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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 이너프 -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
다니엘 S. 밀로 지음, 이충호 옮김 / 다산사이언스(다산북스) / 2021년 6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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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하면 다윈! 다윈이 쓴 종의 기원, 갈라파고스 제도? 이런 순서로 연상작용이 일어난다면 학창시절 생물시간에 시험을 위한 주입식 교육을 받은 덕분? 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에서 과학이나 생물학을 전공하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도까지를 상식이라 여길 것이다. 나도 비슷한 수준이지만 진화생물학과 관련된 미디어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다산북스의 신간 <굿 이너프>의 소개 문구,
“적자생존의 허점 고발을 통해 다윈의 진화론을 새롭게 해석한 문제작!”
그리고 부제 ‘평범한 종을 위한 진화론’
을 보는 순간, ‘어머 이건 꼭 읽어야 해!’ 하며 서평단에 신청해서 읽게 되었다.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진화생물학자인 저자 ‘다니엘 S. 밀로’의 긴 머리말을 읽으면서 책 전체를 요약해주는 친절함, 다윈의 이론을 어떻게 반박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이 차올랐다. 오랜만에 과학서적을 재미있게 읽겠구나 싶었다. 머리말의 마지막 문장, “우리 모두가 이만하면 충분히 훌륭한데도 불구하고, 굳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에서는 궁디팡팡의 효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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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진화의 아이콘 에서 <종의 기원>을 토대로 다윈의 이론에 반론을 제시한다. 2부 굿 이너프 이론 은 저자 자신의 이론을 설명하고, 3부 우리의 승리와 그 부작용 에서는 굿 이너프 이론을 호모 사피엔스에 적용해 인간사회에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살펴본다.
이 책은 과학, 진화생물학 관련 전공자라면 전문적 배경지식이 있으므로 쉽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은 독자라면 어렵게 느낄 수 있겠으나 전공서적이 아니라 대중서로 출간되었기 때문에 저자가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1부를 읽으며 든 생각은 다윈의 <종의 기원>을 직접 읽지 않았어도 저자가 다윈을 반론하기 위해 인용한 내용들만으로도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다윈의 이론에 옹호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저자의 반론에 재반론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 정도라면 전공자인가?ㅎㅎ
포문을 여는 내용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기린에 대한 것이다. 생물시간에 배운 내용으로는 기린의 목이 원래 저렇게 길지 않았는데 높은 나무에 달린 잎이나 열매를 먹으려고 목을 자꾸 늘리다보니 길어졌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그것이 레마르크와 다윈의 이론으로 배웠는데 아니란다! 그럼 새로운 이론이라도 출현한 건가? 그건 아니고 여러 학자들의 반박이론을 제시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기린은 주로 어깨 높이보다 낮은 곳의 풀을 뜯어먹으며, 높은 목으로 혈액을 펌프질해야 하기 때문에 혈압이 높아 위험하고, 목 길이가 긴 수컷이 짝짓기에 유리한 것도 아니라고 한다.
그리고 다윈의 가축화의 오류(내용 이해가 쉽진 않았다)를 짚다가 자신의 굿 이너프 이론과 슬쩍 연결한다.
p.104
인위 선택은 좋은 것에서 더 좋은 것으로, 더 좋은 것에서 가장 좋은 것으로, 가장 좋은 것에서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것으로 양성적이고 방향성이 있고 끊임없이 계속되는 움직임을 촉진하는 반면, 자연은 더 좋은 것과 가장 좋은 것, 심지어 좋거나 나쁜 것에 무신경하다. 자연에서 중요한 것은 생물이 살아남아 번식을 할 만큼 충분히 훌륭하기만 하면 된다.
※ 여기서 잠깐! 역자의 굿 이너프 이론에 대한 설명(p.26)을 발췌한다. - 굿 이너프 이론 (good enough)은 직역하면 ‘충분히 훌륭한’이지만 적자가 아닌 평범한 생물도 살아남고 번성하기에 충분히 훌륭하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적자생존 이론과 상대되는 의미여서 ‘범자(凡者)생존이론’이라고 하면 적절할 것 같지만, 적절한 용어는 학계의 결정을 기다리기로 하고 이 책에서는 굿 이너프 이론으로 부르기로 한다.
1부 내용 중 가장 흥미로웠던 것은 갈라파고스 제도에 한정된 이론을 다윈이 너무 일반화시켰다는 것이다.
p.122
갈라파고스 제도는 자연선택을 연구하는 데에는 흥미로운 자연 실험실이긴 하지만, 지구 전체를 대표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윈의 상상력에 불꽃을 일으켰고, 마땅히 그럴 만했다. 하지만 그 불꽃을 계속 보존하려고 하는 것은 그 섬들과 다윈이 방문한 다른 곳에서 나온 상반된 증거뿐만 아니라, 그 섬들의 특이한 성격-기후와 지형과 격리-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가축화 유추 때문에 측면 시야 가리개를 너무 단단히 쓴 나머지 다윈은 갈라파고스 제도의 생태계에서 자연 선택이 자연계 도처에서 적자를 낳는다고 확인해주는 증거를 보았다. 그 결과는 다소 이상한데도, 이 전설은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전설은 대개 기이한 것을 강조하는데, 갈라파고스 제도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일이 일어났다. 즉 이 섬들만이 지닌 독특성을 없애버린 것이다. 이 전설은 갈라파고스 제도를 평범한 섬들로 만들었다. 그래서 이 섬들에서 일어난 자연의 놀라운 작용이 지구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일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저자는 갈라파고스의 동물들 사례를 하나하나 예로 들면서 반박하고, 다윈도 스스로의 허점을 알고 있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이렇게 말한다.
p.151
갈라파고스 제도는 다윈주의가 보편적으로 옳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물 제 1호로 간주돼왔지만, 섬의 동물상은 실제로는 다른 원리가 옳음을 보여준다. 그 원리는 바로 생물학은 상대 빈도의 과학이라는 것이다. 모든 변이를 설명하는 하나의 법칙은 없다.
2부 굿 이너프 이론 내용은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전체 내용 중 가독성이 가장 떨어졌다. 자신의 이론이기 때문에 전문적인 내용에 실험 결과를 많이 인용했지만 쉽게 이해되진 않았다. 압축적 내용이 있어서 발췌한다.
p.254
다윈주의는 수직적이고 대부분 질적인 진화를 설명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윈주의의 주 개념은 적응이다. 굿 이너프 이론은 다윈주의가 누락한 것을 설명함으로써 다윈주의를 보완한다. 그것은 수평적이고 대부분 양적인 진화로, 종내 다양성과 선택적으로 중성인 종간 차이를 낳는다. 다윈주의가 자연사에서 기묘한 사건들을 설명하는 반면, 굿 이너프 이론은 종의 일상적인 존재, 특히 공존한 표본들에서 두루 관찰되는 변이의 첨가를 설명한다. 굿 이너프 이론의 주 개념은 중성이다.
3부는 동물에서 인류로 넘어온다. 사람 얘기라 더 잘 읽혔다. 인류 이동의 추동에 대한 가설들은 흥미로웠다. 아프리카 탈출 이유를 연구한 과학자들이 찾아낸 유전자는 DRD4-7R이라고 한다. 되게 거창해 보이지만 일명 ‘역마살 유전자’!ㅎㅎ
부성이 인류 생존의 가능성을 높였다는 내용을 읽으면서 얼마 전 팟캐스트에서 진화생물학 교수님의 사례로 든 실험이야기가 생각났다. 젊은 여성들에게 남성 사진 몇 장을 보여주고 가장 호감이 가는 것을 고르라고 했더니 대부분 아기를 어르는 남성 사진을 골랐다고 한다. 잘 생긴 남자를 고를 거라고 예상했는데 아니었다. 옛날부터 부성을 표현하는 남성이 살아남았다는 것이고 그리하여 인류존속의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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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운반도구(우리나라의 경우 포대기) 덕분에 자신과 아기를 보호하고 일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내용은 포대기가 여러 기능을 했다는 것이다. 침팬지같은 영장류는 새끼가 자석처럼 어미등이나 배쪽에 찰싹 달라붙어 있어서 어미가 손을 마음대로 놀릴 수 있는데 인간 아기는 그런 능력이 없으니 포대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3부에서 오히려 굿 이너프 이론에 대한 설명이 더 쉬웠다.
“자연은 매우 관대하지만, 사회는 그보다 훨씬 더 관대하다.”
“자연은 ‘혁신하면 죽는다’라고 경고하는 반면, 인류는 ‘혁신하지 않으면 (따분함으로) 죽는다.”
“우리는 생존하고 생식하기 위해 생물학적으로 개선될 필요가 없다.”
“인류는 언제나처럼 미래를 상상하는 능력 때문에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저자는 적자생존이라는 말을 과감히 거부하면서 평범한 생물도 살아남았고 번성하고 있다면서, 충분히 훌륭하다고 했다. 이 책이 다윈의 이론에 대한 논박이지만 어쩌면 인간에게 위로를 건네는 게 아닐까 싶다. 특히 한국인들에게... 과도한 경쟁에 내몰리고, 정글로 비유되는 사회에서 1등을 강요받고, 정해진 기준안에 들지 못하면 루저 취급받는 이들에게 ‘평범해도 충분히 훌륭하다’는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