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죽음을 읽는 시간
이유진 지음 / 오티움 / 2021년 8월
평점 :

<죽음을 읽는 시간>의 소개를 읽고 서평단 신청을 할까말까 잠시 망설였다. 죽음을 다룬 책이라고 하니 의사가 암이나 중증환자를 치료한 사례와 호스피스, 웰다잉까지 나올텐데... 그동안 비슷한 책을 몇 권이나 읽었기 때문에 중복되는 내용이라서 고민하다가 이내 신청했다. 저자가 암전문의나 외과의가 아니라 정신과 의사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의사가 되었는데 미국에 가서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가가 되었다고 하니 그의 삶이 궁금하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서 신청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고민은 불필요한 것이었다. 이 책에는 저자가 시한부를 선고받은 환자들, 젊은 나이에 암에 걸린 사람들의 정신 건강을 어떻게 치료했는지, 환자 가족이나 지인은 물론 의사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부분도 다루고 있다. 보통 의사가 저자일 경우 자신의 사생활은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책의 주제에 부합하는 환자사례가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책의 중반까지 저자가 미국에서 공부하고 의사로 활동하면서 힘들었던 에피소드와 주위 의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나라 의사들과 다른 점들이 여럿 소개되어 흥미로웠는데 그 중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국 의사들은 자신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는다고 한다. 저자를 지도했던 교수는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면서 26년간 의사로 활동하고 있다. 저자 자신은 항우울제 처방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힘들었는데 미국은 분위기가 정반대라니 놀라웠다. 저자가 한국에서 레지던트였을 때 유능하고 성격 좋았던 선배가 자살했다. 우리나라도 의사 자신의 정신건강을 챙기고 배려받을 수 있는 분위기였다면 그 선배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텐데 내가 다 안타까웠다.
미국은 존엄사를 법적으로 허용하는 주가 여럿 있다. 오리건 주에서 행해지는 존엄사의 한 장면을 소개하고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존엄사 논쟁은 늘 첨예하며 종교계의 반대가 강력하다. 그러나 존엄성을 잃은 삶을 유지하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의 생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는 당연한 것임에도 법에 강제되어 있다. 사실 이런 문제는 자신에게 닥치기 전까지는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을뿐더러 권리라고 여기지도 않는다. 특히 우리나라 입법부는 이런 논쟁적인 사안을 법제화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는다.
저자는 이렇게 묻는다.
“병이나 부상으로 인해서 죽음이 확실한 당신의 가족 같은 반려동물이 눈앞에서 고통받고 있다면 당신은 그 고통을 멈춰줄 것인가, 심장이 멎을 때까지 고통받도록 내버려둘 것인가.”
반려동물이라고 해서 쉽게 결정할 수 있을까? 위 문장에서 반려동물을 빼면 가족인데! 가족의 고통을 외면할 것인가? 본인이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써두는 것이 좋다. 가족의 딜레마를 덜어주기 위해서만 필요한 게 아니다. 미리 작성해두면 존엄하지 못한 최후를 맞지 않아도 된다.
그럼 암 진단을 받은 가족에게 혹는 치료중이거나 치료가 끝났을 때, 환자 옆의 사람으로서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이 대목이다. 그동안 읽은 책에서는 환자가 겪는 여러 어려움에 도움을 주는 내용들은 많았으나 가족이나 친구로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를 알려주는 책은 없었기 때문이다.
암 치료중이든, 완치 후이든 환자는 이전과 다른 행동을 한다. 생각이나 태도도 많이 바뀐 것처럼 보인다. 그럴 때 왜 예전 같지 않느냐고 다그치면 심각한 후유증으로 남는다. 가족들 사이에 오갔던 비난과 모진 말은 영원한 상처로 남는다. 그렇다고 긍정적이고 희망찬 격려가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저자가 알려주는 방법 몇 가지를 정리해 보았다.
1. 암을 진단받은 환자가 자신의 잘못 때문에 걸린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대한다.
- 긍정적인 마음과 밝은 에너지만으로 병을 예방하고 치료할 수는 없다. 타인의 삶을 다 알거나 이해하지 못하면서 나의 잣대로만 평가하고 판단하지 말길 바란다.
2. “다 잘 될거야.”라는 격려는 주의해서 말하자.
- 바라는 대로 현실이 흘러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상황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그 시간을 함께 견디겠다는 메시지를 주는 것이 차라리 낫다.
3.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라는 조언도 크게 위안이 되지는 않는다.
- 어두운 터널을 지나가는 사람에게 터널 바깥에서 이래라저래라 소리치기보다는 터널 안으로 들어가 옆에서 함께 걸어주는 것이 낫다. 아니면 터널 끝에서 기다려 주든가.
저자가 환자를 치료한 사례를 읽다보니 신기했다.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 나오는 의사들처럼 환자 입장에서 배려하고 공감하며 대하는 모습이었다. 미국이라서, 정신과 의사라서, 충분히 응대할 시간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래도 드라마가 아닌 실제로 그런 의사가 있다는 사실에 반가웠다. 진짜 판타지스런 의사가 있구나!
‘길 위의 정신의학’프로젝트를 혼자 꿋꿋이 하고 있는 의사도 있다. 저자와 동갑내기인 플라이셔 교수다. 길 위에서 생활하는 이들이 아파도 병원에 가기란 여러 이유로 힘들다. 플라이셔 교수는 그들 속으로 들어갔다. 매주 수요일, 갖가지 의약품과 관계형성물품을 가득 넣은 배낭을 메고. 그는 결국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냈고 이웃과 사회를 건강한 곳으로 지켜냈다. 저자도 플라이셔 교수 덕분에 변했다고 한다.
앗, 저자 소개를 마지막에야 하게 되었다.

책 제목이 죽음을 읽는 시간이지만 저자는 삶을 이야기한다. 죽음 언저리에 있지만 살아있는 환자를 만나기 때문이다. 그는 환자의 고통을 완화해주고 정신적 건강을 보살피는 의사로서 삶을 더 강조한다. 죽은 후에는 죽음이고 삶이고 부질없다. 살아있는 동안 행복하게 살 것을 당부한다. 인상깊었던 저자의 말을 옮기면서 리뷰를 마무리한다.
p.185
죽음의 공포는 우리가 지금 여기에 집중하며 살도록 한다. 그런 의미에서 죽음은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죽음은 실패가 아니다. 죽음에 맞서 싸우는 것은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결국 패배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을 사랑하고 후회없이 살다가 언제일지 모를 그 끝을 끌어안아야 하는 운명이다.
p.249
암에 걸렸다는 것은 훈장도 주홍글씨도 아니다. 그저 살면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어쩌다 나에게 일어났을 뿐이다. 특별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 아직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았다. 그리고 생각보다 더 좋은 날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p.299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가는 우리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몸에 지니고 사는 것과 같다. 죽음은 언제 어디서든 누구에게든 갑작스럽게 찾아올 수 있다. 인간의 존재는 일시적이고 유한하며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우주의 먼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마음으로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자신의 존재 이유와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p.303
나를 단단하게 하는 밑거름이 되고 내 삶을 풍성하고 의미있게 만드는 것은 내가 마주하고 견뎌냈던 과거의 시간이다. 미래의 나에게 실존적 고통이 찾아온다며, 삶을 의미있는 시간들로 채워나갔던 과거의 내가 바로 나의 구원자가 되어줄 것이다.
p.329
브레이바트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삶을 가장 의미있는 순간으로 만드는 것은 사랑이었다.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기억에는 사람을 구하는 힘이 있다. 이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며 우리의 미래에도 마찬가지다. 내 곁에서 나와 시간을 함께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하고, 함께 보낸 시간을 기록하고 기억하며, 지금 내 곁에 있는 이들에게 사랑을 표현하고, 그들과 함께할 앞으로의 시간에 끝이 있음을 알고 매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도 삶의 이유와 의미가 되어준다. 좋은 삶과 좋은 죽음을 위해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위 리뷰는 춢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