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부터 클래식
김호정 지음 / 메이트북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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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클래식>은 중앙일보 문화부 음악담당 김호정기자가 출간한 <오늘부터 클래식>을 컬처블룸 카페 서평단에 당첨되어 읽게 되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기 때문에 관련 서적이 나오면 읽으려고 노력한다. 얼마전에도 영화 속 클래식음악을 찾아보는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같은 소재의 책을 연거푸 읽게 되어 지겹지 않을까 살짝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소재는 같아도 책마다 컨셉이 다르고 저자도 다르니 겹치는 건 거의 없었다. 무엇보다 QR코드로 연결해주는 영상이 얼마나 다를지 기대하면서 들어가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만큼 세상엔 음악이 넘쳐나고 연주자도 많다는 사실!! 몰랐던 것을 알게 되는 기쁨 역시 이런 책을 읽는 맛이다.





보통 클래식 서적이 작곡가 위주의 설명과 음악 소개 및 감상에 포인트가 맞춰져 있다면 이 책은 차별점이 분명히 있다. 이 책의 저자가 기자이기 때문에 그만이 전할 수 있는 게 있다. 이를테면 유명 연주자와의 인터뷰나 클래식계의 새로운 소식 같은 것들이다. 이 책에서 새롭게 알게 된 것이 많은 데 그중 인상깊었던 것 중 피아노와 작곡가를 소개한다.

독일의 유명 피아노 제조사 스타인웨이가 2015년에 개발한 스피리오(Spirio)라는 피아노가 있다. 스피리오는 유명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그대로 재연하는 피아노이다. 이 피아노를 거실에 들이면 랑랑이 우리집에 와서 연주를 해준다. 스피커로 나오는 전자피아노가 아니다. 직접 건반이 움직이며 랑랑의 연주를 복사하여 재생하는 것이다. 일단 아래 영상을 확인해 보자!

https://youtu.be/lhW_tRmpLFs

이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피아노 연주의 석고틀을 상상하면 쉽다. 피아니스트가 건반을 누르는 깊이를 1초에 800번씩 1,020레벨로 나눠 기록한다. 스타인웨이 측은 예술가마다의 다른 감정을 건반과 페달의 고해상도 조합으로 복제할 수 있다고 한다. 2020년 현재 저장해놓은 곡은 3,400곡, 아티스트는 1,700명이고 가격은 2억원대이다.

야마하의 디스클라비어(Disclavier) 피아노도 살펴보자. 두 대를 각각 모스크바와 서울에 놓고 건반아래의 장치를 작동시키면, 모스크바에서 연주하고 서울에는 피아노 연주자가 없어도 건반이 똑같이 움직인다고 한다. 앞으로는 집에서 피아노를 인터넷에 연결하면 피아노가 라디오처럼 알아서 스트리밍되며 건반이 움직여 소리가 나는 제품도 나올 거라고 한다. 무인자동차 기술과 느낌이 비슷한데 예술영역에도 진화하는 기술을 믹싱한 사례인 것 같다. 연주자 없이 건반이 움직이면 마치 유령이 연주하는 듯 으스스할 것 같기도 하지만 조성진이 내 앞에서 연주한다고 상상하면 그 감동은 CD로 들을 때와 차원이 다를 것 같다.

저자의 직업으로서의 장점이 돋보이는 장은 3장 내가 만난 연주자들 이다. 우리는 CD나 영상으로만 연주를 감상하지만 저자는 음악기자로서 연주자들과 만났다. 책에는 인터뷰 한 내용과 개인적 느낌까지 보태어져 음악뿐 아니라 연주자들의 몰랐던 면모를 만날 수 있다. 첨부된 QR코드는 접하지 않았던 영상들이라 반가웠다.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의 학생 오케스트라와 하는 리허설 영상은 정식 연주회의 진지한 모습으로만 만난 사이먼 래틀의 모습과 달리 유쾌했다. 저자가 2017년에 했던 인터뷰를 내용은 Sir로 불리는 래틀 경도 처음엔 어리버리 리버풀보이였다.

안드레아 보첼리 편의 QR로 들어갔더니 작년에 두오모 성당에서 불렀던 25분여의 영상이 나를 이탈리아로 데려가 주었다. 밀라노의 전경과 두오모 성당 안에 울려퍼지는 보첼리의 목소리는 내 마음도 깊이 울려주었다.

https://youtu.be/huTUOek4LgU

저자 김호정씨가 기자라서 좋은 점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4장 클래식에 대해 정말 궁금한 것들 은 클래식 입문자가 읽기에는 조금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이다. 최근 클알못(클래식 초보)을 위해 아주 기초적인 이론부터 쉽게 즐기는 방법을 다루는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다. 그에 비하면 4장에서 설명하는 내용들은 초보자에겐 조금 버거울법한 내용이었다.

장조와 단조를 설명하면서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을 가져오는 부분이 그러했다. 클래식 전공자라면 이정도 설명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고, 이 곡을 즐겨 듣거나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조성의 전환을 설명하는 것을 읽으며 어떤 느낌인지 감이 올 것이다. 하지만 아예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무슨 말인지 당최 알아듣기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 27번은 내림바장조임에도 단조의 느낌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서두의 QR은 베토벤 교향곡 7번 2악장도 아니고 모차라트 피아노 협주곡 27번도 아닌,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8번으로 연결된다. 빠른 단조이기 때문에 장조의 느낌이 난다며 인간의 감정이 단순하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다. 베토벤 교향곡을 자세히 설명했으므로 그 곡을 QR로 볼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4장에서 현대음악 작곡가 중에 미국에서 더 이름이 알려진 김택수라는 작곡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우리가 듣는 클래식 음악은 거의 200~300여 년 전 작곡가들이 쓴 곡이다. 비교적 최근이라 할 수 있는 프로코피에프(1891~1953)의 곡도 어렵다고 하는 사람이 많은데 동시대 작곡가의 클래식 곡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김택수 작곡가의 ‘국민학교 환상곡’을 들어보니 아니었다. 우리가 국민학교 다닐 때 들었던 멜로디들이 나오니 낯설지 않고 오히려 반가웠다. '현대음악=난해함' 이라는 등식이 깨는 곡이었다. 작곡가가 직접 설명하는 영상을 첨부하니 한 번 들어보시라~ 초등학교 출신?들이라면 “클래식, 어렵지 않네!” 그럴 것이다.

https://youtu.be/sVEkbH4-CPU

이 책은 클래식 초보자보다는 어느 정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 꾸준히 음악을 듣는 사람들, 클래식 관련 새소식이나 공연장, 연주자들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기분 좋게 읽을 수 있다. 혹여 클알못이 이 책을 손에 잡았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 텍스트가 어렵다면 각 꼭지에 연결된 QR 영상만 봐도 된다. 클래식 초보가 유튜브에서 좋은 영상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저자가 엄선한 영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의 가치는 충분하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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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은 왜 그래 - 영화 속 그 음악
더라이프 [클래식은 왜 그래] 제작팀 지음 / 시월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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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하나의 콘텐츠를 다양한 미디어로 만들어내고 있다. 웹툰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지는 건 이제 대수롭지도 않은 일이 되었다. 활자를 영상화하는 건 빈번하지만 그 반대는 거의 보지 못했다. 영상을 책으로 출간한 케이스가 있어서 읽게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장르다.


책 <클래식은 왜-그래>는 더라이프 채널의 프로그램 <클래식은 왜그래>의 텍스트 버전이다.




책의 부제가 “영화 속 그 음악”이라서 딱 내 취향인 책이었고 최근에 만난 클래식 책 중에 가장 알찬 책이었다. 책 대신 유튜브에서 모든 걸 배운다는 세상인데 영상을 책으로 만들면서 우려가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보완하기 위한 노력이 보였다. 비주얼에서 흥미를 놓지 않게 하려고 사진은 모두 컬러로 사용한것 같다.(비용을 생각했다면 올컬러는 힘들었을 것!) 텍스트에서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하려고 내지 색상에 변화를 주었고, 표 활용처럼 디자인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클래식 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QR코드이다. 이론적인 내용이나 음악가에 대한 것은 텍스트로 읽어도 무방하지만 아무리 설명이 있다해도 연주를 직접 보아야 감흥이 온다. 글자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요즘 클래식 책에는 모두 QR코드가 삽입되어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누가 지휘하고 연주하는 영상을 볼 수 있게 해두었느냐가 책의 퀄리티를 결정한다.


클래식 책들은 계속 진화중이다. 작년에 출간된 클래식 책 중에는 QR코드가 없는 책도 있었고, 있더라도 연결된 영상이 실망스런 경우도 있었다. 가장 NG였던 책은 저자가 욕심을 너무 부린 경우였다. 저자가 연주자였는데 자신이 직접 연주를 하는 영상이 QR로 연결되어 있었다. 연주만 하면 다행인데 설명을 한 게 NG였다. 부끄러움은 왜 독자몫이어야 하는가... 연주자가 아나운서가 아니니 매끄럽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자신도 쭈뼛거리는 게 너무 표가 났다. 그런 식으로 영상을 만든 출판사가 더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이처럼 다른 책들의 NG사례를 나열한 이유는 이 책 <클래식은 왜-그래>는 그런 오류들이 모두 클리어된 상태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굳이 아쉬운 점을 하나 꼽으라면 추천음반이 없다는 것이다. 한 장안에 여러 곡의 QR코드를 삽입해 두었기 때문에 각 곡마다 추천음반을 다 소개할 순 없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아주 유명한 곡일 경우 비교감상을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베토벤의 5번 교향곡은 지휘자 스타일에 따라 빠르기나 악기의 강조가 다르므로 유명한 음반 3~4개 정도는 소개하는 것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6장에서 영화 <불멸의 연인>을 다루며 베토벤의 주요 곡을 소개했다. 5번 교향곡은 어떤 지휘자일지 기대하며 QR로 들어가보았다. 1960년대 초반 번스타인이 뉴욕필을 지휘한 음반이었다. 같은 뉴욕필의 연주지만 30년 전인 1933년 뉴욕필을 지휘한 토스카니니의 5번 교향곡은 번스타인의 지휘보다 1.5배속 빨리감기의 느낌이다. 토스카니니의 성격이 그대로 드러나는 연주다. 같은 곡이라도 이렇게 느낌이 다르다. 이 책이 입문자를 위해 쉽고 재미있게 만든 책이라고 했지만 아닌 사람이 읽을 수도 있으니 작곡가의 가장 유명한 곡 하나쯤은 추천음반이 있었으면 더 좋았겠다.


이제 한 장의 구성을 살펴보자.

첫 번째 초대장은 영화 친절한 금자씨와 비발디이다.




첫 페이지에 포스터와 결정적 장면을 사진으로 배치했고, 영화 소개는 텍스트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곡이 쓰였는지를 읽으면서 영화 속 장면을 떠올리게 해준다.





장면은 알겠는데 음악은 모를 가능성이 높다. 영화를 본지 오래되었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럼 바로 QR로 들어가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배경음악을 들으며 텍스트를 읽으면 영화가 머릿속에 그려진다는 사실! 그렇게만 하고 넘어가면 좀 아쉽지 않을까? 왜냐! 이 책은 클래식 책이니까 그 음악에 대해 더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으니 읽어보고 음악을 끝까지 다 들으면 된다.




앗, 여기서 단점 아닌 단점! 책 읽는 속도가 너무 느려진다는 것이다. 장면 설명 하나 읽고 음악 찾아서 듣고 그러다 보면 한 장을 읽는데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 그러므로 아예 내려놓으시라~~ 이 책은 빨리 읽는 책이 아니다! 빨리 읽기에 어울리지 않는다! 뭣이 중헌디!! 영화에 어떤 작곡가의 어떤 곡이 쓰였는지를 알고, 클래식 곡을 감상하려는 거 아니었나? 그렇다면 빨리 읽기는 의미 없다. 텍스트로 영화와 음악을 읽은 후 영상으로 음악 공부를 하고, 다시 영화를 보면 감동과 즐거움이 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각 장의 마지막에는 클래식 꿀팁과 좀 더 아는 척하고 싶을 때 써먹을 내용들까지 깨알같이 들어있다.






😝깨알재미 예!😝

⬇️ 무슨 숫자일까?

쇼팽 1.7

슈베르트 1.54

모차르트 1.5

베토벤 1.62

리스트 1.85


혼자 읽는 것도 재미있지만 옆에 있는 사람이나 아이에게 퀴즈를 내보거나 OO는 왜그래 코너의 MSG 버무려진 이야기를 들려줘도 좋겠다. 음악책이지만 여러모로 활용해 볼 수 있다.

책을 읽고 나니 이 프로그램이 궁금했다. 사실 이런 프로그램이 있는 줄도 몰랐다. 영상도 재미있었다. 책읽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은 이 프로그램 보면서 더 좋다고 할까봐 살짝 걱정됐다. (책 만든 사람도 아니면서 별 걱정을 다!ㅎㅎ) 내가 활자중독자라서 책에 더 마음이 기우는 건 맞지만 이 책이 그만큼 웰메이드라서 그렇기도 하다.


책에서 다룬 영화들은 다 봤는데 사용된 클래식 곡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 너무 오래되어 그런 것 같다. 다시 보며 음악 확인하고 싶은 영화는 <인생은 아름다워>다. 이 영화를 볼 당시 나는 오펜바흐가 누군지 몰랐으며 그가 작곡한 음악이 이 영화에 쓰였다는 것도 당연히 몰랐다. 그래도 음악이 좋았다는 기억은 있다. 오펜바흐라는 작곡가를 모르는 사람들이 ‘오펜바흐는 왜 그래’ 코너를 읽으면 간략하게나마 그의 일생을 알게 된다. 물론 다른 작곡가들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클래식 입문자를 포함 누구나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추천한다.


😝깨알재미 예!😝

숫자는 뭥??

➡️ 땅에서 하늘로 잰 높이!!(meter 표기~)

😁😝😝🤣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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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읽는 시간
이유진 지음 / 오티움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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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읽는 시간>의 소개를 읽고 서평단 신청을 할까말까 잠시 망설였다. 죽음을 다룬 책이라고 하니 의사가 암이나 중증환자를 치료한 사례와 호스피스, 웰다잉까지 나올텐데... 그동안 비슷한 책을 몇 권이나 읽었기 때문에 중복되는 내용이라서 고민하다가 이내 신청했다. 저자가 암전문의나 외과의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의사가 되었는데 미국에 가서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가 되었다고 하니 그의 삶이 궁금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신청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민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시한부를 선고받은 환자들,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린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어떻게 치료했는지, 환자 가족이나 지인은 물론 의사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부분도 다루고 있다. 보통 의사가 저자일 경우 자신의 사생활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책의 주제에 부합하는 환자사례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책의 중반까지 저자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의사로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에피소드와 주위 의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의사들과 다른 점들이 여럿 소개되어 흥미로웠는데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국 의사들은 자신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를 지도했던 교수는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면서 26년간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 자신은 항우울제 처방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힘들었는데 미국은 분위기가 정반대라니 놀라웠다. 저자가 한국에서 레지던트였을 때 유능하고 성격 좋았던 선배가 자살했다. 우리나라도 의사 자신의 정신건강을 챙기고 배려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면 그 선배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텐데 내가 다 안타까웠다.


미국은 존엄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주가 여럿 있다. 오리건 주에서 행해지는 존엄사의 한 장면을 소개하고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존엄사 논쟁은 늘 첨예하며 종교계의 반대가 강력하다. 그러나 존엄성을 잃은 삶을 유지하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당연한 것임에도 법에 강제되어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자신에게 닥치기 전까지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권리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 입법부는 이런 논쟁적인 사안을 법제화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병이나 부상으로 인해서 죽음이 확실한 당신의 가족 같은 반려동물이 눈앞에서 고통받고 있다면 당신은 그 고통을 멈춰줄 것인가, 심장이 멎을 때까지 고통받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반려동물이라고 해서 쉽게 결정할 수 있을까? 위 문장에서 반려동물을 빼면 가족인데! 가족의 고통을 외면할 것인가? 본인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두는 것이 좋다. 가족의 딜레마를 덜어주기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미리 작성해두면 존엄하지 못한 최후를 맞지 않아도 된다.


그럼 암 진단을 받은 가족에게 혹는 치료중이거나 치료가 끝났을 때, 환자 옆의 사람으로서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이 대목이다. 그동안 읽은 책에서는 환자가 겪는 여러 어려움에 도움을 주는 내용들은 많았으나 가족이나 친구로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암 치료중이든, 완치 후이든 환자는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한다. 생각이나 태도도 많이 바뀐 것처럼 보인다. 그럴 때 왜 예전 같지 않느냐고 다그치면 심각한 후유증으로 남는다. 가족들 사이에 오갔던 비난과 모진 말은 영원한 상처로 남는다. 그렇다고 긍정적이고 희망찬 격려가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알려주는 방법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1. 암을 진단받은 환자가 자신의 잘못 때문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대한다.

- 긍정적인 마음과 밝은 에너지만으로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는 없다. 타인의 삶을 다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면서 나의 잣대로만 평가하고 판단하지 말길 바란다.

2. “다 잘 될거야.”라는 격려는 주의해서 말하자.

- 바라는 대로 현실이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황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그 시간을 함께 견디겠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차라리 낫다.

3.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조언도 크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터널 바깥에서 이래라저래라 소리치기보다는 터널 안으로 들어가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것이 낫다. 아니면 터널 끝에서 기다려 주든가.

 


저자가 환자를 치료한 사례를 읽다보니 신기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환자 입장에서 배려하고 공감하며 대하는 모습이었다. 미국이라서, 정신과 의사라서, 충분히 응대할 시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드라마가 아닌 실제로 그런 의사가 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진짜 판타지스런 의사가 있구나


길 위의 정신의학프로젝트를 혼자 꿋꿋이 하고 있는 의사도 있다. 저자와 동갑내기인 플라이셔 교수다. 길 위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기란 여러 이유로 힘들다. 플라이셔 교수는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매주 수요일, 갖가지 의약품과 관계형성물품을 가득 넣은 배낭을 메고. 그는 결국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이웃과 사회를 건강한 곳으로 지켜냈다. 저자도 플라이셔 교수 덕분에 변했다고 한다.


, 저자 소개를 마지막에야 하게 되었다.



 

책 제목이 죽음을 읽는 시간이지만 저자는 삶을 이야기한다. 죽음 언저리에 있지만 살아있는 환자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는 환자의 고통을 완화해주고 정신적 건강을 보살피는 의사로서 삶을 더 강조한다. 죽은 후에는 죽음이고 삶이고 부질없다.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 것을 당부한다. 인상깊었던 저자의 말을 옮기면서 리뷰를 마무리한다.

 

p.185

죽음의 공포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살도록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죽음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결국 패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사랑하고 후회없이 살다가 언제일지 모를 그 끝을 끌어안아야 하는 운명이다.

 

p.249

암에 걸렸다는 것은 훈장도 주홍글씨도 아니다. 그저 살면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어쩌다 나에게 일어났을 뿐이다. 특별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아직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좋은 날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p.299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가는 우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몸에 지니고 사는 것과 같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 인간의 존재는 일시적이고 유한하며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p.303

나를 단단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고 내 삶을 풍성하고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내가 마주하고 견뎌냈던 과거의 시간이다. 미래의 나에게 실존적 고통이 찾아온다며, 삶을 의미있는 시간들로 채워나갔던 과거의 내가 바로 나의 구원자가 되어줄 것이다.


p.329

브레이바트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삶을 가장 의미있는 순간으로 만드는 것은 사랑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에는 사람을 구하는 힘이 있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우리의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내 곁에서 나와 시간을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함께 보낸 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그들과 함께할 앞으로의 시간에 끝이 있음을 알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삶의 이유와 의미가 되어준다.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위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위 리뷰는 춢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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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환상 - 의학자가 걷고, 맡고, 기록한 세상의 냄새들
한태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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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를 매개로 떠나는 음식 여행, 역사 여행, 기억 여행! 한태희교수의 냄새가이드를 기대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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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환상 - 의학자가 걷고, 맡고, 기록한 세상의 냄새들
한태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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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환상>은 반갑고도 특이한 책이다. 코로나 때문에 작년부터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된 사람들에게 여행 욕구를 충족시켜줄 것이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상관없다. 이 책은 냄새를 매개로 음식 여행, 역사 여행, 기억 여행을 떠나게 해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향으로 떠나는 여행” 또는

“여행에서 만난 냄새”

어떻게 엮어도 냄새와 여행이 짝꿍이 된다.

<후각과 환상>은 성균관대 의대 한태희 교수가 썼다. 저자가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다닌 여행지의 사진과 기록 중에서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냄새의 기억을 토대로 엮었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냄새와 후각이 선사하는 그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적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에 빙고!! 라고 답해주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힘껏 펼쳤다. 저자가 안내하는 여행지 중에 내가 경험한 장소는 단 한 곳도 없었기에 눈으로는 활자를 쫓으며 뇌는 몹시 분주해졌다. 내 배경지식을 총동원하여 활자에 부합하는 시각자료를 찾아낸 다음 냄새의 경험도 찾아보았다. 선별된 자료로 시각과 후각 시냅스를 연결할 고리를 찾아 이어야 했는데 이 지점에서 상상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후각 자료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저자가 인용하는 영화나 문학작품 속 묘사를 읽으며 상상해야만 했다. 고마운 건 적절하게 배치된 그의 사진자료가 상상하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저자가 독자들을 데려가는 곳은 인류의 기원인 중동과 북아프리카이다. 다음으로 유럽을 돌아 아시아와 한국에 당도한다. 책 속 장소가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은 지난 추억과 함께 냄새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고, 처음 소개받는다면 그의 가이딩에 감탄하며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것이다.

p.48

가죽을 물들이는 데는 양귀비꽃, 헤나, 인디고 등의 천연 염료가 사용된다. 본격적인 염색 처리 전 가죽을 소의 오줌과 비둘기 똥이 들어간 용액에 이틀 정도 담가 두면 가죽이 부드러워지고 염료가 잘 스며드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강렬한 냄새의 정체는 그야말로 맨살과 똥오줌이 섞인 생명체의 노골적 모습이다.


위 설명이 바로 내 후각정보와 시각정보의 불균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모로코 페즈의 전통염색장은 저자의 묘사처럼 ‘거대한 벌집을 닮은 가죽 염색 작업장의 웅덩이마다 풀어놓은 각양각색의 염료 때문에 멀리서 보면 팔레트’처럼 보인다.



사진도 첨부해 놓아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정보를 더욱 빠르게 불러올 수 있다. 그런데 위 냄새에 대한 설명은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가진 후각 자료에는 없는 거다. 소 오줌 냄새와 비둘기 똥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런데 위 문단의 마지막에 저자는 이 문장을 연결한다.

“갓난아기 기저귀와 비교해도 톡 쏘는 냄새가 더 짙게 느껴질 정도다.”

비록 옅어지긴 했으나 내겐 아기 기저귀 냄새의 정보가 있다. 그런데 그 정보를 불러오다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염색장 웅덩이의 냄새는 민트송이 한 웅큼을 코에 갖다 대고 있어도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악취라고 표현했는데 내게 아기 기저귀 냄새는 그리 고약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 내 새끼 똥오줌 냄새는 향기롭다하지 않나? 특히 젖만 먹는 갓난쟁이의 변냄새가 그리 역할 리 없다. 그래서 지금 타이핑하는 내 옆에서 한잠에 빠진 고양이 토르의 지독한 똥냄새를 연상하며 저 염색장 사진과 매치시켜 보았다. 그래도 쉽사리 역함을 느끼지 못하는 건 요 녀석의 똥냄새에도 적응되어 그런가 싶다.(ㅎㅎ 이상한 결론!)


저자 덕분에 상상여행을 하다보니 직접 가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는다. 뜨거운 햇살아래 머리에 흰 천을 두른 채 좁디좁은 골목을 돌아 그곳에 당도하기 전부터 뜨끈한 공기를 타고 코끝으로 들어올 그 냄새를 맡아보고 싶다. 마침내 당도한 그 강렬함에 코를 부여잡을지라도 냄새가 나는 염색장 쪽으로 한번 걸어 들어가 보고 싶다.

여행에서 음식을 빠트릴 수 없듯 후각은 역시 미각과 만나 꽃을 피운다. 그 중 과일은 누구나 좋아한다. 특정 알레르기가 있지 않는 한. 저자의 아래 서술을 읽어보자. 침이 절로 고일 것이다.

“OOO의 껍질을 벗기자 누르스름하고 끈적끈적한 속살이 드러나며 달큰한 향이 퍼진다. 입안에 넣은 과육에서 배어나오는 진한 달콤함은 온전한 열대의 맛이었다.”

OOO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면 달콤한 맛을 연상하겠지만 열대과일 두리안을 먹어본 사람이 OOO이 두리안이란걸 알게되면 으윽! 할 것이다. 나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채소가 썩는 듯한 고약한 냄새라고 하니 역겨울 것 같긴 하다. 냉장고 검은 봉지 속에 오래 방치되어 물러버린 부추나 상추의 냄새는 아니까!



저자는 첫맛을 달콤하게 표현한 두리안과 유사하게 악취를 풍기는 식물의 사례를 가져와 생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p.224

결국 악취와 향기는 인간이 가른 개념일 뿐, 생태계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인간 또한 그 사슬로부터 무관치 않다. 전설적 향료인 사향이나 영묘향도 짝을 유혹하기 위해 생식선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향 자체는 콤콤한 고린내에 가깝지만, 다른 향과 어울리면서 포근한 살결 냄새를 만들어 낸다. 인간은 이 원초적이고 관능적 느낌에 오랫동안 매혹되어 왔다.

역겨운 냄새는 거부의 대상일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인간이 선호하는 향은 악취에서 온 것이 많다. 영화 <향수>를 보면 그 기호의 최상급이 나온다. 인간을 매혹시킬 향을 만들기 위한 ‘그루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알 것도 같다. 가장 감각적이랄 수 있는 후각이 그리는 환상을.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 를 보지 못했는데 저자가 글로 소개하는 장면을 읽으며 소리와 색과 맛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저자가 서 있는 식당 테라스에서 떠올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나도 그려보았다.



이 리뷰에서 소개하는 여행지는 극히 적으므로 여행이 고픈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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