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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 - 암을 지나며 배운 삶과 사랑의 방식
양선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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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장난 줄 알았는데 인생은 계속됐다>는 한겨레 신문사에서 20년간 재직한 양선아 기자의 암투병기다. 나는 이 책을 한겨레 출판사 서평단 자격으로 읽게 되었다. 4월 출간 도서 소개를 보고 이 책을 골랐다. 몇 년 전부터 죽음관련 서적, 암투병기를 읽어오고 있는데 유방암 투병기는 안 읽어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읽으면서 내 안에 있던 나쁜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먼저 저자 소개를 보니 스펙이 대단했다. 이화여대 출신에 한겨레에 입사해 굵직굵직한 일들을 해왔고 “정치하는 엄마들” 활동으로 2018, 2019년 ‘올해의 언론인상’을 받은 사람이었다.
‘아이고,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던 사람이 암에 걸렸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라는 생각은,
‘이렇게 다 가진 것 같은 사람도 고통을 겪긴 겪는구나...’에 다다랐는데,
‘잠깐, 나 왜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라는 각성은 이 책을 다 읽어갈 무렵에 감지됐다. 저자가 방사선 치료를 받을 때 입원한 요양병동의 투덜이 환자의 태도에서 내 모습을 본 것이다. 요가 명상수업 강사는 감사 일기를 쓸 것을 권유했고 수업시간에 사람들과 행복한 순간을 나누게 했는데 그 환자는,
“행복한 일이 뭐가 있겠어. 아무래 생각해도 하나도 없는데...”라며 자신의 몸 아픈 이야기만 했다.
내가 요즘 저런 생각만하며 살고 있구나 싶어 심히 부끄러웠다. 그리고 저자에게 미안했다. 그가 겪은 고통의 시간을 관람하듯 읽은 게 아닌가 싶었다. 사실 계속 감탄하며 읽었으면서 말이다. 서평단이라서 훌륭한 암투병기라는 칭찬만 쓰는 것보다는 내 못난 마음을 굳이 리뷰의 서두에 썼다. 그러므로 이 책은 암환자나 가족, 특히 유방암 투병에 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읽었으면 좋겠다. 암과 별 관련 없는 사람이 뭐하러 읽겠냐고 하겠지만 3부는 지금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지 말고 평소 건강한 마음과 몸을 유지할 수 있는 조언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읽어야 한다.
이제 1, 2부를 살펴보자.
1부 믿음과 두려움 사이 는 2019년 12월 12일 저자가 유방암 진단을 받은 날로부터 시작한다. 뒷부분에도 언급했지만 저자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로 뽑은 때는 진단을 받은 날부터 명확한 치료 계획이 잡히기 전까지의 한 달 반 정도 되는 시간이었다. 암의 크기가 어느 정도이고 치료를 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를 때의 그 공포감은 경험자만이 알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진단을 받은 후 바로 서점으로 달려가 암 관련 서적들을 샀고, 의학전문 동료기자로부터 조언을 얻었으며 블로그에 일지처럼 기록하기 시작했다. 기자로서의 능력이 본능처럼 작동된 것이다.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일단 생계 때문에 일을 그만둘 수 없는 사람들이 있고, 심지어 암 발병을 숨긴 채 항암치료를 하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다. 또한 정보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고, 네트워크 활용도도 낮다. 그래서 저자는 고립감을 겪는 이 시기를 포함 암 환우를 위한 심리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암 진단 후부터 치료를 시작하면서 우왕좌왕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거의 교과서적 모델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암 투병했던 약 1년 6개월을 시간 순서대로 일지형식으로 서술하지만 그 안에는 암 환우들에게 필요한 깨알팁들이 수두룩하다. 담당 의사와의 면담을 인터뷰형식으로 진행한 내용은 기자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겠나 싶지만 조금만 차분히 생각해보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대학병원에서 의사와 만나는 시간은 길어야 5분이다. 그 시간 안에 의사의 설명을 들으며 고개만 끄덕끄덕하다가 나와서 아차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궁금한 것들을 메모해 가서 물어보고 적어오는 방법을 사용하면 답답함을 덜 수 있을 것이다.
2부 그럴 땐 바람이 부는 대로 놔뒀다 에는 본격적인 항암치료 과정과 유방 절제수술, 그 후 방사선 치료과정을 담았다. 저자는 자신이 치료를 하는 동안 겪은 어려움, 혹은 궁금증이 일 만한 부분 부분 마다 관련 저서를 소개하고 있다. 통계청을 위시한 각종 해당 통계 수치도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독자에게 신뢰감을 준다.
예컨대 이런 방식이다. 5~6차 항암을 하면서 쓴 일기장에는 ‘다시 과거로 돌아간다면, 자연식으로 몸에 좋은 음식들을 찾아 누구보다 맛있게 감탄하며 먹을 자신이 있다’고 썼다. 치료를 하면서 매 끼니 정성스레 챙겨먹고 감사하며 먹었다면서 암 치료 관련 책을 인용한다. 나샤 윈터스 박사의 <대사치료, 암을 굶겨 죽이다>에서 채소 섭취가 중요한 이유, 십자화과 식물(브로콜리, 양배추, 콜리플라워, 콜라비, 무)을 추천한다. 이어 2018년 질병관리본부가 공개한 ‘우리나라 성인에서 만성질환 질병부담에 기여하는 식품 및 영양소 섭취 현황과 추이’ 보고서를 곁들이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평소 자신의 식습관을 돌아보고 개선할 수 있는 동기를 심어준다.
저자는 유방 절제까지는 하지 않게 되길 바랐다. 그러나 암은 자신이 희망하는 대로 따라주지 않았다. 항암치료를 통해 크기를 줄이면 암 병변 부위만 제거할 수 있으리라 예상했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고 림프 쪽의 암도 사라졌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저자는 암 치료과정에서 배운 것이 있다고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별하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태도이다. 그래서 수술 전에 영양보충과 체력관리를 했고, 수술 후 간병 및 아이들 돌봄 시스템을 짰다. 수술 준비와 수술 후 관리 및 발생 가능한 부작용 확인, 수술 후 입원할 병원을 알아봤다. 그 중 수술 전 준비물 리스트를 세세하게 소개해 놓았다.
저자는 친정어머니와 남편, 친구 및 선후배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들의 활약상은 투병과정 내내 스며들어 있었기 때문에 저자가 외롭지 않게 치료할 수 있었다. 특히 한겨레 신문사 직원 290여명의 응원 메시지와 성금은 예상치 못했던 것이라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저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세 가지를 사람, 책, 걷기라고 했다. 가장 힘들 때 자신을 살렸고 땅에 발을 딛게 만들어줬다면서 앞으로도 붙들고 살겠다고 다짐했다.
저자는 투병기를 블로그와 한겨레 신문에 연재하면서 받았던 피드백들을 정리하다가 나태주 시인의 ‘서로가 꽃’이라는 시가 떠올랐다면서, 세상의 모든 암 환우와 그들을 돌보고 치료하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뜨거운 마음으로 서로 기도하자고 했다. 시는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입해서 읽고 느낀다고들 한다. 그렇게 보면 이 시는 누구에게나 어울린다. 읽으면서 응원하고 기도하고 싶은 얼굴이 떠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저자의 건강을 기원하며 손글씨로 써보았다. 건강하게 계속될 양선아씨의, 그리고 우리 모두의 인생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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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