다. 열린책들에서 출판된 6권짜리 세트이다. ‘모리미 도미히코작가 덕분에 제대로 된 <천일야화>를 읽어보게 됐다. 조금 미안하긴 한데 <열대>에서 <천일야화>를 사용했기 때문이니 작가 본인도 뿌듯할 것 같다.

 

 

 

**알에이치코리아로부터 도서 협찬을 받았지만,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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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명소녀 투쟁기 - 1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현호정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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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박지리 작가의 팬이다. 그의 소설 전권을 다 읽었는데 이젠 더 이상 그의 소설을 읽지 못한다. 31살에 요절했기 때문이다. 박지리 작가의 소설을 읽을 수 없다는 건 아쉬움보다는 허전함으로 다가온다. 꾸준히 소설을 내는 다른 작가들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라 생각한다. 기대에 차서 읽은 다른 소설가들의 신간이 실망감을 안겨줄 때마다 박지리라는 별은 내 손에 잡을 수 없기에 더욱 반짝이는 거라며 자위했다.

작년에 사계절출판사에서 박지리 문학상을 공모한다는 기사를 박지리의 뒤를 잇는 작가 탄생이 있을 거라고 기대했다. 215편의 응모작 중 현호정 작가의 <단명소녀 투쟁기>가 대상으로 뽑혔다. 제목을 본 순간 이것은 운명이 아닌가 했다. 요절한 작가를 기리는 문학상의 첫회 수상작의 제목에 ‘단명’이란 단어가 들어가다니! 출판사에서 사전 서평단을 뽑는다기에 주저없이 아니!! 득달같이 신청했다. 다행이 뽑혀서 이북으로 먼저 읽었고 며칠전 종이책과 마우스패드도 받았다.

표지가 아주 강렬했다. 주인공 수정은 당돌하고 용감한 소녀이지만 그 얼굴을 연상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그림엔 아주 젬병이라 그렇기도 있지만 저렇게 당당한 소녀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이 잘 되지 않았는데 표지를 보는 순간 옳다구나! 싶었다. 그래, 저런 수정이니까 스무살 전에 죽을 거라는 점쟁이 말에 “싫다면요?” 라고 맞받아쳤겠지.

그렇다! 제목처럼 단명소녀는 수정이고 단명의 예언을 거부하며 자신의 죽음을 죽이기 위한 여정을 떠나는 투쟁기가 이 소설의 큰 줄기이다. 소설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 두 가지 물음이 떠올랐다. 이것은 환상동화인가? 아니면 퀘스트를 깨고 레벨업 해나가는 어떤 게임의 텍스트판인가? 게임 종류라고는 아는 게 하나도 없는 나로선 무슨 게임과 유사할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다.

책을 다 읽은 후 작가의 말과 출판사 리뷰를 보니 이 소설의 모티브가 <북두칠성과 단명소년>이라는 설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단명의 예언을 들은 소년이 99세까지 장수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을 소녀로 바꾸고 설화 속 소년과 달리 스스로 자신의 명을 쟁취하는 것으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상황들이 황당무계해 보이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예컨대 백설기를 끓여 죽을 만들어 노인 7명을 먹이는 상황, 흰 죽이 끓는 솥 바닥에서 얼룩처럼 잠겼다 떠올랐다 하는 것이 조각배 같았는데 어느새 그 조각배에 수정과 이안이 타고 있는 장면, 헌데 그 죽은 퍼내도 퍼내도 줄지 않는다! 한가지 사례를 들었지만 이런 상화들은 장면마다 연출된다. 즉 수정과 이안이 진입하는 퀘스트마다 발생한다.

이안은 누구인가? 점쟁이 북두가 수정에게 남동쪽으로 계속해서 걸어가면 죽음을 맞닥뜨릴 시간을 벌수 있다고 해서 혼자 출발한다. 그 출발점이 G시의 지하철역이다. 역을 빠져나오면서 ‘내일’이라는 이름의 개를 만나고 연이어 이안과도 조우하게 된다. 이안은 수정과는 반대로 죽고싶어서 북쪽으로 가는 길이며 수정과 같은 나이인 열아홉이었다.

- 혹시 살러가요?

- 네?

- 살고 싶어서, 남쪽으로 도망가고 있는 거냐고요.

수정은 이안의 물음을 곰곰이 되새겼다. 체하지 않기 위해 떡을 꼭꼭 씹듯 마음으로 잘근잘근 내씹었다. 그러자 단물이 입안에 퍼지듯이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한다.

이상한 건 내가 아니라 저쪽이다. 사는 건 죽는 것보다 낫다. 용기 있는 건 쟤가 아니라 나다. 부끄러워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그러나 그런 생각을 끝도 없이 주워 담는 동안에도 이상하게 얼굴이 달아오른다. 살고 싶냐는 저 애의 물음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느니 그냥 죽는 게 낫지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수정은 딱히 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 딱히 살고 싶다기보다는,

- 네,

- 죽고 싶지가 않아서요.

- 네.

- 싫다거나 무섭다거나 그런 게 아니라 좀 억울하다고 해야 할까, 이해를 못 했다고 해야 할까.

p.28~29

분명 정반대의 목적으로 길을 떠난 둘인데 함께 한 여정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구해준다. 그들이 겪는 상황은 현실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래서 게임을 글로 풀어놓은 것 같다고 표현한 것이다. 여기서 바로 이 소설의 매력이 있다.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실제라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마치 자신이 그 게임 속 캐릭터가 되어 몸을 움직이고 미션을 수행하는 것처럼 느낀다. 거짓임을 분명 알면서도 빠질 수 밖에 없는 것이 게임이고 레벨업에 목숨을 걸다시피 하는 것이다. 테트리스나 같은 그림 맞추기 정도밖에 해 보지 않은 나로서도 수정과 이안의 최종단계는 어떻게 될지 기대되었다.

마지막 저승의 신과의 결전에서, 수정이 ‘최선을 다했기에 흔적이 남은’ 거라고 하자 저승의 신은 이렇게 말한다.

“그럼 잔해를 떠안고 살아가. 고약한 피 냄새에, 무질서에 익숙해질 각오를 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착각하면서.”

수정은 이렇게 응수한다.

“나에게 그런 것들은 이제 조금도 두렵지 않아. 그리고 나는 그것들의 이름을 실제로 바꾸어 부르겠어. 폐허를 쉼터로 몰락을 휴식으로... 영원히... 그러면 그건 더 이상 착각이 아니게 되겠지.”

이어 쫓아오는 그동안 처리했던 모든 것들이 수정과 이안에게 달려들고 수정은 내일에게 이안을 부탁한다. 이렇게 끝나는가? 둘의 최후와 마지막 장의 반전 내용은 이 리뷰에 쓸 수 없다. 책으로 직접 만나보길 권한다.

그동안 읽었던 소설과는 분명 다른 스타일의 소설을 만나는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그러나 많이 알려지지 않은 연명설화, 게임이 진행되는 장면을 보는 것 같은 스토리텔링, 독특한 주인공과 등장인물들, 특히 ‘내일’이라는 개의 매력을 그냥 지나치긴 쉽지 않을 것이다. 5장에 등장하는 '오늘'이라는 개를 만나며 '내일'의 현신이 아닐까 가슴 두근거리게 된다면 현호정 작가의 글맛에 빠져버린 게 맞다!

 

나는 그랬다. 앞으로 박지리 문학상 출신이라는 이름표가 현호정 작가에게 자랑하고픈 휘장이 되길 바란다. 그의 차기작을 기다린다.

**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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