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과 환상 - 의학자가 걷고, 맡고, 기록한 세상의 냄새들
한태희 지음 / 중앙books(중앙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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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과 환상>은 반갑고도 특이한 책이다. 코로나 때문에 작년부터 해외여행을 못 가게 된 사람들에게 여행 욕구를 충족시켜줄 것이다. 해외여행 경험이 없는 사람이라 해도 상관없다. 이 책은 냄새를 매개로 음식 여행, 역사 여행, 기억 여행을 떠나게 해줄 테니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고 싶다.

“향으로 떠나는 여행” 또는

“여행에서 만난 냄새”

어떻게 엮어도 냄새와 여행이 짝꿍이 된다.

<후각과 환상>은 성균관대 의대 한태희 교수가 썼다. 저자가 1990년대부터 최근까지 다닌 여행지의 사진과 기록 중에서 가장 생생하게 남아있는 냄새의 기억을 토대로 엮었다. 그는 에필로그에서 ‘냄새와 후각이 선사하는 그 풍부한 상상력과 감성적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었다’고 했는데 나는 그 말에 빙고!! 라고 답해주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상상의 나래를 힘껏 펼쳤다. 저자가 안내하는 여행지 중에 내가 경험한 장소는 단 한 곳도 없었기에 눈으로는 활자를 쫓으며 뇌는 몹시 분주해졌다. 내 배경지식을 총동원하여 활자에 부합하는 시각자료를 찾아낸 다음 냄새의 경험도 찾아보았다. 선별된 자료로 시각과 후각 시냅스를 연결할 고리를 찾아 이어야 했는데 이 지점에서 상상력이 동원될 수밖에 없었다. 후각 자료가 많이 부족했기 때문에 저자가 인용하는 영화나 문학작품 속 묘사를 읽으며 상상해야만 했다. 고마운 건 적절하게 배치된 그의 사진자료가 상상하는데 꽤 도움이 되었다.

저자가 독자들을 데려가는 곳은 인류의 기원인 중동과 북아프리카이다. 다음으로 유럽을 돌아 아시아와 한국에 당도한다. 책 속 장소가 여행 경험이 있는 사람은 지난 추억과 함께 냄새의 기억을 떠올릴 것이고, 처음 소개받는다면 그의 가이딩에 감탄하며 상상력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것이다.

p.48

가죽을 물들이는 데는 양귀비꽃, 헤나, 인디고 등의 천연 염료가 사용된다. 본격적인 염색 처리 전 가죽을 소의 오줌과 비둘기 똥이 들어간 용액에 이틀 정도 담가 두면 가죽이 부드러워지고 염료가 잘 스며드는 상태가 된다고 한다. 강렬한 냄새의 정체는 그야말로 맨살과 똥오줌이 섞인 생명체의 노골적 모습이다.


위 설명이 바로 내 후각정보와 시각정보의 불균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모로코 페즈의 전통염색장은 저자의 묘사처럼 ‘거대한 벌집을 닮은 가죽 염색 작업장의 웅덩이마다 풀어놓은 각양각색의 염료 때문에 멀리서 보면 팔레트’처럼 보인다.



사진도 첨부해 놓아 내가 가지고 있는 시각정보를 더욱 빠르게 불러올 수 있다. 그런데 위 냄새에 대한 설명은 아무리 찾아봐도 내가 가진 후각 자료에는 없는 거다. 소 오줌 냄새와 비둘기 똥 냄새를 맡아본 적이 있어야 말이지. 그런데 위 문단의 마지막에 저자는 이 문장을 연결한다.

“갓난아기 기저귀와 비교해도 톡 쏘는 냄새가 더 짙게 느껴질 정도다.”

비록 옅어지긴 했으나 내겐 아기 기저귀 냄새의 정보가 있다. 그런데 그 정보를 불러오다가 혼란에 빠지고 말았다. 염색장 웅덩이의 냄새는 민트송이 한 웅큼을 코에 갖다 대고 있어도 뚫고 들어오는 강렬한 악취라고 표현했는데 내게 아기 기저귀 냄새는 그리 고약하지 않은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아! 내 새끼 똥오줌 냄새는 향기롭다하지 않나? 특히 젖만 먹는 갓난쟁이의 변냄새가 그리 역할 리 없다. 그래서 지금 타이핑하는 내 옆에서 한잠에 빠진 고양이 토르의 지독한 똥냄새를 연상하며 저 염색장 사진과 매치시켜 보았다. 그래도 쉽사리 역함을 느끼지 못하는 건 요 녀석의 똥냄새에도 적응되어 그런가 싶다.(ㅎㅎ 이상한 결론!)


저자 덕분에 상상여행을 하다보니 직접 가보고 싶은 욕구가 마구 솟는다. 뜨거운 햇살아래 머리에 흰 천을 두른 채 좁디좁은 골목을 돌아 그곳에 당도하기 전부터 뜨끈한 공기를 타고 코끝으로 들어올 그 냄새를 맡아보고 싶다. 마침내 당도한 그 강렬함에 코를 부여잡을지라도 냄새가 나는 염색장 쪽으로 한번 걸어 들어가 보고 싶다.

여행에서 음식을 빠트릴 수 없듯 후각은 역시 미각과 만나 꽃을 피운다. 그 중 과일은 누구나 좋아한다. 특정 알레르기가 있지 않는 한. 저자의 아래 서술을 읽어보자. 침이 절로 고일 것이다.

“OOO의 껍질을 벗기자 누르스름하고 끈적끈적한 속살이 드러나며 달큰한 향이 퍼진다. 입안에 넣은 과육에서 배어나오는 진한 달콤함은 온전한 열대의 맛이었다.”

OOO가 뭔지 모르는 상태에서 읽으면 달콤한 맛을 연상하겠지만 열대과일 두리안을 먹어본 사람이 OOO이 두리안이란걸 알게되면 으윽! 할 것이다. 나는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모르지만 채소가 썩는 듯한 고약한 냄새라고 하니 역겨울 것 같긴 하다. 냉장고 검은 봉지 속에 오래 방치되어 물러버린 부추나 상추의 냄새는 아니까!



저자는 첫맛을 달콤하게 표현한 두리안과 유사하게 악취를 풍기는 식물의 사례를 가져와 생존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인다.

p.224

결국 악취와 향기는 인간이 가른 개념일 뿐, 생태계 속에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인간 또한 그 사슬로부터 무관치 않다. 전설적 향료인 사향이나 영묘향도 짝을 유혹하기 위해 생식선에서 분비되는 물질로 향 자체는 콤콤한 고린내에 가깝지만, 다른 향과 어울리면서 포근한 살결 냄새를 만들어 낸다. 인간은 이 원초적이고 관능적 느낌에 오랫동안 매혹되어 왔다.

역겨운 냄새는 거부의 대상일 것 같지만, 알고 보면 인간이 선호하는 향은 악취에서 온 것이 많다. 영화 <향수>를 보면 그 기호의 최상급이 나온다. 인간을 매혹시킬 향을 만들기 위한 ‘그루누이’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니 알 것도 같다. 가장 감각적이랄 수 있는 후각이 그리는 환상을.

영화 <그린 파파야 향기> 를 보지 못했는데 저자가 글로 소개하는 장면을 읽으며 소리와 색과 맛을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저자가 서 있는 식당 테라스에서 떠올리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나도 그려보았다.



이 리뷰에서 소개하는 여행지는 극히 적으므로 여행이 고픈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위 리뷰는 네이버카페 리뷰어스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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