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
주성철 지음 / 김영사 / 202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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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 나는 홍콩영화팬이었다. 

주윤발빠였다!

그러나!!

우리나라 제 일의 홍콩영화 전문가 주성철씨의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를 읽으며 알았다. 내가 좋아하는 홍콩 배우와 내가 본 홍콩 영화는 정말이지 새 발의 피라는 걸. 이 책은 <홍콩에 두 번째 가게 된다면, 2010년>의 전면개정판이지만 나는 전작을 읽지 않았으므로 <헤어진 이들은 홍콩에서 다시 만난다>와 비교할 수는 없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한 장국영>을 읽으면서 감탄했었는데 이번 신간으로 주성철 평론가의 디테일에 존경심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고맙다.

홍콩영화팬 동지였던 정희와 나는 고등학교 졸업 이후 서서히 멀어졌고 연락이 끊긴지 오래 되었다. 우리 사이가 이렇게 되리라곤 그 땐 정말 몰랐다. 그러나 나는 안다. 정희도 분명 이 책을 읽을 거라고. 장국영과 주윤발을 사랑했던 그 때 우리를 생생하게 떠올릴 거라고. 저자가 소개하는 영화를 읽으면 우리가 함께 봤던 극장과 영화가 눈앞에 펼쳐질 것이고, 실려 있는 QR코드로 들어가 영화 속 장소를 돌아보며 머릿 속엔 이미 여행 동선을 그릴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홍콩에서 다시 만날 것이다.

나 같이 한 때 홍콩 영화 팬이었던 사람들은 분명 환호할 책이다. 책에도 실린 것처럼, 장국영 찐팬들은 영화 속에 채 1분도 채 나오지 않은 장면속 장소가 어디인지를 찾아낸다. 그러나 나처럼 호들갑 떨다 급속하게 시들해진 사람들은 본 영화도 그리 많지 않고 감히 찐팬들과 비교할 수 없다. 그저 홍콩 영화 종합선물세트인 이 책을 은혜롭게 받아들어야 한다. 앞으로 할 일이 무궁무진하게 많아진 것에 감사해야 한다.

이 책의 추천평을 세 명의 감독이 썼는데 그 중 류승완 감독의 글을 소개하고 싶다.


예전부터 ‘뿅’ 갈 때 “홍콩 간다”고 했다. 아시아를 넘어 세계영화계를 뒤흔들었던 ‘홍콩영화’ 속의 실제 거리와 건물을 직접 목격하는 것은 그야말로 뿅 갈 노릇이다. 주성철이 발로 써내려간 이 기록은 영화와 삶을 뿅 가게 이어주는 훌륭한 가교다. 이제 우리는 그와 함께 홍콩으로 뿅 가기만 하면 된다.


그렇다. 뿅 가기만 하면 되는 홍콩 가이드북이 나왔다. 이 책을 토대로 테마 여행 상품을 만들어도 될 듯하다. 일명 ‘홍콩 영화 속 장면을 찾아서’가 어떨까. 장소를 찾아가는 게 주 테마이지만 소 테마로 세분화가 가능하다. 책의 목차대로 홍콩섬, 구룡반도, 신계, 란타우섬, 마카오와 카이핑 을 돌아보는 모범생 루트를 짜보는 거다. 아니면 영화별, 배우별, 감독별로 구분해서 가보는 방법이다. 정답은 없다. 내가 가보고 싶은 곳으로 가면 되는데 홍콩여행이 자유로워질 때가 언제일지... 곧 오겠지?

이 책은 단순히 홍콩여행 가이드북이 아니다. <화양연화> 속 양조위와 장만옥이 몰래 만나던 레스토랑이자 <2046>에서 양조위가 소설을 쓰던 장소, 1960년대 홍콩의 시간과 정서 속으로 관객을 데려가는 곳, 그곳은 바로 왕가위 감독이 사랑한 ‘골드핀치 레스토랑’이다.



골드핀치 레스토랑(장소)을 시작으로 화양연화 줄거리와 등장인물 소개(영화)가 미술, 음악과 함께 쏟아지고, 당시 중국 본토와 홍콩의 관계(역사), 홍콩의 분위기까지 훑는다. 그리고 골드핀치의 메뉴를 소개한 후 그곳이 ‘노스탤지어 레스토랑’으로 이름을 바꾸어 이전했다고 위치까지 소개한다.


이렇게 가이드가 끝나면 심심하니까, 변해버린 영화 속 장소의 아쉬움을 달래려고, 이 꼭지 마지막에 화양연화의 마지막과 오버랩을 시킨다. 엔딩장면의 자막으로.


"그는 지나간 날들을 기억한다. 먼지 낀 창틀을 통하여 과거를 볼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이 희미하게만 보였다."


이런 구성이야말로 골드핀치레스토랑용 풀세트가 아닌가! 읽는 것만으로도 만족감을 주는 완벽한 편성이다.


영화는 좋아해도 여행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이 책! 일독을 권한다. 앞에서 말한 대로 책을 읽고 영화 속 장소를 찾아가는 투어를 계획하고 실천할 생각에 심장 쿵쾅거릴 사람은 그것을 맘껏 누리면 된다. 여행에 별 취미가 없다면 이 책을 '홍콩영화 가이드북'으로 삼으면 된다. 장소에 대한 설명과 여행자를 위한 식당, 호텔 소개도 좋지만 책 전체에 베이스로 깔려있는 건 홍콩영화이기 때문이다. 나는 주윤발을 좋아했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가 언급한 주윤발 영화 중 안 본 것이 더 많았다. 고등학생 신분으로 당시에 어마무시하게 찍어댄 영화들을 개봉하는 족족 다 보긴 힘들었을 거라고 변명 아닌 변명을 해 본다.

주윤발이 느와르만 찍었을 것 같지만 아니다. 장르불문 다작왕이었다. 느와르는 물론 코미디, 멜로까지 쉴 틈 없이 찍었고, 너무 많은 영화에 동시 출연하다보니 대사를 다 외우지 못할 지경이었다고 한다. 그럼 어떻게 영화를 찍었단 말? 그 때는 후시녹음이라서 가능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 그리고 처음 듣는 제목 <감옥풍운>에서 주윤발은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잭 니콜슨을 연상시킬 정도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팬이었다면서 본 영화가 몇 편 안 되다니 슬며시 낯 뜨거워졌다. 그래서 저자가 소개한 주윤발 영화를 리스트업해서 보려고 한다.

양조위 영화도 찬찬히 봐야할 게 많다. <류망의생>에서 양조위가 “Let It Be Me’를 부르는데 저자는 이 노래의 여러 리메이크 곡 중에 양조위 버전이 가장 좋았다고 했다. 요 영화, 리스트 1번 각이다! 아, 저자는 음악 얘기도 자주 하는데 장국영과 매염방이 같이 부른 <연분> 주제곡의 애절함을 이야기하며 그들의 사망을 안타까워했다. 2003년 4월 1일 장국영이 떠난 후 매염방도 소문에 의하면 충격으로 병세가 악화돼 그해 12월 30일에 영원히 잠들었다. 이렇게 책에서 언급한 영화를 배우별로 리스트업해서 하나씩 도장깨기하고, 소개한 음악들을 플레이 리스트에 업로드 해두면 홍콩에 여행가지 않아도 홍콩에서 지내는 것 같을 것이다.


홍콩영화 광팬이 영화평론가가 되었고 무수한 취재를 바탕으로 다른 홍콩영화 팬들을 위해 책을 냈다. 이 책 앞에서, 홍콩영화를 두고, 누가 먼저 팬이 되었고 누가 더 많이 좋아하는지를 견주는 일은 의미 없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은 이를 축복하고, 그 혜택을 받을 수 있음에 고마워하면서, 우리는 홍콩에서 만나면 된다. 헤어진 이들도 다시 홍콩에서!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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