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숨
김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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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사랑한다는 낱말을 사용할 때, 그 대상은 보통 이성을 일컫는다. 대부분 이성애를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곧 동성애는 비정상적이며, 이성끼리의 관계는 사랑하거나 사랑하지 않거나 둘 중 하나라는 뜻도 내포한다. 김혜나 작가의 소설집 <깊은 숨>을 읽으며 아주 오래전에 내가 의문을 품었던 문제를 떠올렸다.


남녀 간에는 친구가 될 수 없나?’

남녀가 사랑하면 꼭 섹스를 해야 하고, 결혼을 해야 사랑이 완성되는가?’


20대 초반에 천착했던 문제였고, 해답을 구하지 못한 채 이른 나이에 결혼했다. 육아와 가사노동에 절어있던 시기에 그런 문제를 떠올리는 건 사치였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는 하루하루를 무사히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세월을 지냈다.


<깊은 숨>에 수록된 일곱 편의 소설 주인공은 20대에서 50대의 여성이다. 크게 보면 사랑이 소재다. 동성애를 포함하며 이성이라해서 섹스를 포함하는 관계는 아니다. “레드 벨벳코너 스툴은 남녀 관계에서 친구란 성립할 수 없는 것인가를 묻는다. 두 소설의 여자 주인공은 비슷한 일을 하는 남성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고 서로의 영혼이 통한다는 것을 느끼며 충만함을 느낀다. 그런데 여성이 싱글이고 남성이 유부남일 경우, 그들은 불륜이 된다


레드 벨벳의 영어 강사 해럴드는 아내가 있다는 이유로 주인공과 개인적인 만남을 가지길 거절한다. 주인공이 불륜을 하자고 한 게 아니었다. 영문학 번역 및 토론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해럴드의 행동을 주인공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는 대면 만남을 피하면서도 주인공에게 그녀의 영어 실력이 향상되길 바라는 자료를 우편으로 보냈다.


해럴드가 학원을 그만두기 전 마지막에 사용한 수업 교재는 엘리자베스 버그의 <아서 씨는 진짜 사랑입니다>라는 책이었고, 그녀에게 전자책 파일을 보내주었다. 주인공은 어리둥절했다.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는 어디까지가 친구이고 어디서부터 연인일까? 사람들은 애초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친구 관계가 성립할 수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모든 인간과 인간이 언제나 연애 감정을 가지고 누군가를 만나고 있다는 말인가?’ -p.236~237


내가 예전에 궁금해 했던 것과 같은 질문을 소설에서 만났다. 위 질문에 대한 답으로 작가는 10대 소녀와 여든 다섯 살 할아버지의 만남을 다룬 이야기를 집어넣은 것 같다. <아서 씨는 진짜 사랑입니다>가 밀리의 서재에 있기에 바로 다운로드 받았다.


코너 스툴의 주인공 소설가 이오진 역시 책방지기 박호산과 마음이 통하는 대화를 나누었고 만족스러웠다. 호산은 자신이 쓴 습작 소설을 오진에게 한 번 읽어봐 달라고 해서 두어 번 만남이 이루어졌으나 호산의 아내가 둘의 관계를 오해하게 된다. 그녀가 보낸 편지를 본 아내가 오진을 불러 이렇게 말한다.


아이, 씨발. 진짜 이 개 같은 년이 어디서 자꾸 호산 씨래? , 어디서 감히 남의 남편을 함부로 만나고 이딴 걸 써서 보내? 왜 남의 남자한테 수작을 부려? ?”


오진은 그런 거 아니라고 반박하고 싶었지만 입을 다물었고, 이렇게 생각했다.


박호산씨를 남자로 대한 적이 없다고, 나는 그와 연애하고 싶은 게 아니라고, 나는 그를 남자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인간으로, 나와 같은 존재로, 나와 같은 영혼으로 바라보고 있을 뿐이라고, 그게 다라고 말하고 싶었어. 그리고 나는, 나는... 레즈비언이라고 말하고 싶었어.’



오지 않은 미래에서도 애인이 있는 남자와 만남을 회피하려는 주인공이 나온다. 그 남자가 주인공에게 호의적으로 대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다. 셋이 만나고 있는 동안에 커플 진수와 민서가 주인공 여경에게 스스럼없이 대하고 진수가 여경의 글을 좋아한다고 대놓고 말한다. 여경은 부다페스트에서 진수의 도움을 받으면서도 거리감을 두려고 노력했고, 한국에 돌아와 셋이 같이 만났을 때도 그 만남을 얼른 끝내고 싶어 한다. 이 소설에서 주인공 여경의 행동은 몹시 조심스럽다. 상대 커플이 부부관계가 아님에도, 커플의 여성, 즉 민서가 여경을 경계하지 않음에도, 여경이 먼저 철벽을 친다. 이상한 시선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한 본능적 행동이다.


이 소설들을 읽으며 인간관계의 협소함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남녀 간의 만남은 사랑과 섹스뿐이라는 단순성은 언제부터 만들어진 걸까. 오랜 시간 재생산 되어온 미디어의 영향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사랑의 원형처럼 읽히는 소설들로 인해 우리 인식에 자리 잡은 것이란 생각이다. 내 생각엔 원조 러브스토리로 로미오와 줄리엣”, “마담 보바리같은 불륜 소설이 대표주자인 것 같다. 예전에 비하면 요즘은 다양한 소재의 소설이나 영화가 나오고 있지만, 사랑을 소재로 한 것들은 여전히 대중에게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남녀가 만나면 사랑하고, 섹스하고, 결혼하거나, 불륜인 내용들은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김혜나 작가는 이 소설집을 통해 인간애를 말하고 있다. 이성끼리 만나서 사랑만 하는 건 아니라고. 배우자가 있는 사람과 만나면 죄다 불륜인 것은 아니라고, 인간 대 인간으로서 소통하고 마음을 나누는 관계도 있다고. 사랑조차 이분법적인 세상에서 작가의 이야기가 소설에서나 가능한 것으로 치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가 말하는 인간애가 성별 구분이 없어지길 바란다. 나도 마음 터놓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상대가 있다면 좋겠다. 남자여도 여자여도, 나이가 많건 적건 상관없다. 공통 관심사로 손뼉치며 웃고 떠들고 밤새도록 이야기 하고 싶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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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한의 이웃 - 허지웅 산문집
허지웅 지음 / 김영사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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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의 글은 <살고 싶다는 농담>으로 처음 만났고, <최소한의 이웃>으로 두 번째다. 앞부분을 읽다 갸웃했다. 지난 책이 좋아서 이번에 김영사 서포터즈 지원도서라서 신청해서 받아 읽었는데 이전 같은 감흥이 일지 않았다. 절반 정도를 읽었는데 여전해서 내가 썼던 <최소한의 이웃> 리뷰를 꺼내 읽어보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그의 이미지와 차이점을 글에서 발견했고 그의 스타일을 꽤나 맘에 들어 한 기억이 났다.


그럼 이번 책은 왜 다를까? 물론 감동받았던 작가의 모든 작품이 그러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아무래도 독자의 독서 컨디션이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한다. 독자가 그 책을 만났을 때 어떤 상황인지에 따라, 당시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화두가 무엇이었나에 따라 감상의 폭은 상당한 차이가 있을 것이다. 이번 책의 주제는 작가의 말에 나와 있는 대로 이웃을 향한 분노와 불신을 거두고 나 또한 최소한의 이웃이 될 수 있는 길을 모색하자 는 것이다. 공감 못하는 이유는 내가 이웃과 교류가 없어서일까? 꼭 옆집 사람만을 이웃이라 지칭한 것이 아님은 안다. 그럼 나는 주위 사람들에 너무 관심이 없는 걸까? 소설 속 인물들에는 관심이 많은데... 몸은 현실에 있지만 머릿속은 가상 세계를 헤매기 때문일까??


이리저리 머릴 굴려보다 책으로 다시 돌아갔다. 한 눈에 들어오는 문장은, 책의 중간 중간엔 사이즈를 줄이고 조금 두터운 질감의 내지에 메모하듯 프린트된 문장들이었다.



 


이 책은 총 6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부에는 한 바닥 혹은 두 바닥 정도로 짧은 글이 20편 이상 실려 있다. 각 글의 소재는 우리 가까운 곳에서 벌어지는 일들, 뉴스에 실린 각종 사건 사고들, 작가의 일상 속 일들이다. 이런 간단한 일화 소개 후 마지막에 작가의 단상을 다는 형식이다. 독자가 그와 유사한 경험이 있거나 접해 본 기사라면 공감하며 읽을 수 있고 작가의 생각에 동의할 것이다. 나는 그 단상에 살짝 거부반응이 들었다. 너무 교훈적으로 마무리 하려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언뜻 평범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이런 짧은 글을, 이렇게나 많이 모아서 책으로 내다니, 역시 작가라서 가능한 거구나 싶기도 했다.


그래서 내가 썼던 전작 리뷰를 찾아 읽을 수밖에 없었는데, <살고 싶다는 농담>에서 발췌해두었던 문장을 다시 옮긴다.


"함께 버티어 나가자라는 말을 좋아한다. 삶이란 버티어 내는 것 외에는 도무지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이다."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한 평정심과 바꿔야 할 것을 바꿀 수 있는 용기, 그리고 이 둘을 구별할 수 있는 밝은 눈을 갖게 되기를.“


다시 <최소한의 이웃>으로 돌아왔고 끝까지 읽고 보니 위 인용문의 해설서가 <최소한의 이웃>인 것 같다고 생각했다.


p.128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이 거창한 게 아닐 겁니다. 꼭 친구가 되어야 할 필요도 없고 같은 편이나 가족이 되어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내가 이해받고 싶은 만큼 남을 이해하는 태도, 그게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의 전모가 아닐까 생각해보았습니다.


p.252

지금 이 순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일에 매진하고 있는 모든 이를 떠올리며 박수를 치고 싶습니다. 아무도 몰라준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당신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입니다.


p.303

고통에 잠식되어 있을수록 눈앞의 일에 사로잡히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언젠가 반드시 희망이 있는 삶을 회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고통이 있으면 거기 반드시 희망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희망이 잘 보이지 않는 이유는 평정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평정을 찾아 희망에 닿기 위해선 이미 벌어진 일에 속박되지 않고 감당할 줄 아는 담대함, 그리고 타인을 염려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입니다. 찾을 수 없어도 괜찮습니다. 사라진 게 아니라 다만 잠시 희미해졌을 뿐입니다. 나의 일을 감당하고 남의 일을 염려하다 보면 반드시 평정에 이를 수 있습니다.



이 책을 읽은 후 이렇게 짧은 글 한편 정도야 나도 쓰겠다며 허장성세 부릴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이토록 밝은 눈으로 세상에 귀 열고 분주히 글을 써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허지웅 작가의 글을 후루룩 읽은 후 밥 뜸을 들이듯 잠시 포즈 상태를 유지해보자. 내 모습이 어떤지, 최소한의 이웃이 되려면 나는 어떠해야 할지 눈 감고 그려보자. 어떤 이웃이 될지 안 떠오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음의 평온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의 글을 처음 만났을 때 느낌은 담백함이었다. 두 번째 책으로 만나니 짱짱함을 느꼈다. 그런데 그는 오랫동안 휘둘리며 살았다고 고백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의와 상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 자를 믿어선 안 됩니다. 당신은 달랐으면 합니다. 당신이 충분히 많이 읽고 많이 듣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상을 구분할 수 있는 맑은 눈과 밝은 귀를 갖는 데 행운을 누리길 바랍니다.”


그는 옛날 드라마를 보며, 함께 공감하고 응원하고 내가 가진 것들을 고맙게 만드는 이야기들이 자취를 감췄다고,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로 스스로를 평가하게 만드는 이야기들만이 남았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 삶에서 사라져버린 것들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했다.


어렸을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을 매우 기뻐했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라는 과거시험 문제를 낸 왕을 불러온 후 어린이날이 오는 걸 손꼽아 기다렸던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더 이상 어린이가 아닌 누군가에게 별 의미 없는 휴일이지만 어린이와 같은 마음으로 세상을 돌아볼 여유와 평정을 찾는 하루가 될 수 있다면 꼭 어린이가 아니더라도 기다릴 수 있는 어린이날이 될 거란다.


그의 짧은 글은 이런 저런 생각의 가지를 뻗어나가도록 만들었다. 이 책은 단번에 다 읽는 것보다는 한 두 꼭지의 글을 읽은 후 생각을 정리해보거나 글을 써보기를 추천한다. 날 지키는 파수꾼을 찾아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전에 내가 이웃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해 보자. 또 이웃의 범위를 길고양이, 집 근처 하천 등 사람을 너머 생태 전반으로 확장시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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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아서
박산호 지음 / 더라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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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찾아서>는 러브스토리다.

선우는 갓난아이 연우를 데리고 앞집으로 이사 온 아랑을 사랑하게 되었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바로 상대를 순수하게 진심으로 궁금해 하는 마음이라는 것. 아랑은 바로 그 선물을 내게 준 사람이다. 처음이자 유일한 사람.”


제대로 사랑받고 자라지 못했던 선우는 자신에게 찾아온 선물 같은 사랑에 5년 만에 절절한 고백을 했지만 거절당했고, 그녀는 연기처럼 사라졌다. 그 때 선우가 스물이었고 아랑은 선우보다 열 살이 많은 나이였다.


그리고 현재, 서른 다섯 선우는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고 있다. 비오는 날 아침 학교 캠퍼스에서 자신에게 우산을 씌워 준 여학생 지우가 아랑과 너무나 닮아 깜짝 놀란다. 지난 15년 간 사라진 아랑을 계속 찾았지만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었는데 그녀와 닮은 지우를 만나며 선우는 속절없이 흔들린다. 제 평생 유일한 사랑인 아랑과 닮았다는 이유로 그녀에게 스며들게 되는 자신이 당황스럽지만 이 설레는 감정이 싫지만은 않다


선우 이야기는 선우의 사랑이야기다. 아랑은 선우에게 첫사랑이자 끝사랑이었고 말없이 떠나버린 그녀를 15년 동안 찾아 헤매고 있다. 나이가 열 살이나 많다는 건 그에게 아무런 문제가 아니다선우 이야기는 사랑의 정의를 묻고 있다. 작가는 독자들이 사춘기 남학생의 치기어린 사랑으로 여길 수 없도록 선우의 상황을 완벽히 세팅해놓고 선우 시점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서술한다. 하나의 단편처럼 완결성이 있으며 이어지는 아난 이야기’ ‘연우 이야기역시 그러하다. 세 편은 모두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사랑의 절실함은 선우 이야기에 가장 극대화 되어 있다.


<너를 찾아서>는 박산호 번역가의 소설 데뷔작이다. 인스타에서 출판사 작품 소개를 봤을 때 스릴러물이라서 꼭 읽어보고 싶었다. 영어 번역으로 유명한 그가 쓴 소설은 어떨지 아주 궁금했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세 명의 등장인물 각각의 1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있는데 첫 서술자 선우의 이야기에 미스터리적 요소가 가장 많다. 두 번째 세 번째로 갈수록 앞에서 궁금했던 것들이 하나씩 풀리는데 이 소설은 마치 퍼즐 맞추기 같았다.


처음, ‘선우 이야기는 사각 퍼즐 판 중앙에 눈에 띄는 조각 몇 개만 올려둔 채 네 귀퉁이와 가장자리만 채운 형국이었다. 안쪽의 그림이 무엇일지 잘 그려지지 않았다. 그러다 두 번째 아난 이야기에서 어려운 조각들의 자리가 착착 맞춰지더니 세 번째 연우 이야기는 가속도가 붙어 남아있는 퍼즐 조각이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그렇게 완성이 되면 좋으련만 퍼즐 맞추기가 꼭 그렇듯 마지막 남은 몇 조각이 제자리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게 한다. 이 소설도 마지막, ‘모두의 이야기에서 마지막 조각의 역할을 하는 반전의 반전이 드러나면서 스릴러적 요소의 정점을 찍는다.


스릴러 소설의 시점이 1인칭인 경우가 많다. 화자가 보고 생각하는 것으로만 서술되기 때문에 어떤 사건의 한 면만을 보여준다. 그것이 독자가 오해하는 장치로 작동해 독자가 숲을 보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화자를 여럿 내세워 각기 다른 시각을 서술함으로써 독자에게 사건의 다른 면을 볼 기회를 제공한다. 작가는 이러한 기법을 충분히 활용하고 있으며 그것으로 부족한 부분을 위해 특수한 능력을 등장인물 한 명에게 부여한다. 두 번째 화자 아난은 타인과 신체적으로 접촉했을 때 그 사람의 기억 속 어떤 장면을 볼 수 있다. 이것은 1인칭 화자의 서술로는 부족한 부분을 메우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초능력적 요소가 설득력을 얻기 위해 아난의 외할머니를 무당으로 설정하여 독자가 아난의 능력을 무리 없이 인정할 수 있게 해준다. 마지막 반전에서도 아난의 이 능력이 큰 역할을 하는데 독자에 따라 아난과 선우 사이의 대화를 반전으로 인식할 수도, 아난이 별장으로 돌아오기 전 선우의 독백이 더한 반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미안해, 연우야. 널 사랑하지만 아랑은 영원히 나만의 아랑이어야만 했어...”


우린 첫사랑에 이중적 시각을 가지고 있다. 어릴 때 뭣 모르고 하는 사랑이라 폄하하는 한편 순수함에 영원성을 더해 숭고한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이것이 열다섯 소년의 사랑, 사라진 그녀를 찾는 선우의 이야기에 공감하게 되는 이유다. 그럼에도 주인공 나이 때문에 설득 안 된다는 독자를 위해, 사랑은 죽음조차 불사를 수 있다는 것을 부각시키기 위해, 작가는 선우의 아버지를 사랑한 선아 누나를 등장시켰다. 그러나 선아 누나는 선우에게 남긴 편지에 이렇게 썼다.


선우야,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아야 해. 하지만 잊지 마. 사랑은 항상 널 실망시킬 거야.”


우리는 사랑에 끝이란 없길 기대한다. 해피엔딩이라는 말조차 둘은 죽을 때까지 행복하게 잘 살았다.’는 뜻이라고 여긴다. 현실은 그렇지 않다. 절절하게 사랑했건만 배신하고 죽인다. 둘의 사랑을 양팔저울 위에 올려놓으면 수평이 될까. 내가 더 많이 사랑하면 실망하고 슬플까. 사랑하면 충만함만 그득할 것 같지만 사랑해도 쓸쓸하다. 사랑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이유이고, ‘선우의 이야기를 한 남자의 사랑이라고 요약하기도 힘들다.


나에게 이 소설의 반전은 선우의 사랑이 아니라 선아의 사랑이었다. 이 소설은 사라진 아랑을 찾는 세 사람의 이야기가 줄거리이지만 선아의 이야기를 마지막에야 발견했다. 선우의 사랑이 순수한 이미지였다면 선아의 사랑은 구질구질했다. 눈여겨 읽고 싶지 않았고, 그녀의 행동이 사랑이란 말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비난하고 싶었다. 대체 왜 저런 인간을 사랑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마지막에 가서야 작가가 숨겨둔 소설 속 소설 같은 이야기를 찾아냈다. 프롤로그에 배치한 작가의 대범함에 엄지 척했다. 내가 늦게 눈치 챈 둔감한 인간일 수도 있다. 선아에게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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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시태그 오스트리아 & 부다페스트 #해시태그 트래블
조대현 지음 / 해시태그(Hashtag)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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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봄에만 해도 코시국이 끝날 것 같은 분위기라 해외여행을 계획하며 맘 설레었던 사람들 많았을 것이다. 나는 2020년에 예약되어있던 호주여행을 취소했었다. 그 여행 멤버들과 봄에 만나 하반기엔 유럽으로 가자며 이야기꽃을 피웠는데 얼마 못가 코로나 재확산으로 인해 계획은 또 무기한 연기되었다.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유럽을 그동안 해시태그 출판사의 책을 보며 대리만족 해왔다. 한 권만 들고 출발하면 될 정도로 꼼꼼하고 생생하게 가이드 해준다. 그러니 이번에 출간된 2022~2023년 개정판 <오스트리아&부다페스트> 서평단에 바로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

 

목차부터 살펴보면,




오스트리아에 대한 간단 소개와 오스트리아 각 도시의 유명 장소, 마지막엔 헝가리 (부다페스트 위주) 정보까지 알차게 실려 있다.

 

↓↓ 한 눈에 보는 오스트리아


 


앞쪽에 배치되어 있는 오스트리아의 사계절 사진을 보니 정말 그림의 떡이로구나!! 이렇게 책으로 꿈만 꾸는 시간이 얼마나 더 지나야 직접 가보나 싶다. 그래도 멋진 사진 보는 게 어디냐며 위로 아닌 위로를 했다.

 

여행코스 짜기에 앞서 오스트리아의 역사와 문화, 인물, 음식까지 소개한다. 이 책의 장점이 바로 이것이다. 단지 일정 짜는 법과 숙소와 식당, 명소만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출발 전에 필요한 거의 모든 정보가 들어있다.






↑↑ 추천 일정은 비엔나와 잘츠부르크 두 도시에만 머무는 45일 일정부터 1213일까지 총 13가지이다. 각 일정을 하나씩만 잡은 게 아니라 여정 별로 2~4가지 씩이라서 입맛대로 고르면 된다.



 

'오스트리아 한 달 살기'내용에서는 요즘 유행하는 한 도시 한 달 살기에 대한 저자의 솔직한 심정을 읽을 수 있었다.

 

현지인과의 교감은 없고 맛집 탐방과 SNS에 자랑하듯이 올리는 여행의 새로운 패턴인가, 그냥 새로운 장기 여행을 하는 여행자일 뿐이 아닌가?”

 

하나의 주제를 정해서 여행지를 선정하고 해외에서 한 달 살기를 해보면 좋다. 일상에서 벗어나 낯선 여행지에서 한 달 동안 여행을 즐기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한 달 살기의 핵심이다.”

 

내가 원하는 한 달 살기의 주제는 음악 축제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루체른 페스티벌에 얼마나 가보고 싶어했는지...

 

이 책에서 아바도가 빈 신년음악회를 지휘했다는 내용이 나와 반가웠다. 빈이 예술의 도시라는 걸 누가 모를까만 유수의 음악가와 화가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은 유명 건축물과 자연경관 사진 못지 않게 가슴 두근거리게 했다. 잘츠부르크에서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발자취를 좇고 음악당에서든 길에서든 클래식 음악을 직접 들으면 얼마나 충만한 시간이 될까.

 


음식 소개는 문화를 알 수 있어 배경지식 확장 차원으로 읽었고 식당 정보는 대충 읽었지만 카페 정보는 자세히 봐두었다. 현지인들은 어떤 ☕️ 를 좋아하고 어디가 맛있고, 같이 판매하는 디저트는 어떤지~~

 

 

마지막에 소개한 부다페스트는 한 도시이기에 전체 분량의 6분의 1정도를 할애했다.

 

↓↓ 부다페스트로 여행 가야하는 이유 6가지를 앞부분에 배치했다.




1. 저렴한 여행 경비 : 서유럽 경비의 절반이다.

2. 동유럽의 파리 : 동유럽의 장미로 불린다.

3. 다양한 건축 양식 : 바로크, 신고전주의, 아르누보 양식이 뒤섞여 있다.

4. 안전한 치안 : 다른 유럽국가에 비해 안전하다. 

5. 온천의 도시 : 1년 내내 실내와 노천탕을 개방하고 있는 곳이 많다.

6. 화려한 야경 : 야경이 아름다운 도시하면 파리인데 부다페스트의 야경을 보면 반전이라고 느낄 정도로 화려함에 감탄하게 된다.

 

부다페스트도 역사와 인물, 유명 장소 위주로 소개하고 있다.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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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꿀꺽
현민경 지음 / 창비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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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딱 어울리는 말놀이 그림책이 나왔다.

 

싱그러운 연두색으로 시작하는 앞면지를 열면 왼쪽 아래엔 연두초록 포도가 주렁주렁~

오른쪽 위엔 이글이글 빠알간 해님이~

아이가 포도 한송이를 따서 오두막으로~


 

포도 한알을 꿀꺽~

포도~

페도~

 

 

아이가

포포포포~~

하면서 하늘로 휘이익!!

도도도도~~~

하면서 내려오는 포도를

~~~울 꺽!!

 

한장한장 넘길때마다 노래하듯 포오도~ 폼동폼동~~

연두 포도 한 알을 던졌더니 해님에 통!하고 튕겨나올 땐 보라색!

보라색 포도를 맛나게 먹었더니

구름이 와서 같이 먹고 포동포동 살찌워 보라색 비로 도도도도~~

세차게 내려 아이가 보라색 강에서 폼동폼동 헤엄치고,

해님도 메뚜기도 거미도 신나게 물놀이~~

 

다음 두 페이지는 내지 전체가 보라~

아이가 빨대로 포로록 빨아먹는 포도주스가 되고, 점점 줄어드는 보라~

이어

나타나는 해님과 오두막, 구름~


한 송이 더?”


 

아이는 즐겁게 포도 한송이 따러 가고,

왼쪽엔 구름과 해가,

오른쪽엔 보라 포도가 주렁주렁~~

그리고 마지막 두 면지는 보라색~!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그림책이다.

색의 변화를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여내고,

최소한의 글자속엔 무수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평면 위에 그려진 아이의 표정과 포도알이 살아 움직인다.

곤충들과 해와 달과 빗방울도 역동적이다.

이 모든 게 포도이기에 가능하다는 게 놀랍다.

 

​☞ 이 그림책을 보고나면 벌어질 일!

냉장고를 열어 포도 한송이를 꺼낸다.

가족 모두 둘러앉아서,

포도알을 포도독 떼어

포포포포~~ 하며 입으로

도도도도~~ 하면서 씨를 뱉고 나면,

마주보고

파하하하~~~~ 웃는다.

포도의 계절에 딱이다.

이젠 포도가 나는 때가 오면

이 그림책을 꺼내 포도를 먹게 될 거다!

 

​☞ 내가 고른 이 한장!

저 단순한 그림 속에 깃든 극강의 만족감이라니!

포도를 먹을 때 내 표정도 꼭 저렇다.


 

​☞ 이 그림책에 한마디~

"단순한 디테일"

 

​☞ 요 그림책 읽고 아이와 할 수 있는 독후 활동

1. 그림대로 따라하기, 그려 보기

2. 그림책에 쓰인 낱말로 노래 만들어 불러보기

3. 좋아하는 과일로 그림책 만들기

 

 

 

 

**위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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