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 - 아픈 나와 마주보며 왼손으로 쓴 일기
고영주 지음 / 보다북스 / 2022년 4월
평점 :

평생을 오른손 위주로만 살아왔다. 작년 여름부터 오른쪽 팔꿈치 뼈가 아팠다. 병원에 갔더니 뼈에는 이상이 없었다. 일명 테니스 엘보우, 팔꿈치를 주로 사용하는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란다. 근육에 염증이 생겼고 석회화도 진행되었다고 했다. 의사에게 “저는 테니스도, 골프도 안 치는데요?” 했더니 “주부시잖아요!” 그렇다. 주부라는 직업으로 너무 오래 오른팔만 혹사해왔다. 치료를 할 때 잠시 괜찮더니 지난 겨울부터 점점 심하게 아파서 청소하거나 무거운 것을 들 때는 왼손을 주로 사용해야 했다. 왼손에 수세미를 들고 설거지를 하는데 뭐가 이렇게 엉성하냐! 왼손은 정교성이 너무 떨어졌다. 빡빡 문질러야 하는데 것도 안 된다. 힘도 딸리는 거다.
그런데 오른손잡이가 왼손으로 일기를 쓰고 그림 그린 것으로 책을 냈다고? 내가 왼손으로 버벅거리고 있을 때 책 <이만하면 달콤한 인생입니다>의 광고를 보게 되었다. 왼손으로 일기를 쓴 사람은 초콜릿을 만드는 고영주씨라고 했다. 앗, 내가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이라니! 어머 이 서평 이벤트엔 꼭 참여해야 해! 그래서 신청했고 당첨되었다.
책은 2021년 4월 7일에 왼손으로 쓴 일기부터 시작한다. 갑자기 나도 왼손으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 제목을 왼손으로 써봤는데 이런 괴발개발이 있나...
↑ 일주일간 왼손으로 써보니 조금 늘긴 늘었다.
저자는 20년 넘게 초콜릿을 만들어 파는 쇼콜라티에이다. 자칭 초콜릿 기술자인 오른손잡이가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굽어버렸다. 예전처럼 유연하게 움직이지 못하게 되었다. 어느 날 그는 매일 글 쓰고 그림 그리기를 실천하겠다고 공언하고 어길 시에는 백만원을 기부하겠다고 다짐했다. 10달이 넘는 시간동안 왼손으로 실행에 옮겼고 그것을 SNS에 올렸다가 책으로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이 책은 저자의 일기와 에세이, (음식 그림 포함)초콜릿 레시피로 구성되어 있는데, 대부분 왼손으로 직접 그리고 썼다. 처음에 삐뚤빼뚤했던 글자가 어느 순간 예뻐지고 있었다. 줄 없는 노트인데 오르락 내리락하지도 않고 가지런해졌다.


그는 왼손으로 쓰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했더니 에필로그에 이렇게 썼다.
"왼손 글씨로는 복잡한 생각을 다 쓰기가 힘들다. 그래서 덜어내고 건너뛰며 쓰게 되는데, 다 쓰고 읽어보면 굳이 쓰지 않아도, 혹은 버려도 상관없는 생각들이 참 많구나 싶다."
역시 덜어내기다! 좋은 퇴고는 많이 덜어내는 것이라더니 애초에 이렇게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것들은 건너뛰는 것도 한 방법이겠다 싶었다.
이 책은 저자가 일기를 쓰면서 생각을 정리한 것, 힘들었던 개인사, 사장으로서 가게를 운영하며 겪게 되는 고충들 등등 독자 입장에서 공감할만한 것들이 많다. 다들 비슷비슷한 고민을 하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리라. 남의 일기를 왜 읽냐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래서 읽는다.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사람 사는 모습 거기서 거기구나 하며, 일면식 없는 타인의 삶으로 위로받을 수 있는 것이다.
저자와 올레길을 같이 걸었던 친구의 소감이 제 맘과 같이 너무 좋아서 옮겨 적는다고 한 내용은 지금 하는 일에 갈피를 못 잡고 흔들리는 사람들에게 걱정 잠시 접고 뚜벅뚜벅 앞으로 걸어가라며 용기를 줄만하다.

저자는 심리상담을 왜 받냐는 질문에 대한 답을 잘못해 횡설수설하다가 집에 돌아와 천천히 생각해보니 이런 답이 나왔다고 했다.
"나와 친해지고 싶어서요. 나를 좀 더 알고 나를 좀 더 이해하고 위해주고 싶어요. 나 말고 나를 이만큼 이해하고 싶은 사람 없잖아요. 나를 잘 이해하고 싶어요."
우린 타인을 이해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정작 자신은 잘 모른다. ‘나 말고 나를 이만큼 이해하고 싶은 사람 없다’는 말이 참 맞는 말이다. 타인보다 나를 잘 이해하고 위해주는 게 먼저다. 자신을 잘 알면 어떤 어려운 일이라도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20여년 전 벨기에에서 배워와 '카카오봄'을 차린 이후로 사장을 하고 있으니 시대의 흐름과 종업원들의 태도 변화를 몸소 겪었고 이젠 다 잘 아는 것 같아도 여전히 처음인 것 같은 상황과 맞닥뜨릴 때가 있다. 코로나 팬데믹이 그런 경우다.

쇼콜라티에로서 저자가 받은 진단명이 한 두 개가 아니다. 하지정맥류부터 시작해 허리, 어깨, 팔, 손목, 손가락까지 골고루다. 운동을 해야지, 해야지 다짐을 하면서도 운동보다 쉬는 게 먼저가 아닌가 하며 또 핑계를 댄다. 그러나 규칙적인 운동과 골고루 음식 섭취 같은 방법 역시 잘 알지만 실천이 힘들다. 저자는 습관으로 잘 지키겠다고 표어를 하나 만들었다.

왼손으로 이렇게 그림을 잘그리다니 대단하다!

↑ 저자가 좋아하는 서해안 어느 펜션에서

↑ 옥상에 도시양봉을 하면서 벌을 관찰하게 됨
2021년 12월 31일 일기에서 저자는 친구와 냉면을 먹으면서 한 해를 돌아본다. 많은 변화가 있었던 한 해였고 큰 일도 무사히 치른 것 같다며 내년을 다짐했다. 소박하게.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